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86화 (86/235)

<강철 소방대 86화>

86화. 국제구조대 (3)

네팔은 대한민국과 같은 아시아 대륙에 위치했지만, 지리상으로는 끝과 끝에 위치한 나라였다.

대한민국이 아시아 동쪽 끝에 있다면 네팔은 서남쪽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해, 순수 이동에만 15시간 정도가 걸리는 나라.

그 때문에 국제구조대는 발대식을 최대한 짧게 마치고 그대로 비행기에 올랐다.

“모두 미리 눈 좀 붙여 두도록 하세요. 도착하면 바로 움직여야 할 겁니다.”

비행기의 출발 시간은 정해졌지만 도착하자마자 바로 구조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함이었고, 그 생각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어서 오십쇼. 죄송하지만 짐 챙겨서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바로요? 혹시 식사할 시간은 없는 겁니까?”

“네, 죄송하지만 식사는 가시는 길에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일손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중을 나온 1차 파견팀의 소방관이 바로 구호대의 출발을 서두른 것이다.

그 때문에 국제구조대는 몰라도 일반인에 속하는 의료진 측에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식사할 시간도 없어?”

“교수님, 조금만 시간 달라고 해서 밥 먹고 가면 안 됩니까? 저희 애들 출발하고 나서 먹은 거라곤 비행기에서 먹은 게 전부잖아요.”

상황이 급한 건 알지만, 오랜 시간 동안 배를 채우지 못해 도착하면 간단하게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바로 사라졌다.

“이게 무슨…….”

버스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주변 풍경이 공항을 나서자마자 급변했다.

덜커덩!

“꽉 잡으세요. 도로가 다 갈라져서 제대로 된 길이 없습니다.”

마중을 나온 대원의 말처럼 갈라진 도로 탓에, 버스가 수시로 덜컹거리고, 이내 창문 너머로 처참하게 파괴된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맙소사…….”

“대장님, 제대로 형체를 유지한 건물이 없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야…… 죄다 무너졌어…….”

의료진만이 아닌, 각종 재난으로 단련된 국제구조대 대원들까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볼 정도로 도시 전체가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던 것이다.

이성하 역시 그 모습에 충격을 먹은 건 마찬가지였다.

[지진 일어났을 때보다 더 무너진 거 아냐?]

‘네. 분명히 영상으로 봤을 땐 괜찮은 건물도 있던 거 같았는데 아니네요. 전부 무너졌어요.’

렉스의 말처럼 출발 전 미리 확인한 영상보다 네팔의 상황은 더욱 처참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공항의 초입 부를 벗어나자마자 도로 양쪽으로 수많은 이재민들이 보였다.

“help us.(저희를 도와주세요.)”

“food please, hungry.(음식 주세요. 배고파요.)”

집이 무너져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그대로 거리로 내몰려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썩어 들어갔다.

‘애기예요.’

[그래. 내 눈에도 보여.]

‘어떻게 이러죠? 네팔에서는 도대체 뭘 하길래 이렇게 사람들을 방치하는 거예요.’

아무리 지진이 직격해 재난에 접어든 나라라 할지라도, 한국에서라면 꿈에도 꿀 수 없는 모습이 연이어 계속되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도움을 줄 순 없었다.

“Help! help!(도와줘요!)”

딱 봐도 며칠은 굶어 보이는 아이가 버스로 다가와 손을 흔드는 모습에도 도움을 줄 순 없었고.

“Korea, korea!(한국이다!)”

“Welcome, korea!(어서 와요!)”

“Help, korea! help!(도와줘! 나도 도와줘!)”

잠시 후, 도착한 구호 캠프에서 손을 내미는 주민들의 모습에도 도움을 줄 순 없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역 주민들에게 절대 먹을 것과 구호품을 함부로 전달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입니까?”

“그래. 이곳은 당장이라도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준전시 상황이야. 자네들이 건네는 음료수 하나, 빵 하나에 강도와 폭행 사고가 일어난다. 절대 섣불리 움직이지 마라.”

처음 보게 된 구조대장이 인사보다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를 먼저 할 정도로, 재난 상황에서는 감정에 우선한 구호 활동이 절대로 금지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직 경험이 없는 이성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5년 전 아이티 때 일 때문에 그런가 봐요.’

[그럴 만하지. 영상 보니까 다들 눈 뒤집혀서 텐트 뺏어가더만.]

5년 전 벌어졌던 아이티 지진에서 한 봉사 단체가 음식을 나눠 주는 바람에 폭동에 휘말릴 뻔한 건, 구호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퍼졌을 정도로 유명한 일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다른 도움으로 그들을 위로할 생각이었다.

“대장님, 생존자 탐색은 언제부터 시작합니까?”

구조대가 이곳에 파견된 가장 큰 이유인 생존자 탐색이었다.

“왜? 막 도착했는데 쉬지 않아도 되겠어?”

“아닙니다. 바로 할 수 있습니다!”

피식 웃으며 농담조로 되묻는 구조대장의 말에 당연하다며 의지를 보였고, 그에 이번에 도착한 15명의 구조대원과 선발대로 먼저 와 있던 10명의 구조대원은 자신들이 맡은 박타푸르 지역의 도시 탐색구조에 들어갔다.

“그쪽 어때?”

“루피 반응 없습니다!”

“준범이 쪽은?”

“마찬가지입니다! 발칸 조용해요!”

“왈! 왈!”

이번에 2차 파견팀이 오면서 데려온 두 마리의 구조견을 이용한 생존자 탐색을.

물론 이번에 처음 참가한 지역 구조대원들이 하는 건 단순히 짐을 나르는 일이었다.

“이봐, 너. 대장님께 가서 이쪽 구역은 없다고 말씀드려.”

“네!”

“박근석 반장. 카메라 좀 잡아 봐.”

“네!”

기본적으로 특수구조대에서만 진행되는 게 도시 탐색구조 작업인 만큼, 경험이 없는 지역대원들로서는 옆에서 짐을 드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대원들 중에 유난히 눈에 빛을 내는 구조대원이 있었다.

“이성하, 그쪽에 로프 좀 고정해 봐!”

“알겠습니다!”

어떤 명령에도 힘차게 대답하며 뜀박질을 하는 이성하였다.

“선배님, 이거 일부러 삼각으로 자르는 겁니까?”

“뭐?”

“다른 선배들도 다 삼각으로 자르기에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무너진 건물 탐색을 위해 콘크리트를 절단하는 선배들의 모습에도 무언가를 배울 생각으로 끊임없이 묻는 모습에, 현장을 지휘하는 선임 대원들이 재밌다는 웃음을 지었다.

“저거 아까 그놈이지? 탐색 언제부터 시작하냐는 놈.”

“맞습니다.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괜찮네요.”

“저도 생각 같으시네요. 애가 열의가 있더라고요.”

다른 대원들도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몇 시간째 열의를 가지고 작업을 돕는 이성하의 모습에 신기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에게 있어 지금의 모습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렇게 콘크리트를 비스듬히 절단하는 건 이유가 있는 거예요?’

[어. 그래야 잔해물이 밖으로 떨어지니까. 안으로 떨어지면 요구조자들이 다칠 확률이 있잖아.]

‘아, 그래서.’

대원들만이 아니라 렉스에게도 물어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항상 모르면 물어보며 배워 온 게 지금까지 이성하가 살아온 소방관의 길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지금 겪은 사소한 경험 하나가 한 명의 생명을 더 살릴 수 있었다.

“으르르! 왈! 왈! 왈!”

“루피 반응합니다. 이쪽 건물 안에 뭔가 있는 거 같습니다!”

영상으로만 봤던 구조견을 이용해 요구조자를 탐색하는 방법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졌다.

“위쪽으로 천공 가능할 거 같습니다!”

“오케이, 각목 대고 무너지지 않게 수평 지지부터 먼저 해.”

구멍을 뚫기 전에 현지에서 조달한 나무를 잘라 기둥과 벽을 지탱하는 모습에 눈을 빛냈고, 그런 작업을 통해 절단한 콘크리트들을 소형 화물을 드는 데 쓰는 호이스트에 연결해 들어 올리는 건 가히,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됐어! 이제 모두 당겨!”

“끄아아아아!”

아무런 동력 장비 없이 현장에서 계산한 수학적 지식에 의존해 로프로 콘크리트를 끌어올리기에.

‘저렇게 하는 거구나.’

이성하 역시 흥분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머릿속에 넣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덕분에 서서히 보조를 하는 이성하의 움직임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 카메라 여기 있습니다.”

“어? 오케이. 고마워.”

세부적인 작업은 돕지 못해도 장비들의 용도만큼은 확실히 기억해 선배들을 보조한 덕분에, 구조팀의 도시 탐색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최영인!”

“여기 있습니다!”

“두영아!”

“네, 가져갑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다른 지역대원들까지 구조 작업에 열의를 가지고 덤볐던 것이다.

구조대장으로서는 흡족할 모습이었다.

“이번에 온 애들 괜찮은데요?”

“그러게. 진짜 다 마음에 드네. 다들 추천받고 올 만하네.”

안 그래도 경험이 없는 신입 대원들의 존재에 걱정했는데, 지금 보이는 것만 보면 딱히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었다.

“대장님, 오늘 예상한 지점보다 많이 수색했는데요?”

신입 대원들의 열의 덕분에 오늘 수색한 구역이 구조대장이 예상한 것보다 많았다.

“그래?”

“네, 생각보다 신입들이 배우는 게 빨라서 7구역까지 마무리했습니다. 계속 이 속도로 가면 저희가 맡은 구역은 금방 끝내겠는데요?”

원래대로라면 6구역까지 하고 끝내야 할 수색이 한 구역이나 더 수색한 상황이었고, 그에 기분이 좋아진 구조대장은 앞으로의 일정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기로 맘먹었다.

“그럼 오늘 일도 일찍 끝났는데 2차 파견팀 도착한 거 기념해서 전부 모여서 식사나 하지.”

“전부 동시예요?”

“그래. 다들 얼굴은 알지만 팀으로서 일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잖아. 통성명 정도는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안 그래도 대부분이 초면인 상황이었기에, 앞으로의 일정을 위해서라도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식사 자리를 갖기로 한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기다리던 소리였다.

“좋습니다!”

“뭐?”

“배고파 죽을 거 같습니다!”

안 그래도 배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꼬르륵 소리에 기다렸다는 듯이 고함을 지를 정도였다.

그랬기에 캠프로 돌아온 구조팀은 씻는 것도 마다한 채 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동명이랑 석형이는 테이블 꺼내라. 민규랑 한영이는 아이스박스에서 음식 좀 꺼내고.”

“네!”

“알겠습니다!”

식사를 책임진 선임 대원의 말에 각각 역할을 나눠 준비를 시작했으며, 그중 이성하에게 주어진 역할은 식수 보급이었다.

“물 말씀입니까?”

“그래. 여기서 오른쪽 보면 갈색 막사 보이지? 거기가 네팔 구호소야. 거기서 가져오면 돼. 식수는 네팔에서 보급하거든.”

각국의 구호대가 모여 있는 캠프 안에서, 네팔 본부에서 물을 받아오는 것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네 박스는 들고 와야 하니까. 영인이랑 같이 다녀와.”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네팔 막사라는 말에 말이 통할까 걱정되긴 했지만, 같은 지역 대원으로 참가한 최영인과 같이 다녀오라는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처럼 식수를 보급 받는 과정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Korea?(한국이야?)”

“Yes, we need water to…….(네, 우리는 물이…….)”

“Ok, take it.(그래. 가져가.)”

용건을 전부 밝히지도 않았는데 네팔 본부에서 가슴에 붙은 태극마크만 보고 물을 가져가는 걸 허락해 준 것이다.

이성하와 최영인으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얼른 가져가죠.”

“그래요.”

혹시나 말이 길어지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서둘러 물을 챙겨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Stop.(멈춰.)”

날카로운 음성이 뒤에서 들려왔다.

뒤를 보니 거구의 남색 방수복을 입은 인물이 서 있었고, 그 인물의 가슴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성조기가 달려 있었다.

“Korea is the last(한국은 마지막이야.)

이유는 모르지만 미국 국적의 구조대원이 능글맞은 눈빛으로 두 사람의 행동을 제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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