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72화 (72/235)

<강철 소방대 72화>

72화. 비번 (2)

이성하가 김민정과 약속을 잡은 날짜는 주말이 아닌 평일이었다.

- 그럼 다음 주 수요일 어때요?

“괜찮겠어요?”

- 네, 저 이번 주 연속 당직이라 다음 주 쉬고 싶은 날은 정할 수 있어요. 수요일에 봐요.

다행히 평일 중 하루가 김민정과 시간이 맞아 바로 약속을 잡은 상황.

그런데 그렇게 약속을 위해 동아랜드에 도착해 있는 이성하의 표정은 불편함이 가득했다.

‘하…… 이게 뭔 꼴이지.’

평상시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느덧 겨울이 다가온 덕분에 날씨가 쌀쌀해진 상태였는데, 평상시라면 패딩을 입었을 자신이 길게 늘어진 아이보리색 롱코트를 입고 있었다.

바지는 항상 입던 청바지를 입었지만 상의는 인디핑크색의 얇은 니트를 입었고, 그 때문에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성하는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큭큭큭. 네가 이런 옷을 입을 줄이야.]

‘그만 웃어요.’

[그렇잖아. 저번에 네가 딱 질색하는 스타일이라며.]

‘끄응.’

렉스의 놀림처럼 평상시 가장 질색하는 스타일로 옷을 입은 탓에,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이성하가 원해서 입은 건 아니었다.

“좋아요, 그럼 우리 지금 바로 쇼핑하러 가요.”

“네?”

“데이트 하는 데 옷 사야죠. 제가 코디해 줄게요.”

놀이공원에 가는 게 확정되자마자 형수인 정유경이 이성하를 납치하다시피 쇼핑센터로 이끌었다.

“어머, 이거 예쁘다. 이거 한번 입어 볼래요? 이것도 같이요, 성하 씨.”

“…….”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신나게 이성하에게 여러 옷을 입혀 봤고, 그렇게 확정된 지금의 복장을 이성하는 거절할 수 없었다.

“너무 예쁘다. 이걸로 해요. 진짜 잘 어울려요.”

“네…….”

자신이 골라 준 옷을 입은 이성하를 보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형수의 모습에 얼이 빠진 상태였다.

뒤에서 간절한 눈빛으로 손바닥을 비비는 오성수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다.

‘제발!’

‘하…….’

여자 친구가 흠뻑 좋아하는 모습에 무조건 그렇게 하라며 입을 뻐끔거리는 사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잠시 후의 상황이 두려웠다.

‘아…… 비웃을 거 같은데…….’

렉스처럼 자신의 복장을 보고 김민정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나타난 김민정은 이성하의 생각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풋, 오늘은 꾸미고 왔네요.”

“아, 그게…….”

“얼른 가요. 저 놀이공원 진짜 오랜만에 온단 말이에요.”

이성하를 보고 웃음을 터트린 건 맞았지만 그것도 잠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성하를 이끌었다.

“성하 씨 놀이공원 처음이라고 그랬죠?”

“아뇨. 처음은 아니고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한 번 왔었는데.”

“에이, 그럼 처음이죠. 그동안 새로운 기구가 얼마나 많이 생겼는데요. 나만 따라와요. 오늘 내가 제대로 가이드 해 줄게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이성하의 손을 끌다시피 하며 아이처럼 활짝 웃었고, 실제로 김민정의 기분은 너무 좋았다.

‘웬일이야, 꾸미고 오고.’

처음 약속 때와 다르게 누가 봐도 신경을 쓰고 나타난 이성하의 모습에 기분이 흡족했다.

평상시 이성하의 옷 입는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고, 그 때문에 평소에 안 하던 행동까지 도전해 봤다.

“우리 이거 껴 볼래요?”

노점으로 설치된 선물 가게의 너구리 머리띠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이걸요?”

“왜, 싫어요?”

놀라는 이성하의 반응에 김민정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고, 그에 잠깐 피식 웃음을 지은 이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뭐 한 번 해 보죠. 이렇게 끼면 되죠?”

“오, 잘 어울리는데요? 그럼 나도. 어때요?”

“잘 어울려요.”

“오케이, 그럼 이걸로 해요.”

“하하하. 네, 제가 계산할게요.”

아이처럼 좋아하는 김민정의 모습에 이성하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그 장단을 맞춰 주기로 한 것이다.

[너희 뭐 하냐…….]

그 모습에 렉스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성하는 상관하지 않았다.

“와, 죽는 줄 알았네.”

“그렇게 재밌어요?”

“네, 엄청요. 저 진짜 오랜만에 왔거든요. 성하 씨는 별로예요?”

“아뇨, 저도 재밌어요. 사실 이렇게 재밌을 줄은 몰랐어요.”

“그렇죠?”

“네.”

밝은 김민정의 기분이 전염된 탓인지 이성하 역시 지금의 순간이 너무 즐겁단 생각을 했으니까.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정신없이 놀이공원을 누볐다.

“꺄아아아악!”

“아아아아아!”

놀이공원에 오면 다 아이가 된다는 속설처럼 마음껏 비명을 지르며 놀이 기구를 즐겼고, 그렇게 즐기다 서로를 보고 미친 듯이 웃었다.

꼬르르륵.

꼬르륵.

“푸하하하하.”

“큭큭큭큭.”

서로의 배에서 울리는 소리에, 오늘의 약속이 사실 식사 자리였음을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그랬기에 두 사람은 일단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갖가지 음식점이 모인 푸드코트로 향했다.

“일단 밥부터 먹을까요?”

“그래요. 그래야 더 놀 수 있겠어요.”

놀 땐 놀더라도 일단 배는 채우고 놀겠다는 생각이었고, 그렇게 이동해 들어간 식당에서도 두 사람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여기 맛있네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하나 더 먹을래요?”

“하나 더요?”

“네, 사실 너무 놀아서 그런지 아직 배가 고파요.”

“하하하. 사실 저도 그래요.”

너무 열심히 놀았는지 라면에 김밥, 떡볶이까지 충분한 식사를 마쳤음에도, 배가 고파서 또다시 식사를 시키는 상황이 발생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저거 김정호 아냐?]

렉스가 막 들어오는 손님을 보고는 마뜩잖은 음성을 내뱉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정말 성화일보의 김정호가 식당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고, 그에 이성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 여기서 보네…….’

직접 대면한 적은 없었지만, 선배들이 하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 덕분에 그 얼굴과 가지고 있는 사연은 익히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김정호 역시 이성하를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건 마찬가지였다.

“흠…….”

그 역시 은평구가 아닌, 멀리 있는 잠실에서 이성하를 만나게 된 것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성하 씨, 누구……?”

“아빠, 누구야? 친구야?”

각자의 곁에 있는 김민정과 아이가 궁금증을 표해서였고, 그에 두 사람은 머쓱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아드님이신가요? 잘생겼네요.”

“네, 마침 오늘 쉬는 날이라서 놀이공원 왔어요. 성하 씨는 여자 친구분?”

“아니요, 친구예요. 오늘 마침 휴일이라 놀러 왔거든요.”

“아, 그래요? 아무튼 재밌게 놀다 가세요. 저는 이만.”

“네, 기자님도요.”

서로가 불편한 사이긴 했지만, 같이 있는 지인들에게는 그 상황을 설명할 수 없어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 때문에 지금의 만남은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아!”

무슨 실수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김민정이 이성하의 팔을 한 번 꼬집은 걸 제외하고는.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김민정의 반응보다 김정호가 더 신경 쓰였다.

‘설마 저 따라온 건 아니겠죠?’

[에이, 설마 아이까지 데리고 취재하러 왔겠냐?]

‘아니, 그렇잖아요. 아니면 여기서 어떻게 만나요? 은평구도 아니고 잠실인데.’

렉스의 말처럼 아이까지 데려온 걸 보면 아닐 확률이 높았지만 선배들에게 들었던 김정호의 일화들을 떠올려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김정호가 이곳에 있는 건 우연이 맞았다.

‘하, 저 친구가 왜 여기 있지?’

김정호가 처음 얼굴을 보자마자 당황했던 것처럼, 이곳에서 이성하를 만나게 된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것도 아들을 데리고 있는 상태에서 마주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김정호는 지금 식당에 있는 게 굉장히 불편했다.

“아들, 우리 여기 말고 다른 식당 갈까?”

“응? 싫어. 나 떡볶이 먹을 거야.”

“떡볶이는 이따 사 줄 테니까 저기 가서 우동 먹자. 응?”

당황해서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이내 아들에게 바로 다른 곳으로 가자고 달랠 만큼, 이성하와 한 공간에 있는 게 불편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놀랍게도 이성하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제길, 아직 생각도 정리 안 됐는데.’

김정호는 아파트 화재 당시, 이성하가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한 것에 마음이 흔들린 상태였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자신의 펜으로 이성하를 난도질해 소방관들의 이기적인 행동을 질타하고 싶었지만 끝내 펜을 들지 못했고, 그게 벌써 한 달이 돼 버렸다.

“편집장님, 저 당분간 좀 쉬겠습니다.”

“뭐?”

“머리가 복잡해서 좀 쉬어야 될 거 같아요.”

도통 정리되지 않는 생각에 휴직계를 냈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까지 속여 가며 거짓 기사를 작성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오늘 이성하를 우연히 만난 거였다.

“아빠, 자꾸 나 안 보고 어디 봐.”

“아, 아니야. 우리 아들 뭐 먹을까?”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만나 계속 신경이 쓰이는 상황.

다행히 먼저 식사를 마친 이성하가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먼저 가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 네. 재밌게 노세요.”

예의는 지키겠다는 생각인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며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렇게 떠나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는 이성하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내가 거슬리나.’

이성하 역시 자신을 신경 쓰는 듯해서였다.

‘뭐 지은 죄가 있는데 어쩔 수 없지.’

평소였다면 그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겠지만,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못하다 보니 그 모습이 묵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 버렸다.

“아빠! 뭐 하냐니까!”

자신을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에 환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뭐하긴. 이따 우리 아들이랑 뭐 탈까 고민하고 있었지.”

“진짜?”

“그럼. 오늘 밤까지 놀다 가자.”

“응. 아빠 최고!”

“그래. 하하하.”

오늘 그에게 있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 소중한 아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호는 몰랐다.

이성하가 뒤를 돌아본 이유는 김정호 때문이 아니었다.

‘렉스. 어디서 탄내 안나요?’

[탄내?]

‘네. 이상하게 탄내가 나는데.’

밥을 먹을 때는 몰랐지만 식사를 마칠 때쯤 이상하게 탄 냄새가 느껴졌다.

그 때문에 식사를 하면서도 중간중간 주위를 살폈고, 그러다 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를 떠나면서도 뒤를 돌아본 거였다.

‘이상하네…….’

착각인가 싶었지만, 미세하게 코로 맡아지는 탄내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렉스의 말에 그 생각을 빠르게 지웠다.

[푸드코트인데 당연한 거 아냐? 어디서 음식 좀 태웠나 보지.]

‘그렇겠죠?’

렉스의 말처럼 음식을 조리하는 곳이기에 당연히 탄 냄새 정도는 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에요. 이제 우리 뭐 타기로 했죠?”

“바이킹이요. 이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같이 탈 거죠?”

“그럼요, 얼른 가요.”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김민정의 모습에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를 옮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가 맡았던 탄내는 잘못 맡은 게 아니었다.

푸드코트에는 여러 식당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 한 식당의 주방에서 서서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화아아아.

불길한 검은 연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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