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00화 (100/235)

<강철 소방대 100화>

100화. 세계의 지붕 (5)

한편, 각 구조대가 모여 있는 캠프1에서는 대원들의 때 아닌 환호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길, 정말 올라갈 수 있는 거 맞아?”

“하…… 불가능할 거 같은데…….”

구조팀이 휘몰아치는 강풍 속을 나아갈 때만 해도 가망이 없다는 생각에 모두 고개를 떨궜지만.

- 마샬입니다. 캠프4에서 데일과 챈들러 만났습니다.

“뭐? 정말이야? 애들 상태는?”

- 챈들러가 의식을 잃은 상태긴 하지만 아직 괜찮습니다. 바로 준비해서 내려가겠습니다.

“우와아아아!”

“성공입니다! 구조팀이 대원들을 만났어요!”

구조팀이 기어코 그 강풍 속을 뚫고 고립된 대원들을 만났다는 무전에, 모두가 기쁨의 포효를 질렀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행복에 찼던 대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번쩍-!

“티, 팀장님 번개가 다시 칩니다.”

지금까지 멈춰 있던 벼락이 다시 치기 시작했다.

콰광-!

새카만 어둠을 단번에 날릴 정도로 흉악한 번개가 에베레스트의 주변을 밝혔고, 그 때문인지 방금까지만 해도 작동이 잘되던 무전이 먹통이 돼 버렸다.

지지지직.

“젠장!”

“무슨 일이야?”

“통신 마비입니다. 뇌운 때문에 무전기가 주파수를 못 잡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통신이 아니었다.

콰르르르르!

번개가 친다는 건 기상 이변으로 발생하는 바람이 더욱 강해진다는 의미였다.

휘이이이잉!

“으읏! 텐트 잡아!”

안 그래도 강하던 바람이 더 강하게 불어 텐트까지 날아갈 듯 요동쳤고, 그에 다급한 표정으로 텐트 밖으로 나간 미국 구조팀장의 눈에, 거친 바람이 몰아치는 에베레스트가 들어왔다.

콰가가가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무섭게 몰아치는 눈보라에, 하산하고 있을 구조팀이 걱정돼 절망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런 미국 구조팀장의 걱정처럼, 구조팀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눈보라에 완전히 발길이 묶인 상태였다.

“제길, 안 보여!”

“더 천천히 가요!”

“안 돼! 보이지가 않아!”

안 그래도 어둡던 시야가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인해 더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걸음을 떼기조차 힘든 상황이 만들어졌고, 그런데도 억지로 움직이다 몇몇 대원이 눈길에 균형을 잃었다.

“어엇!”

트드드드드!

“으아아아아아!”

가장 앞에서 로프를 잡고 내려가던 남명호와 최영인이, 균형을 잃고 눈길에 미끄러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꽈아아악!

“제길! 선배님, 괜찮아요!”

“괘, 괜찮아!”

다행히 이성하를 비롯한 미국대원들이 허리춤에 연결한 로프를 빠르게 잡아 절벽으로 떨어지진 않았지만 자칫하면 모두 죽을지 몰랐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지금 자칫하면 절벽으로 다 떨어질 뻔했어.]

‘네…… 조금 더 긴장해야겠어요.’

렉스의 말처럼 그 아래로 절벽이 있어 하마터면 그 밑으로 모두 떨어질 뻔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더 이상의 하산은 위험하다고 봤다.

‘안 돼. 이 상태로는 체력만 낭비할 뿐이야.’

어떻게든 나아가고는 있지만 몰아치는 눈보라는 체력 소모를 더욱 크게 만들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 구조팀에는 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부상자가 둘이나 있었다.

“허억, 허억.”

“콜록, 콜록.”

오랜 시간 추위에 방치돼 고통을 호소하는 데일과 챈들러를 부축해 같이 내려가는 상황인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팀을 이끄는 마샬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마샬. 더 이상은 무리일 거 같은데, 여기서 버티다 아침에 내려가는 게 어떨까요?”

“여기서요?”

“네, 이런 시계로는 더 이상 무리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쉬다 가시죠.”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시야가 조금이라도 확보되는 아침에 이동하자고.

마샬 역시 그 말에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여기서 버티다 아침에 이동합시다.”

안 그래도 더 이상의 하산은 무리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휘이이이잉!

‘그래. 차라리 아침에 가는 게 낫겠어.’

다행히 구조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캠프4에서 출발할 때 텐트 두 개를 챙겨 왔다.

“미스터 남! 미스터 최!”

“오케이!”

“바로 설치할게요!”

마샬의 신호에 남명호와 최영인이 등에 챙겨 온 텐트 두 개를 한쪽으로 보이는 평지 구간에 설치했으며, 구조팀은 그렇게 설치한 텐트 안에서 짧게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참나, 내가 이런 곳에서 잠을 자게 될 줄이야.”

“선배님, 그래도 이게 나중에 다 추억 아닙니까?”

“추억? 야, 꺼지라 그래. 이게 무슨 추억이야? 빨리 집에 가서 김치찌개 먹고 싶어 죽겠구먼.”

“저는 두루치기요. 감자랑 양파 듬뿍 넣어가지고 거기에 소주 한잔 같이하면 키야아~.”

“큭큭큭. 미친놈.”

“아, 진짜 먹고 싶어요.”

고된 몸 상태에 온몸에서 피로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바람을 피해 몸을 눕히는 상황에 다들 먹고 싶은 음식들을 이야기하며 얼굴에 웃음들을 띠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엄마가 만들어 주는 순댓국이 먹고 싶네.’

[순댓국?]

‘네, 일 끝나고 먹으면 그거보다 맛있는 게 없거든요. 엄마는 잘 있겠죠?’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들을 이야기하는 선배들의 모습에, 오늘따라 엄마가 만들어 주는 순댓국이 너무 생각났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렇게 웃으며 대화할 때가 아니었다.

[쓸데없는 소리.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눈부터 붙여. 당장 두 시간 뒤부터 다시 움직여야 되는 거 몰라?]

렉스의 말처럼 휴식을 취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3시 40분이네요.’

[그래. 6시에 해 뜨면 움직이기로 했잖아.]

시계를 보니 출발을 하기로 한 시각까지 고작 2시간 정도가 남은 상태였고, 그에 이성하는 대화를 나누던 선배들을 향해 눈짓했다.

“선배님들 슬슬 주무시죠.”

“그래야겠지?”

“네, 두 시간밖에 안 남았어요.”

조금이라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눈을 붙이자고 선배들에게 말한 거였으며, 그렇게 한국 구조대가 있는 텐트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코오오오오.”

“드르렁.”

다들 웃으며 여유를 부리긴 했지만, 고된 산행에 지쳐 눈을 감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한국 구조대의 수면은 그리 길지 않았다.

“미스터 남! 미스터 이!”

옆 텐트에서 한국 구조팀을 부르는 미국 구조대원의 다급한 음성 때문이었다.

“무, 무슨 일이야?”

“가방! 미스터 이가 가지고 있는 약 가방 좀 빨리 갖다 줘!”

마샬이 다급한 음성으로 이성하가 들고 있던 약 가방을 찾았고, 그에 급히 일어나 동료들과 함께 옆 텐트로 건너간 이성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채, 챈들러?”

“허억, 허억.”

방금까지 의식을 잃고 있던 챈들러가 고통 어린 숨을 내쉬고 있었다.

“더워…… 더워!”

뭐가 그리도 더운지 인상을 찌푸리며 입고 있는 패딩의 자크를 내리고 있었고, 그런 챈들러를 마샬과 데일이 악착같은 표정으로 붙잡고 있었다.

“이 친구 좀 잡아줘요!”

“놔! 덥다고!”

“이성하! 빨리!”

“으아아아!”

무려 영하 40도에 이르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대원이 덥다고 소리치며 옷을 벗으려 하고 있었다.

“제길, 주사 놀 테니까 꽉 잡고 있어요!”

“아, 알겠어요!”

그에 마샬이 빠르게 약 가방에서 꺼낸 스테로이드 계열의 주사로 흥분한 챈들러를 진정시키긴 했지만, 그건 최악의 상황만을 막는 응급조치에 불과했다.

[심각한 저산소증이야.]

‘네, 그것도 중증이에요. 오래 못 버틸 거 같아요.’

렉스의 말처럼 지금 챈들러가 보이는 증상은, 심각한 저산소증으로 발생하는 정신 착란이었다.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점차 뇌가 부어 발생하는 대뇌부종의 초기 증세였고, 이 상태에 이르게 되면 해결책은 최대한 산을 빨리 내려가는 것밖에 없었다.

“제길…… 제길!”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다시 잠든 챈들러를 내려다보며 고함을 지르는 데일의 모습이 대변하는 것처럼, 딱히 치료약이 존재하지 않는 게 대뇌부종의 증상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데일과 마찬가지로 허탈해하는 마샬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마샬. 내려가시죠.”

챈들러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결정을 번복하고 산을 내려가자고.

휘이이이잉!

여전히 눈보라로 시계가 좁아 하산하는 건 무리였지만, 지금으로선 그 방법뿐이었다.

“더워…… 으으으으.”

계속해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옷을 벗으려는 챈들러의 상태를 보면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이었고, 그에 구조팀은 빠르게 정비를 마치고 다시 산 밑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시죠.”

“알겠습니다.”

아직 시계가 확보되지 않아 어떤 위험을 겪게 될지 모름에도, 동료를 살리기 위해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당연히 내려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제, 제길!”

트드드드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몰아치는 강풍에 또다시 대원들이 미끄러지는 일이 발생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마다 가장 위에서 악착같이 고정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파각!

끼이이익.

동료들이 미끄러질 때마다 낫과 같이 생긴 아이스 툴을 바닥에 박아 넣는 이성하였다.

‘끄아아아아!’

몸에 부하되는 동료들의 무게에 고통을 느끼면서도 악착같이 바닥에 아이스툴을 박았고, 그런 이성하의 노력 덕분에 구조팀은 다시 하산을 시작한 지 3시간 만에 캠프3에 이르는 평지 구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선배, 여기…….”

“그래. 캠프3이다! 드디어 내려온 거야!”

가장 앞에서 내려가는 남명호와 최영인의 고함처럼, 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안전 지역이라 불리는 임시 캠프 지역에 도달한 것이다.

그때였다.

쩌어억.

발밑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

그와 동시에 심장에서 찌릿한 고통이 느껴졌고.

“제, 제길.”

파각!

그에 느껴지는 본능적인 불안함에 이성하가 위로 몸을 날리며 아이스 툴을 땅에 박는 순간, 남명호와 최영인이 발을 대고 있는 지반이 그대로 무너졌다.

[크레바스!]

“썅!”

콰르르르르!

렉스의 말처럼 난데없이 구조팀이 발을 딛고 있는 땅이 갈라지며 거대한 빙하의 틈이 나타난 것이다.

다행히 이성하의 움직임이 빨랐던 덕분에 구조팀 모두가 그 안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끄아아아!”

남명호도.

“제, 제길.”

최영인도.

“으아아아아!”

“허억. 허억.”

그다음으로 내려가던 마샬과 챈들러까지 그 틈으로 끌려 들어갔지만.

파칵!

끼이이이익!

“끄으으으으.”

“허억. 허억. 젠장!”

가장 뒤에 있던 이성하와 데일만은 겨우 눈 위로 가지고 있던 아이스 툴을 박아 넣어, 마지막의 고정대 역할을 해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일행을 살린 이성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아직 아니야.’

계속해서 심장을 울리는 통증 때문이었다.

쿵! 쿵!

아직 위험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리듯 심장이 계속해 요동쳤고, 그 느낌이 거짓이 아니라고 말하듯 이성하가 아이스 툴을 박았던 지반마저 무서운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콰르르르르!

“제, 제길.”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으로 구조팀이 그대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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