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96화>
96화. 세계의 지붕 (1)
* * *
히말라야의 모든 산에는 등산객들이 산을 오르기 위해 캠프를 차리는 공간이 있었다.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모두 모여 등반을 위한 기지를 설치하는 베이스캠프가.
에베레스트에도 그런 베이스캠프가 있었다.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해발 5,364m 지점에 수많은 텐트가 모여 있었고, 그곳으로 각국의 깃발을 부착한 헬기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спускайся быстро!(빨리 내려!)”
“Überprüfen Sie Ihre gesamte Ausrüstung!(모두 장비 점검해!)”
“我们会搭好帐篷,马上开始会议.(텐트 치고 바로 회의 시작한다.)”
미국 구조대에 지원을 결정한 한국의 구조대처럼, 다른 나라의 구조대 역시 위험에 빠진 미국 구조대를 지원하기 위해 에베레스트로 지원팀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원팀에는 한쪽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한국 구조대도 있었다.
“지도 받아왔어?”
“네, 받아왔습니다. 팀장님.”
동이 트자마자 출발한 덕분에 이미 캠프에 도착해 미국 구조대가 지원해 준 텐트에서 회의에 들어간 상황이었지만, 회의를 진행하는 양유철의 얼굴은 어두웠다.
“젠장. 이게 다 수색해야 할 구역이란 말이지?”
생각보다 수색해야 할 구역이 넓었다.
“네, 구조대원들 연락이 끊긴 게 거의 정상 지점이라서 지금 위치부터 정상 지점까지 싹 훑어야 합니다. 대원들이 내려오다가 부상으로 멈춰 있을 확률이 있으니까요.”
대답하는 대원의 말처럼 실종된 미국 구조대원들의 위치가 확인이 안 돼, 베이스캠프부터 정상까지 모든 구역을 수색하는 상황이었고, 그 넓이가 얼마나 넓은지는 말 안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3km라…… 미치겠네.”
“그러게요. 끔찍하네요.”
대원들이 지도를 보며 탄식을 흘리는 것처럼, 베이스캠프부터 정상까지 무려 3km에 달하는 반경을 모두 수색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존 미국 구조대원들에, 수많은 각국 지원팀까지 합하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국 구조대는 이미 자신들이 올라야 할 에베레스트를 파악한 상태였다.
베이스캠프 (5,364m) → 캠프1 (5,944m) → 캠프2 (6,492m) → 캠프3 (7,315m) → 캠프4 (7,951m) → 에베레스트 정상 (8,848m)
베이스캠프 위로 총 4개의 임시 캠프를 지나 정상까지 향하는 게 에베레스트의 등산로였고, 지금은 그 초입인 캠프1마저 구조대의 접근이 힘든 상황이었다.
“일단 캠프1까지 올라가는 거부터가 문제입니다.”
“맞습니다. 원래도 빙벽 구간이라 위험했는데, 어제 지진으로 곳곳에 크레바스가 생겨 굉장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그곳을 통과하는 데만도 시간이 한참 걸릴 거 같습니다.”
안 그래도 빙벽으로 구성돼 등반이 어려운 길이었는데, 어제 지진으로 변동까지 발생해 사람들의 접근이 더 힘든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하지만 접근이 힘들다 뿐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미국 쪽에서 길을 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손을 들어 이야기하는 이성하의 말처럼 이미 미국 측에서 선두로 나서겠다고 말한 상황이었다.
“맞아. 우리가 미국 구조대 다음으로 출발할 거야.”
“그럼 우리가 두 번째입니까?”
“그래. 많은 사람들이 빙벽 위로 올라가면 혹시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도착한 순서대로 올라가기로 했어.”
그에 고개를 끄덕이는 양유철의 말처럼 유일하게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경험이 있는 미국 구조대에서 먼저 산을 올라 길을 열기로 한 상황이었고, 그에 한국 구조대는 어려운 길이지만 열심히 하자며 서로들 눈빛을 마주쳤다.
“해 보자!”
“알겠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설산 구조 작업이지만, 앞에서 리드하는 미국 구조대의 경험을 믿고 최선을 다하자며 의지를 모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투지 때문인지 한국 구조대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미국 구조대 따라 빙벽 길을 올라갔다.
콰르르르!
“제, 젠장!”
“선배님!”
지진으로 약해진 지반에 몇 명의 대원이 미끄러지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꽈아아악!
“괜찮아!”
“괜찮아요?”
각 대원의 허리마다 밧줄로 연결해 이동하는 덕분에 부상을 입는 대원은 없었고.
그에 한국 구조대는 등반을 시작한 지 2시간 만에 초입로에 해당하는 캠프1에 이를 수 있었다.
“도착입니다!”
“정말이야?”
“네, 앞에 미국 팀이 쳐 둔 텐트들 보입니다!”
처음으로 시작하는 설산 등반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구조대와 그리 떨어지지 않는 속도로 등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캠프1 지역에 오른 대원들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미국 팀 어디 갔어?”
“어라? 정말 없네.”
“뭐야? 어디 애들 어디 갔지?”
앞서 올라간 팀은 뒤이어 올라오는 팀을 마중하기로 한 상태였는데, 막상 캠프1로 올라와 보니 먼저 오른 미국 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팀이 없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팀장님! 미국 애들 저쪽 텐트에 있는 거 같습니다!”
“텐트?”
“네, 저기요!”
최영인이 손을 들어 가리키는 텐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
거리가 멀어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대화를 하는 사람의 소리가 들렸고, 그렇게 소리가 들리는 텐트로 이동하던 한국 구조대는 이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흐윽. 괜찮아? 너 괜찮은 거 맞아!?”
절규하는 미국 구조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서였다.
“……!”
“설마!”
그에 뭔가를 직감한 구조대원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텐트를 향해 달렸고, 그렇게 들어간 텐트에서 볼 수 있는 건 무전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미국 구조대의 모습이었다.
“데일! 챈들러! 챈들러는 어때?”
- 지직. 챈들러? 옆에 있는데 바꿔 줄 수가 없어…… 말하기가 힘들거든……
그토록 기다리던 실종된 대원들이 드디어 무전을 통해 연락을 취해 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좋아할 상황은 아니었다.
- 콜록. 콜록.
목소리만 들어도 무전을 보내온 데일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 나 너무 춥다.
“뭐?”
- 너무 추워…… 휘이이잉.
춥다고 말하는 무전 속에, 날카로운 주변의 바람소리가 들렸고.
“데일, 너 지금 어디야? 지금 정확히 어떤 상태야?”
그에 무전을 잡고 있는 대원이 고함치듯 위치를 물어봤지만, 데일은 그런 대원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 나 온몸에 감각이 없는 거 같아…… 몸이 너무 무거워서 움직이지 않아……
“뭐?”
- 흐윽. 너무 아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그저 지독한 추위에 온몸이 얼어붙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미국 구조대원들은 모두 난리 법석을 피며 고함을 질렀다.
“이런, X발!”
“데일, 정신 차려! 너 정신 잃으면 안 돼!”
지금 연락을 취해 온 데일이 이러다 정신이라도 잃게 되면 목숨을 잃을 게 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그런데 그런 미국 구조대보다 지금 상황에 더 흥분한 사람이 있었다.
‘제길.’
방금 텐트로 들어왔던 한국 구조대의 이성하였다.
꽈아악!
목소리를 듣자마자 데일이라는 걸 직감하고 고통 어린 표정으로 주먹을 쥐던 이성하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고함을 질렀다.
“데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동료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상황을 지켜보긴 했지만, 고통을 호소하는 데일의 목소리에 참지 못하고 그 이름을 부른 것이다.
그런데 그 고함에 데일이 반응했다.
- 콜록. 콜록. 설마 이성하야?
신기하게도 이성하의 목소리만은 알아들었는지 그 이름을 불렀고, 그에 이성하는 다급한 표정으로 앞으로 다가갔다.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간절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잡고 있던 미국 구조대원을 바라봤으며, 그에 미국 구조대원은 다급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넘겼다.
“무, 물론. 대화해 봐.”
어떻게든 연락을 해 온 데일의 정신을 붙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계속 대화를 유도해.”
“무조건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해.”
그랬기에 무전기를 넘기고도 이성하를 향해 계속 대화하라는 듯 다급히 손을 휘저었고, 다행히 데일은 그런 대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너 나랑 내기 잊었어?”
- 내기? 아, 그렇지…… 우리 꼭 다시 승부하기로 했지……
정확히 이성하라는 걸 인지한 듯, 이성하와 승부를 했던 내용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일시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그래! 너 나랑 또다시 승부하자고 했잖아!”
- 맞아. 그랬지…… 하하…… 분명히 다음에 보자고 했어……
정확히 이성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에 대답하며 웃음까지 터트릴 정도였다.
그에 이성하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너 있는 위치가 어디야?”
- 위치……?
“그래. 지금 있는 곳 말이야.”
미국 구조대원이 시도하다 중단됐던 대원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이었고, 그 말에 잠시 침묵이 흐르던 무전에서 기다리던 이야기가 들렸다.
- 사우스 서밋……
“사우스 서밋?”
- 그래…… 사우스 서밋 아래쪽 절벽이야.
비로소 실종된 구조대원들의 고립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게 된 것이다.
‘사우스 서밋이면 어디죠?’
[네 번째 캠프 위쪽이야.]
‘네 번째? 쳇.’
그 위치가 산 정상이나 다름없는 네 번째 캠프 근처라는 사실에 낙담하긴 했지만, 상황은 이성하의 생각보다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 스테판…… 스테판 거기 있어?
“이야기해. 여기 있어.”
방금까지 이성하와만 대화를 하던 데일이 동료의 이름을 불렀고, 그 내용은 지켜보던 모두의 얼굴에 환희를 깃들게 했다.
- 콜록. 콜록. 대원들 보내 줘…… 어떻게든 챈들러랑 버텨 보고 있을게.
“정말이야?”
- 그래……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어떻게든 와 줘. 부탁한다……
방금까지 고통만 호소하던 데일이, 스스로 생존의사를 밝히며 구조 요청을 한 것이다.
그 때문에 미국 구조대는 모두 울컥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봤다.
“고맙다.”
“한국 구조대, 고마워.”
이유는 모르지만 의식이 흐려지려는 데일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든 게, 눈앞의 이성하였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그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금까지 들었던 데일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없는 거 같습니다. 바로 가야 될 거 같아요.”
그랬기에 자신을 바라보는 미국 구조대원들을 향해 서둘러 출발할 것을 요구했고, 그에 미국 구조대 역시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머지 팀들 올라오면 바로 설명하고 가겠습니다.”
그들 역시 고립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당장에라도 출발을 서두르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랬기에 미국과 한국의 구조대원들은 바로 눈빛을 마주치고는 텐트 밖으로 나섰다.
“장비 챙기고 보시죠.”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하고 이쪽으로 오겠습니다.”
단번에 산 정상까지 올라갈 장비들을 챙기기 위해.
하지만 그때였다.
“저, 저기…….”
한 대원이 손으로 산 정상 너머를 가리키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콰르르!
그와 동시에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대원들의 귓가를 울렸고, 그에 고개를 올려다본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뇌운?’
금방이라도 에베레스트를 휘감을 것 같은 거대한 먹구름이 산 정상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