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80화 (80/235)

<강철 소방대 80화>

80화. 까짓것 뭐 (2)

소방 기술 경연대회는 매년 전국 소방공무원들의 실력 향상과 사기 고취를 위해 진행되는 대회였다.

전국을 대표하는 소방관들이 한 곳에 모여 각종 소방 기술을 시연하며 서로의 실력을 겨뤄 보는 대회.

그리고 이 소방 기술 경연대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시도별로 진행되는 지역 소방 기술 경연대회와 그 대회의 우승팀끼리 대결하는 전국 소방 기술 경연대회로.

그리고 이성하가 참가하는 건 그중 지역 소방 기술 경연대회에 해당되는 서울 소방 기술 경연대회였다.

이곳에서 우승한 팀이 서울 지역의 이름을 걸고 전국 소방 기술 경연대회에 나가는 만큼, 어떻게 보면 메인 대회를 위한 예선전에 해당하는 대회.

하지만 예선이라고 우습게 볼 대회는 아니었다.

서울시는 대한민국의 수도에 해당되는 만큼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 있는 대도시였고, 그 인구 수만큼이나 설치된 소방서의 숫자 또한 전국 최고를 자랑했다.

‘스, 스물네 개? 소방서가 이렇게 많아요?’

[서울이잖아. 어떻게 보면 오히려 적은 거라고 봐야지. 인구 수 대비 몰라?]

“…….”

참가를 결정하고 대회의 정보를 찾아보던 이성하가 할 말을 잃을 정도로, 가장 치열한 예선이 펼쳐지는 곳이 서울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정신을 바로 했다.

‘안 돼. 정신 바로 차려야지. 무조건 우승해야 해.’

처음에는 출전을 꺼려한 대회였지만, 지금은 우승으로 마음을 바꾼 상태였으니까.

처음엔 크게 우승에 관심이 없었다.

‘에휴…… 할 수 없지. 그냥 열심히만 해야겠다.’

출전하기는 하지만 따로 대회를 준비할 여유가 없다는 생각에 그저 할 수 있는 것만 하겠다는 생각이었고, 실제로도 이성하에게 대회를 준비할 여유는 없었다.

뻐꾹- 뻐꾹- 뻐꾹-

“출동이다, 빨리 나가!”

“알겠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반복되는 출동 명령에.

“후우, 고생했다.”

“선배도요. 먼저 들어가세요. 정리하고 들어갈게요.”

“그래. 얼른 들어와.”

“네. 선배.”

출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정리하는 게 소방관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바뀐 게 며칠 전이었다.

“이성하, 어디 있어?”

“어? 선배님들 비번 아니십니까?”

“지금 비번이 문제야? 너 최강 소방관 나간다며.”

이성하의 출전 소식을 들은 타 팀 선배들이 휴일인데도 이성하를 보기 위해 소방서에 들렀다.

“제가 나가긴 하는데…….”

“잘 생각했어.”

“네……?”

“잘 생각했다고 인마. 내가 너 먹이려고 집에 있는 홍삼 가져왔잖아. 이거 다 먹어야 돼. 무조건 우승해야 되는 거 알지?”

대회가 뭐라고 비번인데도 출근해 영양제까지 챙겨 주며 웃음을 짓는 선배들이었고, 그런 관심을 보이는 건 같은 대에 근무하는 선배들만이 아니었다.

- 야, 이성하. 너 최강 소방관 나간다며. 우승 가는 거지?

작년까지 한솥밥을 먹던 길현 센터의 2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 이성하. 부탁한다. 우승 꼭 해라.

- 지방대회가 문제가 아니야. 무조건 전국대회 입상이야. 기왕 할 거면 우승!

- 이 새끼. 네가 나갈 줄 알았다. 암. 너 아니면 나갈 놈이 없지. 내가 그날 꼭 비번인 놈들 모아서 응원 가마.

- 명욱 선배한테 이야기 들었지? 우리 다 응원 갈 거야. 진짜 믿는다, 성하야.

2팀장만 아니라 그가 있는 길현 센터의 모든 동료들이 이성하에게 우승을 바란다며 응원 전화를 걸어왔으며, 그보다 놀라운 건 현장에서 마주치는 타 센터의 동료들까지 이성하를 응원한다는 거였다.

“성하 씨. 이번에 대회 나가죠.”

“네…… 선배님도 들으셨어요?”

“그럼요. 기다리던 대회인데. 저 성하 씨만 믿습니다. 진짜 잘 부탁합니다. 진짜.”

“저도요! 우승 기원합니다!”

현장에서만 마주쳐 얼굴만 아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이성하의 우승을 바란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 온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전혀 이해 못할 모습이었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대회였어?’

이성하에게 있어 소방대회는 가뜩이나 바쁜 와중에, 훈련 시간만 뺏는 귀찮은 대회였으니까.

그런데 그 의문을 오성수가 풀어 줬다.

“몰랐어? 우리 4년째 무관의 제왕이잖아.”

“무관이요?”

“어, 서울 대회에서는 화재 팀이 4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전국대회만 나가면 입상을 못한다고 해서 무관. 거기다 대회의 꽃이라 불리는 최강 소방관은 서울 대회에서도 아예 입상 기록이 없어. 상처만 남은 우승이라고 해야 되나?”

은평소방서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화재 진압만큼은 4년 연속 우승을 거머쥘 정도로 서울 지역의 대표 강팀으로 꼽히는 소방서였다.

다른 종목은 몰라도 대표로 꼽히는 화재 진압만큼은 꼭 우승을 차지하는 우승 후보 소방서로.

하지만 그건 서울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전국에서 입상을 한 적이 없다고요?”

놀라서 반문하는 이성하의 말처럼 은평소방서는 전국대회만 나가면 죽을 쓰기로 유명한 팀이었다.

가장 치열한 서울 지역의 대표로 출전하면서도 전국대회에서는 아직 입상 성적을 못 내는 중이었고, 그 때문에 서울 지역 소방관들은 대회 때만 되면 자존심이 상했다.

“서울? 걔들 이번에도 하위권 아니었어?”

“서울을 왜 체크해? 주시할 건 경북이야.”

“그래. 걔들 신경 쓸 바에 경북이랑 부산 애들이나 신경 쓰는 게 더 낫지. 어차피 탈락할 애들인데 뭐.”

가장 치열한 예선을 치르는데도, 결과를 내지 못해 다른 지역 소방관들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게 그들이 속한 서울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평소방서는 모든 서울 지역 소방관들에게 운만 좋은 소방관이라는 눈초리를 받고 있었다.

“어. 그래서 무관의 제왕인 거야. 4년째 지역 대표로 출전해도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고. 그렇게 할 거면 다른 소방서에 양보하라고 해서 무관의 제왕.”

우승을 하지 못하면 자리라도 비키는 의미에서 무관의 제왕이라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은평의 자존심을 걸고 기필코 우승한다.’

이번 대회에 은평소방서의 자존심이 걸렸다는 생각에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렉스가 초를 쳤다.

[뻥치시네. 1계급 특진이라는 말에 눈 돌아갔으면서.]

전국대회에 출전해서 입상을 하면 1계급 특진이라는 부상이 따로 주어졌다.

해당 계급의 3분의 2이상의 근무 기간만 채우면 어떤 계급이든 승진 임용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성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에이, 눈 돌아갔다는 말은 심했다.’

[안 돌아갔냐?]

‘돌아간 건 아니죠. 그것 때문에 조금 더 의욕이 생긴 거죠.’

당당하게 그 때문에 의욕이 더 난 거라며 대답할 정도로, 특진이라는 부상에 마음이 혹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에휴, 이런 걸 소방관이라고. 너 아버지 보기 부끄럽지 않냐.]

그 말에 렉스가 혀를 차며 아버지까지 걸고넘어졌지만, 이성하는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

‘한 계급 차이면 월급이 얼마야? 무조건 입상해야지.’

상상만 해도 느껴지는 월급의 무게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참가할 종목을 얕보는 건 아니었다.

‘최강 소방관이라.’

이성하가 참가할 종목은 대회 유일의 개인 종목인 최강 소방관이었다.

소방 기술 경연대회의 유일한 개인 종목으로 주어진 과제를 누가 빨리 끝내느냐로 기록을 겨루는 종목이었고, 그 과제는 어떤 소방관이라도 메스꺼움이 느껴질 정도로 가혹했다.

[왜? PTSD 오냐? 소방학교 체력 평가랑 비슷하지?]

‘네, 너무 비슷해서 토 나올 거 같아요. 와, 이걸 또 하게 되네.’

렉스의 말처럼 잊고 있던 소방학교의 체력 평가가 떠오를 정도로 가혹한 과제를 통과하는 게 최강 소방관 대회.

물론 핵심은 달랐다.

‘이건 총 4개네.’

소방학교에서 진행했던 체력 평가가 총 8개의 과제를 통과하는 거라면, 최강 소방관 경기는 단 4개의 종목으로 이뤄졌다.

8개가 4개로 압축된 만큼 종목 모두 인간의 한계를 요구하는 타임 어택이었다.

‘1코스는 1분 30초, 2코스는 1분 45초…… 이게 뭐야?’

따로 규정은 없지만 매년 축적된 우승자들의 데이터가 쌓여, 각 코스의 통과 기록이 정형화돼 있던 것이다.

우선 경기는 장비를 모두 착용한 상태로 시작했다.

방화복은 상의만 착용해 하의는 반바지 상태로 가벼운 모습이지만, 헬멧과 호흡기를 모두 착용해 현장의 실제 무게와는 큰 차이가 없는 모습으로.

그리고 그 상태로 처음 들어가는 코스가 호스 끌기였다.

‘두 개면 9kg인가?’

두 개의 호스를 펌프차의 토출구에 연결해 정해진 지점까지 전개하고는, 그 뒤로 전개된 다른 호스 두 개를 빠르게 말아 정해진 박스에 안전하게 넣는 게 첫 번째.

두 번째는 20kg의 물통 2개와 70kg의 마네킹을 정해진 지점까지 운반하고는 로프를 타고 3m 높이의 벽을 넘는 거였고.

세 번째는 두 개의 복식 사다리를 벽에 세우는 것과, 20kg의 물통 2개를 들고 7m 높이의 훈련탑에 올라 두 개의 호스를 끌어올리는 거였다.

마지막으로 전력을 다해 11층 높이의 훈련탑 정상에 도착해 설치된 종을 망치로 타격하는 것까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합이 6분을 넘어선 안 됐다.

[전부 5분대네.]

‘그러게요. 6분대 우승자가 한 명 있긴 하지만, 우승하려면 5분 안에 들어와야 돼요. 이거 장난 아닌데요? 하. 진짜.’

이성하가 말하면서도 허탈해할 정도로, 엄청난 근력과 스피드가 요구되는 게 최강 소방관 경기였다.

그러다 보니 이성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쳇, 장갑만 온전했어도.’

최강 소방관의 경기 내용이 모두 힘을 쓰는 종목이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힘을 내려면 평소 손에 맞는 장갑을 써야 하지만, 지난 화재에서 렉스가 깃든 장갑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으니까.

그 때문에 렉스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장갑 아무래도 새로 사야겠죠?’

새로운 장갑을 구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다.

[사야지. 안 그럼 맨손으로 구할 거야?]

그 모습에 렉스가 피식 웃으며 반문했지만, 이성하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아쉬워서 그렇죠. 렉스도 있는데 다른 장갑을 끼는 게.’

렉스가 있음에도 새 장갑을 구해 대회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미안한 감정이 든 것이다.

하지만 렉스는 그런 이성하의 말에 핀잔을 던졌다.

[야. 어차피 오래 돼서 얼마 버티지도 못했어. 이 정도면 충분히 오래 썼고, 장갑 안 쓴다고 해서 내가 어디 가는 게 아니잖아. 너 설마 나 버려 두고 다니려고 그래? 정말 그러는 거 아니지?]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버리지만 말라며 피식 웃음을 지었고, 그에 이성하 역시 과장된 웃음을 지었다.

‘에이, 쓸데없는 소리를. 내가 렉스를 어디 두고 다녀요. 어딜 가든 챙겨 갈 건데.’

자신이 신경 쓸까 일부러 장난을 치는 렉스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꼭 우승해야지.’

동료들도 그렇지만 언제나 든든히 옆을 지켜 주는 렉스가 있기에 꼭 우승하겠다고.

하지만 이성하는 몰랐다.

“야, 이성하 훈련 어떻게 할 거야?”

저 멀리 은평소방서의 훈련탑에서 이성하의 훈련계획을 짜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반 기본적으로 출근과 퇴근할 때 방화복 입고 10km 구보는 어떻습니까?”

“모든 무게는 두 배로 하시죠.”

“아예 평상시에 폐활용 기르는 마스크 끼우고 활동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게 단기간 트레이닝에는 좋더라고요.”

듣기만 해도 끔찍한 훈련 스케줄을 읊어가며 웃음을 짓는 사람들의 모습에 같이 있던 오성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새끼 불쌍해서 어떡하지…….’

눈앞의 소방관들이 은평소방서의 각 대를 운영하는 팀장들이기에.

‘잘 가라. 성하야.’

마음 깊이 이성하의 명복을 빌어 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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