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74화>
74화. 비번 (4)
* * *
한편, 화재가 발생한 건물 안에서는 직원들이 불길을 진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야, 소화전 어디 있어! 소화전!”
“여기요!”
“좋아!”
쏴아아아아!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관리팀장까지 달려와, 전력을 다해 소화전과 소화기로 진압을 시도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 화재를 진압하는 건 불가능했다.
화르르르르!
한 번 불길이 일어나면 몇 개의 방수차가 동원돼야만 겨우 진압이 가능한 게 화재였다.
보안 직원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일반인에 가까운 직원들이 고작 소화전과 소화기 몇 개로 기세를 탄 불길을 잡아내는 건 마치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것과 같았고, 그러다 보니 상황은 최악으로 잇달았다.
“티, 팀장님, 밖에!”
“왜!”
“복도가 불바다가 됐어요! 우리 갇혔어요!”
불길을 진압하기 위해 앞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뒤쪽으로 확산되는 불길에 퇴로가 막히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제길, 뒤쪽부터 뿌려!”
“네, 네!”
그에 뒤늦게 소화전과 소화기의 방향을 뒤쪽으로 돌렸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안 돼요. 안 잡혀요!”
“으으으.”
놀이공원인 탓에 주변에 탈것이 많아, 사그라들어야 할 불길이 오히려 거세졌다.
“더 뿌려!”
“으으으.”
그 때문에 진화를 시도하면서도 흉험한 불길에 천천히 뒷걸음질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뒤쪽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화르르르르!
“맙소사…….”
“우, 우리 어떡해요.”
방금까지 진압을 시도하던 푸드코트 역시 완전히 불길로 휩싸여, 복도에 고립됐기 때문이었다.
“제길, 안 돼!”
쏴아아아아!
그 때문에 소화전 호스를 들고 있던 직원이 악에 받친 표정으로 물을 뿜어 봤지만, 불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화르르르르!
“마, 맙소사…….”
직원들의 절망 어린 표정을 즐기는지, 불길은 오히려 더 뿜어 달라며 거센 일렁임을 토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더 줄 것도 없었다.
“어? 이거 왜 안 나와!”
“저도 안 나와요.”
“이거 어떻게 해요, 팀장님!”
설상가상 소화기까지 다 떨어져 모두가 겁에 찬 비명을 지르며 팀장을 불렀고, 그 비명에 관리팀장은 사무치는 죄책감에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신고해야 했어…….’
알량한 자신의 선택에.
‘제길, 그깟 돈이 뭐라고.’
잘못된 걸 알면서도 문책을 받을까 두려워 119에 신고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이 미치도록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랬기에 직원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미안하다, 얘들아…… 다 내 잘못이야.”
잘못된 자신의 행동 때문에 모두가 목숨을 잃게 된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그때였다.
“……!”
거센 불길 속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들립니까!”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확실히 누군가의 목소리가 불길 너머에서 들렸고, 그 불길 너머에서 작게나마 일렁이는 실루엣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사, 사람?”
“진짜예요?”
“저기 봐. 사람이잖아!”
누군지는 모르지만 불길 속에 고립된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진입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를 한 것도 잠시,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무리야…….’
이미 불길의 흉험함을 경험한 상태라서였다.
화르르르르!
누군지는 모르지만 자신들도 실패한 저 불길을 뚫는다고?
그런데 이내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그그극!
불길 너머에서 무언가 긁는 소리가 들렸다.
쏴아아아아!
거기에 방금까지 자신들도 뿌렸던 소화기를 분사하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렇게 잠시 후 거짓말처럼 불길이 열렸다.
“팀장님!”
또 다른 보안 직원들이었다.
“김진욱! 이형우!”
“팀장님, 괜찮아요? 야, 너희 괜찮냐!”
놀랍게도 밖에서 건물 입구를 통제하던 보안 직원들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불길을 뚫고 나타난 것이다.
고립된 직원들이 난리가 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형!”
“진욱이, 인마!”
“으허허허헝. 살았어! 우리 살았다고! 흐윽.”
불길에 고립돼 모든 걸 포기한 순간, 동료들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영웅처럼 나타났으니까.
그러나 팀장은 이 상황이 얼떨떨했다.
“어, 어떻게…….”
자신들이 아무리 뚫으려고 해도 방법이 없던 불길을, 고작 두 명이 뚫고 나타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명이 아니었다.
“내가 아니야. 나는 말만 들은 거밖에 없어.”
직원들의 난리에 진욱이라 불린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우린 거들기만 했어. 저 소방관님이 다 하신 거야.”
다른 직원 역시 그 말에 웃으며 막 뚫고 왔던 불길 속을 가리켰고, 그곳에는 한 남성이 소화전으로 천장의 불길을 잡고 있었다.
“빨리 나와요!”
이성하였다.
쏴아아아아!
“얼른요!”
바이킹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화재가 진행된 곳으로 달려갔던 이성하가 지금의 구조를 지휘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팀장은 비로소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소방관.”
소방관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평생 불과 함께하는 소방관이라면 자신들이 모르는 어떤 노하우를 써서 불길을 뚫어냈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팀장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안에 사람 있습니까!”
화재가 일어난 곳에 이성하가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게 사람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누구세요? 이쪽으로 오시면 안 돼요!”
“소방관입니다. 건물 안에 사람 있어요?”
건물 입구에서 현장을 통제하는 보안 직원의 말에 바로 요구조자의 존재부터 물었고, 이성하는 그렇게 대답을 듣기도 전에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쏴아아아아!
[소화기 소리다.]
“젠장!”
듣지 않아도 귓가로 들리는 익숙한 소리에, 건물 내부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건물로 진입한 이성하 역시 푸드코트가 있는 2층에 올라와서는 인상을 찌푸렸다.
화르르르르!
직원들을 고립시킨 불길이 그 앞에도 나타나서였다.
[다른 쪽 찾아봐.]
‘네.’
그 때문에 다른 길을 찾으려고 했지만, 다른 길은 없었다.
“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뒤늦게 이성하를 따라온 직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반대쪽 출구가 있기는 한데 그쪽은 항상 잠가 놔서 이쪽으로밖에 못 들어갑니다. 불길 때문에 3층으로 돌아서 가는 것도 안 되고요.”
원래대로라면 통로 하나가 더 있어야 하지만, 동아랜드에서는 입장객들의 통솔을 편하게 하기 위해 한쪽 문을 잠가 둔 상태로 운영했던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어이없는 말이었다.
“하…….”
“죄, 죄송합니다.”
다중이용업소.
그것도 일반 다중이용업소가 아닌, 하루에만 수천 명의 이용객이 찾는 놀이공원이 그런 기본적인 소방법을 어긴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잘잘못을 따지는 건 나중의 일이었다.
화르르르르!
“제길…….”
서서히 자신이 있는 쪽으로도 다가오는 불길의 흉험함에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지체 없이 1층으로 내려와 계단 옆에 있는 소화전을 열었다.
[할 거냐?]
‘해야죠.’
렉스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며 소화전에서 호스를 꺼내 배관을 돌렸고, 그렇게 물이 찬 호스를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직원에게 넘겼다.
“무조건 제 위에 천장을 향해서만 물 뿌려요.”
“네?”
“천장. 무조건 제 위로만 물을 뿌리라고요.”
다른 통로가 없다는 말에, 눈앞에 있는 불길을 직접 뚫고 갈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당연히 직원은 그 말에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미쳤어요? 저길 어떻게 가요!”
소방관이라고 해서 도움을 주고 있었는데, 방화복도 없으면서 맨몸으로 불길을 뚫는다는 말에 미친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가 아무 생각 없이 그러는 건 아니었다.
“가능해요. 제 말만 따라 주면.”
복도가 불길에 휩싸인 건 맞았지만, 실제로 타는 건 복도가 아닌 그곳에 비치된 장식물이었다.
[팜플렛에 마네킹에 인형까지. 완전히 탈 것 천지네.]
혀를 내두르는 렉스의 말처럼 곳곳에 비치된 동아랜드의 장식물이 타는 거였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옆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식탁 하나를 꺼냈다.
‘이거면 되겠죠.’
[충분해.]
복도 한편을 밀 수 있도록 꺼내 온 식탁을 옆으로 바닥에 눕혔으며,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는 직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니다!”
“자, 잠시만요!”
쏴아아아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직원이 뿜어낸 물줄기를 우산 삼아, 그대로 복도의 탈 것들을 밀어붙인 것이다.
그래서 이성하와 직원들이 불길을 뚫고 온 게 가능한 거였다.
“좋았어!”
“밀어요! 밀어!”
불길이 붙은 장식물들을 그대로 밀어 버린 덕분에 길이 뚫린 거였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길을 뚫은 상황에서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빨리요!”
“가, 가요.”
“얼른 나가!”
다시 한번 고함을 지르는 이성하의 말에 고립됐던 직원들이 정신을 차리고 복도를 달렸고, 그렇게 이성하는 요구조자들을 구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제 만족해요?”
“네, 다행히 겨우 타이밍이 맞았어요.”
요구조자들을 안전하게 데리고 나와, 밖에서 대기하던 김민정과 웃으며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제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 좀 쉬어라.]
‘그래야겠어요.’
건물이 불타는 건 안타깝지만, 구해 낼 사람들은 다 구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이상한 게 보였다.
‘잠깐만요. 저게 뭐죠?’
건물 앞에 있는 모니터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전력선을 따로 쓰는지 놀이 기구들이 멈췄는데도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 안 영상에 물이 흐르는 한 터널의 풍경이 나왔다.
물 위로 레일이 설치된 터널이었으며, 그 레일 근처에 놀랍게도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
화질이 흐려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빠와 아이로 보이는 두 사람이 물속에 몸을 담근 채 팔을 휘젓고 있는 상황.
그 때문에 바로 직원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직원분! 이것 좀 봐 주세요!”
딱 봐도 고립돼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요구조자들의 모습에 위치를 알아야 했으니까.
“무, 무슨 일 있습니까?”
그에 직원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팀장이 달려왔다.
“여기가 어디죠?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요?”
“네, 여기요.”
그렇게 달려온 팀장에게 영상을 가리키며 요구조자들의 위치를 물었고, 그렇게 듣게 된 대답에 이성하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여기는 푸드코트 건물 3층인데…….”
“뭐라고요?”
“후룸라이드라고 물 보트 놀이 기구인데 지금 비추는 곳이 이 건물 3층입니다…… 보트가 3층에 설치된 건물 외곽의 터널을 통과해요…….”
“이런 썅!”
다 구했다고 생각한 건물에, 생각지도 못한 요구조자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건물을 돌아봤다.
‘3층!’
정말로 요구조자가 있다면 바로 구하러 가야 했으니까.
하지만 건물의 진입은 불가능했다.
화르르르르!
방금까지만 해도 2, 3층만 휘감던 불길이 어느새 1층까지 번진 상태였다.
“무, 물러나요.”
“뒤로요! 뒤로!”
그 흉험함에 근처에서 잠깐 숨을 돌리던 직원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고, 그런 상태에서 건물로 진입하는 건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성하 씨, 안 돼요.”
“하지만…….”
“미쳤어요? 들어가서 뭐 하려고요? 방화복도 없으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정색하며 고함을 지르는 김민정의 말처럼, 방화복도 없는 상태에서 불길로 진입해 봤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X발…….”
요구조자가 있음에도 멀뚱히 구경만 해야 되는 현실에.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휘익.
고개를 돌려 보니 영상 속에서 남성과 아이가 서로를 껴안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콜록, 콜록.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연기 때문에 호흡이 불편했는지 기침을 토해 내는 남성과 아이의 모습에, 세차게 양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두들겼다.
짝!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정신 차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의지를 불태운 것이다.
그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반대편 건물로 빠르게 달렸다.
‘방법이 있을 거야. 없을 리가 없어!’
길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진입한다는 구조대의 격언처럼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한 거였고, 그런 이성하의 눈에 기광이 맺혔다.
‘저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