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99화>
99화. 세계의 지붕 (4)
* * *
구조팀은 고립된 미국 구조대원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산을 오른 상태였다.
“애들 있는 위치가 캠프4 위쪽이라는 거지?”
“네. 거기서 왼쪽 절벽입니다. 그 절벽만 올라가면 바로 사우스 서밋이에요.”
4번째 캠프 위쪽에 존재하는 정상 부근의 절벽이 그들의 목표 지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있는 캠프1에서 사우스 서밋까지 가는 길은 굉장히 먼 길이었다.
캠프1 (5,944m) → 사우스 서밋 (8,749m)
사우스 서밋이 에베레스트의 정상 부근에 위치한 절벽이었던 만큼, 등반 높이만 무려 2.5km에 달했고, 무엇보다 그 엄청난 높이를 뜀박질이 아닌 느린 도보로만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휘이이이잉!
“조심해! 바닥이 생각보다 더 잘 빠진다. 다들 균형 제대로 잡고 걸어!”
“알겠습니다!”
바람도 문제지만 많은 눈과 확보되지 않는 시야로 인해, 기다시피 하는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 게 현재 구조팀의 상태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구조팀을 이끄는 미국 구조대원은 겉으론 담담해도, 속으로 깊은 좌절에 빠진 상태였다.
‘제길, 가능할까.’
도저히 시간 내에 도착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남은 골든타임을 생각하면 무조건 16시간 안에 동료들이 있다는 사우스 서밋에 도착해야 하는 상황인데.
“읏!”
콰당!
“괜찮아?”
“괜찮아요.”
처음이라 눈 위에서 자꾸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한국 구조대를 보면 도저히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없다는 암담한 생각이 자꾸 들었으니까.
그 때문에 미국 구조대원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기로 했다.
‘여차하면 중간에라도 혼자 나간다. 시간이 없어.’
한국 구조대의 지원은 고맙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중간에라도 그들을 돌려보내고 단독으로 작전을 진행하겠다고.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미친…… 벌써 적응했다고?’
어느새 적응했는지 수북이 쌓인 눈길에도 성큼성큼 걸음을 내걷는 한국 구조대의 모습 때문이었다.
“여기부터는 크램폰을 착용하고…….”
철컥!
“알고 있습니다. 미리 공부하고 왔어요.”
처음으로 접하는 빙벽에도 능숙하게 등산화에 징이 박힌 크램폰을 착용하고는 설치된 로프를 잡고 산을 오르는 모습이었고, 그런 모습은 캠프2까지 가는 데 가장 난코스인 크레바스 구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앞에 봐!”
“보고 있어요!”
끼익, 끼익.
빙하가 갈라져 생긴 크레바스 사이로 철제 사다리를 놓고 통과하는 코스에서도, 한국의 구조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다리 위로 걸음을 옮긴 것이다.
지켜보던 미국 구조대원으로서는 허탈한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 새끼들 무섭지도 않나?’
아무리 허리에 로프를 걸어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해도, 사다리 밑으로 수십 미터의 허공이 그대로 보이는 게 크레바스 구간이었다.
휘이이잉!
그 높이만큼이나 날카로운 바람이 아래에서 몰아쳐, 처음 겪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는 장소.
하지만 한국의 구조대는 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겁이 났지만,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으으으으…….”
끼익. 끼익.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면 고립된 미국 구조대원들을 구할 수 없음을 알기에.
“앞에 봐!”
“제길, 보고 있다고요!”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고함을 질러가며 사다리를 건넜던 것이다.
그랬기에 미국 구조대원의 얼굴에는 희망이 싹텄다.
‘가능해. 이 속도라면 충분히 갈 수 있어.’
이런 속도라면 충분히 시간 내에 목적한 사우스 서밋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심지어 그 생각은 착각이 아니었다.
“크램폰 다시 착용하고 등강기 사용하면서 올라요. 제가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캠프3까지 이어지는 경사가 심한 언덕길도 한국 구조대는 자신을 무리 없이 따라왔다.
“선배, 이거 건물 등반하는 거랑 똑같아요.”
“그래. 미끄러지지 않게 크램폰만 확실하게 바닥에 박으면 문제없어.”
뒤처지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지는 장비에 오히려 속도를 붙이며 산을 오른 덕분에 구조팀은 출발한 지 고작 8시간 만에 캠프3에 도달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도, 도착했다. 콜록, 콜록.”
모두 쉬지 않고 산을 올라 고통 어린 숨을 토하긴 했지만, 기어코 절반 정도 등반에 성공한 것이다.
그랬기에 가장 후미에서 산을 올랐던 이성하의 입가에는 웃음이 어렸다.
[미친! 딱 8시간 걸렸어!]
시계를 보며 호들갑을 떠는 렉스의 말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안 늦었네요.’
[그래. 저놈이 그랬잖아! 보통 캠프3까지 8시간 걸린다고!]
렉스의 말처럼 출발할 때 미국 구조대원이 말했던 예상 시간을 정확히 맞춰 도착한 상황이었으니까.
덕분에 구조대의 분위기는 밝았다.
“여기서부터죠?”
“네, 여기서부터 공기통 착용하고 가겠습니다.”
지금부터 가게 될 캠프4의 위치는 무려 해발 8,000미터 지점이었다.
혹시 모를 고소증을 대비해 챙겨 온 공기 호흡기를 착용한 채, 계속해 산을 오르는 구조팀의 얼굴은 조금 전과 달리 밝은 상태였다.
“조금 더 속도 냅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목적했던 거리의 반 이상을 왔다는 생각에 다들 기쁜 마음으로 산을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캠프4에 다 와 갈 무렵, 순간 거대한 진동이 산을 흔들었다.
콰르르르!
무언가 쏟아지는 거대한 울림이 산 정상에서 들리는 순간, 구조대는 조금도 지체 없이 근처에 있는 바위틈으로 몸을 숨겼다.
“제길,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네.”
콰르르르르르!
몸을 숨기자마자 쏟아지는 빙괴에 인상을 찌푸린 남명호의 말처럼.
지금까지 산을 오르면서 수없이 목격했던 빙괴 덩어리가 그들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떨어지는 빙괴 덩어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올라가시죠.”
더 이상 쏟아지는 빙괴가 없는 걸 확인한 미국 구조대원이 바로 출발을 서둘렀으니까.
그런데 그 와중 누구보다 출발을 서두르는 사람이 있었다.
“제길.”
일그러진 인상으로 산 정상을 올려다본 이성하였다.
휘이이이잉!
완전히 해가 져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정확히 보이진 않지만 순간 가슴을 옥죄는 통증에 무의식적으로 산 위를 바라봤고.
타닥!
그와 동시에 이성하는 누구보다 빠른 몸놀림으로 바위틈에서 나와 캠프4로 이어지는 로프에 카라비너를 걸었다.
“먼저 올라갑니다!”
“야!”
“먼저 올라갈게요!!”
일이 터질 때마다 느껴지던 심장 통증이란 생각에 다급히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에 렉스가 욕설을 내뱉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X발. 또 일 터졌구먼.]
이성하가 저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꽤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는 건 이미 확실해진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그 느낌은 정확했다.
“데일!”
캠프4에 도달하자마자 평지 한쪽에 비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구조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콰르르르르!
그런 대원들을 향해 산 정상에서 또다시 빙괴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끌어내!]
“제길!”
저렇게 무방비한 상태에서 빙괴에 직격했다가는 대원들이 자칫하다 생명이 위태로운 부상을 당할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 내에 대원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콰르르르르르!
아무리 이성하가 빠르게 움직인다 한들 쏟아지는 빙괴보다 더 빠를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성하가 바란 건 최소한이었다.
‘머리만 피하면 돼.’
최소한 떨어지는 빙괴가 머리에만 부딪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끄아아아아!”
그에 다급한 마음으로 쓰러져 있는 대원들을 악착같이 바깥쪽으로 잡아당겼고, 다행히 그 덕분에 최악만은 막을 수 있었다.
콰당탕!
“으으윽.”
쓸려 온 눈덩이에 쓰러진 대원들과 같이 나뒹굴긴 했지만, 딱딱한 빙괴에 휩쓸리는 것만은 피해 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뒤늦게 올라온 구조팀이 그 모습에 기겁해 달려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데일! 챈들러!”
“이성하!”
사우스 서밋에 있을 대원들이 캠프4에 있는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먼저 올라온 이성하가 그런 대원들과 같이 눈에 휩쓸려 나뒹구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누구보다 지금의 상황에 당황하는 건 데일이었다.
“너 이 새끼.”
생각지도 못한 이성하가 이곳에 있어서였다.
“콜록, 콜록. 왜 감격스럽냐?”
자신을 향해 웃는 모습으로 몸을 일으키고는 있지만, 그런 이성하가 데일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여길 어디라고 네가 와!”
동료들에게 구조 요청을 보내긴 했지만, 사지나 다름없는 이곳에 이성하가 구조팀으로 같이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니, 예상이 문제가 아니라 이성하는 이곳에 와서는 안 됐다.
휘이이이잉!
“왜 왔냐고!”
계속해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말하는 것처럼, 그 누구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지금 그들이 있는 에베레스트였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가 피식 웃었다.
“쪽팔리더라.”
“뭐?”
“사실 포기하던 참이었어. 나도 이 거지 같은 눈보라를 뚫고 여기까지 오는 건 자살 행위라고 봤거든. 근데 네 친구들이 울더라.”
“…….”
“너 살려 달래. 동료가 눈 속에 있다고. 구해야 하는데 자신들만으론 힘들다고 제발 도와 달라고.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걸 듣고 가만히 있냐? 그래서 온 거야.”
몸을 일으킨 이성하가 데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너랑 약속했잖아. 다음에 또 승부하자고. 못 다한 내기, 마저 해야 할 거 아냐?”
무전에서도 이야기를 나눴던 데일과의 약속을 말하는 거였다.
“다음에 또 보자. 한국 구조대.”
“많이 배웠다. 미국 구조대.”
박타푸르에서 헤어지며 다음에 꼭 다시 만나 승부를 하자고 했던 그 때의 약속을 말하는 거였고, 그에 데일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 새끼.”
“구조대는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이야기 그만하고 일어나.”
“흐윽.”
자신도 동료라며, 어서 손을 잡으라는 이성하의 모습에 눈물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국적은 달라도 두 사람은 모두 같은 소방관이었다.
맹세한 국기는 다를지언정 사람을 구하겠다는 숭고함에 반해 소방의 길을 선택한 이들이었고, 그에 데일은 이성하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부탁한다.”
자신을 구하러 온 이성하에게 동료로서 신뢰의 눈빛을 보낸 거였으며, 그에 이성하 역시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성하 역시 데일을 살리기 위해 산을 올랐지, 그와 함께 같이 죽을 생각으로 산을 오른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제길,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올라올 때는 몰랐지만, 내려가는 등산로가 칠흑같이 어두웠다.
휘이이이잉.
시간이 깜깜한 새벽이라 어두운 것도 있지만, 몰아치는 눈보라에 머리에 착용한 라이트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로프에 의지한 채 경사가 심한 에베레스트를 내려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내려갈 수 있겠어요?”
“제길, 이거 너무 위험한데?”
먼저 로프를 잡고 발을 뗐던 남명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정도로, 한 끗만 잘못해도 굴러 떨어지기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내려가야 했다.
“허억. 허억.”
“콜록, 콜록.”
지독한 추위에 방치됐던 데일과 챈들러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한 상태였고, 그에 구조대는 단호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시죠!”
동료를 살리기 위해.
“천천히 내려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무거운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