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78화 (78/235)

<강철 소방대 78화>

78화. 비번 (8)

* * *

상태가 위중했던 이성하는 빠르게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쪽으로요! ABGA(동맥혈가스검사)부터 할게요!”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잠실 병원의 의사들이 빠르게 응급실로 옮겨 처치를 시작한 상황.

하지만 그런 빠른 조치와 다르게 상황은 좋지 못했다.

“혈압 95에 60. 산소포화도는…… 젠장! 인투베이션(기도삽관) 준비해 주세요! 바로 달고 고압산소치료실로 가겠습니다!”

담당 의사가 상태를 파악하자마자 인투베이션을 단 채 고압산소치료실로 이동할 정도로 체내의 산소포화도가 너무 낮았고, 결국 이성하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중환자실로 올려졌다.

“어때?”

“외상도 문제지만 체내 COHB(카르복실헤모글로빈) 농도가 너무 높아.”

“몇 %야?”

“45%.”

“맙소사…… 최악이구먼.”

“최악이지. 너무 마셨어. 오늘이 고비야. 일단 의식이 깨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

처치를 끝낸 의사들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일산화탄소 상태였다.

그 때문에 보호자 자격으로 같이 병원에 왔던 김민정은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내가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흐윽.”

자신이 좀만 더 이성하를 단호히 말렸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김민정의 손을 잡아 주는 이가 있었다.

“아니에요. 울지 마요.”

뒤늦게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온 이성하의 엄마 강희은이었다.

“그게 왜 민정 씨 잘못이에요? 제 아들이 바보같이 앞뒤 안 가리고 무모한 건데. 그러니까 울지 마요. 어차피 저래 놓고 금방 일어날 거예요. 제가 자랑은 아닌데 소방관이란 족속들이 얼마나 끈질긴지를 잘 알거든요. 그러니까 걱정 마요. 금방 일어날 거예요.”

울고 있는 김민정이 안타까웠는지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다독거리는 모습이었지만, 김민정은 도저히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흐윽, 정말 죄송해요.”

자신의 손을 잡은 강희은의 손이 떨리는 게 느껴졌으니까.

“흐아아아앙.”

“에이, 울지 말라니까요.”

얼굴로는 웃지만 그녀의 손 역시 불안함으로 무섭게 떨리는 것에,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보다 더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제길…….’

두 사람이 우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울분을 토하는 사람이었고.

“민정 씨. 우리 이러다 쓰러지겠어요.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다 와요.”

“네, 어머니.”

그 사람은 잠시 후, 두 사람이 바람을 쐬러 나가자 겨우 용기 내 중환자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성하…….”

오늘 이성하에게서 목숨을 구조 받았던 김정호가, 자신을 구해 준 이성하를 만나기 위해 중환자실로 찾아왔던 것이다.

물론 김정호의 상태도 썩 좋지 못했다.

그 역시 오늘 재난의 희생자였던 만큼, 목과 어깨에 붕대를 감고 같은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김정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창피했다.

“젠장…….”

중환자실에 있는 이성하의 상태가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해서였다.

기껏해야 얼굴과 팔에만 붕대를 감은 자신과 달리 상반신 전체를 붕대로 감은 모습이었고, 그보다 중요한 건 얼굴에 쓰여 있는 인공호흡기였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그런 거야…… 흐윽.”

자신과 아들을 대신해 불길을 감당해 얻은 그 처참한 흔적에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성하와 달리 자신의 상태는 얼굴과 팔에 화상을 입은 것만 빼면 멀쩡한 상태였다.

“환자분 정신 드세요?”

“여, 여기는…….”

“병원이에요. 아이도 무사합니다.”

운이 좋았는지 병원으로 실려 온 지 얼마 안 돼, 의식을 차렸던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운이 아니었다.

깡! 깡! 깡!

손이 찢어졌는지 피를 흘리면서도 놀이기구를 향해 소화기를 내리치던 소방관을 기억했다.

“끄아아아아! 제발 밀려라!”

그런 손을 가지고도 안간힘을 쓰며 자신과 아들을 태운 놀이기구를 밀던 소방관을 기억했고, 그 때문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것도 기억했다.

“아들이 일어나서 아빠 없으면 슬플 거 아닙니까.”

누구보다 밝은 얼굴로 자신과 아들을 걱정하던 이성하가 있었기에 이렇게 무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건 아들이 아닌 이성하였다.

“소방관!”

“네?”

“저랑 같이 온 소방관 있죠? 그분 어떻게 됐어요? 괜찮아요?”

깨어나자마자 들은 의사의 말대로라면 지금 걱정할 건 아들이 아닌, 자신들을 대신해 불길을 뒤집어썼던 이성하였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성하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분은 좀 위독합니다…….”

“어, 어떻게요?”

“외상도 심하지만 일산화탄소 중독이 너무 심해요. 지금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그, 그럼…….”

“네…… 잘하면 의식을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코마입니다.”

깊은 의식 불명 상태를 뜻하는 코마 상태.

그래서 이성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린 거였다.

“흐윽. 왜 그랬어요! 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인공호흡기를 쓴 모습에, 금방이라도 이성하의 숨이 넘어갈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김정호의 목소리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삐이. 삐이. 삐이.

아직은 살아 있다는 걸 알리듯 심박 수 모니터 소리만 매정하게 울렸고, 그에 김정호는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나 미안하다고 사과도 못했단 말이에요…….”

자신에게 사과할 기회도 주지 않고 매정하게 떠나려는 이였기에.

“용서 안 해도 되니까 제발요, 으허허헝.”

그저 살아만 달라며 아이처럼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배고파…….”

어디선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배고파요…….”

처음에는 우느라 알아채지 못했지만 또다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그렇게 보이는 상황에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성하?”

방금까지 잠겨 있던 이성하의 눈이 살짝 떠 있는 것이다.

“나 밥 좀 줘요…… 배고파…….”

그것도 의식이 돌아왔는지 이해 못할 말을 칭얼대며.

그 때문에 중환자실은 다시 번잡해졌다.

“선생님! 이성하 환자 눈 떴습니다! 빨리 와 보셔야 할 거 같아요!”

그런 이성하의 상태를 알아본 간호사의 호출에.

“맙소사, 환자분 들려요? 잘했어요. 정말 잘 견뎠어요!”

정신없이 달려온 의사가 환희에 찬 고함을 질렀으니까.

그리고 그런 고함 속에서 김정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다행이야…… 흐윽. 정말 다행이야…….”

자신의 바람을 들어 준 이성하의 고마움에.

“으허허허허헝.”

살아나 줘서 고맙다며 아이처럼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 * *

이성하의 상태는 빠르게 호전됐다.

애초에 의식이 돌아온 이상 남은 건 회복에 필요한 시간뿐이기에 자연스레 일반 병실로 옮겨진 상황.

물론 일반 병실로 옮겨지자마자 큰 홍역을 치른 건 당연했다.

“안 돼. 움직이지 마.”

“엄마, 이 정도는 내가 해도…….”

“성하 씨, 어머니 말 들어요.”

“들었지? 가만히 있어.”

“네…….”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엄마와 김민정의 잔소리는 물론.

“이성하!”

“야이, 새끼야!”

“어휴, 씹어 먹을 새끼. 너 정말 뒤지고 싶냐?”

“하하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동료들이 일제히 병실로 찾아와 온갖 구박을 다해 댔으니까.

심지어 병문안을 온 건 구조대의 동료만이 아니었다.

“야이, 웬수 새끼야!”

“서, 성민이 형?”

신도림센터에 근무하는 소방학교 동기 도성민이 병문안을 왔다.

“이 새끼, 웃는 거 보니까 멀쩡하네.”

“그러게요. 어떻게 변하는 게 없냐.”

강동훈과 박민우 역시 소식을 들었는지 며칠 안 돼 병실로 찾아왔으며, 그보다 놀란 건 수십 통의 문자 메시지였다.

- 야, 이성하 너 괜찮아? 다쳤다며.

- 성하야 너 입원한 병실 어디야? 주말에 상필이랑 가려는데.

- 야이, 미친놈아, 너 맨몸에 그랬다며?

소방학교 시절, 나름 친하게 지내 연락처를 주고받은 동기들이 빠짐없이 문자를 보내와 이성하의 안부를 물었던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지?”

[그러게. 동훈이네는 그렇다 쳐도 다른 애들은 웬일이야? 다들 멀리 있어 가지고 명절에나 겨우 연락하는 애들 아니었어?]

“그, 그렇죠…….”

렉스의 말처럼 연락 온 동기들 대부분이 지방에 있어, 겨우 명절에만 연락을 주고받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잠깐만…… 저거 김정호 아니냐?]

“…….”

자신과 달리 상대적으로 가벼운 부상만 입어 일찍 퇴원했던 김정호가 놀랍게도 9시 뉴스의 초청 손님으로 나오고 있었다.

- 어렵게 모셨습니다. 그 당시 얼마나 긴박했는지 아직 부상을 떨쳐 내지 못한 모습인데요. 그때 정말 어땠습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었나요?

- 네. 정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소방관 분이 아니었다면요. 그때 그분이 절 어떻게 구했냐면……

호들갑을 떠는 아나운서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의무감 어린 표정으로 동아랜드의 화재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가 다급히 핸드폰을 찾았다.

“설마…….”

본능적으로 지금의 상황에 김정호가 관련됐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아니, 분명했다.

- 와, 대단하네요. 저도 기자님 보도를 듣고 그 분의 팬이 돼 버렸거든요. 이성하 소방관이라고 했나요?

김정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자 아나운서가 환하게 웃으며 이성하의 이름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사실이었다.

<오직 요구조자만 생각했다. 불길 속에 맨몸으로 뛰어든 소방관의 모습.>

동아랜드로 검색하자마자 누가 봐도 오글거리는 제목의 기사가 가장 윗줄에 있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그 순간, 한 소방관이 불길 속을 뚫고 나타났습니다. 불길이 뜨겁지도 않은지 본 기자와 아들의 상태부터 걱정했고, 그러고는 놀랍게도 한쪽에 멈춰 선 놀이기구의 안전장치를 부숴 그 위에 저와 아들을 태웠습니다. 그 상황에서 본 기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를 안은 소방관의 팔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도 그 소방관은 멈추지 않고 저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몇 톤이나 나갈지 모르는 놀이기구를……

그 내용 또한 차마 다 읽지 못한 채 페이지를 내렸을 정도로 과장된 구조 과정이 쓰여 있었고, 그 기사의 작성자가 지금 뉴스에서 나오는 김정호였다.

└ 기자와 아이를 구하고 위중한 상태에 빠져 있는 소방관.

└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불길과 사투한 이 시대의 영웅.

└ 맨몸으로 불길에 뛰어들고, 전원을 구조한 순간.

└ 사선에서 빛난 구조. 맨몸으로 불길 헤치고.

얼마나 맛깔나게 썼는지 다른 기자들이 그 기사를 인용한 모습이 밑으로 보였으며, 그에 이성하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누가 보면 너 아이언 맨인 줄 알겠다.]

“…….”

졸지에 원하지도 않는 이 시대의 아이언 맨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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