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95화 (95/235)

<강철 소방대 95화>

95화. 재난! 재난! 재난! (3)

에베레스트는, 해발 8,848m의 높이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산 중에서도 가장 높아, 세계의 지붕이라는 별명을 얻은 히말라야의 상징.

그리고 그 드높은 높이만큼 사람의 출입을 거부하는 장소가 에베레스트였다.

정상에 오르면 구름을 아래로 둘 정도로 하늘과 가까워 전문가들조차, 고산병에 걸릴 정도로 산소가 부족한 곳이 에베레스트였고, 무엇보다 문제는 그 높이로 인해 기온이 무섭게 떨어진다는 거였다.

“에베레스트?”

“저, 저기라고?”

방금까지만 해도 당연히 지원을 결정해야 한다던 대원들이 순간 멈칫할 정도로, 혹한의 추위를 자랑하는 곳이 에베레스트였다.

단순히 막연한 상상에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캠프에서도 뚜렷이 보일 정도로 가장 높은 산이 에베레스트다 보니, 구조대는 처음 캠프에 도착해 그에 대한 정보를 담당하는 네팔의 안내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가진, 저 산이 에베레스트죠?”

“맞습니다. 에베레스트. 우리말로 초모랑마라고 부릅니다. 세계의 어머니라는 뜻이죠.”

“세계의 어머니라. 멋있는 말이네요. 눈이 쌓인 게 정말 예뻐요. 저도 나중에 기회 되면 한 번 올라 보고 싶을 정도로요.”

몇몇 대원들은 반팔을 입을 정도로 따뜻한 기온의 네팔인데도 불구하고, 중턱부터 눈으로 뒤덮인 에베레스트산의 아름다운 모습에 순식간에 눈길을 빼앗겼으니까.

하지만 그런 구조대의 반응에 네팔의 안내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예쁘지 않아요. 멀리서 보기엔 아름다워도, 가까이 다가가면 죽음의 산입니다.”

“죽음의 산이요?”

“네, 매년 사망자가 나오는 산이에요. 많은 등산객들이 저 아름다움에 속아 준비를 하고 산을 오르지만, 초모랑마는 굉장히 마음이 차갑거든요. 공기도 부족하지만 낮은 기온 때문에 매년 수십 명의 등산객들이 얼어 죽어요. 산을 오르다 보면 그렇게 죽은 등산객들의 시체가 그대로 얼어 있는 걸 볼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저 산을 오르는 걸 추천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죽은 사람만 수천 명이거든요. 절대 아름답다고 만만하게 여기시면 안 됩니다, 구조대분들.”

아름다움에 속아 에베레스트라는 산을 만만하게 여기지 말라고.

그래서 구조대원들이 에베레스트라는 말에 정적을 유지하는 거였다.

“…….”

매년 수십 명, 지금까지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산이 탐색을 벌여야 하는 지역이라는 것에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던 거였고, 그에 구조대장과 선임 대원들은 역시나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겠지?”

“네, 힘듭니다. 장비가 없는 것도 있지만, 저희 모두 설산에서 구조 작업을 해 본 경험이 없어요. 그래서 대원들도 섣불리 대답을 못 하는 거고요.”

자신들이 결정을 망설였던 것처럼 대원들도 긍정적인 대답을 내지 못하는 모습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 때문에 구조대장은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지원은 불가능하다고 해야겠어.’

미국 구조대의 지원 요청을 거절하는 쪽으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에베레스트 기온이 몇 도라 그랬지?”

“영하 50도랬어.”

“50도? 쳇…… 진짜 개 같은 상황이구먼.”

“개 같지. 준비가 아예 안 됐잖아.”

아직까지도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누는 대원들의 모습처럼 이번 지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소가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 한국 구조대 역시 할 일이 있었다.

“대장님. 어차피 지원을 결정해도 인원을 많이 못 보내는 상황입니다.”

“맞습니다. 새로 무너진 건물을 수색하는 데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요. 안타깝지만 지원 요청은 거절하시고 우리는 건물 수색에 집중하시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몇 명 보내서 생색이나 낼 바에 확실한 걸 하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지금 저희에게 배정된 임무는 무너진 건물에서 생존자를 수색하는 거잖습니까.”

옆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선임 대원들의 말처럼, 혹시 모를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내일도 계속 탐색을 이어 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을 내리려는 구조대장의 눈에 한 대원의 얼굴이 들어왔다.

‘이성하?’

이성하였다.

‘뭐지?’

뚫어지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성하였고, 그에 구조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이성하. 뭔가 할 말이라도 있나?”

문득 병원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참신한 의견을 내던 이성하의 모습이 떠오름에.

“저 말입니까?”

“그래. 할 말이 있으면 해도 좋다. 의견 있나?”

이번에도 좋은 의견을 내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 이성하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들은 대답에 구조대장은 실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저는 소수의 인원이라도 이번 미국 구조대에 지원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들 역시 같은 구조대이기 때문입니다. 동료가 사선에 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고 구하러 가는 게 구조대잖습니까.”

특별한 이유 없는 원론적인 대답이었다.

“후…….”

“쩝…….”

곁에 있던 대원들이 그 대답에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듣기는 좋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의지만 어린 대답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설산에 대한 경험이 없다고 지원을 거절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같은 사고만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기에 모든 상황에 대처해서 생각하며 훈련한다. 그게 지금까지 제가 선배들에게 배워 온 거고, 이번 상황 또한 같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이면 어떻습니까? 그게 다 경험이 되는 거 아닙니까? 무엇보다 전 창피해서라도 이번 지원을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피?”

“네. 저 진짜 네팔에 처음 도착했을 때 너무 창피했습니다. 구조대가 아닌 헬퍼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서요. 그런데 그걸 이제 겨우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구조대다. 우리는 사람을 구하러 온 구조대라고요. 대장님, 저는 말입니다. 동료가 있다면 그게 불길 속이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아는 구조대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말을 하던 이성하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툭! 툭!

가슴에 붙은 태극 마크를 짚는 모습이었고, 그렇게 마크를 짚은 이성하가 말을 이었다.

“저희 한국 대표 아닙니까?”

국가를 대신해 왔다는 말이었다.

“저희가 한국 소방관들을 대표해서 온 거잖습니까.”

한국에 있을 다른 소방관들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지원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이성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처억.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그대로 손을 뒤로 가져가 부동자세를 취했고, 그에 구조대장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하.’

이성하가 건방져서?

아니었다.

‘이 새끼 봐라.’

재밌다는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고, 그렇게 이성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래? 저 말 듣고도 반대할 거냐?”

곁에 있는 선임 대원들을 향해 다시 미국 구조대의 지원 여부를 물었으며, 그에 안 된다고 말하는 대원은 더 이상 없었다.

“후배 놈이 제대로 쪽 주는데 어떻게 그럽니까? 지원하는 걸로 하시죠.”

“저도 찬성입니다. 저 소리 듣고 누가 반대합니까?”

“못하죠. 나도 짜증났었는데. 지원하시죠. 후배가 창피하다는데 선배로서 그냥 못 두겠습니다.”

구조대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 때문도 있지만, 이성하의 말처럼 자신들이 한국의 소방관들을 대표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한 것이다.

쓸데없는 명예나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다.

이성하는 모르지만 각국의 구조대원들이 국제구조대에 사명감을 가지며 참가하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각국의 구조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열심히 해외 재난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벌인다면, 다른 나라의 구조대 역시 우리나라에 재난이 발생했을 때 기꺼이 지원 올 것이라는 상호 간의 믿음.

그랬기에 지금 하는 고민은 애초부터 할 가치가 없는 거였다.

“미국 구조대의 지원을 결정한다. 인원은 여섯. 구조1팀을 조직해 지원한다. 알겠나?”

구조대장이 언제 고민했냐는 듯 단호한 음성으로 미국 구조대로 지원을 결정했고, 그에 대원들 역시 단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어떤 위험을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겨우 그것 때문에 몸을 사릴 마음은 없는 것이다.

그런 대원들의 모습에 구조대장이 양유철을 바라봤다.

“지원팀은 유철이 네가 맡아.”

“제가 갑니까?”

“그럼 너 아니면 누가 가냐?”

선임 대원들 중 가장 직위가 높은 양유철을 지원 팀의 팀장으로 내세운 거였고, 그렇게 지원팀을 맡게 된 양유철이 머리를 긁적였다.

“에베레스트라. 이거 생각도 안 해 봤는데.”

네팔에 오기 전만 해도 히말라야산맥으로 구조를 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 본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중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에 타국의 구조대를 구하러 가게 될 거라고는.

하지만 이미 결정된 상황이었다.

“알겠습니다. 팀원은 맘대로 뽑아 가도 됩니까?”

“물론.”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히 하겠다며 구조대장에게 데려갈 팀원들을 직접 뽑겠다 말했고, 그렇게 뽑힌 대원들은 같이 파견된 KDRT(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의 사람들이 알았다면 깜짝 놀랄 멤버였다.

“김창훈, 남명호, 박근석, 최영인, 이성하. 너희 다섯이 나와 함께 간다.”

앞에 두 사람은 몰라도, 이성하를 포함한 뒤에 언급된 세 사람은 이번에 특별 파견으로 선정된 일반 구조대원이었으니까.

하지만 뽑힌 대원들이나 뽑히지 않은 대원들 모두 그 선정에 아무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역시 체력인가.’

이성하가 생각한 것처럼 선별 기준은 체력이었다.

[당연한 선택이야. 나 같아도 이렇게 뽑았을 거야. 다들 경험이 없는 건 똑같으니 무조건 생존율을 보고 결정한 거지.]

렉스의 말처럼 모두 경험이 없는 건 같은 상황이기에, 극한 상황을 고려해 가장 체력이 높은 대원들만 우선해 뽑은 것이었다.

“에베레스트의 공기는 평지보다 70%나 적다고 한다. 기온도 현재 영하 40도를 밑돈다고 하니 체력 소모가 엄청나겠지. 그래서 너희들로 뽑았다. 특별구조대에서 체력 평가가 가장 좋았던 김창훈과 남명호. 그리고 최강소방관 중 성적이 가장 좋았던 박근석, 최영인, 이성하. 총 너희 다섯이 나랑 함께 간다.”

양유철의 설명처럼 지금 이름을 불린 대원들 모두가 체력에서만큼은 국제구조대에서 수위에 있는 대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지금의 팀 차출에 불만을 가진 대원은 없었다.

“불만 있는 사람?”

“없습니다!”

불만 있냐는 양유철의 말에 모든 대원들이 일제히 아니라고 대답할 정도로, 체력에서만큼은 모두가 인정하는 게 이름을 불린 다섯 소방관의 존재였으니까.

그 때문에 한국 구조대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다치지 말고 잘 다녀와.”

“기왕 가는 거 내 몫까지 가서 제대로 도와주고 와.”

남게 된 대원들이 자신들을 대신해 지원팀으로 결정된 대원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을 불어넣었고, 그런 동료들의 응원 아래 지원팀으로 결정된 구조1팀은 에베레스트로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식량 다 챙겼어?”

“네, 육포 위주로 챙겼습니다.”

“무전기는?”

“챙겼습니다. 예비 배터리도 모두 챙겼어요!”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기에 휴대에 간편한 식량들과 연락을 위한 최소한의 무전 장비들을.

그리고 몇 시간 후 동이 터오는 아침이 되자 구조1팀은 그렇게 챙긴 장비들을 들고 캠프 밖으로 나섰다.

타타타타타탓

“Korean rescue team. This is it.(한국 구조대 이걸 타시면 됩니다!)”

“Okay, Thank you.(고마워요.)”

네팔에서 준비한 에베레스트까지 이동할 헬기에 올라탄 거였으며, 그렇게 구조1팀이 올라탄 헬기 한편에는 작은 태극기가 붙어 있었다.

‘데일. 금방 간다.’

어딘가에서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요구조자들을 구하기 위해, 한국 구조대가 무서운 속도로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