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84화>
84화. 국제구조대 (1)
* * *
대회가 끝나고 은평소방서의 소방관들은 평상시의 삶으로 빠르게 복귀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냐, 좋은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당근복으로 갈아입고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에에에엥!
“출동!”
“빨리 나가!”
갑작스럽게 터지는 출동 벨에 정신없이 뛰쳐 나가는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삶을.
하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유후~ 오늘 저녁 뭐야?”
“오뎅볶음에 부대찌개랍니다.”
“오오~ 좋은데.”
이번 대회의 우승 때문인지, 평소보다 대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성수야. 본청에서 보고서 누락됐대. 좀 있다 다시 올려 줘.”
“네, 팀장님. 바로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서류에 관련된 것만큼은 깐깐한 편인 김필주가 웃으며 넘어갈 정도로 다들 기분이 업된 상태였다.
“야, 그나저나 이번에 기사 난 거 봤냐?”
“당연히 챙겨 봤죠. 저희가 종합 우승한 기산데요. 은평이 종합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잖아요.”
지난 대회들과 다르게 이번에는 최강소방관에서도 우승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서울 지역 종합 우승의 영예를 얻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 덕분에 서 내에서 이성하에 대한 대우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선배님, 저 구조차 점검 좀 하고 오겠습니다.”
“구조차? 그거 이미 다 했어.”
“네?”
“아까 팀장님이랑 석훈 선배가 다 했던데? 너 좀 쉬래.”
장비를 점검하려 했더니 이미 선배들이 점검을 끝내 할 일이 없었다.
“그럼 선배님들 커피 드실래요? 제가 커피 타겠습니다.”
“야, 앉아 있어. 내가 타 올 테니까.”
고마운 마음에 커피라도 타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선배들에게 거부당해 자리에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네?”
“앉아 있으라고. 왜 귀한 몸을 함부로 써.”
오성수가 바로 몸을 일으켜 이성하를 자리에 앉히고는 커피를 타러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부담됐다.
‘쩝…… 계속 이러면 너무 부담되는데…….’
대회가 끝난 이튿날은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이런 선배들의 호의가 계속된 게 벌써 4일째였으니까.
하지만 선배들이 이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야, 인마 챙겨 줄 때 받아. 우리가 괜히 그러는 줄 알아?”
허석훈이 이성하의 머리를 엉클이며 웃었다.
“석훈이 말이 맞아. 지난 2개월 동안 너 고생했잖아. 맨날 훈련 때문에 늦게 들어가는 거 미안했는데, 이런 거라도 우리가 좀 하자. 그래야 선배로서 면이 서지, 인마.”
김필주가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오성수는 타 온 커피를 가장 먼저 주며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인마. 그것도 그냥 우승이야? 대회 신기록인데. 그것도 작년 전국대회 우승자보다도 3초나 빠른 기록이잖아.”
그냥 우승도 아니고 대회 신기록까지 기록하며 은평소방서의 이름을 높인 후배였기에, 다들 한마음으로 이성하를 예뻐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포기해. 어차피 네 말 안 들을 거야.]
‘그러게요.’
렉스의 말처럼 말해 봤자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야, 그런데 작년보다 3초나 빠른 거면 전국대회도 가능성 있는 거 아냐?”
“그럼요. 경기장이 다르다 보니 약간은 차이가 있겠지만, 우승 후보라는 사실은 틀림없잖아요. 기록이 4분대인데.”
“흐흐흐. 좋네, 좋아. 그럼 전국대회도 우승 가는 거네.”
심지어 지금처럼 서울 지역 대회가 끝난 뒤부터 그다음 대회인 전국대회를 부르짖으며 열띤 표정으로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선배들의 모습이 창피했다.
[전국대회 10월 아녔냐?]
‘맞아요…….’
렉스의 말처럼 전국대회는, 늦가을인 10월에 열릴 예정이었다.
지금이 4월이라는 걸 생각하면 앞으로 6개월이라는 까마득한 기간이 남은 상황.
하지만 선배들은 전국대회가 곧 다음 달에 열리는 것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전국!”
“전구우욱!”
선배들뿐만 아니라 다른 팀의 선배들까지 틈만 나면 전국을 외쳤고, 그 마음이 진심이라고 말하듯 은평소방서의 정문에는 지역 대회에서 사용했던 현수막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축 은평소방서 서울소방 기술 경연대회 종합 우승>
<서울은 단지 통과점일 뿐. 우리의 상대는 전국!>
이번 대회의 우승을 축하하는 현수막 아래로 지역 대회에서 썼던 현수막을 그대로 붙여, 목표가 전국이라는 걸 주위에 광고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도 창피는 하지만 살짝은 달아오른 상태였다.
‘전국이라.’
서울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하긴 했지만, 전국에서 대표로 출전하는 소방관들 사이에서 자신이 어디까지 해낼지 궁금했으니까.
서울대회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기록하긴 했지만, 전국에서 기라성 같은 소방관들이 모이는 전국대회는 어떤 소방관들이 참석할지가 기대됐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선배들의 분위기에 어울려줄 생각을 했다.
아니, 오늘만큼은 어울려야 했다.
“이성하, 가자.”
“벌써요?”
“그럼. 너랑 진압 팀 우승을 축하해서 열리는 회식인데 주인공들은 일찍 가야지.”
시간이 됐다며 눈짓하는 오성수의 말처럼, 이번 서울 지역 대회의 우승을 기념해 은평소방서의 단체 회식이 열리는 날이 오늘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회식은 대회 당일 밤늦게 열리는 게 보통이지만, 은평소방서는 이번 회식을 며칠 여유를 두고 낮 시간으로 잡았다.
“이번 우승 회식은 낮에 하자고.”
“낮이요?”
“그래. 우리 서 처음으로 종합 우승한 거잖아. 가능한 다 같이 모여서 하자고. 최대한 성대하게 말이야.”
처음으로 종합 우승을 한 대회였던 만큼, 모든 소방관들이 참석해 진행하자는 서장의 의견 때문이었다. 덕분에 회식이 열리는 장소 역시 외부가 아닌 은평소방서의 구내식당에서 열렸다.
“모두 오신 겁니까?”
“최소 인원 제외하고는 전부 모였습니다.”
“하하하. 좋네요. 근무 인원들한테도 음식 보내 놨으니 마음껏 즐기세요!”
“네!”
최대한 많은 인원이 참석해 한마음으로 우승을 기념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심지어 구내식당이라고 얕볼 회식은 아니었다.
“와, 대박인데? 이거 거의 뷔페 아니야?”
가장 먼저 들어간 오성수가 흥분해 설레발을 칠 정도로 구내식당 한편에 음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게요. 초밥이랑 스테이크도 있어요.”
거의 뷔페와 같을 수준의 음식 퀄리티에 이성하의 얼굴에 웃음을 걸릴 정도로 구내식당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음식들이 세팅돼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허석훈이 웃으며 말했다.
“뷔페 맞아. 서장님이 이번에 우승 기념해서 크게 한턱 쏘셨댄다.”
“서장님이요?”
“어, 통 크게 지갑 여셨대. 몰래 모은 비상금 털어서 말이야.”
한쪽에 서 있는 성환용 서장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며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성환용이 환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많이 먹어라!”
“감사합니다!”
“오냐!”
그 역시 다른 소방관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달성한 종합 우승의 기쁨에 흠뻑 취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사양 않고 접시를 들어 음식을 듬뿍 담았다.
[돼지야?]
‘에이, 이럴 때 많이 먹어 둬야죠. 언제 출동할지 모르는데.’
모처럼 서장이 사비를 털어 마련한 자리인 만큼 마음껏 즐길 마음으로 음식을 담았고, 그런 분위기에 선배들과 시원하게 잔을 부딪쳤다.
“전국은!”
“우승입니다!”
“마셔!”
선배들의 들뜬 분위기에 이성하 역시 큰 목소리로 전국 우승을 외치며.
물론 술은 아니었다.
[아니, 콜라 가지고 무슨 짠이야?]
렉스의 물음처럼, 혹시 모를 출동을 대비하기 위해 3팀의 인원들이 마실 수 있는 건 콜라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를 비롯해 잔을 부딪친 모두는 맥주를 마시는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잔을 비웠다.
“이성하, 이번 대회 잘 봤다.”
“선배님도요, 화재 부분 우승 축하드립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은평소방서의 모든 인원이 참석한 단체 회식이었으니까.
“건배하시죠!”
“좋아, 마셔!”
“우와아아!”
동고동락하는 3팀 외에도, 은평에 근무하는 모든 소방관들이 함께 모여 웃는 자리는 다시는 없을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행복한 얼굴로 회식을 즐겼다.
[그렇게 좋냐?]
‘네, 진짜 소방서 잘 온 거 같아요. 팀도 그렇지만 선배들도 너무 좋아요.’
이렇게 끈끈한 정을 보여 주는 소방서가 자신의 근무지라는 사실이 너무나 즐거웠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서, 서장님!”
행정직원 한 명이 다급한 모습으로 성환용 서장을 찾았다.
“무슨…….”
“전화 좀 받으십쇼. 급한 일입니다.”
성환용의 대답이 있기 전에 핸드폰부터 내미는 직원이었고, 평소엔 볼 수 없는 모습에 회식 자리가 단번에 조용해졌다.
“……뭐요?”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전화를 받은 잠깐 만에 성환용 서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회식 자리는 단번에 침묵에 싸였다.
“무슨 일이야?”
“글쎄요. 뭔 일이지.”
직원과 서장 모두 다급한 표정을 지을 정도면 큰일이 생겼다는 생각에서였다.
“조용히해 봐.”
권일섭이 웅성거리는 대원들을 조용시키며 성환용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잠시.
“미, 미친.”
달려온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유상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모컨 어디 있어?”
“여, 여기 있습니다.”
“빨리 줘봐.”
무슨 일이 나기는 났는지 다급한 표정으로 구내식당에 설치된 TV리모컨을 찾아 바로 TV를 틀었다.
콰르르르르.
그렇게 켜진 TV에선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이 특보로 보도되고 있었다.
“맙소사…….”
“미, 미친…….”
한 채의 건물이 무너진 게 아닌, 수십, 아니 수백 채의 건물이 무너진 모습과 함께 아나운서가 다급한 표정으로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 속보입니다. 네팔 수도 인근에서 7.9의 강진이 발생해 최소 백여 명이 넘는 사람이 숨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네팔 당국은…….
한국은 아니지만,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그 때문에 소방관들은 씁쓸해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서장님은 왜 그러시는 거야?”
“그러게…… 네팔이잖아.”
안타깝긴 하지만 재난이 벌어진 곳은 한국이 아닌, 네팔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건물에 매몰돼 구조를 바라겠지만, 현실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젊은 소방관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권일섭을 비롯해 연차가 있는 소방관들은 본능적으로 지금의 전화가 무얼 뜻하는지 알았다.
“설마 국제구조대인가.”
“아마도 그런 거 같습니다. 이 상황에 서장님께 전화라면…….”
국제구조대.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나라에 상관없이 중앙 본부에 설립된 국제구조대가 파견되는 게 기본이지만, 간혹 일부 인원을 각 구조대에서 차출 받아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서장님이 왜 절 보시는 거죠?’
[글쎄. 뭔 일 있나?]
전화를 마친 성환용이 신중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