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89화 (89/235)

<강철 소방대 89화>

89화. 국제구조대 (6)

* * *

재난 발생 시,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은 72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요구조자가 생존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대부분 그 시간을 기점으로 생존율이 심하게 떨어져 기준을 잡아 둔 게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

그 때문에 각국의 구조대는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이었다.

<80시간 버틴 생존자. 극적으로 구조>

<네팔-프랑스 구조팀. 생존자 발견>

<지진 발생 80시간 만에 피해자 구조. 절망 속 희망 발견하다>

지진 발생 4일째, 한 명의 생존자가 프랑스 팀에 구조되며 구조 현장에 활기가 치솟는 듯했지만.

“쳇, 더 이상 없는 거 아냐?”

“그러게. 골든타임을 너무 지났어. 더 이상은 생존자가 없을 거 같아.”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시간이 너무 아쉽네요.”

그 이후로는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발견되지 않아, 더 이상 생존자가 없다는 게 구조 현장의 분위기였으니까.

물론 아예 생존자가 발견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네팔 지진 8일 만에 여자 2명, 남자 1명 생존 확인>

며칠 전, 한 산골 마을에서 세 명의 생존자가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케라바리 마을에서 생존자가 세 명 나왔대.”

“세 명?”

“어. 군부대가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대!”

생존자가 발견된 건 물론, 그 부상 또한 심하지 않아 구조 캠프의 분위기가 일시적으로 밝아진 적이 있던 상황.

하지만 그건 특수한 경우였다.

이번에 발견된 생존자의 위치가 산골이라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진흙 가옥에 고립된 상황이었다.

구조대가 머무는 복잡한 도심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상황이었고, 그에 각국의 구조대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구조 작업을 조금씩 마무리하고 있었다.

<골든타임은 끝. 이제 할 것은 생존자 구조가 아닌 이재민들의 구호>

<네팔, 외국 구조팀 나가도 된다. 생존자 구조 작업 마무리할 것>

골든타임의 시간이 많이 지난 것도 있지만, 피해국인 네팔에서 더 이상의 구조는 필요 없다고 선을 긋는 바람에 서서히 구조를 마무리하는 방향으로.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생존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캠프로 전해졌다.

“생존자야! 박타푸르에서 생존자가 발견됐어!”

슬슬 마무리를 느껴 침울한 분위기가 감도는 와중에 전달된 희소식에, 각국의 구조대가 난리가 난 건 당연했다.

“뭐? 생존자?”

“미친! 어떤 녀석들이야!”

“좋았어! 내가 이걸 기다렸다고!”

오랜만에 구조 작업의 열기를 되살리는 희소식에 모두 일제히 함성을 내지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잠깐만…… 박타푸르?”

한 미국 소방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박타푸르…….”

“뭐? 박타푸르라고?”

다른 나라의 소방관들 역시 같은 말을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그러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어떤 놈이 장난친 거야?”

“제길, 이건 아니지.”

방금의 소식이 누군가의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눈앞에 보이는 현수막의 내용처럼,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이 박타푸르 지역을 담당하는 구호 캠프였다.

그런데 그런 박타푸르에서 생존자가 나왔다고?

그들에게는 웃기지도 않는 장난이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런 장난 하나도 재밌지 않아.”

“맞아. 장난할 게 따로 있지.”

“에이. 썩을 놈 같으니라고.”

누군가의 나쁜 장난에 걸려 들었다는 생각에 다들 거친 욕설을 내뱉었고, 그렇게 짜증을 내고는 고개를 돌렸다.

‘미국, 러시아, 일본 여기 다 있는데 뭔 소리야?’

박타푸르를 담당하는 구조대가 지금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세 나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합류한 한국 구조대도 있지만, 이곳에서 한국을 정식 구조대로 인정하는 소방관은 없었다.

“야, 빨리 씻고 밥이나 먹자.”

“그래. 정리하고 잠이나 자자. 내일 또 일찍 일어나려면 힘들어.”

아무도 한국을 언급하지 않고 걸음을 옮긴 것처럼, 이곳에서 한국 구조대의 역할은 인정하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빵! 빵!

숙소로 돌아가려는 구조대원들의 귀에 자동차의 거친 크락션 소리가 들렸다.

빵빵빵! 빵! 빵!

단순히 앞의 방해물을 치우라는 경고의 소리가 아닌 묘한 리듬의 크락션이 울렸고, 그에 구조대원들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저거 한국 아니야?”

“한국?”

캠프의 입구로 한국의 구조 버스가 들어오는 게 보여서였다.

“뭐야? 늦게까지 탐색하다 왔다고 티내는 거야?”

“에휴. 왜 저러냐. 정말.”

다들 휴식을 취할 시간인 걸 뻔히 알고 있음에도, 시끄럽게 등장하는 한국 구조대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피하진 않았다.

“야, 인사는 하자. 그래도 늦게까지 고생하다 왔는데.”

늦게까지 고생을 하다 온 한국 팀에게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 인사는 하자.”

“당연하지. 그건 해야지.”

탐색을 마치고 돌아오는 구조대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는 건, 같은 구조대로서 당연히 보여야 할 예의에 해당했으니까.

하지만 각국의 구조대는 차에서 내리는 한국 구조대의 모습에 아무 말을 못했다.

‘진흙?’

‘뭐야? 얘들. 흙탕물 속이라도 들어갔다 온 거야?’

말끔한 구조대원이 없었다.

처벅. 처벅.

차에서 내리는 대원들 모두가 흙탕물에서 목욕이라도 한 것처럼 온몸에 흙을 덕지덕지 묻힌 채 내리고 있었고, 그에 각국의 구조대는 방금 전 들었던 소식에 생각이 미쳤다.

“설마…….”

“한국이야? 한국이었어?”

믿기지는 않지만, 방금까지 질 나쁜 장난으로 생각하던 소식의 당사자가 눈앞의 한국인 거 같다고.

아니, 한국이 확실했다.

그들 역시 구조대였던 만큼, 진흙범벅인 채로 돌아온 한국 구조대의 모습이 뭘 뜻하는지는 잘 알았다.

한둘의 대원이 아닌 대부분의 대원이 저런 모습을 한 걸 보면 생존자를 발견해 대대적인 구조 작업이 이뤄졌다는 뜻이었고, 그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성하, 나와서 보여드려!”

한국의 구조대장이 버스 안으로 웃으며 고함을 질렀다.

“네, 나갑니다.”

그에 이름을 불린 이성하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왔고, 그 손에 들린 건 네팔의 국기였다.

“이렇게 펼치면 돼요?”

웃는 모습으로 자랑스럽게 네팔의 국기를 펼치는 모습이었으며, 그에 모여 있던 각국의 구조대가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

“네팔 국기야!”

“확실하네! 한국 구조대 축하한다!”

“대단하네. 최고다! 오늘 고생했다, 한국!”

구조대가 생존자를 구할 때마다 네팔에서 감사의 의미로 건네는 국기를 확인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그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왜? 이제는 좀 면이 서냐?]

‘네, 좋네요. 다들 진짜 동료로 인정하는 분위기예요.’

자신들이 처음으로 다른 나라 구조대에게 동료로서 인정받는 분위기에 흐뭇한 감정이 들었으니까.

물론 전부 축하해 주는 건 아니었다.

이번 한국 구조대의 생존자 구출 소식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운도 좋네.”

“그러게요. 의지도 없는 애들이 운만 따르네요.”

가까이서 한국 구조대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과 다르게 멀리서 비웃음을 던지는 이들이 있었고, 그에 웃음을 짓던 이성하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는 아니네요.’

[그러게. 쟤들은 여전히 불만인가 보다.]

지난번에 식수를 보급 받으며 얼굴을 붉혔던 몇몇 미국 소방관이 여전히 비웃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물론 신경 쓸 사안은 아니었다.

‘뭐, 상관없어요. 저렇게까지 싫어하면 저도 가까이 갈 마음은 없어요. 지들이 뭔데 그러는 거야? 쳇.’

어차피 한솥밥을 먹는 동료는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같은 캠프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수색하는 구역은 다르기에, 그냥 무시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생각은 일부분만 보고 판단한 짧은 생각이었다.

구역은 달라도 같은 캠프를 쓰다 보니, 수없이 마주치는 게 각국의 구조대였다.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출발해 매일 인사를 나누는 건 물론, 식수 보급과 같은 상황에서 각국의 구조대가 마주치는 건 굉장히 흔한 일이었고, 그 때문인지 결국 사달이 벌어지고 말았다.

“I said last time. korea is the last.(지난번에도 말했지. 한국은 마지막이라고.)”

“뭐라고?”

“Get out of the way.(비켜.)”

“이 새끼가 우리가 먼저 왔는데 뭐하는 거야?”

“Get out of the way!(비켜!)”

“밀어? 이 새끼가 진짜!”

또다시 이루어진 미국 구조대원들의 시비에, 한국의 구조대원들이 흥분해 다시 멱살을 잡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성하도 같이 멱살을 잡았다.

“아악.”

콰당탕!

“이 새끼가 경호 형한테 뭐하는 거야!”

터억.

“Fuck!(썅!)”

주먹은 안 휘둘렀지만 거칠게 선배 하나를 밀어 넘어트리는 미국 구조대원의 모습에, 이성하 역시 그 멱살을 잡아 그대로 벽에 밀어붙였으니까.

그 때문에 한국과 미국 구조대는 서로를 보며 이를 갈았다.

“Bastards without honor.(명예 없는 새끼들.)”

“무슨 말인지 몰라. 새끼야!”

두 번이나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운 덕분인지 이제는 얼굴만 봐도 서로 욕설을 주고받았고, 그에 구조대장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오늘부터 우리는 7시 반에 나간다.”

“30분 늦게요?”

“그래. 인마. 미국 구조대장이랑 협상했어. 우리가 좀 늦게 나가기로.”

미국 구조대와의 싸움을 막기 위해, 한국 구조대의 탐색 출발을 뒤로 늦추기로.

그 때문에 이성하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쳇, 이러면 우리가 잘못한 거 같잖아.’

잘못을 한 건 미국인데, 괜히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았다.

“야, 미국 애들 나간다.”

“쳐다보지 마라. 대장님이 쟤들이랑 눈도 마주치지 말란 말 못 들었어?”

“압니다. 그냥 짜증 나서 그렇죠.”

“나도 그래. 그냥 참는 거야.”

미국이 나가는 모습에 시선을 돌리고 불만을 토하는 선배들처럼, 왠지 모르게 한국의 구조대가 패배를 인정하고 꼬리를 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렉스가 미국 출신의 소방관이라는 걸 떠올리고는 짜증을 토했다.

‘미국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남을 무시해요?’

[뭐?]

‘아니, 그렇잖아요. 우리도 똑같이 구조하러 온 건데. 왜 이렇게 무시하냐고요. 우리도 같은 소방관인데.’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가 피식 웃었다.

[어쩔 수 없지 않냐?]

‘뭐라고요?’

[쟤들은 너희 사정 모르잖아. 한국 구조대가 진짜 구조를 하러 온 건지, 아니면 진짜 생색만 내려다가 뒤늦게 구조대를 파견한지 말이야.]

한국의 상황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말이었다.

생존자를 구하기는 했지만, 첫 단추를 잘못 낀 한국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라는 말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쳇, 할 말이 없네.’

자신 역시 양유철의 설명을 듣고 창피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뒤늦게 도착한 현장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움직였다.

“선배님, 이쪽 한번만 더 살펴보면 안 되겠습니까?”

“거기 신호 없지 않았어?”

“아까는 없었는데 지금 보니까 뭔가 미세하게 잡히는 거 같습니다.”

“그래? 알았어. 금방 갈게.”

선배들이 확인한 곳도 빠짐없이 체크하며 이상한 게 느껴지면 바로 보고했고, 그렇게 열심히 확인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오늘도 생존자 한 명 더 발견하고 만다.’

오늘도 생존자를 발견해 자신들을 무시하는 미국 구조대에 본때를 보여 줄 마음을 먹은 것이다.

다른 대원들도 그런 이성하의 생각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좋아! 속도 좀 올려 볼까!”

“야, 우리도 속도 올려!”

“이 새끼들아 빨리 하는 것만이 아니고, 꼼꼼히 확인해!”

“알겠습니다!”

다들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웃음을 지으며 탐색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뭐, 뭐야?”

가슴에서 익숙한 욱신거림이 느껴졌다.

드드드드드드.

그와 동시에 땅바닥에서 요란한 진동이 느껴졌고, 그 충격에 조금이나마 형태를 무시하던 건물들이 일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파가가각.

콰쾅!

“제길 여진이야!”

“모두 고개 숙여!”

“다들 물러나!”

초창기 발생한 지진의 정도는 아니지만, 무섭게 대지를 뒤흔드는 지진이 발생해 다시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네팔 시내는 혼란에 휩싸였다.

“भाग्नु!(도망쳐!)”

“सबै जोगिन!(모두 피해!)”

“आमा!!(엄마!)”

또다시 발생한 지진에 사람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피해가 그리 크지 않다는 거였다.

“다들 괜찮아?”

“괜찮습니다!”

“여기도 괜찮습니다!”

진동에 급히 몸을 숙였던 구조대원들이 모두 멀쩡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고.

“मेरो पाखुरा!!(내 팔!)”

“यो ठीक छ?(괜찮아?)”

“मलाई समाउ मलाई थोरै .(나 좀 잡아줘. 나 좀.)”

근처에 있던 네팔 주민들 역시 떨어지는 파편에 다치긴 했지만, 중상자는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네. 지진 때문에 다들 밖에 있어서.]

‘그러게요. 온전한 건물이 없던 게 다행이에요.’

애초부터 지진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밖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마, 맙소사…….”

구조대장이 멍한 표정으로 한쪽을 바라보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고, 그에 이성하가 욕설을 내뱉었다.

“제길.”

유일하게 남아 있던 온전한 건물에 금이 간 모습이 보여서였다.

기기기긱. 퍼걱.

방금의 지진으로 건물에 균열이 일어났는지 건물의 한쪽 외벽이 그대로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고, 무엇보다 그 건물을 구조대는 병원이라고 불렀다.

“벼, 병원이!”

유일하게 온전한 형태를 유지해, 의료진들이 병원으로 사용하던 학교 건물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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