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97화>
97화. 세계의 지붕 (2)
“제길! 빨리 장비 챙겨!”
“그, 그래! 장비 챙겨!”
당황한 미국 구조대원들이 서둘러 등반을 위한 장비들을 챙겼지만, 미국 구조대를 이끄는 팀장은 냉정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깐 상황 지켜본다.”
“팀장님!”
“이 새끼야! 지금은 못 올라가!”
높은 고도에서 발생하는 기상 이변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모든 구조대. 잠깐 대기합니다. 상황 지켜보고 구조 작전 시행할지 결정하겠습니다.”
곁에 있는 한국 구조대와 곧이어 올라온 러시아 구조대에 상황을 설명하며 무기한 대기를 명했고, 잠시 후 그 명령이 얼마나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를 모든 구조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카가가가각!
“제길! 다들 텐트로 들어가!”
“장비 날아가지 않게 단단히 고정시킨다!”
뇌운이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강풍으로 구조대가 모여 있는 캠프1에 폭풍 같은 칼바람이 몰아친 것이다.
그 때문에 구조대는 얌전히 텐트에서 이 지독한 바람을 몰고 온 뇌운이 지나가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카가가가각!
“텐트 잡아!”
“제길! 이게 무슨 상황이야!”
구조는커녕 거칠게 몰아치는 강풍에 그들이 있는 텐트조차 바람에 날아갈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뇌운은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콰르르르르!
“제길, 누가 보면 밤인 줄 알겠어!”
지나가기는커녕, 에베레스트 정상을 완전히 휘감아 캠프1 주변을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휘이이이잉!
당연히 그보다 더한 강풍이 캠프를 휩쓴 건 당연했고, 그에 구조팀을 이끄는 미국 구조팀장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미국 구조대. 정상에 있는 대원들 구조는 우리 팀만 진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정상에 고립된 대원들을 구출하는 건, 자신이 이끄는 미국 구조대만 단독으로 진행할 것을.
- 말도 안 됩니다. 무리입니다!
- 미국 팀! 이렇게 바람이 심한데 가능한 겁니까? 아까 말씀한 대로 좀 더 상황 지켜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에 각국의 구조팀들이 무전을 통해 우려의 말들을 쏟아 냈지만, 미국 구조팀장의 마음엔 변함이 없었다.
“우리가 누구지?”
장비를 챙기며 하는 말이었다.
“네이비실6 특수 재난 구조대입니다.”
그에 미국 대원들 역시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자신들의 별명을 외치며 장비를 챙겨 들었고, 그렇게 준비를 마친 미국 구조대는 지체 없이 눈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동료를 구하기 위해.
휘이이잉!
“모두 몸 바짝 세우고 제대로 걸어!”
“옛썰!”
몰아치는 눈보라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히말라야에서 기상 이변 상황의 등반은 절대로 금지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휘이이이잉!
안 그래도 높은 고도 때문에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강풍이, 기상 이변으로 더 심해지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몰아치던 강풍은, 일을 만들었다.
콰가가가각!
“티, 팀장님!”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에 미국 구조대원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맹렬한 기세로 쏟아지는 빙괴 덩어리였다.
“제, 제기…….”
콰르르르르!
매서운 바람에 정상부터 쏟아진 빙괴 덩어리들이 산을 오르던 미국 구조대를 순식간에 휩쓸어 버린 것이다.
그에 캠프 쪽에 있던 모든 구조대가 허겁지겁 장비를 챙겨 산을 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젠장! 모두 뛰어!”
“이런 썅!”
미국 구조대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눈사태에, 어떤 일이 생겼을지 직감했으니까.
그 예상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끄으으윽.”
“허억. 허억.”
잠깐 올랐을 뿐이지만, 떨어지는 빙괴에 정통으로 휩쓸린 탓에, 곳곳에서 신음을 내뱉는 미국 구조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제길. 들것 필요해!”
“구급팀! 구급팀!”
“다들 텐트로 빨리 이송해!
그에 달려간 자국의 구조대가 다급한 표정으로 눈 속에 파묻힌 미국 대원들을 구조했고, 빠른 조치 덕분에 심한 부상을 입은 대원은 없었다.
“상태는 어때요?”
“괜찮은 거 같습니다. 정확한 건 병원에서 X-ray를 찍어 봐야 알겠지만, 몇 명이 뼈에 금이 간 거 빼고는 큰 부상은 없습니다. 대부분 단순한 뇌진탕 증세 같아요.”
“휴, 다행이네.”
“그러게요. 다행입니다.”
다행히 운이 좋았는지, 모두 경상에 그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할 상황은 아니었다.
현재 에베레스트에는 미국, 한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이라는 7개 국가의 지원팀이 에베레스트에 파견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중 유일하게 설산 구조 경험이 있는 구조대가 미국 팀이었다.
“허억. 허억.”
“괜찮아요?”
“끄으…… 물 좀 주세요.”
그런 미국 팀이 모두 부상을 입어 몸을 움직일 수 없단 말은, 더 이상의 구조 작전이 불가능하다는 걸 의미했다.
“그럼 정상에 있는 대원들 구조는 어떡할까요?”
“구조는 날씨가 풀려야 가능할 거 같습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지금으로선 무리예요…….”
유일하게 경험이 있는 미국 구조대마저 등반에 실패해, 그저 날씨만 풀리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캠프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제길…….”
“이 바람은 도대체 언제까지 부는 거야!”
고립된 대원들의 위치를 알았음에도 구조를 진행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대원들을 휩쓸었으니까.
한국 구조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모든 구조대 중에서도 지금 상황에 가장 괴로워했다.
“팀장님.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할래? 미국 구조대 애들 다친 거 못 봤어?”
“하지만 그 자식 목소리였던 거 아시잖아요…….”
“야! 남명호!”
“지금 그 자식들 누군가 구하러 올라온다고 알고 있을 거잖아요!”
미국 구조대와 함께 요구조자들의 무전을 같이 들은 상황이다 보니, 이렇게 대기만 해야 하는 상황에 누구보다 더 큰 격정을 쏟아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남명호에게 선배인 김창훈이 눈짓했다.
“남명호, 그만해.”
“하지만…….”
“야이, 새끼야. 무전 너만 들었어? 너 지금 막내 얼굴 안 보여?”
이성하를 눈짓하며 하는 말이었다.
그런 김창훈의 말에 남명호가, 눈에 들어온 이성하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잠시 잊고 있었다.
“미안하다.”
데일과 무전으로 직접 대화한 게 막내인 이성하였다는 것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 말에 이성하가 괜찮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남명호는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꽈아악.
얼마나 손을 꽉 쥐었는지 양손이 새빨개진 채 앉아 있는 이성하였기에.
“젠장…….”
선배가 돼 가지고 후배보다 감정을 주체 못하고 날뛴 사실에 미안함이 앞섰다.
하지만 이성하 역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꽈아악.
이성하 역시 당장이라도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기에 그 마음을 억누르는 중이었다.
[안 돼. 지금 상황에서 산을 오르는 건 절대 무리야.]
렉스가 곁에서 안 된다며 끊임없이 말을 거는 것도 있지만.
휘이이이잉.
시간이 갈수록 텐트를 흔드는 바람의 세기가 더 심해지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한국 구조대는 현재 구조 작업을 진행할 상황이 아니었다.
“으으…….”
들리는 신음처럼 몇몇 대원들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선배, 괜찮아요?”
“으으…… 괜찮아. 진통제 먹으면 돼.”
방금까지 남명호를 혼내던 김창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진통제를 먹고 있었고.
“후우. 후우.
“야, 너 그냥 누워 있어.”
“괜찮…….”
“나도 누울 거야. 너도 그냥 누워. 인마.”
거칠게 숨을 내쉬는 박근석의 모습에, 양유철 역시 힘든 표정으로 같이 몸을 눕혔다.
‘고산병…….’
[그래. 고산병, 정확히는 고소증이야.]
오전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던 선배들이 공기가 부족하면 겪게 되는 고소증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은 한국 구조대만의 모습이 아니었다.
- 혹시 아스피린 여유분 가지고 있는 구조대 있습니까?
아까부터 타 구조대에서 고소증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아스피린을 찾는 상황이었다.
“한국 팀. 아스피린 있다면서요.”
“아, 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약이 부족했는지 직접 텐트로 찾아와 진통제를 얻어가는 구조대도 있었고, 그 상황은 모든 구조대의 모습이었다.
- 러시아 팀입니다. 저희도 아스피린 필요합니다.
- 일본도 그렇습니다. 고소증 겪는 대원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구조대에서 고소증 증상을 완화시킬 약을 찾았으며, 그에 이성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제길…….’
다행히 자신은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고소증을 호소하는 동료들을 이끌고 산을 오를 수는 없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미안하다, 데일…….’
정상에서 구조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데일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 지직. 미국팀 팀장 카일입니다.
부상을 입어 정신을 잃었던 미국 구조팀장의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울렸다.
- 대원 한 명이 산을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한 명으로는 대원들을 구조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도와 주세요…… 지원이 필요합니다……
평상시의 단호한 목소리가 아닌 흐느낌이 가득한 목소리에, 이성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 도와주세요…… 한 명으로는 안 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흐윽……
동료를 살려 달라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호소하는 음성이기에.
‘이런 X발.’
이성하 역시 그 간절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힌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입술을 깨물며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세차게 내리쳤다.
퍽! 퍽!
어떤 상황에서라도 동료는 버리지 않는다.
동료가 있다면 그게 불길 속이라도 들어간다.
그게 이성하가 지금까지 배워 온 구조대의 정신이었고, 그 정신을 출발 전 동료들 앞에서 말했음에도 나약한 마음을 품은 것에 참을 수가 없었다.
퍽!
창피한 마음에 다시 한번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으며, 그러고는 단호한 눈빛으로 양유철을 바라봤다.
‘팀장님!’
고립된 미국 구조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우리라도 가자고 강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양유철 역시 울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X발 쪽팔리게.’
그 역시 동료를 살려 달라는 미국 구조팀장의 말에 지독한 창피함을 느꼈으니까.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보낼 수 있는 대원이 세 사람 뿐이란 거였다.
‘남명호, 최영인, 이성하.’
다행히 미국 구조대원 한 명이 리드할 수 있다 해도, 자신 역시 고소병 증상을 보이기 시작해, 올려 보낼 수 있는 대원이 세 사람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그 걱정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저희가 가겠습니다.”
안 그래도 가고 싶어 난리를 치던 남명호가 단호한 눈빛을 보였다.
“할 수 있습니다.”
최영인 역시 할 수 있다며 자신을 바라보는 양유철에 고개를 끄덕였고, 이성하는 두말할 것 없었다.
‘새끼.’
이미 허락할 걸 알기라도 하는지, 벌써부터 일어나 장비를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대원들의 모습을 보며 양유철은 단번에 무전을 들고 고함을 질렀다.
“한국이 지원하겠습니다. 고립된 놈들 우리가 같이 구해 오겠습니다.”
한국의 구조대가 구조 작전을 진행할 미국 구조대원을 지원하겠다고.
- 말도 안 됩니다. 이 날씨는 무리예요.
- 조금만 더 지켜봅시다. 바람이 좀 잦아들고 출발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에 지금까지 조용하던 각국의 구조대가 우려의 말들을 무전으로 쏟아 냈지만, 한국 구조대는 이미 텐트를 나선 상황이었다.
처억.
장비를 챙기고 걸음을 옮기는 세 대원을 향해 양유철이 경례로 인사를 대신했고, 그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한 세 사람은 지체 없이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가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구하고 이야기합시다. 빨리 가시죠.”
먼저 나와 기다리는 미국 구조대원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걸음을 옮겼으며, 그렇게 네 명으로 구성된 구조대는 단번에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자.”
드디어 정상에 고립된 미국 구조대원들의 구조 작전이 지금 다시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