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76화>
한편, 터널 안에서는 고립된 남성이 악에 받친 표정으로 손에 든 무언가를 휘젓고 있었다.
“안 돼. 저리 가!”
휘익~ 휘이익~
정확히는 터널 안으로 밀려오는 연기를 향해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필사적으로 휘젓고 있었다.
그런 남성의 뒤로 겁에 질린 한 아이가 있었다.
“흐윽. 아빠, 무서워.”
“괜찮아, 선호야. 아빠가 있잖아!”
자신의 아이가 뒤에 있기에, 그만큼 아버지는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밀려오는 연기를 그런 바람 따위로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화아아아아!
터널의 양 끝이 불바다가 된 탓에 계속해서 연기가 밀려왔고, 그에 남성은 들고 있던 잠바를 내팽개치고는 입고 있던 티까지 벗었다.
“끄으으으으!”
촤아아악.
온 힘을 다해 입던 티를 단번에 찢어, 보트의 아래로 차 있는 물을 적시고는 아이의 얼굴에 감았다.
“아들, 이거 얼굴에 감자. 이거 절대 풀면 안 돼.”
“응.”
더 이상 연기를 막아 낼 수 없어, 그 연기에서 아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을 조치한 것이다.
그 방법은 만약 소방관들이 봤다면 엄지를 치켜들었을 정도로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조치였다.
천이나 수건에 물을 적셔 얼굴에 감는 건, 일반인이 유독 가스 속에서 호흡기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단순히 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살면서 한 번을 경험하기 힘든 게 화재라는 재난이었다.
“부, 불이야!”
아무리 침착한 사람도 그 뜨거운 불길을 보면 겁에 질려 이성을 잃는 게 보통이었고, 그 때문에 화재는 대한민국에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재난으로 꼽혔다.
“으으으으.”
“신입! 뒤로 물러나!”
소방관들 또한 숱한 훈련과 실전을 겪어야만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게 화재라는 재난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이 어떻게 불길 속에서 이성을 유지하냐고?
‘제길, 또냐?’
이미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방관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화재에 친숙한 사람.
‘9년 전에는 아내를 뺏어 가 놓고, 이번엔 내 아들까지 뺏어 가려는 거야!’
공교롭게도 수년 전 화재에서 아내를 잃었던 김정호가 아들과 함께 불길에 갇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김정호는 차가운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가야 돼. 그대로 있으면 꼼짝없이 죽을 거야.’
소방관은 아니지만 화재로 아내를 잃어 본 경험 때문에,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화르르르르!
“제길.”
탈출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매섭게 피어오르는 불길에 막혀 걸음을 옮길 수 없었고, 그에 김정호의 의식이 천천히 흐려졌다.
‘아, 안 돼…….’
서서히 터널 안으로 차오르는 유독 가스에.
‘선호야…….’
그도 잘 알고 있는 일산화탄소 중독이 시작돼, 힘없이 아들을 껴안은 채 의식을 잃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들립니까!”
흐려지는 시야 속에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쏴아아아아!
고개를 들어 보니 터널의 입구에서 자신이 타고 온 보트 너머로 뿜어지는 하얀 연기와 함께,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서 있었다.
‘이, 이성하…….’
“들립니까!”
‘저 녀석이 여길 왜…….’
놀랍게도 조금 전 놀이공원에서 마주쳤던 이성하가 소화기를 뿜으며 불길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성하 역시 놀란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기, 김 기자님?”
설마하니 고립된 요구조자가 김정호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놀라는 건 잠시였다.
“콜록, 콜록.”
“기자님!”
김정호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괜찮아요…… 머리만 조금 아파요. 콜록. 콜록.”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기침을 토했고, 같이 있는 아들 역시 힘든 얼굴로 두통을 호소했다.
“아빠, 나 어지러워. 콜록. 콜록.”
김정호와 아들 모두 전형적인 일산화탄소 중독 증상을 겪는 상황인 것이다.
다행히 최악은 아닌 듯했다.
“기자님, 머리 아픈 지는 얼마나 됐어요?”
“시, 십 분 정도 된 거 같습니다. 콜록, 콜록.”
“꼬마야. 삼촌 얼굴 보여?”
“보여요…… 그런데 머리가 너무 아파요…….”
얼굴에 감은 옷가지 덕분인지, 김정호와 아이 모두 자신의 물음에 정확히 대답할 정도로 의식만큼은 또렷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혹시 몰라 직원에게 받아왔던 무전기가 울렸다.
- 성하 씨 들려요?
“네, 민정 씨 무슨 일이에요?”
익숙한 김민정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에 바로 회신을 했고, 그 이후 바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 들립니까? 잠실 소방서입니다.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드디어 기다리던 잠실 소방서가 도착한 것이다.
덕분에 대답하는 이성하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다.
“은평 구조대 소방사 이성하입니다. 현재 요구조자 두 명 모두 확보한 상태입니다.”
- 은평 구조대? 요구조자 상태는 어떻습니까?
“현재 두통 증상 있습니다. 십 분 정도 됐다고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는 앞으로 십 분이 고비일 거 같습니다. 어떻게 구출 진입로 확보되겠습니까?
현재 상황에서 탈출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소방관들이 드디어 도착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 화재를 진압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습니다.
“시간이요?”
- 화재로 인해 1층 전면부까지 완전히 연소 상태입니다. 이걸 진압하지 못하면 들어갈 수가 없어요.
“잠깐만요, 사다리차는요? 사다리차 없습니까?”
- 지금 오는 중인데 도착까지 10분 정도는 걸릴 거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지금 동아랜드로 들어오는 길이 막혔어요.
진입로를 뚫는 건 고사하고, 사다리차도 도착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었다.
[10분? 절대 안 돼. 그 시간 넘어가면 못 버텨.]
렉스의 말처럼 현재 요구조자들의 상태로는 그 시간을 버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보통 일산화탄소 중독은 농도에 따라 크게 8가지로 구분됐는데, 현재 이성하와 렉스가 판단했을 때 현재 요구조자들의 상태는 중간보다 위쪽에 해당되는 0.32%의 상태였다.
5분에서 10분 사이, 두통과 매스꺼움을 느끼고 난 뒤, 30분 즈음엔 사망에 이르는 게 0.32%의 농도.
이성하가 처음 보고할 때 괜히 10분을 고비라고 한 게 아니었다.
“안 됩니다. 이미 십 분 전부터 두통 증상을 겪고 있다고 한다고요!”
일산화탄소중독 환자들이 두통이 시작되면 20분 뒤에 사망하는 통례를 생각하면, 김정호와 아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밖에 없었다.
하지만 밑에 있는 소방관들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 건물이 완전히 연소돼 입구가 완전히 막힌 상황이라고요!
아무리 찾아도 진입로가 없었다.
이성하가 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모노레일을 통해진입하려 했지만, 이제는 전기가 끊어져 그 방법이 오히려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성하는 밑에 상황을 알 수 없었다.
현재 잠실 소방서의 말은 자신들이 진입할 때까지 대기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고, 그 말은 이성하가 들을 수 없는 명령이었다.
“콜록, 콜록.”
“서, 선호야, 괜찮아?”
“아빠…… 너무 아파. 머리가 아파. 콜록. 콜록.
자신을 믿고 바라보는 요구조자들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아니, 이미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10분 버틸 수 있을까요?’
[아니, 절대 무리야. 김정호는 몰라도 아이는 절대 버티지 못해. 알잖아.]
김정호는 그렇다 치더라도,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이의 고통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무전기에 대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럼 이쪽에서도 최대한 나갈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방법이 없다면 이곳에서라도 나름의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잠실 소방서 역시 그 말에 반대를 하지 않았다.
- 알겠습니다. 최대한 서두를 테니 일단은 물속에 몸을 담근 채 최대한 버티고 계세요.
현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어야만 해결이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무전기를 내려놨다.
‘허락은 받았다.’
오로지 사람을 살리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요구조자를 구하겠다는 생각만 뇌리에 가득했고, 동시에 이성하의 시선이 향한 건 입구 쪽에 멈춰 있는 후룸라이드였다.
[할 거냐?]
‘해야죠.’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보이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편, 그런 상황을 모르는 잠실 구조대는 진압대와 함께 진입로를 만들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젠장, 빨리 뚫어!”
“화점 잡아! 기훈아 그쪽은 아직이야?”
“다 잡아 갑니다! 이쪽만 잡으면 진입할 수 있습니다.”
“오케이, 다들 기훈이 쪽으로 집중 주수해! 어떻게든 진입로 만들어! 그래야만 구조대가 진입한다!”
불길이 계속해서 몸을 키우는 와중에도 저돌적으로 접근해 차츰차츰 길을 뚫었고, 다행히 그 노력 덕분에 계단까지의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공간 생겼습니다!”
“오케이! 진입한다! 단숨에 터널까지 올라간다!”
상황이 급박하다는 이성하의 보고에 그들 역시 필사적으로 진입로를 만들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시간 내에 3층에서 터널까지의 통로 화재를 제압하는 거, 하나뿐.
“십 분 남았다고 했지만 이십 분만 넘기지 않으면 돼. 어떻게든 그 안에 구해 낸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들 또한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에 독기를 품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무전이 울렸다.
- 다, 단장님!
반대편 건물에 올라가 상황을 주시하는 대원의 무전이었다.
“무슨 일이야?”
- 그게 이쪽으로 와 보셔야 될 거 같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 그 소방관이라고 했던 자식 심상치가 않습니다. 지금 사고치려고 하는 거 같다고요!
무전을 받은 현장지휘단장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내용이었다.
‘소방관? 그 은평 구조대라고 했던 놈인가?’
대원의 말대로라면 현장에 있는 소방관이 뭔가 일을 벌이려 한다는 건데, 자신이 알기로는 지금 소방관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물론 뭐라도 해 보겠다는 무전에 허락하긴 했지만, 그건 돌려 말해 요구조자를 챙기라는 말이었다.
“무슨 소리야? 그 자식 비번이라며. 방화복도 없다는 놈이 도대체 뭘 한다는 거야?”
일행으로 보이는 의사에게 비번일 때 놀러 왔다는 걸 들었기에, 방화복도 없는 소방관이 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방화복이 있다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요구조자가 둘이야. 그런 상황에서 뭘 한다는 거야?’
불길에 고립된 상황에서 진압대의 지원 없이 민간인 두 명을 데리고 탈출한다는 건, 어떤 구조대원이라도 불가능했으니까.
그랬기에 반대편 건물로 올라온 현장지휘단장은 눈앞의 광경에 고함을 질렀다.
“저 새끼 뭐하는 거야!”
자신을 소방사라고 밝힌 남성이 누가 봐도 미친 짓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