<강철 소방대 101화>
101화. 세계의 지붕 (6)
* * *
구조팀이 떨어져 내린 곳은 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크레바스였다.
하얗게 보여야 할 빙하의 단면이 너무 깊어, 푸르다 못해 칠흑같이 어두운 틈새.
그리고 그런 크레바스 중간에 구조팀이 아슬아슬하게 로프에 매달려 있었다.
“허억, 허억.”
다들 떨어지는 와중에 부상을 입었는지 곳곳이 피범벅인 상태로 거친 숨을 토해 내고 있었고, 그 중간에 이성하가 로프에 매달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성하야, 이성하.”
“엄마?”
“얼른 일어나, 아들.”
“좀만 더 잘게요.”
“안 돼, 얼른 일어나서 엄마랑 가자.”
“네?”
“얼른 일어나라고.”
따뜻하고 그리운 엄마의 목소리라, 생각한 그 순간 엄마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이성하! 일어나!]
렉스의 목소리가 그런 엄마의 목소리로 섞여 들어왔고, 그 뒤로 거뭇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성하, 일어나…….”
간신히 고통을 참아 내며 쥐어짜듯 토해지는 목소리였으며, 그에 이성하는 간신히 눈을 뜰 수 있었다.
“데, 데일?”
“콜록, 콜록. 일어났네.”
고통에 찬 데일의 목소리에 비로소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눈을 뜨고 보게 된 상황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산 건가…….’
휘이이잉.
발밑으로 보이는 새카만 어둠에 아찔한 공포심이 새어 나왔지만, 다행히 등산로에 설치된 로프가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꽈아아악.
뿐만 아니라, 허리춤에 걸어 둔 로프가 팽팽하게 구조팀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눈앞으로 보이는 빙벽의 튀어나온 부분을 잡아 몸부터 고정했다.
“데일, 위로 올라갈 수 있겠냐? 너랑 나 둘이서 끌어올려야겠어.”
밑으로 보이는 대원들의 모습에, 자신을 깨운 데일과 빨리 함께 위로 올라가 대원들을 끌어올릴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데일을 부르며 위를 올려다본 이성하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데일…… 너…….”
데일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서였다.
“왜? 보기 흉해? 콜록, 콜록.”
웃음을 짓고는 있지만 한쪽 팔이 빠져 축 늘어진 모습으로 고통 어린 기침을 토하고 있었고, 거기다 빙벽의 잔해에 심하게 부딪쳤는지 얼굴까지 피범벅이 돼 있었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이성하가 보자마자 놀라 고함을 내지를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데, 데일!”
데일이 고개를 떨구며 정신을 잃어서였다.
“제, 제길!”
파각!
그에 이성하가 필사적으로 아이스 툴을 벽에 박아 가며 데일의 곁으로 올라갔고, 그렇게 올라가 보게 된 주변의 흔적에 눈시울을 붉혔다.
“너 이 새끼…….”
운이 좋았던 게 아니었다.
빙벽의 위쪽으로부터 길게 파인 선 하나가 데일의 머리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그 끝에 데일이 갖고 있던 아이스 툴이 깊게 박혀 있었다.
꽈악!
얼마나 깊게 박았는지 날까지 완전히 박힌 모습이었으며, 그 아래로 여러 개의 아이스 스크류가 빙벽에 박혀 구조팀이 매달려 있는 로프를 지탱하고 있었다.
[너 떨어지면서 의식 잃을 때, 저 자식이 빙벽에 필사적으로 아이스 툴 박아서 낙하 속도를 늦췄어. 그것 때문에 팔이 빠졌는데도 악착같이 다른 팔로 벽에 로프 고정하더라. 그게 아니었으면 걸어 둔 로프가 끊어졌을 거야.]
‘데일이…….’
[그래. 그 자식 아니었으면 전부 죽었을 거야. 그 자식이 너희를 살렸어.]
들려오는 렉스의 말처럼 자신과 동료들이 살아 있는 이유가 운이 좋아서가 아닌, 데일의 희생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엔 엄청난 고통이 따랐을 게 분명했다.
‘우리 다섯을 견뎌 냈다고…….’
아무리 로프의 안전장치가 작동되었다 한들, 성인 남성 다섯의 무게를 홀로 버텨 낸 거나 다름없었다.
‘괜찮은 거냐?’
그런 상태에서도 악착같이 벽에 로프까지 고정한 거였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데일의 상태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그그그그극.
데일이 로프를 고정해 둔 아이스 스크류에서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끼익, 끼이익.
여러 개의 아이스 스크류로 로프를 고정하긴 했지만, 여섯의 인원이 로프 하나에 묶여 있다 보니 그 무게에 부하가 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에 이성하는 다시 아이스 툴을 빙벽에 박아 가며 밑으로 내려갔다.
‘다들 어떻게든 깨워서 올라가야 돼.’
데일이 자신을 깨웠듯, 나머지 동료들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서였다.
찰싹!
“마샬! 정신 차려!”
찰싹! 찰싹!
“명호 선배! 영인 선배! 정신 차려요!”
밑으로 내려가 동료들을 깨우기 위해 뺨들을 두드리며 고함을 질렀으며, 그에 두 사람이 힘겹게 정신을 차렸다.
“끄으으…… 이성하……?”
“콜록, 콜록. 성하야, 어떻게 된 거야?”
다행히 가장 먼저 떨어졌던 남명호와 최영인이 정신을 차리고 이성하를 알아본 것이다.
“마샬! 마샬!”
“…….”
안타깝게도 구조팀을 이끌던 마샬은 충격이 심했는지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이성하는 지금의 인원이라면 충분히 빙벽을 올라가는 게 가능하다고 봤다.
‘괜찮아. 셋이면 충분해.’
선배들과 자신의 힘이라면 얼마든지 이 빙벽을 올라가 다른 동료들까지 끌어올릴 힘이 있다고 봤으니까.
하지만 모두가 올라가는 건 아니었다.
다들 허리춤에 묶어 둔 로프 하나로 빙벽에서 버티는 상황이다 보니, 그걸 하나씩 나눠서 올리려면 한 명이 아래 남아야 하는 상태였다.
[한번에는 못 끌어올려. 밑에 한 명이 남아서 위에서 내리는 로프에 한 명씩 나눠서 올려야 돼.]
렉스의 말처럼 밑에 한 명이 남아야만 동료들을 안전하게 나눠서 끌어올릴 수 있었고, 이성하는 그 역할을 자신이 하기로 했다.
“선배들이 올라가세요.”
“뭐?”
“지금 제 상태가 제일 낫잖아요. 얼른요.”
가장 위쪽에서 떨어져 선배들보다 부상을 적게 입은 자신이 아래 남겠다고.
그 말에 남명호와 최영인이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네.”
“성하 말이 맞아요. 우리가 올라가는 게 맞습니다.”
아래 남는 대원이 가장 많은 힘을 쓰게 될 상황이었다.
후배에게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기는 게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성하의 말처럼 가장 부상이 적은 대원이 아래 남아 정신을 잃은 동료들을 책임지는 게 맞았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등에 멘 가방에서 여분의 로프를 꺼내고는, 주머니에서 꺼낸 나이프로 메고 있던 가방 끈을 끊었다.
슥슥슥슥!
빙벽을 올라가기 위해 최대한 몸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기 위함이었고, 이성하 역시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몸에서 가방을 떼어 냈다.
“부탁드립니다!”
“그래!”
어떻게든 선배들이 절벽 위로 올라가 새로운 로프를 던질 때까지 버텨 낼 준비를 마친 것이다.
하지만 빙벽을 올라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끄으으.”
“허억, 허억.”
가방을 떼어 내 무게를 줄였음에도, 부상 때문에 빙벽을 오르던 남명호와 최영인이 계속 고통 어린 신음을 토했고, 그런 고통을 겪는 건 밑에서 대기하던 이성하도 마찬가지였다.
‘으음…….’
[왜 그래?]
‘왼쪽 어깨가 맛이 갔어요. 통증이 좀 심해요.’
이성하 역시 빙벽으로 떨어지며 입은 부상 때문에, 몸이 통증을 호소하는 건 선배들과 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사람은 구조대였다.
어떤 상태에서도 움직일 수 있게 훈련된 게 그들이었고, 그 때문에 세 사람은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계속 움직였다.
“끄으으! 영인아. 내가 찍고 올라가는 부분만 밟고 올라와!”
“허억, 허억. 알겠습니다, 선배!”
남명호와 최영인이 악착같이 고함을 지르며 빙벽을 올라갔으며.
[혹시 모르니까 각각 스크류 하나씩 더 박아놔.]
‘네.’
밑에 남은 이성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동료들의 로프를 단단하게 고정했다.
“명호 선배, 올라가요!”
“끄아아아!”
동료를 살리기 위해.
[더 단단히 박아.]
‘박고 있어요!’
세 사람 모두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몸을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집념에 드디어 빙벽의 정상이 남명호와 최영인의 손에 잡혔다.
“됐어! 성하야 로프 던진다!”
휘이이익!
그렇게 올라간 남명호와 최영인이 빠르게 새로운 로프를 빙벽 밑으로 던졌고, 그런 로프를 이성하가 잡아 가장 밑에 있는 마샬의 허리에 묶었다.
[연결했으면 기존의 로프를 끊어!]
‘네!’
들려오는 렉스의 말처럼 단번에 나이프를 휘둘러 기존의 로프를 끊었으며, 그렇게 분리된 마샬의 몸을 아래서 받치며 선배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됐어요!”
“올려도 돼!”
“네! 끌어올려요!”
새빨개진 얼굴로 마샬을 밀면서 선배들에게 고함을 질렀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 세 사람은 기어코 모든 대원들을 위로 올리는 데 성공했다.
“허억, 허억. 성하야 괜찮냐?”
“네…… 괜찮아요.”
마지막으로 아래 있던 이성하까지 무사히 빙벽 위로 올라가는 데 성공할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기뻐할 시간은 없었다.
[이성하, 애들 상태가 좋지 않아. 빨리 내려가야 해.]
렉스의 말처럼 의식을 잃은 대원들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으으으…… 더워…….”
“하아, 하아.”
“콜록, 콜록.”
의식을 잃은 대원들 모두 심한 부상으로 계속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이었고, 그에 세 사람은 바로 몸을 일으켰다.
“선배님들 바로 가야 될 거 같아요.”
“그래. 가자.”
“빨리 가시죠. 시간 없습니다.”
다들 빠른 하산만이 의식을 잃은 대원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잘 알았으니까.
하지만 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하아. 하아.”
“콜록, 콜록.
세 사람 역시 부상으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거기다 에베레스트는 아직 눈보라가 몰아치는 상황이었다.
휘이이이잉!
여전히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파른 설산을 사람까지 부축하며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때문에 걸음을 옮기던 세 사람은 결국 얼마 걷지 못하고 눈보라 속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왜 이러지…….”
“끄으으…….”
털썩.
부상도 부상이지만 크레바스를 오르는 데 쓴 힘이 여간 적지 않아, 세 사람 모두 탈진이 온 것이다.
“서, 선배.”
이성하가 그런 몸 상태에 당황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털썩.
갑자기 주변이 노랗게 변하며 온몸에 힘이 빠져, 그대로 눈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고.
[이성하! 이성하!]
그 모습에 렉스가 다급히 고함을 질렀지만, 이성하의 상태는 여전했다.
‘아…….’
며칠간 잠도 못자고 계속 움직인 피로가 하필 이 타이밍에 한 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그대로 눈 속에 파묻혀 의식을 잃어 갔다.
‘피곤해…….’
온몸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피로감에.
그런데 그때 이성하의 귓가로 익숙한 기계음이 들렸다.
- 지직, 지직.
무전기에서 나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