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87화 (87/235)

<강철 소방대 87화>

87화. 국제구조대 (4)

이성하와 최영인이 그 말에 당황한 건 당연했다.

“지금 우리보고 가져가지 말란 거죠?”

“그러게. 이 새끼 뭐야?”

갑자기 미국 국적의 소방관이 나타나 말을 건 것도 그랬지만, 난데없이 물을 가져가지 말라는 말에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하지만 장난은 아니었다.

“Hello. I‘m…….(안녕, 나는…….)”

“Don’t touch me.(건들지 마.)”

웃으며 말을 거는 최영인의 모습에 미국 소방관이 같이 웃는 모습으로 선을 그었다.

“American firefighter. we take water.(미국 소방관이야. 물 좀 가져갈게.)”

“Okay.(그래.)”

그러고는 네팔 쪽 직원에게 살짝 윙크하며 같이 온 다른 소방관들과 함께 물을 챙겨 들었고, 그렇게 물을 챙겨 가며 이성하와 최영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Rescue team comes first. The helper is later.(구조대가 우선이야. 도우미는 나중이고.)”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능글맞은 눈빛으로.

물론 그 의도가 어떤 의도로 하는 말인지 짐작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That’s an accurate expression?(정확한 표현인데?)”

“Really?(그래?)”

“Yeah, Korean helper is best!(그럼~ 한국 도우미는 최고지!)”

“Haha.(하하.)”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같이 있던 소방관들이 크게 웃으며 이성하와 최영인을 바라봐서였고, 무엇보다 이성하는 그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얘들, 니들 비웃고 있다.]

‘비웃어요?’

[어. 한국 소방관은 구조대가 아니래. 그냥 도우미라고.]

‘이런 미친놈들이.’

바로 그 말을 통역해 주는 렉스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보다 먼저 나서는 이가 있었다.

“Hey, Are you crazy?(야, 너 미쳤냐?)”

미국 소방관들의 웃음에 바로 영어로 욕을 꺼낸 최영인이었다.

“What?(뭐?)”

“Crazy. you crazy.(너 미쳤다고.)”

인상을 찌푸리는 미국 소방관들의 반응에도 웃는 얼굴로 다시 말하는 최영인의 모습에, 네팔 본부는 단번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Fucking asshole.(이 새끼가.)”

“퍽은 네가 퍽이다! 새끼야!”

시비를 건 소방관과 최영인이 동시에 멱살을 잡으며 서로에게 욕을 퍼부어댔던 것이다.

“Hey, dale. calm down. calm down, plz!(이봐, 데일. 진정해. 진정하라고!)”

“선배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선배님!”

그 모습에 다른 미국 소방관들과 이성하가 달려들어 열심히 말려 봤지만, 두 사람의 흥분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Dare to helper topic.(감히 도우미 주제에.)”

“헬퍼는 무슨. 퍽큐다. 이 새끼야!”

주먹만 안 들었지 흥분한 얼굴로 서로를 향해 욕을 던지는 소란에 결국 각국의 구조대가 달려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Америка и Корея.(미국과 한국이네.)”

“どうしたの?(무슨 일이야?)”

“Hey. arrête ça.(이봐, 그만들 하라고.)”

네팔의 본부가 캠프에서도 중앙에 위치하다 보니, 근처에 있는 모든 구조대에 두 사람의 싸움이 알려진 것이다.

오히려 그 덕분에 싸움은 순식간에 종결됐다.

“Dale!(데일!)”

“최영인 소방관!”

소식을 듣고 달려온 미국과 한국 구조대장의 고함 때문이었다.

“Damn it.(젠장.)”

“쳇.”

그런 상사들의 고함에 두 사람 모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느새 잡은 멱살을 쥔 손을 풀었고, 다행스럽게도 상황은 거기서 마무리됐다.

“Sorry. Mr, Kim. Looks like our crew made a mistake.(미안합니다. 김 대장. 우리 대원이 실수를 한 거 같습니다.)”

“No. Our crew was impatient. sorry, Morse.(아닙니다. 우리 대원이 성급했어요. 죄송합니다. 모스.)”

서로 안면이 있었는지, 양측의 구조대장이 머리를 숙이며 이번 싸움을 화해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물론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아니, 미국은 모르겠지만 한국만은 확실히 좋지 못했다.

“이건 우리 잘못 아니지 않아?”

“아니죠. 영인이 말 들어 보니까 저 같아도 못 참았을 거예요. 우리보고 헬퍼라고 그랬대요.”

“뭐? 헬퍼? 도우미?”

“네. 그 새끼들이 도우미는 항상 나중이라면서 우리보고 헬퍼라고 했답니다. 그걸 누가 참아요?”

돌아오며 상황을 정확히 알게 된 대원들이 전혀 우리 쪽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을 알게 되자, 몇몇 대원이 식사시간에 정식으로 안건으로 꺼낼 정도였다.

“대장님. 방금 일 미국에 정식으로 항의하시죠.”

“맞습니다. 아까는 정확히 몰라서 그냥 넘어갔지만, 이건 따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헬퍼라뇨. 우리가 네팔도 아니고 미국에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합니까? 아, 다시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썅.”

서로 같은 입장으로 나라를 대표해 이재민들을 구조하러 왔음에도, 미국에서 그런 자신들을 심부름꾼으로 취급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성하 역시 그런 선배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라를 대표해서 왔는데 그냥 넘어갈 순 없어.’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어, 최영인을 말리긴 했지만, 누구보다 그 마음에 공감했던 게 이성하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대원들의 불만에 구조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대장님!”

“밥이나 먹어. 우리가 여기 싸우러 왔어? 고작 몇 마디에 다들 흥분해서 난리야?”

불만을 토로하는 대원들을 향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일갈했고, 그에 겨우 구조대의 첫 식사가 시작됐다.

‘밥 먹어.’

‘그만 해.’

구조대장의 언짢은 모습에 분위기가 심각해질 걸 고려한 선임 대원들이 열심히 손짓으로 대원들의 불만을 누그러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로 누그러질 불만은 아니었다.

‘제길, 우리가 왜.’

‘같은 입장 아니야? 왜 우리가 눈치를 봐야 해?’

상사인 대장의 말이기에 참기는 하지만,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처사에 다들 억울함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방관이 한 명 있었다.

“대장님, 그냥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선발대로 왔던 대원 중 한 명인 양유철이었다.

“그걸 어떻게 이야기해?”

“그래도 이야기해야죠. 안 그럼 정리가 안 될 거 같은데.”

머리를 긁적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양유철의 모습에 구조대장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 네가 이야기해라.”

“제가 이야기합니까?”

“그래. 난 쪽팔려서 도저히 못하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장으로서 대원들에게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같이 있던 선임 대원 몇 명도 그런 구조대장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철아. 네가 해.”

“선배님. 저도 들어가 있겠습니다.”

“저도요.”

지금의 상황이 짜증이 나서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이야기할게요.”

양유철 또한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자리가 정리된 모습에 입을 열었다.

“오늘 일을 우야무야 넘어간 것에 기분이 불쾌했을 자네들의 마음은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소방관들을 대표해 왔는데 당연히 무시 받으면 기분 상하겠지. 그런데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자네들보다 기분이 더 상하는 건 우리거든. 나도 그렇지만 특히 구조대장님의 마음은 더 그렇고 말이야.”

씁쓸함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하……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되나…….”

말은 해야겠는데 쉽게 떨어지지 않는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양유철은 머리를 긁적이던 손을 내렸다.

“혹시 여기서 처음으로 파견됐던 1차 구조팀의 인원이 변동된 걸 아는 사람 있나?”

그 말에 한 소방관이 손을 들었다.

“제가 압니다.”

“처음엔 몇 명이었지?”

“40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 40명의 1차 파견단을 조직했지만, 미리 선발대 개념으로 10명만 출발해서 현지 상황을 보고 나머지는 2차로 출발하기로 했다고요.”

양유철이 정답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원래 1차 파견대는 40명의 구조대원으로 조직됐다. 하지만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확실히 준비하는 게 낫겠다는 위쪽의 판단에 우선 나를 포함해 열 명의 대원만 먼저 파견됐지. 하지만 그게 너무 큰 실책이었다.”

“실책이요?”

“그래. 우리나라가 10명을 파견했을 때 다른 나라에서는 몇 명을 파견했는지 아는 사람 있나?”

이번에는 아무도 손을 드는 소방관이 없었다.

다들 그 내용은 모르는지 설명하는 양유철의 입만 바라봤고, 그 모습에 양유철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창피하지만 대부분이 50명 이상의 대원들을 파견했다.”

“50명이요?”

“50명이 아니라 그 이상. 가장 적은 대원들을 파견한 나라가 50명이거든.”

말을 하면서도 창피했는지, 빨개진 얼굴로 하는 말이었다.

“미국이 총 114명, 러시아가 90명. 일본이 70명. 중국이 62명이다. 그 외 다른 나라들도 50명 이상의 구조대를 파견했고, 안타깝게도 한국은 10명이다. 아니, 같이 온 의사까지 포함하면 11명이네.”

각국의 1차 구조대 숫자를 차례대로 나열하고는 두 눈을 질끈 감는 모습이었고, 그에 모든 소방관들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만 나눠서 왔다고요?”

“다른 곳은 한 번에 온 겁니까?”

왜 미국 소방관들이 자신들을 향해 헬퍼라고 말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음에.

“이런 X발.”

“도대체 누굽니까? 누가 그따위 멍청한 판단을 한 겁니까?”

상황을 듣고 나니 그 말을 반박할 수 없는 창피한 현실에 너무나 큰 자괴감이 느껴진 것이다.

직접 그 상황을 겪은 이성하로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헬퍼였나…….’

미국 소방관의 기분이 이제야 이해가 가서였다.

무려 백이 넘어가는 인원을 파견해 힘겹게 구조를 하는 상황에서, 같은 선진국이라고 하는 한국이 고작 열 명을 파견해 옆에서 깨작거리는 모습을 봤다면 자신도 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애들이 그런 눈빛으로 쳐다본 건가?]

렉스가 그 설명에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말했다.

‘네?’

[아까 보니까 다른 나라 애들이 너희를 보고 비웃는 거 같더라고. 왜 그런가 했는데 지금 들어 보니까 이해가 가네. 한국의 1차 파견은 원래 40명이야. 그런데 그걸 10명으로 줄였는데 2차로 파견한 인원도 25명밖에 안 돼. 그럼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얼마나 지진을 우습게봤으면 가뜩이나 적은 인원을 줄인 걸까라고. 아니면 이렇게도 생각하겠네. 한국은 구조를 하러 온 게 아니고 티만 내려고 왔다.]

자신이 봤던 다른 구조대의 반응을 설명하며 그들이 한국을 생각하는 분위기를 말했고, 이성하는 그걸 아니라 부정할 수 없었다.

‘제길…….’

자신 역시 반대의 입장에서 바라봤다면 렉스처럼 생각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랬기에 간절한 표정으로 양유철을 바라봤다.

“그럼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뭐?”

“다른 나라에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들도 우리를 헬퍼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지금 렉스가 말한 상황만큼은 아니길 바라며.

하지만 양유철은 여전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그건 아니지 않을까?”

입으로는 아니라 말하면서도 정확히 확신은 못 내리는 모습이었고, 그에 구조대의 분위기는 처참하게 가라앉았다.

“헬퍼…….”

미국의 소방관이 자신들을 지칭했던 말이 묵직하게 가슴을 울리는 것에.

“…….”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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