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98화 (98/235)

<강철 소방대 98화>

98화. 세계의 지붕 (3)

* * *

한편, 정상에 고립된 데일은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움직여…… 제발 움직여…….”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아 꽁꽁 언 몸을 어떻게든 움직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보는 상황.

하지만 몸은 마음과 달리 쉽게 움직여 주지 않았다.

“으으으…….”

퍼억.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어떻게든 움직여 땅에 손을 짚는 데는 성공했지만,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아 그대로 얼굴을 눈 속에 처박았다.

오랜 시간 눈 속에서 정신을 잃다 보니, 온몸이 지독한 동상으로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눈 속에 얼굴을 처박은 데일의 얼굴엔 웃음이 어려 있었다.

“하하하. 아파. 아프다고. 하하하하.”

방금의 충격으로 미약하게나마 온몸에서 고통이 느껴져서였다.

동상으로 온몸에 감각이 없던 상황에서 얼굴에서 시작된 통증이 온몸으로 전해졌고, 그 통증은 자신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최악은 아닌 건가.’

미약하게나마 통증이 느껴진다는 사실은, 동상으로 인해 혈관 수축까지 진행된 최악이 아님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바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끄으으으.”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어 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건 여전했다.

“허억. 허억.”

한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고.

“끄으으으, 제길.”

퍼억.

두 시간이 지나도 계속 힘이 전해지지 않아 얼굴을 땅바닥에 박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주르륵.

미약하게나마 데일의 몸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좋아. 땀이 나고 있어.’

눈으로 확인은 못해도 입고 있는 방한복 속으로 느껴지는 미세한 열기에 데일의 얼굴에 희망이 차올랐고, 그렇게 몸을 움직인 지 4시간 만에 데일은 기어코 몸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끄아아아!”

근처의 바위에 손을 짚으며 일어나긴 했지만, 양발에 힘을 주고 4시간 만에 몸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할 건 아니었다.

지금 데일이 있는 곳은 에베레스트 정상 바로 밑에 존재하는 남쪽 절벽이었다.

높이로 따지면 해발 8,500m지점에 위치하는 가파른 절벽이자, 매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해 등산객들이 죽음의 절벽이라 부르는 곳이었다.

휘이이잉.

발밑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증명하는 것처럼, 발 하나만 잘못 디뎌도 그대로 절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곳이 지금 데일이 있는 사우스 서밋.

그리고 이 사우스 서밋은 영화에도 나올 정도로 위험한 곳이었다.

1,996년 다수의 등산객들이 이 사우스 서밋에서 사망한 내용이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었고, 데일 역시 어제 이곳에서 구하려던 요구조자를 눈앞에서 잃은 상황이었다.

“안 돼! 꽉 잡아!”

“으으으으으.”

“잡아!”

콰르르!

“으아아아아!”

다른 요구조자들은 모르지만, 산에 올랐던 셰르파 한 명이 지금 절벽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이미 본 상태였다.

그랬기에 데일의 눈동자에는 짙은 공포심이 떠올랐다.

“으으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요구조자가 목숨을 잃던 그 순간이 머릿속으로 생생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부들거리는 무릎을 세웠다.

“가야 돼…….”

무섭다고 그대로 있으면 죽을 게 뻔한 상황이었다.

휘이이이잉!

겨우 손발에 감각이 돌아와 몸을 일으키긴 했지만 여전히 휘몰아치는 강풍에 온몸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고, 무엇보다 곁에 있는 동료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챈들러, 괜찮냐?”

“아니…… 콜록 콜록. 몸이 전혀 말을 듣질 않아.”

아직 의식은 있지만, 동료인 챈들러가 자신보다 더한 동상에 걸려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데일은 힘겹게 패딩의 자크를 열어 예비로 챙겨 온 핫팩을 꺼냈다.

뿌드득, 뿌드득.

꺼낸 핫팩을 손으로 주물러 발열시키고는 자신과 챈들러의 몸 안 곳곳에 넣었으며,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는 그의 몸을 잡았다.

“챈들러, 가자.”

“데일…….”

“가자고, 얼른.”

어떻게든 동료인 챈들러를 일으켜 이 가혹한 절벽을 내려가기 위해.

물론 그 모습은 설산에 대한 전문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 봤다면 바로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을 모습이었다.

“콜록, 콜록. 데일…….”

그냥도 무거운 성인 남성이 동상까지 걸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건 물론.

“허억, 허억. 끄으으으!”

심지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데일마저 상태가 좋지 못해 손에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데일의 머리에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없었다.

‘이것도 못하면 쪽팔려서 네이비실6라고 할 수 없어.’

언제나 이런 상황을 대비해 훈련해 온 게 그가 속한 캘리포니아의 특수재난 구조대였다.

소방 부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특수부대로 유명한 네이비실의 여섯 번째 팀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누구보다 가혹한 훈련 양을 자랑하는 게 그가 속한 캘리포니아 특수재난 구조대.

그랬기에 데일은 불가능하다는 생각 따위는 접어 둔 채 챈들러의 옷을 잡았다.

빠드득.

이빨이 부서져라 깨물어 가며 챈들러의 옷을 잡은 양손에 힘을 주었고, 그렇게 챈들러의 몸을 일으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끄아아아아!”

파악!

말도 안 되는 괴력을 발휘하며 몸이 얼어 평소보다 무거운 챈들러를 단번에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지금 데일이 이동하려는 곳은 캠프4에 해당하는 사우스콜이었다.

해발 8,000m 지점에 위치하는 곳으로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텐트와 공기통이 있는 유일한 휴식처.

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휘이이이잉!

‘제길.’

히말라야 등산대의 길을 안내하는 것으로 유명한 셰르파조차 발을 헛디뎌 절벽 밑으로 떨어질 만큼, 캠프4에서 정상까지 향하는 길은 가파른 언덕이었다.

경사가 심한 구간마다 로프가 단단하게 고정돼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그 로프가 아니라면 등반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 지금 데일이 내려가야 할 구간.

하지만 데일의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저벅. 저벅.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챈들러를 부축하며 조금씩 산 아래로 걸음을 옮겼고, 그렇게 데일은 늦은 속도일지언정 조금씩 캠프4를 향해 나아갔다.

“허억, 허억.”

휘몰아치는 강풍 속에서 그저 로프 하나만을 잡은 채 절벽에 가까운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물론 그에 따른 고통은 엄청났다.

“끄으으으윽!”

안 그래도 아픈 몸이 챈들러의 육체까지 지탱하느라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데일의 입가에는 만족한 웃음이 어렸다.

‘얼마 안 남았어…….’

그 고통만큼이나 캠프4로 향하는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휘이이이잉!

휘몰아치는 바람은 여전했지만 점차 내려가는 경사가 완만해지는 게 느껴졌고, 그에 데일은 끝까지 집중을 유지한 채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집중해!’

한 손은 로프에.

‘절대 놓쳐선 안 돼!’

한 손은 동료를 붙잡은 채 필사적으로 걸음을 옮겼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어코 목적했던 캠프4에 도달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도착했다…… 도착했어…….’

비로소 지옥 같은 절벽 길을 지나 유일한 휴식처인 캠프4에 도달해 낸 것이다.

하지만 기뻐하기엔 아직 일렀다.

“허억. 허억.”

내려오며 세찬 바람을 계속 맞은 탓에, 동료인 챈들러 가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챈들러! 챈들러!”

“허억, 허억.”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동상이 심해져 가쁜 숨만 쉬는 상황이었고, 그에 데일은 다급한 표정으로 주변의 눈들을 파헤쳤다.

“제길, 어디 있어! 어디 있는 거야!”

최대한 빨리 이곳 어딘가에 존재할 텐트를 찾아, 챈들러의 몸에 빨리 온기를 불어 넣어야 했다.

다행히 텐트를 찾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차, 찾았다!”

눈을 파헤치는 손길에 뭉툭한 무언가가 걸렸다.

파아악!

손가락 끝에 잡힌 텐트를 끌어낸 데일은 텐트 안으로 챈들러를 밀어 넣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 다행이네.’

챈들러의 상태가 더 이상 악화된 것만큼은 막아 냈다고.

그랬기에 데일의 얼굴에는 드디어 살았다는 안도감이 떠올랐다.

‘오고 있는 거지?’

동료들이 온다는 생각에서였다.

‘너희들 오고 있는 거 맞지?’

첫 무전 뒤로 배터리가 떨어져 더 이상 동료들과 연락은 못했지만, 분명히 구하러 오겠다는 동료들의 음성을 확인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휘이이이이잉!

원래도 거셌지만 순간 폭풍 같은 바람에 데일이 있는 텐트가 무섭게 흔들렸다.

“읏, 뭐야!”

안에 있던 데일이 균형을 잃고 나뒹굴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었고, 그에 데일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

텐트가 바람에 날아갈 거 같아서?

아니었다.

콰가가가각!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서였다.

콰르르르르!

그 뒤로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 또한 들렸고, 그에 데일은 텐트 밖을 바라보며 고함을 질렀다.

콰르르르르르!

“제길!”

방금 발생한 강풍으로 인해, 정상에서 수많은 빙괴들이 자신이 있는 텐트를 향해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쏟아진 빙괴 덩어리들에 데일이 있던 텐트가 박살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아아악!”

큰 크기는 아니지만 꽁꽁 얼어 돌멩이나 다를 바 없는 빙괴들에, 천으로 만들어진 텐트가 버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데일과 챈들러 모두 그 쏟아지는 빙괴 덩어리의 직격만은 피했다는 거였다.

“콜록, 콜록, 채, 챈들러. 괜찮아?”

“허억, 허억.”

그 충격에 수십 미터를 쓸려 가며 텐트 밖으로 나뒹굴며 피를 흘리긴 했지만, 간신히 목숨만은 부지한 상황.

하지만 안도하기엔 일렀다.

정상에서 빙괴가 떨어졌다는 건, 그 부근의 지반에 변동이 생겼다는 거였다.

콰가가가각!

잠시 후 또다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에, 겨우 숨을 돌리던 데일이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나 어찌 저찌 움직이던 조금 전과 달리,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커헉.”

빙괴의 직격만은 피했지만 그에 휩쓸려 날아간 통증으로 인해,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데일은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빙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길…….’

온 힘을 다해 절벽까지 내려왔음에도, 이렇게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에 서글픈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데일!”

들리지 말아야 할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고개를 돌렸더니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실루엣이 보인다 싶더니, 어느새 뛰어온 사람의 가슴팍에 그려진 태극마크가 눈앞으로 훅 다가왔다.

“이성하!”

“데일!”

무전을 통해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었던 그 한국의 꼬마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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