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92화>
92화. 국제구조대 (9)
“What? Really destroy the building?(뭐? 정말 건물을 부순다고?)”
그런 구조대의 모습에 수술을 진행하던 의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양 측 구조대원들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James. Just in case, move sideways.(제임스. 혹시 모르니까 옆으로 이동해야겠어.).”
“Seriously?(진심이야?)”
“Sure. Don’t worry. I‘ll make sure no debris is splashing here.(물론이지. 걱정하지 마. 이쪽으로 잔해물이 튈 일은 없게 할 테니까.)”
미국 구조대가 그런 의료진의 걱정은 잘 안다는 듯, 능숙하게 설득하며 수술실의 위치를 벽 끝으로 옮기는 작업에 나섰고.
“1팀은 2층, 2팀은 바깥으로 나가서 천장과 벽 쪽에 로프부터 고정해.”
“알겠습니다!”
한국 구조대는 자신들이 입안한 작전인 만큼, 직접 벽면에 로프를 박아 건물을 무너트릴 준비에 나섰다.
“Is there a longer fabric?(더 긴 천 없어?)”
“로프 위치 오른쪽으로 이동해!”
갑작스럽게 결정된 작전이기에 혼선이 생길 수도 있지만, 서로가 해야 할 일을 안다는 듯 자연스럽게 역할을 분담해 건물 해체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Move everything carefully. Never let the machine turn off.(전부 조심히 옮겨. 절대 기계가 꺼지게 해선 안 돼!)”
아직 수술이 진행 중인 환자를 충격 없이 이동시키는 것이나.
“로프 조심히 박아! 자칫하다가는 그대로 무너진다!”
균열이 일어난 벽면에 로프를 박는 것 모두 극도의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 있는 구조대원들은 이런 재난 상황들을 수차례나 경험해 온 베테랑들이었다.
“Great! Now install the barrier!(좋아! 이제 차단막 설치해!)”
“로프 팽팽하게 당겨!”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조금의 실수 없이 자신들이 맡은 작업을 완료해 나갔고, 그렇게 임무를 마치고는 목재와 드릴을 들고 균열이 있는 벽 쪽으로 모였다.
“Our US team will break through the ceiling.(우리 미국 팀에서 천장을 뚫겠습니다.)”
“Then we‘ll strengthen the pillars.(그럼 우리가 기둥을 강화하겠습니다.).”
이번에도 마치 여러 번 손을 맞춰본 것처럼, 단번에 역할을 분담해 바로 다음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구조대의 모습은 수술을 진행하던 의료진조차 순간 한눈을 팔 정도로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다.
카가가가가각!
미국 구조대원들이 단번에 표시한 경계선을 따라 천장에 구멍을 내면.
깡! 깡! 깡! 깡!
어느새 나타난 한국 구조대원들이 그 옆으로 지지대를 세워 균열된 부분들을 받쳤으니까.
그 때문에 의료진 역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수술에 나섰다.
“Concentrate! We just need to do the surgery well!(집중해! 우리는 수술만 잘하면 돼!)”
지금의 모든 행동이 눈앞의 환자를 위함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삑! 삑! 삑! 삑!
‘Don’t worry, unconditionally saved.(걱정 마. 무조건 살릴 테니까.)’
살려 달라는 환자의 신호를 귀로 담으며 집중하는 눈빛으로 겸자를 들었고, 구조대는 그 사이 건물의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카가가가가각!
깡! 깡! 깡! 깡!
환자만이 아닌, 이 건물 안에 있는 모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조금의 오차도 없이 건물을 해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자연히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이성하! 쐐기 가져와!”
“네!”
정교한 작업이기에 직접 주가 돼서 나서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이해하고 움직여 주는 선배들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에 혼란을 겪는 이가 있었다.
“데일! 뭐하고 있어!”
평상시 한국 구조대를 무시하던 미국 구조대의 데일이었다.
“아, 미안.”
“시간 없어, 빨리 움직여!”
“그래. 알았어.”
동료의 질책에 정신을 차리나 싶었지만 다시 한국 구조대가 움직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가 집중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도저히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게 그 한국이라고?’
자신이 헬퍼라고 놀렸던 한국 구조대가 건물이 매몰될 위험까지 감수하며 구조 작업에 나서는 모습에 깊은 이질감을 느낀 것이다.
사실 데일이 처음부터 한국 구조대를 무시한 건 아니었다.
한국 구조대는 세계에서 17번째로 UN에서 인정받은 최상급의 Heavy 등급 구조대였다.
“한국이면 저희랑 같은 Heavy등급 아녜요?”
“그래. 우리랑 같은 UN에서 인정한 최고 등급의 구조대야.”
“이야, 든든하네요. 오면 배울 게 많겠어요.”
나라의 크기는 작지만 자신들과 동등한 최고 등급의 구조대가 지원을 온다는 말에, 데일은 든든한 동료가 늘어난다며 좋아했던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목격한 한국 구조대는 동료가 아니었다.
“데일 들었어? 한국에서 열 명 파견했대?”
“뭐? 열 명?”
다른 구조대의 반도 안 되는 인원을 가지고 구조대라며 네팔에 들어왔다.
“쟤들 뭐하는 거야? 설마 구조견도 없어?”
“…….”
그것도 도시 탐색에서 필수라고 할 수 있는 구조견도 없이 몸만 들고 온 상황이었고, 그렇게 와서 하는 말은 매일같이 시신을 치우며 피폐해진 미국 구조대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뭐라고요? 2차 구조대가 1일에 온다고요?”
“그래. 1일에 도착한단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새끼들 여기 여행 온대요? 5월 1일이면 골든타임 끝나고 한참 뒵니다! 그게 무슨 구조대입니까!”
선발대라는 이상한 개념을 가지고 구조대를 파견한 것도 짜증나던 판국에, 파견한다는 2차 구조대마저 골든타임을 한참이나 넘기고 도착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2차로 도착한 한국 구조대를 보자마자 시비를 걸었던 거였다.
“구조대가 우선이야. 도우미는 나중이고.”
거의 구조 상황이 마무리될 때야 도착해 생색이나 내려는 한국 구조대의 모습에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으니까.
한국이 생존자를 구해 왔을 때 비아냥거렸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운도 좋네.”
“그러게요. 의지도 없는 애들이 운만 따르네요.”
보나마나 어디서 놀다가 우연히 생존자를 발견했다는 생각에, 그저 운만 좋은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뀐 게 오늘이었다.
드드드드드드!
“이런 X발! 빨리 환자들 밖으로 이송해!”
갑자기 발생한 지진에 다급히 환자들을 밖으로 꺼내는 와중, 지원 온 구조대가 있었다.
“허억, 허억.”
“제기랄. 콜록. 콜록.”
달려서 왔는지 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 기침을 토하는 구조대의 모습에, 데일은 당황해 할 말을 잃었다.
“한국?”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한국 구조대라서였다.
‘잠깐만, 이 새끼들 설마 서쪽 구역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거야?’
한국 구조대가 담당하는 지역과의 거리를 잘 알고 있음에, 그들이 여기까지 달려서 이동했단 사실에 경악한 표정을 지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구조대는 그런 데일의 모습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부분 부상자다 보니 아직 전부 이송하진 못했을 거야. 1팀은 미국 팀을 도와 1층을 지원한다. 2팀과 3팀은 2층에 남아 있을 부상자를 수색해. 알겠나?”
“악!”
단번에 상황을 파악하고는 아직 안에 남아 있는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지체없이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으니까.
그 모습은 데일이 생각하는 구조대의 모습이었다.
“&$%&^%#.”
뭐라 말하는지는 모르지만 다급한 표정으로 환자들을 밖으로 옮기는 모습에 그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그그그그극!
“빨리!”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임에도 순식간에 달려와 바로 지지대 보강에 매달리는 그들의 모습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고.
그래서 데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구조대구나.’
그들 역시 자신과 같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구조대라는 것을.
물론 아직도 그들이 도착한 첫날만 생각하면 배신감이 솟았지만, 그들은 구조대였다.
깡! 깡! 깡! 깡!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천장 아래에서도 지지대를 만들기 위해, 겁 없이 망치질을 하는 그들이었기에.
“내가 도와주지. 이리 내.”
“뭐?”
“이리 달라고. 지주는 이렇게 세우는 거야.”
깡! 깡! 깡! 깡!
그대로 한국 구조대에 합류해 옆에서 그들의 작업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졸지에 망치를 뺏긴 이성하로서는 어이없는 순간이었다.
[이 새끼, 그 새끼 아니야?]
‘맞아요. 영인 선배랑 제 멱살 잡은 놈.’
미국 구조대원이 자신들 옆에서 망치질하는 것도 놀랄 판에, 심지어 그 구조대원이 자신과 멱살을 잡고 언성을 높였던 소방관이라는 사실에 순간 미친놈인가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 광경은 이성하의 눈앞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Need wood?(목재 필요하지?)”
“Wood?(나무?)”
“Yes, wood.(그래, 목재 말이야.)”
곳곳에서 작업을 마친 미국 구조대원들이 한국 구조대의 작업에 참여했다.
“Hit it?(치면 돼?)”
“Hit.(쳐.)”
“Okay.(좋아.)”
깡! 깡!
방금까지 역할을 나눠 일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아예 한 팀이 되어 지지대를 세우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봐준다.”
“What?(뭐라고?)”
“몰라도 돼, 인마.”
마음에는 안 들지만, 지금까지의 감정을 뒤로하고 미국 구조대를 동료로 인정하기로 맘먹은 것이다.
“What do you mean? speak english. English.(무슨 말이야? 영어로 말해. 영어.)”
그런 이성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데일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성하는 더 이상 그에 상관하지 않았다.
“다들 준비해! 3팀에서 벽면 잡아당긴다!”
“악!”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나 균열이 일어난 부분을 떼어 내는 마지막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당겨!”
“으아아아아!”
밖에서 구조대원들이 온 힘을 다해 로프를 잡아당기는데도 벽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그그그극.
균열이 일어난 천장과 달리 벽만큼은 시공이 잘됐는지 요란한 소리만 내며 넘어가질 않았고, 그 탓에 오히려 천장에 생긴 균열만 더 커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젠장! 물러나!”
“God dame!(젠장!)”
밖으로 넘어가야 할 천장이 안에서 그대로 무너져 붕괴될 상황이 벌어지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이성하와 렉스가 이미 예상하던 상황 중 하나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악을 감안하고 움직여야 한다.’
구조대로 발령받으며 선배들에게 누누이 들었던 경고가 항상 최악을 가정해 움직이라는 말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이런 상황에 대한 해결책도 미리 생각해 둔 참이었다.
‘저렇게 콘크리트를 비스듬히 절단하는 건 이유가 있는 거예요?’
[어. 그래야 잔해물이 밖으로 떨어지니까. 안으로 떨어지면 요구조자들이 다칠 확률이 있잖아.]
처음 도시 탐색 작업을 수행하며 렉스에게 물었던 선배들의 콘크리트 절단법이었다.
수직으로 자르면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지만 안쪽으로 비스듬히 자르면 그 방향으로 잔해물이 떨어지는 방법.
그랬기에 이성하는 조금도 고민 없이 근처에 있는 전기톱을 들고 균열이 있는 벽 쪽을 향해 뛰었다.
“지금이에요. 잘라 내요! 대각으로 잘라 내요!”
시간이 없다는 판단에 선배들에게 고함으로 생각을 전하며 먼저 행동에 나섰고, 양측 구조대원들 역시 정신을 차리고는 전기톱을 챙겨 그 뒤를 따랐다.
위이이잉! 카가가가각!
“잘라 내!”
“It‘s diagonal! Cut diagonally!(대각이야! 대각으로 잘라 내!)”
절단법 정도야 기본이라는 듯 다들 톱날을 밑으로 넣어 사선으로 벽을 잘라갔으며, 그렇게 잠시 후 기어코 균열된 부분을 밖으로 떨어뜨리며, 모두가 고함을 질렀다.
콰가가가강!
“Good!(좋았어!)”
“됐어! 됐다고!”
그들이 생각한 대로 깔끔하게 균열이 일어난 부분만 밖으로 무너진 모습에, 다들 기쁨의 환호를 터트린 것이다.
하지만 아직 좋아하기에는 일렀다.
삑! 삑! 삑! 삑!
“모두 조용해!”
“조용! 조용!”
붕괴의 위험은 막았지만, 환자의 수술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침묵은 오래되지 않았다.
“Great!(좋았어!)”
“Good!(수고하셨습니다!)”
수술실 안에서 기쁨에 찬 의료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It‘s over! The patient lived!(끝났어! 환자 살았어!)”
이어서 의사가 밖으로 나와 수술이 잘 끝났다며 밝은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고, 그에 미국과 한국의 구조대원들이 만족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Thanks to you.(고맙습니다.).”
“수고했어요!”
서로의 도움이 있었기에 무사히 이 상황을 해결했다며 고마움을 전한 것이다.
이성하 역시 만족한 미소를 지은 건 당연했다.
[잘했다.]
‘잘한 거 맞아요?’
[안 그러면 저렇게 널 쳐다보겠냐?]
‘그런가?’
렉스의 말처럼 다들 웃는 모습으로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랬기에 맘에 안 들던 미국 구조대원 데일에게도 반가운 마음으로 주먹을 들었다.
“Good job.(고생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너 역시 고생했다고.
그런데 그 말에 데일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You suffered. Pretty good considering it’s Korea.(네가 고생했지. 한국치고는 제법이던데?)”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얄미운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맞댔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양측 구조대장은 서로를 바라봤다.
“What?(뭐?)”
“Why? feel bad?(왜? 기분 나빠?)”
방금까지 훈훈한 분위기를 그대로 날려 버리며 서로에게 이를 드러내는 두 사람이기에.
“Ha…….”
“후…….”
서로를 바라보며 골치 아픈 표정으로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