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85화>
85화. 국제구조대 (2)
* * *
국제구조대는 1997년 8월 미국 괌에서 발생한 국적기 사고를 계기로 창설된 조직이었다.
해외에서 항공기 사고나 지진과 같은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재외국민의 인명 구조를 위한 목적으로 창설된 조직.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조금 그 의미가 확대됐다.
2000년대에 들어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빠르게 올라가며 인도적 차원에서 재난 피해국의 지원을 위한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그로 인해 KDRT라 불리는 대한민국 해외 긴급구호대가 만들어졌다.
이 해외 긴급구호대에 소방청에 소속된 국제구조대가 포함됐으며, 그 국제구조대에서 은평소방서로 이성하의 합류를 요청하는 공문이 정식으로 날아왔다.
<지원 요청서>
이번 네팔 지진의 국제구조대 조직을 위해 은평소방서 이성하 소방관의 지원을 정식 요청함.
이번에 파견될 해외 긴급구호대에 이성하를 국제구조대 대원으로 정식 요청한다고.
그 때문에 졸지에 서장실로 불려 온 이성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구, 국제구조대요?”
“그래. 정식 요청이야. 오늘 밤 1차로 탐색구조대 열 명이 먼저 파견되고, 5월 1일 추가 구조팀이 파견되는데 그 팀으로 지원 요청이 들어왔어. 2차 파견팀으로 네 합류를 원한다고.”
난데없이 국제구조대에서 자신을 지원 인력으로 요청했다는 말에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었다.
물론 국제구조대의 존재를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이성하 역시 현역 소방관으로 근무하는 만큼, 해외 재난을 주 임무로 삼는 국제구조대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이번 네팔 지진으로 언론이 시끄럽다 보니, 정부에서 국제구조대의 파견을 정식으로 결정한 것도.
하지만 자신이 그 국제구조대에 포함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에이, 서장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농담?”
“네. 국제구조대는 이미 인력풀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거길 어떻게 가요?”
이성하의 말처럼, 국제구조대의 인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뭐, 그렇긴 하지.”
언제 출동하게 될지 모르는 만큼, 전국에 있는 특수구조대에서 매년 국제구조대로 파견될 인력을 정해 뒀으니까.
“그런데 예외는 있어.”
“예외요?”
“그래. 국제구조대. 아니, 정확히 말하면 KDRT는 재난이 발생한 국가를 지원하기 위해서만 파견되는 게 아니야. 부차적으로는 국가의 이미지를 위해 파견되는 것도 있거든. 세계에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도주의 정신을 실현하는 국가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말이야. 그리고 다른 것도 있어. 국민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거. 우리가 선진국으로서 이 재난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보여 줘야 되거든. 그래서 널 요청한 거야. 요즘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게 너잖아.”
날아온 공문을 건네며 하는 말이었다.
그 공문에는 이성하를 제외하고도 총 세 명의 지역 구조대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이름들은 이성하도 아는 인물들이었다.
[박근석, 최영인, 고두영, 최근 매스컴 탄 소방관들을 싹 다 모았네.]
‘…….’
렉스의 말처럼 자신과 마찬가지로 최근 눈에 띄는 구조 활동으로 매스컴을 탄 소방관들의 이름이 모두 적혀 있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어이가 없었다.
‘하……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서장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소집은 그저 소방청의 이미지를 위한 대외 활동이란 의미였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두말할 거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안 가겠습니다.”
자신을 요청한 이유가 실력보다는 유명세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안 가?”
“네, 이름 때문에 가는 거면 갈 이유가 없습니다. 구조대 활동을 충분히 숙지한 대원이 가는 게 맞죠.”
파견은 처음이었지만,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으로서 실력이 아닌 이름 때문에 파견을 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성환용이 피식 웃었다.
“이름 때문만이라고는 안 했는데?”
“네?”
“이름 때문에 뽑힌 것만은 아니야. 그랬으면 너한테 보여 주기도 전에 내가 거절했겠지. 이번에 뽑힌 인원은 이미지도 있지만, 자체적으로 실력 역시 최고라는 생각에 뽑힌 인원이야. 경북의 박근석, 전남의 최영인, 강원의 고두영, 이 세 사람 모두 너처럼 이번 지역 소방 기술 경연대회의 최강소방관들이거든. 그래서 각 지역의 특수구조대에서 추천을 받은 거고 말이야.”
애초부터 이름 때문이었으면 자신의 선에서 거절했을 요청이었다.
아직 경력은 짧지만 이성하의 실력이 충분히 특수구조대의 실력에 견주어 볼 만하다는 생각에 수락한 공문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떨떠름해하면서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특수구조대요?”
추천을 받았다는 말 때문이었다.
[너 특수구조대에 아는 사람 있었냐?]
‘제가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길현대에서 구조대로 바로 왔는데.’
렉스도 그 말에 바로 의문을 표했을 정도로, 특수구조대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바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상하네. 분명히 서울 특구에서 추천했다고 했는데. 너 양유철이라고 몰라?”
“야, 양유철이요?”
아는 이름이었다.
“됐어. 이런 건 원래 선배들이 하는 거야. 내가 아니었어도 다른 애들이 나섰을걸?”
‘그 아저씨가 특구라고?’
짧은 만남이었지만, 워낙 인상이 깊던 선배다 보니 기억하는 이름.
그랬기에 이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양유철 소방관은 아는데 특구는 아닙니다.”
“특구가 아니야?”
“네. 제가 아는 양유철 소방관은 도봉서 소속입니다. 정철호 선배 후배라고 들었고요.”
분명히 도봉서 소속이라며 손을 내밀던 그 얼굴을 선명하게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에 성환용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 바보야?”
“네?”
“서울 특구가 도봉서에 있는 거 몰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뒤편에 걸려 있는 서울시 지도를 가리켰다.
“잘 봐. 여기 있잖아.”
대회가 열렸던 서울소방학교를 가리키며 짓는 어이없단 표정에, 이성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네. 진짜네.]
‘쩝…….’
렉스의 말처럼 지도엔 도봉소방소 옆으로 서울 특수구조대가 적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건물을 같이 쓰는 서울소방학교 안에 특수구조대가 있었다.
서울시 특별구조대는 서울소방학교와 같이 운영되는 시스템이었으니까.
그 말을 들으며 성환용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이놈 보내도 되는 거 맞아?’
이성하를 은평의 대표로 국제구조대로 보내도 되는지를.
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런 성환용의 마음을 알았는지 옆에 있던 유상명이 조용히 속삭였다.
“서장님, 회신만 안 했지. 이미 본부에서는 참석으로 알 겁니다. 출발 4일 남았어요.”
이미 마음을 돌려 봤자 늦었다며 포기하란 이야기에 성환용이 고함을 질렀다.
“나가.”
“네?”
“나가라고 인마!”
이미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유상명의 말에 이성하에게 나가라며 고함을 지른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억울한 순간이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난생처음 서울소방학교에 간 건데, 그곳에 특수구조단이 같이 운영되는 걸 자신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지만 이성하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서장실을 나왔다.
“나가.”
빨리 나가라며 손을 휘젓는 유상명의 모습에 더 이상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와서는 이내 든 생각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나 그럼 그냥 가는 거야?’
생각해 보니,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애초에 국제구조대의 파견이 결정돼 있었다.
그 때문에 뒤를 돌아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미 다 정한 거 통보하는 자리였네.]
‘…….’
렉스의 말처럼, 이미 결정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골치 아픈 게 있었다.
‘선배들에게 어떻게 말하지?’
자신이 국제구조대로 파견되면 안 그래도 적은 3팀의 인원이 한 명 줄어들었다.
아직은 시범 단계에 운영되는 현장대응단이다 보니 3팀의 경우에는 타 팀의 인력 충원만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그 업무의 부담은 고스란히 선배들이 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성하가 입원할 때마다 선배들이 대신 근무를 서던, 민폐였던 상황이 다시 벌어지는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사무실로 돌아와서도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서장님이 뭐래?”
“별거 아니었어요. 그냥 대회 이야기하더라고요.”
“대회?”
“네, 전국대회도 잘 부탁한다고요. 하하.”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 이유를 묻는 오성수의 말에 당황해 말을 돌렸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오성수가 피식 웃었다.
“대회? 국제구조대 이야기는 안 하디?”
“구, 국제요?”
“그래. 인마. 너 네팔 간다며.”
어떻게 알았는지 국제구조대를 언급하며 이성하의 머리를 헝클었고, 그에 허석훈과 김필주도 웃으며 말했다.
“좋겠다. 나는 한 번도 못 가 봤는데. 내 대신해서 잘 다녀와.”
“그래, 인마. 잘 다녀와라. 올 때 꼭 선물 사 오고.”
이미 자신이 내려오기 전부터 국제구조대로 파견 나간다는 사실을 선배들이 알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선배들의 모습에 이성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전부 다 아셨어요?”
선배들은 물론이고, 타 팀 선배들까지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 모습에,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 의문을 권일섭이 풀어 줬다.
“그럼 모르겠냐? 내가 구조대장인데.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아는데, 이런 거 가지고 뭐라고 할 선배 없다. 후배가 좋은 기회를 얻었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냐.”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성하의 마음을 미리 짐작하며 하는 말이었다.
“다녀와 인마. 이게 어떤 기회인데 고민해.”
쓸데없는 생각 말라며 다녀오라고 씨익 웃음을 지었고, 그에 이성하가 울컥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잘 다녀와라. 우리 대표해서 가는데 망신시키면 알지?”
“야, 거기 내 동기 놈 있는데 너 어땠는지 물어본다. 잘하고 있나.”
“물어보긴 뭘 물어봐. 잘해 주라고 해야지.”
“아이, 그건 당연하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자신 때문에 추가 근무를 하게 될 상황이 분명한데도, 다들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더 이상 거부할 마음은 없었다.
“야, 네 자리 내가 메꿀 테니까 걱정 말고 다녀와.”
안 그래도 최근에 트라우마까지 완전히 치료하고 복귀한 장건호까지 걱정 말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마음을 편히 먹었다.
“그럼 사양 않고 다녀오겠습니다.”
“새끼, 잘 다녀와.”
“그래. 인마. 많이 배우고 와라.”
“네!”
이성하로서도 이번 파견이 자신에게 있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지 알았기에,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 * *
4일 후, 이성하는 후련한 마음으로 인천공항에 있었다.
“엄마 다녀올게.”
“다치지 말고.”
“걱정 마요. 엄마. 무사히 다녀올게요.”
걱정이 돼서 마중 나온 엄마를 꼭 끌어안고는 당당한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으며, 그렇게 걸음을 옮기는 이성하의 가슴에는 태극마크가 달려 있었다.
[가자.]
‘네.’
대한민국의 명예를 건 국제구조대의 일원으로서 힘찬 걸음을 옮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