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88화>
88화. 국제구조대 (5)
* * *
양유철의 설명을 듣고 제대로 잠을 청한 구조대원은 없었다.
“너 좀 잤어?”
“잤겠냐? 짜증 나서 잠이 안 오더라.”
“저도요. 왜 우리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각국의 구조대원들이 모두 자신들을 경원시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상황.
“너무 신경 쓰지 마. 너희들이 생각하는 정도는 아니야.”
“그래. 병운이 말이 맞아. 인원수는 좀 적었어도 너희들이 오기 전까지 구조에는 아무 문제없었어. 그러니까 다들 힘 좀 내자. 응?”
그런 대원들의 모습에 1차로 파견됐던 선임 대원들이 어떻게든 용기를 불어넣으려 했지만, 그 행동은 헛수고였다.
“야, 미국 애들도 가나 본데?”
“일본 애들도 지금 나가네요.”
전날에 이어 탐색을 나가는데 미국과 일본의 구조대도 준비를 서두르는 게 보여서였다.
“Good morning.(좋은 아침.)”
“今日もファイティング(오늘도 파이팅.)”
그들 역시 한국의 구조대를 봤는지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었고.
“Fighting.(파이팅입니다.)”
“Thank you.(감사합니다.)”
그에 구조대원들 또한 감사하다며 웃으며 손을 들었지만, 속으로는 내심 치밀어 오르는 자괴감에 얼굴이 붉어졌다.
“인원수가 확실히 차이 나네.”
“장비도요. 거의 맨몸으로 온 우리와 다르게 구조차도 있어요. 미국은 아예 헬기까지 가지고 왔고요.”
정말 어제 양유철이 말처럼, 양과 질적인 부분 모두 타국보다 한국 구조대의 준비가 떨어지는 사실에 깊게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 때문에 탐색을 나가는 구조대의 분위기가 최악으로 이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 짜증 난다.”
“이게 뭐야, 이게. 우리가 떨거지 취급받으려고 여기 온 거야?”
혹시나 하던 내용이 사실로 판명됨에 모두 일할 의지를 잃어버렸으니까.
“자자, 쓸데없는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오늘 일은 끝내자. 오늘 정한 구역은 끝내야 될 거 아냐?”
“그래. 일단 일부터 끝내자. 할 일은 제대로 하자고.”
그 모습에 선임 대원들이 나서 대원들을 독려해 봤지만, 그걸로 대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에는 부족했다.
“선배님들 말이 맞아. 일단 일은 하자.”
“그래. 일하자. 일.”
모두 일을 하자고는 하지만 열의가 떨어져서인지 다들 일에 속도가 붙지 않았고, 그 때문에 구조대는 전날과 달리 예상한 구역마저 수색하지 못한 채 하루를 마감하고 말았다.
“오늘 어디까지 한 거야?”
“8구역하고 반 정도입니다. 9구역은 초입만 훑었다고 봐야 되니, 그냥 8구역까지 수색했다고 봐야겠네요.”
“끙…….”
기본적으로 하루에 두 개의 구역을 수색하는 걸 목표로 삼은 상황에서, 그 반도 이루지 못하고 수색을 마무리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원들을 질책하는 선임 대원은 없었다.
“오늘은 그냥 애들 일찍 쉬게 해.”
“회의는 안 하고 말입니까?”
“이런 분위기에서 무슨 회의를 하나? 내일 이야기 하자고.”
가장 열의를 가지고 일을 진행해야 할 구조대장 역시 기운을 잃고 하루를 정리함에.
“그래. 쉬게 하자. 내일은 다르겠지.”
“그래요. 오늘은 좀 쉬시죠. 선배님들도 오늘 다 피곤하시잖아요.”
대원들을 책임지는 선임 대원들 역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루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떨어진 사기가 하루를 쉰다고 해서 올라갈 일은 없었다.
“하…… 내일도 나가야 되나.”
“그러게요. 우리 여기 왜 온 겁니까.”
당연히 그런 분위기에 대원들은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 때문에 이튿날까지도 구조대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오늘 어디까지 한 거지?”
“10구역 중반입니다. 오늘도 겨우 9구역 마무리하고 넘어왔어요.”
전날과 마찬가지로 다운된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 또다시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하루를 마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구조대장은 이번에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식사만 하고 해산해.”
“오늘도 그냥 정리합니까?”
“그럼 뭘 어떻게 해? 정리해. 일단 내일은 좀 더 힘내 보도록 하자고.”
그 역시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지 씁쓸한 표정으로 의견을 묻는 대원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또다시 대원들의 해산을 명령했고, 그에 양유철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괜히 말한 건가?’
구조대장의 의견처럼 끝까지 비밀로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쳇,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떨어질지 몰랐는데.’
짐작을 못한 건 아니지만 완전히 자부심을 잃고 기운이 빠진 구조대의 모습에, 괜히 진실을 알렸다는 후회감이 들었으니까.
그때였다.
“이것도 챙겨야 되는 거야?”
“네, 오늘 보니까. 선배들이 로프 고정용으로 많이 쓰이더라고요. 각 팀마다 두 개씩 넣어 주면 될 거 같아요.”
아무도 없어야 할 장비 창고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성하랑 최영인?’
그에 창고 쪽으로 다가가 보니 이번에 추천으로 참여한 막내 둘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에,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깨닫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1팀은 끝.”
“2팀 것도 다 챙겼어요.”
각 팀이 탐색에 사용할 장비 박스를 정비하는 모습이었다.
“그쪽에 남은 수건 있어?”
“네, 여기요.”
“오케이, 쌩큐.”
장비부터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생필품까지 정성들여 정비하는 모습이었으며, 그에 양유철은 무심코 지나갔던 아침 상황을 떠올렸다.
“선배님. 혹시 장비 정리하셨어요?”
“장비? 그거 네가 오늘 일어나서 한다며.”
“네. 그래서 하려는데 점검까지 다 돼 있네요. 다른 팀 애들이 하는 김에 같이 한 건가?”
장비를 점검하는데 이미 다 돼 있어서 할 일이 없다고 머리를 긁적이던 후배의 모습을.
그리고 그 범인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성하야. 라이프 디텍터가 뭐였지?”
“그거 전파탐색장비요.”
“오케이, 찾았다. 쌩큐.”
둘 다 장비의 이름을 잘 모르다 보니, 품목서에 적힌 이름들을 서로 물어가며 장비를 챙기는 모습이었고, 그에 양유철은 멋쩍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들 봐라.’
모든 대원들이 실망감에 지쳐 풀이 죽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가장 막내인 녀석들이 알아서 선배들이 할 일을 대신하는 모습에 기특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양유철은 두 사람을 칭찬해 줄 마음을 먹었다.
‘내일 아침 조례 때 이야기해 볼까.’
그것도 모든 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두 사람을 칭찬해 줄 마음을 먹었고, 덕분에 이튿날 구조대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이 녀석들이요?”
“그래. 풀 죽은 선배들을 대신해서 매일 밤 둘이서 장비 점검을 하더라. 아침에는 가장 먼저 일어나서 물을 떠오고.”
“이놈의 새끼들. 누가 그렇게 기특한 짓 하래?”
“아침마다 장비 챙겨져 있길래 누군가 했는데 니들이었구나. 고맙다야.”
양유철이 기특해 한 것처럼, 다른 구조대원들 역시 그간 막내들이 장비를 챙겨 왔다는 말에 얼굴에 웃음들을 지었다.
“이거 원 막내들이 이러면 내가 너무 창피한데.”
“아시긴 아십니까?”
“뭐야?”
“대장님이 중심을 못 잡아서 이틀 날렸습니다. 이틀.”
“끄응.”
그 모습에 구조대장 역시 선임 대원들이 장난을 걸 정도로 기운을 되찾았고, 덕분에 오늘 벌어진 탐색 분위기는 전과 달랐다.
“그동안 많이 쉬었는데 오늘도 쉴 사람 있나?”
“없습니다! 그동안 밀린 거 오늘 다 하시죠!”
“정말이야?”
“정말입니다! 밤새워도 좋습니다!”
“좋아! 팀 별로 흩어진다. 실시!”
“악!”
아침부터 웃으며 하루를 시작한 덕분인지, 그 분위기가 그대로 현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완전히 첫날 때로 되돌아 온 건 아니었다.
“오늘은 어디까지 했지?”
“목표는 못 채웠습니다. 예상 지점까지 골목 두 개가 남았어요.”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오늘 역시 예상한 구역을 모두 수색하지는 못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보고에 오늘은 구조대장이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럼 내일은 확실하게 목표 완료해 보자고. 내일은 가능할 거 같거든.”
선임 대원들 뒤로 보이는 장비 창고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었다.
“야, 휘발유 어디 있어? 이거 미리 채워 놨어야지.”
“창식아. 톱날 좀 잡아라.”
“왠지 어디 있냐. 왠지.”
그동안은 대원들이 일찍 휴식을 취해 조용하던 장비창고가 북적이는 게 보였고, 선임 대원들 역시 그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내일 아예 목표를 크게 잡을까 봐요.”
평소와 같이 완전히 활기를 되찾은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기에.
“좋아. 그렇게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짜겠습니다!”
충분히 가능하다며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임 대원들의 믿음에 구조대는 충실히 부응했다.
“대장님, 오늘은 예상 구역 모두 탐색했습니다!”
“그래?”
“네. 거기다 첫날처럼 오늘도 초과 달성입니다. 이 속도로 가면 3일이면 저희 구역은 모두 끝낼 수 있을 거 같아요.”
예정한 구역은 물론 첫날과 마찬가지로 더 많은 구역을 수색해, 구조대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으르르! 왈! 왈! 왈왈왈!”
탐색을 시작하고 4일째, 구조견 한 마리가 무얼 발견했는지 요란한 반응을 보였다.
“뭐야? 왜 이래? 발칸 진정해.”
“왈! 왈! 으르르르!”
담당하는 핸들러 대원이 악착같이 말려도 구조견이 계속해 반응을 보였고, 그에 구조대는 열띤 반응으로 길을 뚫기 시작했다.
“생존자가 있는 거 같습니다!”
“지주 작업부터 먼저 해!”
“드릴 가져와! 드릴!”
“목재 멀었어! 빨리 받쳐!”
처음으로 무너진 건물 안에서 생존자를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에, 다들 전력을 다해 건물의 잔해물을 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대장님. 물입니다!”
“뭐?”
“물탱크가 있는 건물이었던 거 같습니다. 주변 흙들이 완전히 검고 밑으로 물이 차 있어요!”
“제길, 일단 물러나! 자칫하면 무너질 수 있어!”
토굴을 파는 도중에 물이 고여 있는 게 발견돼, 일시적으로 작업이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하지만 그때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이럴 때 받치려고 가져온 거 아닙니까?”
언제 차에 다녀왔는지, 몇 개의 상판과 긴 목재를 들고 나타난 이성하였다.
“으라차.”
첨벙, 첨벙.
물이 차올라 흙탕물이 된 지반은 상관없다는 듯 거침없이 상판만 들고 토굴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이성하였고, 그렇게 진입해서는 상판을 바닥과 머리 위에 고정시키며 줄자로 그 사이의 길이를 쟀다.
“154입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선배들을 향해 기둥이 될 목재의 길이를 알려 주는 모습이었으며, 그에 다른 대원들도 단번에 집중하는 표정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드릴 가져와!”
“절단기도!”
“빨리 기둥 만들어! 뭐하고 있어!”
그들 중 가장 어린 후배가 먼저 나서 길을 열기에.
카카카카캉!
“좋아! 철근 다 잘랐습니다.”
“오케이. 들어가!”
“들어갑니다!”
그들 역시 혹시 모를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중 단연 빛나는 건 이성하였다.
“선배님! 이쪽 고정하겠습니다!”
캉! 캉! 캉!
그동안 옆에서 조금이라도 배우려고 노력한 게 헛된 건 아니었는지, 알아서 자신이 할 일을 찾아 움직이는 모습이었으니까.
그 덕분에 구조대의 작업엔 속도가 붙었다.
“기둥 더 세워야 할 거 같습니다!”
“오케이, 흙부터 퍼내!”
“명식이는 카메라로 내부 상황 체크해!”
“하고 있습니다!”
다들 한마음이 되어 움직인 덕분인지 착실하게 건물 내부로 향하는 길을 뚫었고, 그렇게 잠시 후 한 대원의 밝은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흘러나왔다.
- 대장님! 생존자 있습니다! 아직 살아 있어요!
가장 안쪽으로 진입한 대원의 목소리였다.
“조심조심!”
“천천히 꺼내요. 천천히.”
그 목소리가 거짓이 아니라는 듯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누군가를 끌어내는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에 지켜보던 모두가 고함을 질렀다.
“생존자야!”
“정말이야. 정말 있었어!”
혹시나 하던 생존자가 정말로 남아 있던 것에.
“हे भगवान.(세상에.)”
“बाँचे! बाँचे!(살았어! 살았다고!)”
구조대와 일반 시민 가릴 거 없이 모두가 기쁨 고함을 지른 것이다.
하지만 기뻐하기엔 아직 일렀다.
“병원부터!”
“빨리 병원으로 먼저 이송해!”
숨을 쉬고는 있지만,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위독해 보이는 요구조자의 모습에 다들 다급한 표정으로 환자를 이송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구조대의 얼굴에는 웃음이 어려 있었다.
‘살렸어.’
‘우리가 살렸어.’
만약 조금만 늦었어도 목숨을 잃을 뻔한 사람을 살려냈다는 기쁨에 서로 웃는 눈빛을 주고받았고, 그런 이들 중에는 이성하도 있었다.
‘휴.’
사람을 살렸기에.
‘다행이다.’
조금이라도 생명을 구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생각에 얼굴에선 행복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