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73화>
73화. 비번 (3)
* * *
동아랜드는 하루에만 수천 명의 이용객이 찾는 놀이공원이었다.
주말만 돼도 이용객 숫자가 만 명이 넘을 정도로,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꼽히는 대형 놀이공원.
그 때문에 동아랜드의 안전관리실은 그 규모가 어떤 놀이공원보다 거대했다.
“저거 뭐지? 15번 카메라에 잡히는 거 뭐야?”
“별거 아닙니다. 거미줄이에요.”
“그래?”
수많은 입장객이 찾는 곳인 만큼, 수십 개의 CCTV모니터를 설치해 놀이공원의 곳곳을 살피는 곳이 동아랜드의 안전관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시설에 반면, 안전을 담당하는 직원의 숫자는 굉장히 적었다.
“오늘 시큐리티 캐스트 몇 명이었지?”
“정학이가 오늘 쉬는 날이라서 열두 명이에요.”
평균 수천 명의 이용객이 찾는 놀이공원임에도 불구하고 놀이공원 곳곳에서 안전을 담당하는 보안 직원의 숫자는 겨우 십여 명에 불과했고, 그런 보안 직원들의 CP가 되는 안전관리실에 근무하는 직원 숫자는 그보다 더 적은 다섯 명이었다.
“그럼 우리까지 해서 열일곱인가? 오늘 뭐 특별한 거 없지?”
“뭐 있겠어요? 있어 봤자 미아 발생 정도겠죠.”
매일 사고가 발생하면 모르지만 실제로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보니, 최소한의 인력으로 유지되는 곳이 동아랜드의 안전관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다른 듯했다.
따르릉.
“네, 안전관리실입니다.”
관리실로 걸려 온 전화에 막내 직원이 밝은 음성으로 수화기를 들었는데, 그가 이내 다급한 표정으로 관리팀장을 바라봤다.
“팀장님, 3번 푸드코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뭐? 야, 비켜 봐.”
그 말에 관리팀장이 직접 CCTV를 조정해 직원이 말하는 3번 푸드코트를 틀었고, 그렇게 보이는 장면에 짜증 섞인 욕설을 토했다.
“미친놈들이 뭘 했길래 불을 낸 거야?”
정확한 상황은 보이지 않았지만, 푸드코트의 직원들이 주방을 향해 소화기를 뿌리는 장면이 보였던 것이다.
다행히 큰불은 아니었다.
“명준아. 3번 푸드코트에서 불 났거든. 빨리 1층에 있는 애들 데리고 가서 진화 작업 좀 해.”
- 3번이면 베네상스예요?
“어, 베네상스 치킨점.”
- 알겠습니다! 금방 갈게요.
“오케이.”
주방에서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CCTV 화면에 보안 직원들을 보내는 걸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런 팀장의 눈에 막내가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하려는 게 보였다.
“너 뭐 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그대로 막내의 핸드폰을 뺏었고, 그렇게 핸드폰에 찍혀 있는 번호를 확인함에 고함을 질렀다.
“야, 이 미친 새끼야. 119에 전화를 왜 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을 했는데 소방서로 연결되는 119 번호가 찍혀 있다는 사실에 기겁을 했던 것이다.
물론 막내의 행동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큰불이건 작은 불이건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서로 전화해 확인을 받아야 하는 건 안전관리실로서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동아랜드의 안전관리실에서 119로 전화하는 건 엄격히 내규로 금지된 조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119에 전화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이건 무조건입니다. 설령 부르게 되도 제가 부를 거니까 사고 일어나면 무조건 저한테 먼저 보고하세요. 알겠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매번 동아랜드를 담당하는 이사가 안전관리실에 찾아와서 몇 번이고 강조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금지된 조치 사항.
그리고 그 이유는 우습게도 회사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래요. 괜히 일 크게 벌이면 안 됩니다. 이곳에서 사건 터지면 단순히 여기 하나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그룹 전체가 시끄러워지니까요.”
동아랜드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걸 운영하는 그룹 전체에 나쁜 영향이 끼친다는 생각에, 자체적으로 내부에서 정리하는 게 동아랜드의 안전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119에 신고를 하는 건 먼저 담당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을 받아야 하는 문제였다.
“가만히 있어. 먼저 위에 보고부터 해야 되니까.”
그 때문에 팀장은 막내 직원을 따끔히 혼내고는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내 들을 수 있는 대답에 역시나라는 표정을 지었다.
- 보안 직원들 보냈다면서요. 그럼 신고하지 마세요. 어차피 큰불도 아닌데 내부에서 조용히 처리합시다. 알겠죠?
담당 이사가 큰일도 아닌데 왜 전화했냐는 듯 나무라는 투로 이야기하며 내부적으로 조용히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팀장은 자신을 쳐다보는 직원들에게 고개를 저으며 이사에 물음에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그래요. 팀장님만 믿어요.
잘못된 조치인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말을 무시하고 신고를 했다가는 그대로 회사에서 잘리게 될 결과를 잘 알아서였고, 다른 직원들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각자 전화를 들었다.
“호영 씨, 3번 푸드코트 내부 공사 중이라고 사람들 못 들어가게 안내판 좀 설치해 주세요.”
“명준 씨, 거의 도착했죠? 한 명 시켜서 안에서 식사하시는 분들 다른 푸드코트로 안내 좀 해 주세요. 적당한 핑계 대서요.”
항상 해 왔던 대로, 적당히 눈가림해 융통성 있게 상황을 조정하기 위해.
하지만 관리실 직원들이 착각하는 게 있었다.
“이게 뭐야…….”
“형, 이걸 우리가 어떻게 막아요…….”
현장에 도착한 보안 직원들이 도착한 푸드코트 안에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화르르르르!
단순한 불길이 아니라 주방 전체를 휘감은 불길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고, 그에 가장 먼저 연락을 받았던 직원이 기겁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 팀장님, 못 막습니다. 소화기로 잡힐 불길이 아니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소화기로 진압할 사이즈가 나오지 않는 불길에, 다급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엄마, 저기 연기 나.”
“응?”
불길이 너무 거세진 덕분에 서서히 건물 밖으로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연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3번 푸드코트는 동아랜드의 정문 부근에 위치해 있었다.
한마디로 메인 전력 설비가 1층에 전력을 공급하는 핵심 구역에 속했고, 그곳에 화재가 난 이상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위이이잉. 철컥.
“팀장님, 2번, 5번, 6번 구역 전력이 나갔습니다.”
“뭐? 설마?”
“네…… 그 구역의 놀이 기구 전부 셧다운됐습니다.”
“이런 썅!”
놀이 기구의 일부가 전력이 끊어지며 운행 중에 멈추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동아랜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된 건 당연했다.
“꺄아아아악!”
“현주야!”
“엄마아아아!”
놀이 기구가 전력이 차단돼 그대로 멈춘 덕분에, 탑승하고 있던 이용객들이 곳곳에서 비명을 질러 댔으니까.
그리고 그때.
“……!”
[왜? 또 느낀 거야?]
‘네. 뭔가 일이…….’
순간적으로 고동치는 심장의 울렁거림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김민정은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바이킹 처음 타세요?”
“네?”
“지금 무서워하고 있잖아요. 누가 보면 우는 줄 알겠어요.”
인상을 찌푸리는 이성하의 모습이 바이킹의 높이 때문에 겁을 먹은 듯 보여서였다.
이성하는 다른 의미로 인상을 찌푸렸지만, 김민정의 입장에서는 빠른 속도로 하강하는 바이킹에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바이킹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그그극.
공교롭게도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해 막 하강하려는 순간에 덜컥 멈춘 상태였다.
그 때문에 막 손을 들어 바람을 느끼려던 김민정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어어!”
낙하에 막 속도가 붙는 순간에 멈추는 바이킹 때문에 몸이 안전바 밖으로 쏠린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김민정을 이성하가 붙잡았다.
“괜찮아요?”
“고, 고마워요.”
욱신거리는 심장 덕분에 긴장하고 있던 상황이라 다행히 균형을 잃은 김민정의 몸을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할 상황은 아니었다.
가장 높은 지점에서 멈추다 보니 동아랜드의 광경이 한눈에 보였고,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두 사람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저거 불난 거 맞죠……?”
“네, 그런 거 같네요.”
건물 한편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에, 본능적으로 화재가 일어났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념에 잠길 시간은 없었다.
“으아아아앙.”
“이게 뭐야, 갑자기 무슨 일이야?”
같이 바이킹을 탔던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진 비명을 내질렀다.
높은 공중에서 기계가 그대로 멈춘 덕분에 모두가 혼란에 빠져 버렸다. 그 모습에 이성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나가야 돼.’
혹시라도 안전장치가 망가져 바이킹이 추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빨리 바이킹에서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탈출로는 있었다.
가장 밑에 위치한 바이킹의 선미에서 지상까지는 끽해야 2미터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그에 그대로 몸을 일으켜 안전바 밖으로 몸을 빼냈다.
“민정 씨, 손 줘요.”
“손이요?”
“네, 밑으로 내려가서 뛰어내려야 돼요. 생각보다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요.”
높이가 조금 있긴 하지만, 현재 바이킹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이성하의 행동을 미친 짓이라고 봤다.
“여기요. 꽉 잡아 줘요.”
이성하를 믿는 김민정은 안전바 밖으로 나와 그 손을 잡고 천천히 내려갔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내밀어진 이성하의 손을 거부했다.
“미쳤어요? 난 안 해요.”
“마, 맞아요. 그러다 떨어지면 어떡할 거예요?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거의 수직에 가깝게 공중에 멈춰 선 바이킹에 있다 보니, 내려가다 자칫 떨어질까 하는 두려움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걸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그 사람 소방관이에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먼저 내려간 김민정이 고함을 질렀다.
“은평소방서 구조대!”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리겠다는 듯 이성하의 소속을 밝혔고, 그에 방금까지 두려움에 찼던 사람들의 시선에 희망이 깃들었다.
“소방관?”
“저, 정말이야?”
“구조대면 사람들 구하는 곳이잖아.”
소방관.
그것도 가장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하는 구조대원이라는 말에, 조금씩 믿음 어린 시선을 보낸 것이다.
덕분에 지체되던 탈출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저 좀 잡아 주세요.”
“저, 저도요.”
사람들이 하나둘씩 용기를 얻고 손을 내밀었던 덕분에, 모두 무사히 바이킹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성하 씨, 저기…….”
“제길…….”
방금까지 연기만 피어오르던 건물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화르르르르르!
금방이라도 주변을 잠식할 것처럼 거센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고, 그 때문에 동아랜드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다.
“빨리 나가요!”
“아들, 엄마 꼭 잡아.”
“현정아, 빨리 와!”
순식간에 번지는 불길에 위험을 느낀 사람들이 정신없이 후문으로 대피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바이킹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그들을 따라 빠르게 후문 쪽으로 달려갔다.
“이쪽이야!”
“빨리!”
지금으로선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만이 저 불길에서 멀어지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그들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
‘제길…….’
자신은 소방관이었다.
비번이라 아무 장비도 착용하지 못해 일반인과 다름없는 신세였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소방관이 아닌 건 아니었다.
‘가야겠죠?’
결정을 했다는 듯 조용히 속으로 읊조렸고, 그 물음에 렉스가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
[당연한 거 아냐? 불을 뒤로하고 도망가는 소방관이 어디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불길을 뒤로하고 물러서지 않는 게 소방관의 신념이니깐.
그 때문에 코트 안에 넣어 놨던 장갑을 끼며 김민정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민정 씨, 죄송한데 저는 남아야 할 거 같아요. 먼저 빠져나가세요.”
첫 약속에서도 갑자기 이별을 고했지만, 이번에도 그래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 말에 김민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먼저 나가긴 뭘 나가요?”
흘러내리는 머리가 거슬렸는지, 머리끈으로 단단하게 묶으며 하는 말이었다.
“저 의사예요. 그것도 레지던트 2년차 외과 의사.”
자신 또한 남을 거라며 당연하다는 듯 턱을 치켜들었고, 그에 이성하가 피식 웃었다.
“그러네요, 의사.”
잊고 있었다.
그녀 또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모든 걸 걸고 의사가 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말리지 않았다.
“그럼 가요.”
더 이상 주저할 시간은 없다는 듯 그대로 불길이 치솟는 건물을 향해 달렸고, 그건 김민정도 마찬가지였다.
“네!”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이성하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탈출하는 사람들로서는 이해 못 할 모습이었다.
“저, 저 사람들 어디 가?”
“아, 몰라. 빨리 가. 진짜 위험할 거 같다고!”
모든 사람들이 불길을 피해 후문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에서, 두 사람만이 유일하게 불길이 치솟는 곳으로 달려가는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와 김민정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잠시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 길 좀 비켜 주세요.”
밀려오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꼿꼿이 화재가 일어난 곳을 향해 달려갔고, 그렇게 달려가는 눈빛엔 망설임이 없었다.
“가요!”
“네!”
소방관과 의사가 되며, 재난 현장을 두고 물러나라는 말 따위는 배워 본 적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