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81화 (81/235)

<강철 소방대 81화>

81화. 까짓것 뭐 (3)

* * *

방화복을 입고 한강 구보를 해 본 소방관이 있을까?

아니면 트랙터에 사용될 법한 거대한 타이어를 굴리며 소방서 주위를 돌아 본 소방관은?

아마 없었을 거 같다.

출동이 아니면 방화복의 개인 반출이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안 그래도 매일 반복되는 출동에 힘들어 죽는 소방관이 애꿎은 타이어를 돌리며 소방서 주변을 도는 건 상상이 안 될 일이니까.

근데 은평 소방서에는 있었다.

“이런 X부랄!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되는 거야!”

밤마다 욕지거리에 가까운 비명을 외쳐 가며 울음에 가까운 하소연을 토하는 소방관이.

물론 그 소방관은 이성하였다.

“좀 더 빨리 안 뛰어!”

“뛰, 뜁니다!”

은평 소방서의 자존심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특별히 자원한 선배들에 의해 이성하의 지옥 훈련이 진행 중이었다.

그 덕분에 이성하의 몸은 나날이 변해 갔다.

“와…… 저놈 근육 봐라. 완전히 각 섰는데?”

“그러게요. 잘 빠졌네요. 대회 진짜 기대해 봐도 되겠는데요?”

지나가던 동료들이 그런 이성하의 몸을 보며 감탄할 정도로, 몸을 지탱하던 근육이 한층 두터워졌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전혀 좋지 않았다.

“야, 넌 당분간 닭만 먹어.”

“…….”

“인마. 다 너 생각해서 그래. 속도 내려면 체중이 관건인 거 몰라?”

식단까지 강제되는 삶이었다.

“선배님. 그래도 콜라는…….”

“안 돼, 새끼야. 운동한다는 놈이 무슨 탄산이야?”

매번 출동을 다녀오면 기분 좋게 들이켜던 콜라까지 강제된 삶이었고, 그건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까지…….”

“미안, 아들. 대장님이 특별히 부탁하시더라고. 호호호.”

엄마까지 그런 선배들에게 포섭됐는지, 집에서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게 무려 두 달이었다.

“이로써 은평 소방서의 소방 기술 경연대회를 위한 시연회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대회 참가를 며칠 앞두고 각 서마다 진행되는 시연회가 열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지옥이 끝났고, 그에 이성하는 눈시울을 붉혔다.

“드디어 끝이다!”

비로소 대회의 날이 다가와 훈련이 끝났다는 사실에, 기쁨의 고함을 지른 것이다.

“얼씨구? 누가 보면 대회 이미 1등한 줄 알겠네.”

“그러게. 정신 안 차릴래?”

그 모습에 지금까지 훈련을 지휘하던 선배들이 피식 웃으며 엄포를 내뱉었지만, 이성하에게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X발…… 이제 타이어 안 돌려도 돼.’

콜라는 아직 못 먹지만,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타이어와 이별한다는 즐거움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으니까.

그랬기에 기다리던 대회 날을 맞이하는 아침은 즐거웠다.

“내 두 사람은 한 사랑보다 깊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를 마쳤고, 그렇게 나와 준비한 짐을 챙기고는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대회가 열리는 곳은 도봉구에 위치한 서울소방학교.

이성하의 경우엔 중앙소방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실제로는 처음 가지만, 길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와, 사람 많네요.’

[당연히 많지. 가족들도 다 온 거야. 소방인들한테는 이게 올림픽이거든.]

여기가 대회장이라는 걸 알려 주듯 소방학교의 입구부터 응원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와, 우리 소방서만이 아니었네.”

이 대회를 준비하는 소방관들의 집념이 느껴져서였다.

<세계로 미래로 웅비하는 강서 소방!>

<열정 도봉! 패기 도봉!>

<서초의 건아들아! 오늘은 우리들의 날이다>

<최강 강북! 무조건 우승한다!>

각 소방서의 천막마다 붙어 있는 응원 현수막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으니까.

하지만 이내 한 현수막을 보고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서울은 단지 통과점일 뿐. 우리의 상대는 전국!>

‘하…….’

[큭큭큭. 어쩌겠냐. 이번에도 우승해서 전국 간다는데.]

어느 서인지 적혀 있지 않지만, 딱 봐도 은평인 걸 알 수 있는 현수막에 민망함이 솟아났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빠른 속도로 현수막으로 달려갔다.

“어! 성하 왔네요.”

“이성하! 이쪽이다 빨리 와!”

“아, 조용해요. 좀.”

자신을 봤는지, 그 아래서 선배들이 큰 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외쳐 댔으니까.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얼굴에 이성하는 바싹 얼고 말았다.

[어? 정철호다.]

‘이크.’

1팀 팀장 정철호가 먼저 도착해 있어서였다.

“왔냐? 테이핑부터 해.”

이성하를 보자마자 테이핑부터 하라며 스포츠 테이프를 던져 주는 정철호였고, 그에 이성하는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알겠습니다!”

“뭐야? 이성하, 너 군인이야?”

“그래. 인마. 너 왜 이렇게 얼었어? 누가 보면 잡아먹는 줄 알겠다.”

그 모습에 응원을 위해 와 있던 허석훈과 오성수가 놀려 댔지만, 이성하는 전혀 웃지 못했다.

[큭큭큭. 군인이란다.]

‘제길. 두 달이나 굴려져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어떡해요.’

지난 두 달의 지옥을 계획한 주범이 눈앞에 정철호라서였다.

“이성하, 오늘부터 네가 할 훈련 스케줄이야.”

“훈련이요?”

“그래. 진압대의 최 팀장과 내가 앞으로 네 훈련을 도울 거다. 훈련은 출동이 없는 오후와 퇴근 이후 2시간. 물론 거부는 없다. 이유는 알지?”

난데없이 찾아와 훈련 스케줄을 내밀고는 거부는 없다며 미소를 짓던 정철호 덕분에, 이성하는 두 달을 지옥 속에서 보냈다.

“어쭈? 안 뛰어?”

“허억. 팀장님, 조금만.”

“10초만 더 쉬면 한 바퀴 더 추가다.”

“뛰, 뜁니다!”

마치 소방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 정신없이 몰아치는 정철호 덕분에 말 그대로 피땀 흘리며 두 달간 훈련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성하는 훈련 기간이 종료됐음에도 정철호의 앞에만 바짝 긴장했다.

“성하야. 나 등에 테이핑 좀 다시 해 줄래?”

“알겠습니다!”

지금처럼 정철호의 목소리만 들리면 몸이 긴장해 자동으로 움직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정철호가 싫다는 건 아니었다.

정철호 역시 이성하와 마찬가지로 이번 최강소방관에 같이 출전했다.

그래서 정철호가 이성하의 훈련을 감독한 거였고, 그 증거가 눈앞에 보이는 등이었다.

[근육 봐라. 제대로 뭉쳤네.]

‘그럴 만하죠. 방화복만 안 입었지 훈련은 거의 똑같이 하셨잖아요.’

말이 감독이지 정철호 역시 같은 훈련을 해 온몸에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랬기에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여기 괜찮으십니까?”

“조금 아파.”

“조금이 아닌 거 같은데요?”

“이 새끼 말대꾸하냐?”

“에이, 저도 아파서 그럽니다.”

무섭긴 하지만, 그간 같이 훈련한 덕분에 사실은 팀메이트나 다를 게 없는 게 두 사람의 관계.

정철호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그 장난을 대충 넘겼다.

“새끼. 다 됐으면 본부석에나 가자.”

“본부석이요?”

“어, 좀 있으면 추첨 시간이래잖아.”

멀리 대회를 주관하는 본부석을 가리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에 이성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최강소방관 종목에 참가하시는 소방관분들은 모두 본부석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안 그래도 좀 전부터 본부석에서 최강소방관에 참가하는 소방관들을 호출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소방 기술 경연대회는 각 소방서끼리 타임어택으로 기록을 겨루는 대회였다.

워낙 많은 소방서에서 출전하기에 한 팀씩 돌아가며 경쟁을 펼치는 대회.

그 때문에 모든 경기는 시작되기 전 상자에서 번호표를 뽑는 식으로 순번을 정했다.

공평하게 모두가 모인 앞에서 돌아가며 번호표를 뽑는 방식으로.

그 때문에 본부석 앞에는 꽤 많은 수의 소방관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어이쿠,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이게 누구야. 잘 지냈어?”

지역은 달라도 안면은 있는 듯 서로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고, 그 인사는 이성하의 곁에 있는 정철호에게도 향했다.

“선배님, 잘 지내셨죠?”

“와, 이게 누구야. 김병호 아니야?”

“하하하. 딱 일 년 만입니다. 선배님.”

“선배님, 저도 있습니다.”

“어, 유철이. 오랜만이야.”

대회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지, 먼저 웃으며 정철호의 손을 잡아 온 것이다.

그런데 그 인사가 이성하에게도 향했다.

“선배님, 혹시 이 친구가 그 친구입니까?”

“선배님, 소개 좀 시켜 주시죠.”

마치 이성하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철호에게 웃으며 소개를 부탁했고, 그에 이성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우리 아이언 맨?”

정철호의 입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별명 때문이었다.

“맞아요. 소개 좀 해 주세요, 선배님. 많이 궁금했거든요.”

“저도 그렇습니다, 선배님. 안 그래도 대회에 나온다고 해서 기대 중이었습니다.

‘하…….’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의 모습에, 눈앞의 소방관들이 그때의 기사를 보고 자신을 소개해 달라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창피할 일은 아니었다.

“하하하.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나 강동소방서의 김병호야. 기사 잘 봤어. 진짜 보면서 감탄했어.”

“나도 그래. 도봉 소방서의 양유철이야. 진짜 이번에 큰일 했더라고.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번 대회에 나온다고 해서 기대 중이었어. 반가워.”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왜 그러냐며 웃으며 손을 내미는 소방관들이었고, 그 뒤로도 몇 명의 소방관이 아는 체를 해 왔다.

“이성하 소방관? 반가워요. 중부 구조대의 현성호라고 합니다.”

“기사 봤습니다. 정말 대단하던데요? 나중에 꼭 한번 같이 일해 봤으면 좋겠어요.”

이성하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이성하가 보여 준 행동에 많은 소방관들이 깊은 감명을 받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매번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큭큭큭. 창피하냐?]

‘조금요. 다 저한테는 선배들이잖아요.’

눈앞의 소방관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반가워하는 모습에 뿌듯한 감정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소방관들이 전부 그런 건 아니었다.

최강소방관에 나오는 소방관은 전부 스스로의 능력에 자신이 있는 이들이었다.

각자가 본인이 속한 소방서에서 대표로 꼽힐 만큼 능력 또한 출중했고, 그러다 보니 이성하에게 비웃음을 던지는 이들이 있었다.

“쟤가 이성하야? 별거 아닌데?”

“괴물치고는 몸이 그렇게 크지 않네요. 충분히 할 만 한데요?”

“소문이 과장됐네. 저 정도면 뭐 가볍게 바르지.”

생각보다는 평범해 보이는 이성하의 모습에 소문이 과장됐다며 마치 들으라는 듯 비아냥을 던지는 소방관들이.

그 때문에 정철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성하에게 충고의 말을 던졌다.

“이성하, 신경 쓰지 마라.”

“네?”

“쟤들 말하는 거 말이야. 일부러 너 흥분시켜서 경기 때 실수하게 만들려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혹시나 이성하가 그 말에 흥분해, 나중에 경기에서 실수할까 걱정이 됐던 것이다.

물론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미안하지만 이성하에게 저런 이들은 경쟁 상대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들었던 타이어가 몇 킬로더라…….’

지난 두 달간의 지옥이 떠올랐기에.

피식.

저런 이들에게는 질 자신이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