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90화>
90화. 국제구조대 (7)
병원은 박타푸르에서 사람들이 유일하게 건물 내에서 대기하는 곳이었다.
부상을 입은 사람들과 그들을 치료하는 의료진이 모여 있는 구호 캠프의 핵심 시설 중 하나.
그랬기에 서둘러 몸을 일으킨 구조대장이 바로 양유철을 찾았다.
“양유철! 빨리 연락해!”
상황을 파악하라는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양유철이 빠르게 무전기를 찾아 병원을 담당하는 미국 구조대에게 연락을 보냈다.
“This is Korea Rescue Team. How is the hospital situation? U.S. rescue team, respond.(여기는 한국 구조대. 병원 상황은 어떻습니까? 미국 구조대는 응답 바랍니다.)”
구호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였기에, 구조대 중 가장 인력이 많은 미국 구조대에서 병원을 보호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들려온 대답이 심상치 않았다.
- Not good. Most of the pillars of the building are cracked. They are evacuating because there is a risk of collapse!(상황 안 좋습니다. 건물 대부분의 기둥에 금이 간 상황. 붕괴 위험이 있어 대피 중입니다!)
건물 기둥에 금이 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다급한 음성이 무전을 통해 울렸다.
- 콰가각.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뒤이어 들렸고.
“Hey, what’s up? Hey!(이봐, 무슨 일이야? 이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양유철이 바로 무전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무전은 없었다.
“끊긴 거야?”
“그런 거 같습니다.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병원을 보호하고 있는 미국 구조대와의 연결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구조대장은 바로 고함을 질렀다.
“이쪽 부상자는 네팔 지원팀에게 맡기고 우리는 장비 정리하고 이동 준비한다!”
“지원입니까?”
“그래. 병원으로 간다. 그쪽 인원만으론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는 건 무리야.”
무전으로 전해진 분위기만 봐도, 병원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대장님! 길이 막혔습니다!”
“뭐?”
“앞쪽의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졌습니다. 이 상태로는 차로 이동하는 게 불가능해요.”
도로가 무너진 건물의 잔해물로 막혀 버렸다.
우회로를 찾아봤지만 병원으로 통하는 다른 도로 역시 건물의 잔해물로 막히긴 마찬가지였고, 이런 상태에서 병원으로의 지원은 불가능했다.
“제길.”
지대가 높아 병원의 모습은 보이지만, 이곳에서 병원까지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꽤 먼 거리였다.
아니, 그냥 먼 거리 정도가 아니었다.
“대장님, 병원까지 2km입니다. 장비까지 챙기고 이동하기에는 너무 멉니다.”
지도를 펼쳐 본 선임 대원 한 명이 바로 고개를 저을 정도로, 장비를 챙긴 상태에서 2km를 걸어서 이동하는 건 누가 봐도 무리였으니깐.
하지만 그때, 혼자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차는 못 움직여. 그러면 도보로 이동할 거야.’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버스로 뛰어 올라가는 이성하였다.
“야, 너 뭐해?”
“장비 내립니다! 이것들은 가지고 가야죠!”
그에 당황해하는 선임 대원에게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하며 장비를 내리며, 그중 가장 무거운 목재 절단기를 품에 안았다.
“으라차!”
아직 결정은 나지 않았지만 도보밖에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누구보다 빨리 출발 준비를 마친 것이다.
“야, 뭐해?”
“인마. 아직 명령도 안 떨어졌어.”
그에 같은 지역 구조대원인 최영인과 박근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지만, 이성하의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빡세긴 하지만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야.’
지금껏 이런 상황을 수없이 겪어 왔다.
“뒤처지지 마. 이 페이스 그대로 유지해야 해.”
“후욱. 후욱. 알겠습니다.”
북한산에서 장건호를 구하기 위해 산을 올랐던 거나.
“부장님, 트렁크 열어 주십쇼. 장비 꺼내겠습니다.”
“어, 그래.”
녹번동에서 길이 막혀 장비를 챙긴 채 도보로 이동한 것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던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2km라는 거리를 생각하면 까마득할 법도 하지만, 이성하는 오히려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더 편해 보인다.]
‘네, 오늘은 방화복을 안 입었잖아요.’
무게도 무게지만, 몸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방화복이 없다 보니 이 정도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절단기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목재까지 하나 더 챙기고는 구조대장을 바라봤다.
‘가시죠.’
자신은 언제든지 출발할 준비가 됐다고.
구조대장과 선임 대원들로서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너희 막내가 저러는데 가만히 있을 거야?”
“쪽팔리게 그럴 수 있겠어요?”
말로는 농담을 주고 받지만 자존심은 이미 상한 상태였다.
‘특수 구조대 체면이 말이 아니구먼.’
‘안 되겠어. 오늘 선배들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보여 줘야지.’
막내도 당연하다는 듯 뛰어가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선배들인 자신이 주저했다는 것에 창피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그 때문에 구조대원들의 마음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1팀 준비해!”
“알겠습니다!”
“2팀도 준비한다!”
“3팀도!”
“악!”
결정을 내리는 간부들이나 그에 따르는 대원들 역시 언제 망설였냐는 듯 장비들을 짊어졌고, 그렇게 병원까지 향하는 구보가 시작되었다.
“끄아아아아!”
누군가는 혹시 모를 안정화 작업을 대비한 목재를 챙긴 채 달렸으며.
“먼저 뛰어! 나머지는 내가 들고 간다!”
누군가는 공구 장비와 벽을 뚫을 드릴을 들고 달렸다.
“뛰어! 뛰어!”
자신들의 도움을 기다릴 미국 구조대를 지원하기 위해.
“허억. 허억. 페이스 조절은 하되 멈추지 마라. 휴식 없이 간다!”
“악!”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모두 눈에 독기를 담은 채, 거리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문인지 병원에 도착한 한국 구조대의 몰골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허억. 허억.”
“제기랄. 콜록. 콜록.”
2km나 되는 거리를 장비까지 들고 달린 덕분에, 다들 땀범벅이 된 상태로 고통에 찬 기침을 토해 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노력은 헛된 게 아니었다.
“Korea team?(한국 구조대?)”
부상자를 부축한 채 나오는 한 미국 구조대원이 한국 구조대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Korea!(한국이다!)”
“The Korean team came to apply.(한국 팀이 지원을 왔어!)”
뒤이어 나오는 다른 미국 대원들 역시 한국 구조대를 발견하고는 탄성을 지었고, 그에 구조대는 짧은 눈인사만 건네고는 그대로 구조 작업에 들어갔다.
“대부분 부상자다 보니 아직 전부 이송하진 못했을 거야. 1팀은 미국 팀을 도와 1층을 지원한다. 2팀과 3팀은 2층에 남아 있을 부상자를 수색해. 알겠나?”
“악!”
아직 병원에 남아 있는 부상자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밖으로 이송하기 위해, 지체없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간 순간이었다.
미국 대원들 역시 그 모습에 서로 눈빛을 마주치고는 같이 움직였다.
“Assholes. This favor will be repaid later.(개자식들. 이 은혜는 나중에 갚으마.)”
아직 서로에 대한 화가 풀린 건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을 지원하기 위해 나타난 한국 구조대가 누구보다 반가웠으니까.
물론 그에 대한 이성하의 대답은 가차 없었다.
“Fuck off. Your team will kill later.(꺼져, 너희는 나중에 죽일 거야.)”
렉스 덕분에 자연스럽게 통역을 맡고 있던 이성하가 차갑게 말하자, 그에 다른 대원들 역시 동조했다.
“말 잘했다. 막내야.”
“그럼. 공은 공이고 사지.”
엉겁결에 미국 구조대와 합동 구조 작업을 벌이긴 했지만 그들에 대한 앙금이 풀린 건 아닌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한국 구조대의 모습에 미국 구조대는 웃음을 지었다.
“HaHa.(하하.)”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들의 지시를 기다리는 한국 구조대의 모습 때문이었다.
“Which patient should be transferred first?(어떤 환자부터 먼저 이송하면 돼?)”
상사로 보이는 이에게 무얼 들었는지 바로 통역하는 이성하의 모습 때문이었고, 그에 고개를 끄덕이는 미국 구조대원의 말을 시작으로 두 팀의 합동 작전이 펼쳐졌다.
“We team in charge of the right side.(우리가 오른쪽을 맡지.)”
“Okay, then we’ll take the left.(좋아. 그럼 우리가 왼쪽을 맡지.)”
아직 상대방에 대한 화가 풀린 건 아니지만, 서로가 사람을 구하는 구조대라는 것은 인정하기에.
“Jay, transfer this patient.(제이, 이 환자부터 옮겨.)”
“이 환자는 혼자서 안 돼. 명철아, 나 좀 도와줘.”
서로를 믿고 환자들을 병원 밖으로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환자들을 밖으로 빼내는 데 점차 속도가 붙었다.
“Hey. help me here.(이봐, 여기 좀 도와줘.)”
“그래. 간다, 가.”
구역을 나눴지만 한 공간에서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레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짧은 시간 안에 대부분의 환자들을 밖으로 이송할 수 있었다.
“End?(끝이야?)”
더 이상 그들이 맡았던 2층에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Okay. All the patients to be moved have been moved. Thanks to.(그래. 옮길 환자들은 다 옮겼어. 덕분이야.)”
“You too have suffered.(너희도 고생했어.)”
서로가 활짝 웃으며 주먹을 맞대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그그극.
건물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며 약간 기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2팀과 3팀 빨리 1층으로 내려 와! 빨리!
그와 동시에 들고 있던 무전기에서 구조대장의 당황한 음성이 울려 퍼졌고, 그에 구조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1층으로 뛰었다.
“Damn it.(젠장.)”
“Where is going?(니들 어디 가?)”
“You too come quickly! The first floor is dangerous!(너희도 빨리 와! 1층이 위험해!)”
미국 구조대 역시 같은 지시를 받았는지, 다급한 표정으로 1층으로 달려가는 모습에 무언가 일이 터졌다는 걸 직감한 것이다.
그리고 도착해서 보이는 광경에 이성하는 바짝 얼고 말았다.
‘맙소사.’
모든 환자를 밖으로 이송한 게 아니었다.
삐비비비빅!
“Bp clashing!(혈압 떨어집니다!)”
“Damn it. two unit. Two need of packs of now.(젠장! 수혈용 용액 두 팩 빨리!)”
수술이 진행 중이었는지 숨 가쁜 의료진의 음성이 고함치듯 울리고 있었고, 그런 의료진의 옆으로 필사적으로 건물을 보강하는 구조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그그그그극.
천장을 가로지르는 금이 서서히 진해지고.
“목재 가져와!”
“Hurry up!(빨리!)
모든 구조대원이 필사적으로 고함을 지르며 목재로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