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75화 (75/235)

<강철 소방대 75화>

75화. 비번 (5)

[뭐?]

‘저거요! 모노레일.’

이성하의 눈에 잡힌 건 모노레일이었다.

실내 놀이공원으로 최대 규모의 부지를 자랑하는 동아랜드였던 만큼, 곳곳에 놀이공원을 돌아다닐 수 있는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었는데 그게 건물 위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것도 정확히 터널로 연결된 레일 위로 모노레일이 다니는 레일이 설치돼 있었고, 그곳을 통하면 요구조자가 있다는 터널로 진입이 가능해 보였다.

“직원분, 혹시 로프 같은 거 있습니까?”

“로, 로프요?”

“밧줄 말입니다. 얇은 거 말고 두꺼운 걸로요.”

높이가 좀 있긴 하지만 로프만 있다면 레펠을 통해, 충분히 내려갈 가능성이 보였던 것이다.

김민정으로서는 당황스러운 모습이었다.

‘로프?’

갑자기 다른 건물로 달려가는 모습에 직원과 함께 당황해 뛰어왔더니, 갑자기 로프를 찾는 말에는 이게 뭔가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김민정의 눈에도 건물 위에 떠 있는 레일이 들어왔다.

“……!”

로프를 떠올림에 자연스럽게 위를 봐서 보인 거였고, 그에 김민정이 고함을 질렀다.

“미쳤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비로소 이성하가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후룸라이드.’

레일 아래로 보이는 터널의 입구에 아빠와 아이가 탔던 것으로 보이는 후룸라이드가 멈춰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김민정으로서는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

‘미쳤어, 진짜 미쳤어.’

생각은 좋았지만, 그 방법 역시 심각한 맹점이 있었다.

요구조자가 고립된 곳은 화재가 발생한 건물 외곽에 설치된 터널이었고, 그러다 보니 그 터널 주위 역시 불바다가 된 건 마찬가지였다.

화르르르르!

후룸라이드의 레일 자체가 건물에 연결됐기에, 그 보트가 다니는 레일 또한 이미 불길에 휩싸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김민정은 절대 안 된다며 고함을 질렀다.

“안 돼요! 도대체 저길 어떻게 가려고 그래요!”

지금 이성하가 떠올린 진입로 역시 방화복이 없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경로였으니까.

그리고 이성하가 아니라도 구할 사람들은 있었다.

“기다려요. 화재가 일어난 지 시간이 꽤 지났잖아요. 곧 다른 소방관들이 올 거예요. 여기도 소방관이 있잖아요.”

바로 동아랜드를 구역으로 삼는 잠실소방서.

아직까지 그들이 도착하지 못한 건 이상했지만, 머지않아 도착하리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틀림없어, 곧 도착할 거야. 직원들이 신고했을 게 분명하잖아.’

자신과 이성하가 도착하기도 전에 건물 안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보안 직원들이었기에, 진압에 앞서 119로 빠르게 신고를 했을 게 분명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말에 관리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왜 그러세요?”

“그, 그게…….”

이상함을 느껴 말을 걸었더니 아예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이었고.

“하하하…… 설마 신고 안 하신 건 아니죠?”

그에 예상이 틀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웃으며 물어봤지만, 팀장은 그 믿음을 배신했다.

“죄송합니다…….”

“저, 정말이에요?”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왜 안 했어요! 왜!”

딱 봐도 보안 직원이라고 보이는 이들이 화재가 일어났음에도, 소방서에 신고를 안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20분이면 뻔하지.]

‘네, 덮으려고 했겠죠.’

이미 화재가 발생한 지 20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아무리 차가 막히건 다른 곳으로 출동을 나갔건 어떤 소방서라도 신고에서 출동까지 20분이나 걸리는 경우는 없었고, 만약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이유는 신고의 부재뿐이었다.

[죄책감은 느끼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

‘느껴야죠. 신고만 했다면 벌써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테니까요.’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소방관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에, 직원들이 신고 없이 상황을 덮으려 했다는 것을 이미 알아차린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직원에게 별말을 하지 않았던 건.

“민정 씨, 그만해요.”

“하지만.”

“지금 말한다고 달라질 게 없잖아요.”

지금 와서 잘잘못을 따져 봐야 변하는 게 없어서였다.

‘지금쯤이면 누가 신고했겠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피를 시작한 이상 늦었지만 신고가 됐을 게 분명했고, 그렇다면 중요한 건 앞으로의 일이었다.

“직원분.”

“네…….”

“아까 말씀드린 로프 좀 구해 주세요.”

“로, 로프요?”

“네. 늦었지만 사람은 구해야 할 거 아닙니까. 저대로 죽게 놔둘 거예요?”

“…….”

잘못을 질책하기보다는 팀장의 책임감을 건드려 구조에 도움을 주길 바랐던 것이다.

다행히 그 선택은 옳은 결정이었다.

“구, 구할 수 있습니다. 관리실에 있습니다.”

“그럼 혹시 판초 우의 같은 것도 있습니까?”

“작업용 우비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있습니다. 두꺼운 걸로요!”

“그럼 그것도 부탁드릴게요. 아, 휴대용 소화기도 같이요.”

“네! 애들 보고 가져오게 하겠습니다! 지, 진욱아! 형욱아!”

겁에 질려서 머뭇거리던 팀장이 금세 정신을 차리고는 이성하가 말한 것들을 준비해줬다.

거기다 일이 잘 풀리려는지 팀장이 한 가지 좋은 소식까지 가져왔다.

“그럼 소방관님, 모노레일도 준비할까요?”

“모노레일이요? 지금 놀이 기구 다 안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 아닙니다. 모노레일은 외부 전력을 사용해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전기가 나가 사용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던 모노레일의 사용이 가능하다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더더욱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해. 그럼 더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안 그래도 요구조자가 불길 속에서 얼마나 버틸지 가늠이 안 되던 상황에 모노레일의 사용이 가능해, 부족한 골든타임을 조금이나마 아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김민정의 의견은 여전히 반대였다.

“안 돼요.”

“민정 씨.”

“안 돼요!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건데요!”

근본적으로 바뀐 게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상황이 나아진 듯 말하고 있지만 방화복 없이 불길이 치솟는 레일 위로 진입하는 건 변함이 없는 상황.

그런데 판초 우의?

웃기지도 않았다.

소화기도 챙겨 간다고는 하지만, 이성하는 엄연히 혼자였다.

“불길 속이라고요! 성하 씨가 크게 다칠 거란 말이에요!”

혼자서 로프를 잡고 내려가다 보니, 맨몸으로 불길에 노출이 되는 건 똑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김민정의 생각이었다.

“아니요, 방금까지라면 그랬지만 지금은 달라요.”

처음이라면 그랬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모노레일의 사용이 가능하다는 건 다른 사람들도 레일 위로 올라가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었고, 이성하는 그걸 제대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두 분께 도움을 받을 생각이거든요.”

“우리요?”

“네, 소방관의 레펠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거든요.”

김민정과 팀장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된 레펠을 시도하는 것을.

당연히 두 사람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어떻게 돕죠……?”

그들이 알고 있는 레펠은 흔히 TV에 나오는 군경찰들의 레펠이었다.

로프에 고리를 걸고 혼자서 하강을 하는 게 그들이 알고 있는 레펠의 방법이었으니까.

뭐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너도 저랬잖아.]

‘그랬죠.’

이성하 역시 소방학교에 입소하기 전까지만 해도 레펠은 단독으로 하는 거라 생각했다.

“자, 모두 군대는 다녀오셨을 테니 레펠은 해 봤겠지만, 소방 레펠은 군대와는 좀 다릅니다.”

“다르다고요?”

“네, 소방 레펠은 2인 1개조가 기본입니다. 사람을 구하러 들어가는 레펠이기에 항상 양손이 자유로워야 하거든요.”

“양손이요?”

소방학교 교육 당시, 레펠을 타고 내려가려면 손이 줄을 잡아야 하는데 자유로워야 한다는 교관에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어서 들을 수 있는 교관의 말에 이성하는 물론, 모든 교육생들이 감탄을 흘렸다.

“네. 줄을 잡기 위한 손이 아닙니다.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한 손이기에 자유로워야 하고, 어떤 장비를 챙기는 상황이 될지 모르기에 항상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내려갑니까?”

“그래서 레펠을 할 땐 2인 1개조로 합니다. 파트너가 내려 주는 거예요. 본인 손의 역할을 파트너가 해 주는 거죠. 마찬가지로 파트너는 온전히 로프로만 동료의 안전을 확보합니다. 자신의 몸에 줄을 묶은 채 동료에 목소리에 의존해 로프를 내립니다. 오로지 서로 간의 신뢰로 움직이는 것, 그게 소방 레펠입니다.”

오로지 사람을 구하는 데만 집중된 레펠이었다.

양손이 봉쇄돼 로프에 매달려 있는 소방관은 물론이고, 그 손이 되어 주기 위해 몸에 로프를 감은 소방관 역시 생명을 거는 방법.

하지만 다행히 김민정과 팀장이 목숨을 걸 일은 없었다.

[야, 직원한테 와이어 완강기 있나 좀 물어봐.]

‘와이어 완강기요?’

[그래. 양쪽으로 고리가 있는 완강기 있잖아. 놀이공원이면 틀림없이 있을 거야. 그거면 저놈도 사용할 수 있지 않겠냐?]

놀이공원에는 항상 안전 점검을 위해 관리자들이 사용하는 와이어 완강기가 있었다.

한쪽에만 벨트가 있어 자동으로 내려가는 간이 완강기와 달리, 와이어 완강기는 반대쪽에 로프를 걸어 그걸 당기면 공중에서 멈추는 게 가능했다. 다행히 렉스의 말처럼 동아랜드에는 와이어 완강기가 있었다.

“여, 여기 있습니다. 시설팀이 사용하는 와이어 완강기예요.”

이성하의 와이어 완강기가 필요하다는 말에, 관리팀장이 바로 단단해 보이는 완강기 하나를 들고 온 것이다.

그랬기에 두 사람에게 보조를 맡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좋네. 이거라면 안전에는 문제없지.]

‘네, 단단한 곳에 묶으면서 풀면 되니까요.’

모노레일의 한쪽에 완강기에 건 로프를 감아 도르래를 사용하는 식으로 줄을 풀면, 여자도 보조를 할 수 있는 게 와이어 완강기였으니까.

그래서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하는 건 총 셋이었다.

“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완강기 사용해 보셨잖아요. 어렵지 않습니다.”

다른 직원이 할 수도 있었지만, 이 사태를 만들었다는 책임감에 모노레일에 오른 관리팀장과.

“저도 갈 거예요.”

“네, 안 그래도 민정 씨한테도 부탁하려고 했어요.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안 그래도 도움을 요청하려는데 스스로 나선 김민정과 진입을 시도할 이성하까지.

그러다 보니 동아랜드의 상공에서는 누가 봐도 말이 안 될 구조 작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잘하고 있는 거 맞죠?”

팀장이 모노레일의 문 끝을 발로 밀어 가며 필사적으로 로프를 잡고 있었고.

“내려요!”

“내리래요!”

김민정이 그런 문 앞에서 겁도 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안전대에 감아 둔 로프를 조금씩 풀고 있었다.

“잠깐 정지!”

“정지하래요!”

“네!”

로프에 매달려 소리를 지르는 이성하의 구령 아래 모두가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로프에 매달린 이성하는 사방을 향해 소화기를 분사하고 있었다.

[뿌려!]

‘네!’

쏴아아아아!

목과 팔에는 물에 적신 걸로 보이는 흰 수건을 매고 그 위로는 김민정이 불안하게 여기던 판초 우의를 걸쳐 꽤 우스꽝스러워 보였지만, 그 모습에 웃는 사람은 없었다.

화르르르르!

저 모습이 거센 불길에서 최소한의 자기 방어를 위해 갖출 수 있는 유일한 장비였으니까.

사실 장비도 아니었다.

치익, 치이익.

이미 튀는 불똥에, 입고 있던 판초 우의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건 물론, 물에 적셔서 묶었던 수건 역시 이미 열기에 마른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불이 꺼져요!”

흥분한 김민정의 고함처럼, 거짓말같이 불길이 잦아들었다.

쏴아아아아!

거침없이 뿜어지는 소화기에 레일 위의 불길이 천천히 힘을 잃었고, 그에 이성하의 발이 드디어 땅에 닿았다.

[가자.]

드디어 진입로를 확보함에.

‘돌입!

이성하가 불길 속으로 돌입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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