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82화>
82화. 까짓것 뭐 (4)
* * *
최강소방관의 순번 추첨이 끝나고 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지금부터 화재 진압 종목의 속도 방수가 시작되겠습니다. 첫 번째는 성동소방서입니다.
가장 먼저 시작되는 건 화재 진압 종목 중 하나인 속도 방수.
그 때문에 은평 소방서의 천막에는 시작부터 긴장감이 돌았다.
“성동? 성동이 작년에 몇 위였지?”
“4위입니다.”
“4위면 얕보면 안 되겠네.”
“그럼요. 말이 4위지. 기록으로 따지면 몇 초 차이 안나요. 저쪽도 우승 후보예요.”
가장 첫 번째로 시작되는 게 그들의 주 종목인 화재 진압인 만큼, 이 종목만큼은 확실히 우승해야 다른 소방서들에게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
다행히 은평 소방서는 자존심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 작년까지 4연패를 기록하는 은평 소방서입니다. 모두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아!”
“가자! 은평!”
“올해도 우승하자!”
본부석에서 나오는 안내처럼 지난 대회 우승자로서 당당한 보무로 등장한 은평 소방서는, 입장했던 보무만큼이나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줬다.
- 미쳤습니다, 은평 소방서! 진압 전술 부분에서도 1등을 기록했어요!
- 정말 환상적입니다. 처음 속도 방수에서 2위 팀보다 6초나 앞설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역시 대단합니다. 왜 자신들이 화재 분야에서 최고인지를 제대로 보여 줬어요!
속도 방수만이 아닌 이어진 화재 진압 전술에서도 1등을 기록해, 이번 대회 역시 자신들이 화재 부문의 최강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좋은 분위기는 거기까지였다.
은평 소방서는 이어지는 구급 분야에서 3위 입상을 목표로 했는데, 아쉽게도 구급팀이 작은 실수를 기록해 대회를 4위로 마치고 말았다.
- 강남 소방서! 강남 소방서가 85점을 받으면서 은평 소방서는 4위로 떨어집니다.
- 은평 소방서로서는 굉장히 아쉬운 상황입니다. 딱 1점 차이거든요.
상황을 중계하는 본부석에서조차 아쉽다는 탄식을 내뱉을 정도로 간발의 차로 입상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은평 소방서의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최강소방관 종목에 온 힘을 담아 고함을 질렀다.
“정철호 팀장님! 파이팅입니다.”
“이성하, 믿는다. 진짜 제대로 한번 보여 주자!”
화재 부문에서 우승하긴 했지만, 이대로 가면 예전과 다를 거 없다는 조바심에 다들 초조한 감정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에 이성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왜, 신기하냐?]
‘네, 말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진짜 올림픽 같네요.’
생각한 것보다 대회 열기가 더 뜨거워서였다.
“아빠 파이팅!”
“은평서 힘내요! 우승 가요! 우승!”
동료들도 열정적이지만 그들보다 더 뜨거운 모습으로 함성을 지르는 가족들의 모습에, 다들 이 대회를 얼마나 고대해 왔는지 여실히 느껴졌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진심으로 대회에 전력을 쏟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너 빡세게 해야겠다.]
‘네, 당연히 그래야죠.’
동료들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에 절대로 져서는 안 되겠다고.
다행히 그런 이성하를 응원하는지, 이성하의 추첨 순서는 나쁘지 않았다.
“이성하, 너 순번 몇 번이었지?”
“29번이에요.”
“와, 29번이면 엄청 잘 뽑았네.”
순번을 물어본 오성수가 환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좋은 번호를 뽑은 상태였다.
“팀장님은요?”
“나 15번. 후순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적당해. 딱 중간 순번이니까.”
정철호 역시 후순위는 아니지만 중간에 위치해 나쁘지는 않았고,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웃는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최강소방관 경기에 참가하는 소방관은 전부 본부석 쪽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팀장님, 가시죠.”
“그래. 가자.”
드디어 시작되는 최강소방관 경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첫 번째로 출전하는 소방관은 추첨 때 인사를 나눈 적 있는 강동 소방서의 김병호였다.
“아빠 하고 올게!”
“아빠 파이팅!”
“그래! 파이팅!”
이성하에게 스스럼없이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넸을 때처럼, 환한 표정으로 가족들과 파이팅을 외치며 출발선으로 나선 상황.
그리고 그 표정은 경기가 시작되는 출발선에 서는 순간 매섭게 바뀌었다.
“준비!”
신호를 주기 위해 손을 치켜든 진행위원의 고함에 집중한 모습으로 자세를 잡았고, 그런 진행위원의 손이 내려가며 김병호의 발이 강하게 바닥을 박찼다.
삐이이익!
- 시작됐습니다. 강동 소방서의 김병호 소방관이 부저를 누르고, 빠르게 출발합니다.
자신이 속한 강동 소방서의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 김병호가 단호한 모습으로 스타트를 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단호한 모습만큼이나 보여 주는 행동은 굉장히 신속했다.
첫 번째 코스는 두 본의 호스를 펌프차에 연결하고는 정해진 지점까지 전개 후 다시 말아 정리하는 종목이었는데, 그런 일련의 과정을 김병호는 엄청난 속도로 실수 없이 통과했다.
- 대단합니다! 1분 31초 32! 김병호 소방관! 엄청난 속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 맞습니다! 작년 28회에서 우승한 명도현 소방관이 첫 번째 코스에서 1분 32초였거든요.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 작년 우승자보다 무려 1초나 빠른 속도로 코스를 통과해, 상황을 중계하는 진행위원들이 기염을 토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하지만 그다음부터 문제가 생겼다.
두 번째 코스는 20kg의 물통 2개와 70kg의 마네킹을 정해진 지점까지 운반하고는 3m 높이의 벽을 넘는 거였는데, 이중 마네킹을 운반하는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
- 아, 너무 급했습니다. 마네킹을 제 위치에 놓지 못했어요.
- 네. 다시 제대로 놓지만 이 부분은 감점에 들어갑니다.
정해진 받침대에 마네킹을 올려야 되는데 너무 서두르다 보니 올려 둔 마네킹이 살짝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진 거였고, 그게 영향이 됐는지 세 번째 코스 중 7m 높이의 훈련탑에서 두 개의 호스를 끌어올리는 과정에도 실수가 생겼다.
- 아, 긴장했는지 밧줄을 놓쳤어요. 호스 다시 떨어집니다.
- 안타깝네요. 김병호 소방관. 이것만 확실히 마무리했어도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볼 수 있었는데요.
좀 전의 실수로 긴장했는지, 호스를 끌어올리는 도중 연결된 밧줄을 놓쳐, 또다시 시간을 잡아먹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에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잘하고 있어!”
“김병호, 힘내라!”
“멋있다 김병호! 노장의 힘을 보여 줘라!”
김병호가 속한 강동서만이 아닌, 구경하는 다른 서의 소방관들까지 그런 김병호에게 응원을 보냈고, 그 모습은 이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배님 힘내십쇼!”
기록을 떠나 이번 대회를 위해 최선을 다한 흔적이 또렷이 느껴지는 선배기에.
“김병호 파이팅!”
경쟁과 상관없이 포기하지 말라며 목 놓아 고함을 지른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김병호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코스까지 훌륭히 마무리 했다.
삐이이익.
“허억, 허억.”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는지 부저를 누르고는 그대로 탈진해 주저앉는 모습이었고, 그 모습에 모든 소방관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환호성을 보냈다.
“최고다!”
“멋있다, 김병호!”
“강동! 강동!”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임무를 다하는 게 소방관이기에.
- 김병호 소방관, 5분 30초. 중간에 실수가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코스까지 무사히 마무리했습니다.
- 네, 강동 소방서의 소방관들이 야유와 함께 응원의 박수를 보내네요. 참 보기 좋은 광경입니다. 박수 한번 주십쇼.
짝짝짝짝!
응원하는 이들과 진행위원 할 거 없이, 그 모습에 모두가 뜨거운 박수를 보낸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하핫.”
박수 속에서 환호성이라기보다는 묘하게 거슬리는 웃음이 이성하의 귀에 들렸다.
“재밌네요.”
“그러게. 엄청 재밌네.”
마치 김병호를 칭찬하기보다는 한수 아래로 보고 깔보는 듯한 비웃음 소리에, 뒤를 돌아본 이성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걔들이야?]
‘네, 연동 소방서 소방관들이에요.’
추첨할 때 자신에게 비아냥을 던지던 이들이 눈에 보여서였다.
‘미친놈들.’
자신은 후배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그들에게도 대선배에 해당하는 김병호에게 비웃음을 날리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냥 무시해. 꼴 보기는 싫어도 너한테는 선배야.]
그들 역시 이성하에게 있어 대선배에 해당해서였다.
‘쳇, 소방교네요.’
같은 소방사라면 비벼 보겠지만,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소방교라면 최소 2년은 먼저 근무를 시작한 선배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런데 연동 소방서의 소방관들은 그런 이성하의 마음을 모르는지 계속해 도를 넘었다.
“아이쿠, 실수하셨네.”
“이번 대회는 실수가 많네, 창윤이, 너 아니면 내가 되겠다.”
경기 도중 실수하는 소방관들이 나올 때마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피식 웃음을 지었고, 그 웃음은 이성하의 상사인 정철호 때도 마찬가지였다.
“엇, 저 아저씨 밧줄 놓쳤네.”
“에이, 근육이 아깝네. 저걸 놓치냐.”
정철호가 세 번째 코스인 벽을 넘어가는 도중에 로프를 놓치는 일이 있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그 모습에 비웃음을 던진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몸을 돌렸다.
‘이런 미친놈들이.’
지난 두 달간 누구보다 고생하던 정철호의 모습을 기억해서였다.
“힘드냐?”
“아닙니다!”
“힘들어도 참아. 나도 같이 뛰자나. 응?”
혹시나 자신이 훈련을 거부할까 중년의 나이에도 곁에서 같이 훈련하던 정철호의 모습을 기억했기에, 뭐라도 한마디를 해 줄 마음을 먹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이성하를 잡는 손길이 있었다.
“에헤이.”
“서, 선배님?”
강병호와 함께 인사를 나눴던 도봉 소방서의 양유철이었다.
“기억력 좋은데? 잠깐만 있어. 이런 건 선배가 해야지.”
자신을 알아보는 이성하에게 눈을 찡긋하고는 연동 소방서의 소방관들에게 다가서는 모습이었고, 그렇게 다가가서는 연동 소방서의 소방관들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저기 말이야. 좀 웃겨서 그러는데 조용 좀 해 주면 안 될까?”
“네?”
“대회 보는데 웃겨서 말이야. 아직 대회도 안 끝났는데 우승한 것처럼 설레발을 떨면 웃기잖아. 안 그래?”
자신은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고 말하듯 환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회가 진행되는 운동장을 가리켰으며, 그에 근처에 있던 소방관들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큭큭큭. 빵 터지네.”
“그러게. 아직 경기 안 끝났지.”
다들 말은 안 했지만, 그들 역시 연동 소방서의 소방관들 말에 기분이 나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연동 소방서의 소방관들은 얼굴이 빨개진 채 자리를 피했다.
“끄응…….”
“선배 가요. 좀 있으면 저희들 차례예요.”
선배인 양유철의 존재도 문제지만, 주변 소방관들의 매서운 눈빛에 더 이상 자리를 지키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양유철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뭐가?”
“저 때문에 나서신 거잖아요. 괜히 문제 커질까 봐서요.”
자신이 나서도 조용히 말해 싸우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말을 꺼내면 시끄러워질 상황을 해결해 준 선배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말에 양유철이 피식 웃었다.
“됐어. 이런 건 원래 선배들이 하는 거야. 내가 아니었어도 다른 애들이 나섰을걸?”
원래 이런 건 선배들이 하는 거라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최고!”
“여보 고생했어요!”
“팀장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런 양유철의 뒤로 동료들과 가족들 앞에서 환한 웃음을 짓는 정철호의 모습이 보여서였고, 그에 이성하는 독하게 마음먹었다.
‘두고 보자. 제대로 발라 버린다.’
존경하는 선배를 비웃는 건방진 망둥이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마음을 먹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