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77화>
77화. 비번 (7)
* * *
후룸라이드는 물 위에서 운행되는 놀이기구였다.
작은 수로를 따라 4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보트가 움직이며, 그중 총 두 번의 급강하가 이뤄지는 놀이기구.
그리고 그 두 번의 급강하 중 한 번의 급강하가 현재 요구조자들이 고립된 터널 코스였다.
이성하와 요구조자들이 고립된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수직에 가까운 낙하 코스가 있었고, 이성하는 그 경로가 현 상황에서 유일하게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후룸라이드!’
전력의 부재로 후룸라이드가 먹통인 상황이긴 하지만 오히려 잘만 사용하면 그걸 이용해 탈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다른 소방관들이 알았다면 당장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을 방법이었다.
전기가 끊어진 상황에서 보트가 움직일 리도 없을뿐더러, 만약 움직이더라도 터널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일 게 뻔했으니까.
그러나 이성하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기다렸다가는 늦어!’
마냥 잠실 소방대만 믿고 기다리기에는 요구조자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현실적으로 판단했을 때 제일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선택한 거였고, 실제 후룸라이드는 움직일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 입구까지만 레일로 이동하지, 터널부터는 물에 떠서 이동하는 게 후룸라이드였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후룸라이드로 다가가 물을 끼얹었다.
치이이이익!
이미 불길 속에 오래 방치된 후룸라이드였기에 가열된 열을 식히기 위한 행동이었고, 그 뒤에 하는 일이 밖에서 보던 현장지휘단장이 미친 짓이라고 기겁한 일이었다.
깡! 깡! 깡!
[더 세게!]
“으아!”
깡! 깡! 깡!
어떻게든 탈출에 성공하기 위해 가져온 소화기로 후룸라이드의 안전장치를 내려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행동은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끄으으.”
화르르르르!
뜨거운 불길 속에서 제대로 된 거치 부분도 없는 소화기를 손으로 잡고 내려치는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의 모습엔 흔들림이 없었다.
깡! 깡! 깡!
그 충격이 그대로 전해져 장갑 밖으로 피가 흘러내림에도 계속해 소화기를 내리쳤고.
파캉!
소화기가 충격을 버티지 못해 구멍이 뚫리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내리쳤다.
“제발 부서져!”
어차피 폭발할 위험이 있는 가스는 모두 빼 버렸다는 생각에, 자신의 손이 부서져라 전력을 다해 내리치고 있었다.
한마디로 광기 어린 모습이었다.
“저, 저 새끼 진짜 뭐야…….”
멀리서 보던 현장지휘단장조차 그 모습에 질린 기색을 보였으니까.
그리고 실제 이성하는 현재 미쳐 있었다.
“제발! 제발!”
깡! 깡! 깡!
어떻게든 이 지옥 같은 곳을 탈출하기 위해.
“제발 부서지란 말이다!”
자신의 손이 부서지든 말든 안전장치를 부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성이 닿았는지, 드디어 레일과 후룸라이드를 연결하는 안전장치가 부서졌다.
파직.
손이 찢어졌는지 이성하가 낀 장갑의 끝으로 피가 계속 흘러나왔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됐어! 빨리 요구조자들 옮겨!]
‘네!’
드디어 이 지옥 같은 불길 속을 빠져나갈 길이 만들어졌으니까.
그랬기에 지체 없이 김정호와 아이를 껴안았다.
“됐어요. 이제 나갈 수 있어요.”
“허억. 허억.”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던 김정호와 아이를 하나둘 보트 위로 옮겼고, 그 위로 물에 적신 수건을 덮고는 뒤로 돌아가 후룸라이드를 잡았다.
치이이익.
[X발. 탄다.]
열기 때문에 후룸라이드가 다시 달궈졌는지 렉스가 장갑이 탄다고 욕설을 내뱉었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끄아아아아! 제발 밀려라!”
안전장치는 부수긴 했어도 후룸라이드를 터널로 밀어야만 진짜로 이곳을 빠져나갈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안전장치를 부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다, 단장님. 저게 가능할까요?”
“미쳤어? 아무리 입구 부분만 밀면 된다고 하지만 사람이 둘이나 탔어. 사람이 없어도 밀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되는데 저걸 어떻게 밀어!”
지켜보던 현장지휘단장이 바로 고개를 저었을 정도로, 성인 남성 혼자서 밀 무게가 절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사람은 가끔 불가사의한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바로 자신의 가족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리고 소방관에게는 그 개념이 요구조자였다.
현장에 있는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한번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경험이 있었고, 그 때문에 현장대응단장은 불가능하다 말하면서도 결과도 보지 않은 채 건물을 내려가며 무전기를 잡았다.
“구조대의 반은 진입로 포기하고 반대편에서 요구조자를 받을 준비한다.”
- 네? 반대편이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은평서 소방관이란 놈이 요구조자를 데리고 탈출 시도 중이야. 아니, 탈출할 거 같다. 그러니까 빨리 움직여. 요구조자가 오면 바로 응급조치할 수 있게 빨리 움직이란 말이야!”
- 아, 알겠습니다!
이미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안전장치까지 부순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이번에도 기적을 보여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함을 질렀던 것이다.
아니, 바라는 게 아니라 믿고 있었다.
‘해 내라. 어린놈아.’
정말 기적이 있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터져 주는 게 맞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다행히도 이성하는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끄아아아아!”
끼익-
절대 포기는 생각하지 않는지 계속해 악다구니를 써가며 후룸라이드를 잡은 양팔에 힘을 줬고, 그렇게 가해진 힘에 기어코 후룸라이드가 조금씩 움직였다.
“끄아아아아!”
첨벙!
“미친. 단장님. 해냈습니다. 보트가 터널로 들어갔습니다!”
“좋았어!”
기어코 후룸라이드를 터널로 밀어내 지켜보던 소방관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화르르르르!
마지막 고비로 여겨지는 터널 끝의 불길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성하는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그대로 보트를 밀었다.
[더 빨리!]
“으으으윽!”
불길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대로 보트에 속도를 불어넣었고, 그 뒤에는 그대로 물속에 몸을 담갔다.
“후웁.”
머리까지 잠길 정도로 물에 몸을 흠뻑 담그는 모습이었으며, 그렇게 적신 몸으로 보트 위에 올라 그대로 요구조자들을 몸으로 덮었다.
‘좋아, 해 본다.’
불길을 통과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걸 택한 것이다.
물론 틀린 방법은 아니었다.
현장에서도 요구조자의 안전을 위해 소방관들이 불길을 몸으로 막는 건 간혹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지금 아무 장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두꺼운 판초우의를 입고 있었지만 그 재질을 생각하면 맨몸이나 다름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불길을 통과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X발, 왜 항상 이따위야!]
렉스의 짜증 어린 고함처럼 부상을 입을 확률이 굉장히 높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김정호도 마찬가지였다.
“하, 하지 마…… 콜록, 콜록.”
고통 어린 기침을 토하면서도 이성하를 떼어 내기 위해 그 손을 잡았으니까.
그 이유는 가슴 깊이 치밀어 오르는 한 줄기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도저히 이성하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늘 마주친 게 처음인데도 자신을 알아본 걸 보면 누군지를 정확히 안다는 거였고, 그렇다면 지금 이성하는 이래선 안됐다.
“콜록, 콜록. 나 김정호입니다. 내가 누군지 몰라서 이래요?”
악감정을 가지고 그가 꿈이라고 하는 소방관을 못하게 하려 한 사람이 김정호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 말에 가볍게 웃었다.
“그게 왜요?”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건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 상관없었다.
살인자건, 자신에게 나쁜 감정을 품은 사람이건 구해야 할 요구조자인 건 틀림없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눈앞에 아이가 있었다.
“아들이 일어나서 아빠 없으면 슬플 거 아닙니까.”
김정호가 소중히 품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어릴 때의 자신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손에 힘을 줬다.
‘할 수 있어.’
자신은 몰라도 이 둘만큼은 무조건 안전하게 탈출시킬 마음이었으니까.
하지만 불길에 접촉한 순간, 그 생각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미, 미친!
마치 등이 익어 버릴 거 같은 고통이 느껴졌던 것이다.
화르르르르!
아무리 판초우의에 물을 흠뻑 적셨어도, 그 열기까지 막아 주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끝까지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끄으으으으.’
행여나 요구조자들이 듣고 충격을 받을까 하는 마음에 속으로 신음을 참았고, 그 고통은 잠시 후 들려오는 소리로 보상받을 수 있었다.
쏴아아아아!
타고 있는 후룸라이드가 시원하게 낙하를 하는 소리였다.
화아아아악!
그에 자연히 후룸라이드를 잡은 손에 힘을 줬고, 그렇게 잠시 후 들리는 소리에 안도할 수 있었다.
“요, 요구조자다!”
“성공했어! 저 자식이 성공했다고!
불길을 빠져나오자마자 들리는 소방관들의 목소리에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소방관들이 일제히 달려옴에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일어나 요구조자들의 상태를 보고했다.
“남성은 방금까지 의식이 있었고, 아이는…… 아이는 실신한 상태라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체크 부탁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요구조자들의 상태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또한 소방관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에 가장 먼저 달려 나온 현장지휘단장이 이성하의 멱살을 잡았다.
“이 새끼야!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네 몸부터 챙기라고! 지금 네 상태가 더 심각해!”
열이 터져서였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에서 뭘 잘했다고 태연히 보고까지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을 보니 자괴감이 솟아올랐다.
“누가 이렇게 가르쳤어. 네 몸은 네가 간수해야 할 거 아니야!”
소속은 다를지언정, 같은 마음으로 일을 하는 동료가 부상을 입은 모습에 잘했다며 칭찬을 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단장님…… 기절했습니다…….”
“뭐?”
“그 자식 기절했다고요.”
멱살을 잡힌 이성하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이게 무슨…….”
밖으로 탈출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보고를 마치자마자 바로 실신한 거였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단장은 전율이 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새끼부터 먼저 병원으로 옮긴다.”
“네? 먼저요?”
“상황 보면 몰라? 일산화탄소를 마셔도 이 새끼가 더 마셨어. 그리고 이 새끼 지금 골절 상태야.”
“네?”
“손가락 부러졌다고!”
멱살을 잡을 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찢어진 장갑 사이로 손가락 두 개가 보기 흉하게 뒤틀린 상태였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독종 새끼.’
저런 상태로 후룸라이드를 밀었다면, 미는 내내 망치로 손가락을 내려치는 통증을 느꼈을 테니까.
그랬기에 나오는 건 경례였다.
척!
무모한 과정을 떠나 기어코 요구조자들을 구한 소방관을 향해 경례를 올렸고, 그건 다른 소방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억.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처절한 사투를 벌인 소방관의 모습에 소름이 차올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