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93화 (93/235)

<강철 소방대 93화>

93화. 재난! 재난! 재난! (1)

* * *

이번 여진으로 한국 구조대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과 미국의 구조대가 네팔에서 큰일을 해 내다.>

<한국 구조대. 수 킬로미터를 달려 부상자 이송.>

<무너진 건물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을 구한 한국 구조대.>

현장에 있던 외신 기자들이 그 활약을 보며 흥분한 기색으로 기사를 작성했고, 그 때문에 한국 구조대는 캠프로 복귀하며 모든 구조대의 박수 세례를 받았다.

짝짝짝짝!

“韓国は素敵です!(한국 멋있다!).”

“तपाईंकेटाहरूसाँच्चैउत्कृष्टहुनुहुन्छ!(너희들 진짜 최고야!).”

“Эти детёныши действительно классные?(이 새끼들. 진짜 멋있는데?).”

그 사이 한국 구조대의 활약이 캠프로 전달됐는지, 모든 구조대가 밖으로 나와 복귀하는 한국 구조대를 향해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캠프로 복귀한 한국 구조대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야, 애들 얼굴 봤어?”

“봤죠. 완전 뿅 갔던데요?”

“하하하. 그렇지?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지난번 생존자를 구할 때보다 더한 반응으로 환대하는 각국 구조대의 모습에, 비로소 자신들 역시 동등한 구조대로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분위기를 순식간에 깨트리는 불청객이 있었다.

“Can we come in for a minute?(우리 잠깐 들어가도 될까?)”

자신들보다 먼저 복귀했던 미국 구조대였다.

“What‘s this?(이건 뭐야?)”

“It‘s a gift. Today we owe you.(선물이야. 우리가 오늘 너희한테 신세를 졌잖아.)”

빚을 졌다며 먹을 걸 잔뜩 들고 온 모습을 보면 환대해 줘야 할 손님이었지만, 한국 구조대원들은 그런 미국 구조대원들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애들, 며칠 전에 우리 애들이랑 싸웠던 애들 아니냐?”

찾아온 구조대원들이 한국 구조대와 트러블이 심하던 대원들이라서였다.

“맞아요. 특히 앞에 있는 애는 며칠 전에 성하랑 멱살 잡던 애예요.”

“멱살?”

“네. 아까도 그거 때문에 서로 으르렁거렸잖아요.”

다른 대원들은 모르지만, 가장 앞에 있는 대원이 방금 현장에서도 후배인 이성하와 얼굴을 붉히던 대원이라는 생각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잠시 후 확실해졌다.

“뭐야? 저 새끼들 왜 안 가?”

선물을 줬으면 가야 할 놈들이 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아직 용건이 남아 있다는 듯 누군가를 웃는 모습으로 쳐다봤고, 그 누군가는 이성하였다.

“야, 너 나랑 내기 안 할래?”

“내기?”

“그래. 너 아까 보니까 힘 좀 쓰는 거 같더라고. 나랑 내기하자. 종목은 턱걸이. 지는 쪽이 이튿날 아침 물 대신 가져다주는 거야. 모닝콜 하면서. 어때? 할래?”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보며 내기하자는 말에, 이성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 미친놈 뭐야?’

언제부터 친했다고 난데없이 찾아와서 내기를 하잔 말인가?

하지만 이내 잘됐다는 마음을 먹었다.

“좋아. 지는 쪽이 물 가져다주기. 콜.”

안 그래도 아직은 분이 남아 있어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내기?”

“지는 쪽이 아침에 물 가져다주자는데요?”

“그런 정도면 괜찮지. 재밌겠는데?”

선배들 역시 싸움이 아닌 가벼운 승부라는 말에 흥미가 생겼는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고, 곧 장비 창고 안에는 두 사람을 위한 승부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단단하게 고정해.”

“이 정도면 될 거 같습니다.”

창고 안에 벽면 지지대를 세워 만들어진 철봉을 두 사람이 잡았다.

“흐읍!”

“으라차!”

짐을 정리하고 슬슬 잠을 청해야 할 시간에 두 명의 구조대원이 서로를 바라보며 매섭게 철봉을 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승부는 박빙이었다.

“스물셋! 스물넷!”

“스물셋! 스물넷!”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왜 국제구조대로 파견됐는지를 증명하듯 쉴 새 없이 철봉을 잡아당겼으니까.

하지만 결국 결착이 났다.

“서른여섯! 서른일곱! 이성하 좀 더 힘내!”

“데일! 아직이야! 서른둘이야! 서른둘!”

꾸준히 숫자를 올리는 이성하와 다르게 데일의 팔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느려진 데일은 결국 더 이상 철봉을 당기지 못했다.

“Dame it!(제길)”

“뭐야? 쟤 끝났어.”

“네, 성하가 이겼어요. 성하는 마흔여섯. 데일은 서른아홉.”

그 역시 구조대원으로서 엄청난 횟수를 기록하긴 했지만, 이성하의 횟수가 더욱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분통을 터트린 것과 다르게 데일의 표정은 밝았다.

“끝내주네. 오늘은 네가 이겼어.”

“뭐?”

“하하하. 내가 졌다고. 너희 먹을 물은 내가 내일 가져다줄게.”

자신이 졌다며 만족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보며 패배를 인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데일은 패배를 인정한 게 아니었다.

“야, 너희 마실 물 가져왔다.”

이튿날 아침 내기의 약속대로 한국 구조대가 마실 물을 가지고 오긴 했지만.

“야, 오늘도 하자.”

“뭐?”

“내기 말이야.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잖아.”

그날 밤에도 내기를 하자며 이성하를 찾아왔다.

“또 하자고?”

“어, 오늘은 내가 이길 거야. 그러니까 긴장해도 좋아.”

오늘만큼은 자신이 이긴다며 또다시 당당한 표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그런 행동은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반복됐다.

“좋아, 데일, 힘내라.”

“그래, 데일! 오늘은 이길 수 있어.”

지켜보던 선배들이 데일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처럼, 매일같이 한 가지 종목을 들고 와 이성하에게 도전을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승패는 선배들의 말처럼 전부 이성하가 이긴 상태였다.

“오늘까지 지면 4연패 아냐?”

“맞아. 첫날이 턱걸이, 둘째 날이 윗몸일으키기, 그리고 어제가 팔굽혀펴기였지.”

수군대는 선배들의 말처럼 3일간 겨룬 종목 모두를 이성하가 이긴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만큼은 단단히 준비했는지 입을 여는 데일의 표정엔 자신감이 어려 있었다.

“오늘은 팔씨름하자.”

“팔씨름?”

“그래. 뭐니뭐니 해도 남자는 팔씨름이지.”

우람한 팔 근육을 그대로 드러내며, 이번만큼은 자신이 이긴다며 웃음을 지어 보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으아아아아!”

데일이 단번에 힘을 집중하며 이성하의 팔을 넘기나 싶었지만.

“으랏차!”

쾅!

이성하가 단번에 역전해 데일의 몸을 뒤집어 버렸다.

“에이, 오늘도 같네.”

“그래도 데일, 수고했다.”

“그래. 고생했어.”

그 모습에 선배들이 흥미를 잃었다는 듯 데일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숙소로 들어갔고, 그에 데일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

체구 때문에 우위라고 생각하던 팔씨름마저 패배를 기록한 것에 어이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데일의 모습에 이성하가 냉장고에서 콜라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내일 간다며?”

이번 대결이 마지막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뭐야, 알고 있었냐?”

“네 친구들한테 들었어. 내일부터 히말라야 쪽 담당한다며.”

데일의 근무지 변경 이야기였다.

미국 구조대는 인원과 장비가 많은 만큼 여러 곳을 동시에 담당하는데, 그중 한 곳이 네팔의 위쪽에 있는 히말라야산맥이었다.

지진이 일어나며 히말라야에서도 수십 명의 사망자가 나와 대부분의 등산객은 빠져나온 상태지만, 다음 등산을 위해 캠프를 유지하기 위해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데일은 그런 사람들의 피해를 대비하기 위해 내일부터 히말라야에서 근무할 예정이었다.

모든 구조대가 내일부터 철수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미국 구조대만은 마지막까지 네팔에 남아 계속해 구조 작업을 벌이기로 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데일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야. 그럼 한 번 정도는 져 줘야지.”

“내가 왜?”

“야 이씨, 치사하게 같은 소방관끼리 한 번을 안 져 주냐?”

그래도 같이 지낸 시간이 있는데 한 번을 져 주지 않는 야박함에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데일을 향해 이성하가 피식 웃었다.

“다음에 또 하면 되잖아.”

“또?”

“그래. 너 나랑 연락 안 할 거냐?”

데일은 첫 만남에서 최악의 관계로 시작한 동료였지만, 관계가 진전된 뒤부터는 이성하에게 많은 도움을 준 동료 소방관이었다.

“너 저번에 우리가 쓰던 유압기 신기하다고 그랬지? 가져왔는데 한번 만져 볼래?”

“진짜야?”

“그래. 그러려고 가져왔으니까 이리 와 봐.”

첫 단추를 잘못 꿴 덕분인지 까칠한 말투는 여전해도 가끔 이성하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눈여겨보고는 선배처럼 배움을 전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성하는 데일이 매일 밤마다 찾아오는 게 귀찮긴 해도 어느덧 동료로 인정하고 있었다.

“팔굽혀펴기. 오늘은 팔굽혀펴기다.”

“오늘도 졌다고 울면 안 된다.”

“울기는 누가 울었다고 그래!”

그랬기에, 매일 데일이 내미는 승부마다 진심을 다해 받아 줬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데일을 향해 미리 적어 뒀던 쪽지를 건넸다.

“이건 뭐야?”

“메일 주소.”

“메일?”

“그래. 가끔 이걸로 연락하자고. 언제 또 만날 수도 있잖아.”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그 역시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이라는 걸 알기에 동료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에 데일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쳇, 역시 넌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아.”

말과는 다르게 웃음을 지으며 하는 말이었다.

“연락할게.”

“그래.”

이성하가 내민 쪽지를 주머니에 담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일어나 손을 눈가에 갖다 댔다.

“다음에 또 보자. 한국 구조대.”

같은 소방관으로서 경의를 표하는 인사였으며, 그에 이성하 역시 같이 경례를 보냈다.

“많이 배웠다. 미국 구조대.”

언젠가 또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며 서로의 안전을 기원한 것이다.

그리고 데일은 그 인사가 정말 마지막이었다는 듯 이튿날 새벽 구호 캠프를 떠났다.

‘진짜 갔네요.’

[그러네. 인원수가 줄었어.]

자신이 있었다는 걸 알리듯, 캠프 한 편에 빈자리만 남긴 채.

하지만 아쉬움을 표할 상황은 아니었다.

데일의 다음 근무가 히말라야라면 이성하 역시 은평구라는 다음 근무지가 있었다.

“좋아, 여기까지. 모두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근무지로의 이동을 위해 네팔에서의 마지막 임무인 시피달 지역의 탐색을 마무리하고는 캠프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고, 그렇게 이튿날 아침 다른 구조대와 작별 인사를 주고받으며 버스에 올랐다.

“수고하셨습니다!”

“한국 구조대도 수고하셨어요.”

“모두 다음에 봅시다. 다들 수고했어요.”

드디어 긴 네팔의 구조 작업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향하는 귀국길에 오르는 것이다.

아쉬우면서도 시원한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가네요.’

[그러게.]

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국을 떠나 있다 보니,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본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

버스에 오르는 순간 오랜만에 심장에서 격한 울림이 느껴졌다.

[뭐야? 설마…….]

그에 말도 안 된다며 렉스가 당황한 음성을 내뱉었지만, 울리는 건 이성하의 심장만이 아니었다.

드드드드드!

캠프 너머로 하얀 연기가 매섭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모, 모두 엎드려!”

“God dame!(제길!).”

“マブソサ!(맙소사!).”

격하게 요동치는 대지의 울림에 모두가 당황한 표정으로 몸을 숙였고, 그렇게 잠시 후 눈에 들어온 광경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콰과쾅-.

“말도 안 돼…….”

캠프 너머로 하얀 눈이 매섭게 떨어지고 있었다.

콰가가가각.

그것은 눈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서운 거대한 눈사태였다.

“제길!”

캠프 너머로 보이는 히말라야산맥이 방금의 지진으로 일제히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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