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71화>
71화. 비번 (1)
권일섭이 장담한 것처럼 허석훈이 염려했던 김정호의 추가 기사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추가 기사는 있었지만 모두가 염려하던 내용은 아니었다.
[드리미아 아파트 화재, 다행히 사망자나 중상자 없어]
평소 소방관들에게 악의적인 방향으로 작성하던 기사가 아닌, 이번 김정호의 기사는 화재가 있었다는 사실만 짧게 서술된 기사였고, 기사를 본 소방관들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김정호가 쓴 거 맞아?”
“그러게요. 얘 갑자기 왜 이러지?”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이건 거의 칭찬인데?”
딱히 자신들을 언급하는 내용은 없었지만, 사망자나 중상자가 없다는 내용 자체가 소방관들에게는 칭찬이나 다름없는 기사였기 때문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 새끼 나중에 뒤통수치려고 하는 거 아녜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몇 소방관들이 김정호가 속한 성화일보 신문을 매일같이 사 왔지만 더 이상 이성하에 관련된 기사는 없었다.
이성하만이 아니라 은평소방서에 관련된 기사 자체가 아예 없었고, 그런 상황은 한 달이 지났음에도 같았다.
“관심 껐나 본데요?”
“그러게. 출장이라도 갔나? 아예 기사가 없네.”
출장을 갔나 싶을 정도로 김정호의 이름으로 된 기사가 아예 올라오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 때문에 소방서 내의 관심거리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어? 뭐야? 오성수, 너 연애해?”
“하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오성수의 연애 소식이었다.
“누군데 그렇게 웃으며 문자해?”
“여자 친구지 누구겠습니까? 흐흐흐.”
얼마나 좋은지 쉬는 시간만 되면 핸드폰을 붙잡고 환한 미소를 지었고, 퇴근 시간만 되면 바로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먼저 들어갑니다!”
“뭐야? 너 오늘도 칼퇴야?”
“네. 유경 씨가 밖에서 기다려요. 하하하.”
퇴근해도 집에 가서 할 일이 없다며 매일같이 늑장을 부리다 퇴근하던 오성수가, 사랑에 빠져 칼같이 퇴근을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 때문에 구조 3팀은 모두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쟤 연애 안 한다고 하지 않았냐?”
“그랬죠. 연애는 사치라고. 그럴 돈 있으면 친구들이랑 야구나 보러 간다는 놈 아닙니까?”
평상시 연애에 관심이 없다며 유일한 취미인 야구에만 돈을 쓰던 오성수를 기억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저 진짜 갑니다.”
언제 샀는지 오성수가 휴게실에서 처음 보는 스웨터와 면바지로 갈아입고 나왔다.
“역시 멋있네.”
그것도 머리에 왁스까지 발라 잔뜩 힘을 주고는 거울 앞에서 만족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와…… 사기꾼.”
몇 달 전, 이성하는 김민정과의 식사 자리에 주로 즐겨 입는 무지 티와 청바지를 입고 나갔다.
그런 자신과 달리 딱 봐도 신경을 쓰고 나온 김민정의 모습에 나중에 미안함을 느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오성수는 그게 당연한 거라며 걱정 말라고 했다.
“야, 그게 어때서? 원래 남자는 평상시 입는 걸 입고 나가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정말이에요?”
“그럼. 그 모습에 여자가 호감을 느낀 거잖아. 억지스러운 건 좋지 않아.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지. 나도 항상 여자랑 데이트 하면 그래. 그게 남자의 매력 아니냐?”
그게 남자의 매력이고 자연스러운 거라며 자신도 그런다고 이성하에게 큰 소리를 쳤던 것이다.
하지만 연애를 시작한 오성수의 모습은 달랐다.
스웨터? 면바지?
스웨터는 그렇다 쳐도 이성하는 단 한 번도 오성수가 면바지를 입은 걸 본 적이 없었다.
[신기하긴 하네. 난 때 탄다고 일부러 검정 옷만 입는 줄 알았지.]
렉스 또한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짓는 것처럼 365일 등산복에 가까운 검정 바지만 입는 동료가 사수인 오성수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말에 오성수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라. 나도 이번에 가야지.”
진심이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그래. 좀 가라, 가. 이번에 안 가면 너 못 가.”
“못 가죠. 쟤를 누가 데려가요? 서른네 살 노총각을. 운 좋게 유경 씨 눈에 뭐가 쓰여서 망정이지. 넌 복 받은 줄 알아. 그런 여자 만나기 진짜 쉽지 않아.”
그 말에 김필주와 허석훈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고, 이성하 역시 그 말에는 동의했다.
“그러니까요. 어딜 보고 반한 거지? 진짜 이해가 안 간다니까요.”
선배들이 복 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오성수가 사랑에 빠진 여성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성하 역시 몇 번을 마주친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센터에서 근무할 당시 선배들과 함께 근처에 있는 길현초등학교로 몇 번 안전 교육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오성수가 만나고 있는 정유경을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정유경이라고 합니다. 애들 잘 부탁드릴게요. 하핫.”
그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교육을 도왔던 담당 선생님 중 한 분이 바로 정유경이었고, 그녀는 이성하가 보며 놀랄 정도로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선생님 괜찮아요?”
“으으으…… 괜찮아…… 엄마야!”
“하하하. 바보. 선생님이 더 무서워하면 어떡해요.”
고소공포증이 있는데도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아이를 위해 같이 사다리차에 올랐을 정도로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단지 아이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오성수의 달라진 모습에 선배들과 같이 야유를 보내긴 했지만, 누구보다 정유경을 반기는 사람 중 한 명이 이성하였다.
“어? 선생님?”
“성하 씨, 안녕하세요. 성수 씨는요?”
“위에서 일 보고 있을 거예요. 불러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기다릴게요. 잠깐 퇴근하다가 얼굴 보러 들린 건데 방해하지 않으려고요.”
보는 자신도 흐뭇할 정도로 선배를 좋아하는 게 느껴지는 사람이 형수인 정유경이었고, 그녀는 자신에게도 오성수의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친동생 대하듯 다가왔다.
“이게 뭐예요?”
“도시락이요. 아직 식사 안 하셨죠?”
“네. 방금 출동 다녀와서.”
“잘됐다. 그럼 이거 성수 씨랑 같이 드세요.”
“저도요?”
“네, 하는 김에 성하 씨 거까지 같이 쌌어요. 고기 좋아한다고 해서 듬뿍 쌌으니까 다 드셔야 돼요.”
“하하하. 형수님, 감사해요.”
오성수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자신을 볼 때마다 끔찍하게 챙겨 줘 자연스럽게 형수라고 부르게 된 사이가 돼 버린 것이다.
그랬기에 퇴근하는 오성수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형수님, 맛있는 거 사 주십쇼!”
안 지는 얼마 안 되어도 이미 누나처럼 친해진 정유경이었으니까.
그 말에 오성수는 장난스럽게 외치며 밖으로 나갔다.
“내 여자에 신경 꺼라.”
이성하에게 가볍게 엄포를 놓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섰고, 그 모습에 남아 있는 모든 소방관이 활짝 웃었다.
“와, 오성수 사랑꾼 다 됐네.”
“그러게요. 미소가 끊이질 않아요. 이러다 진짜 조만간 국수 먹는 거 아녜요?”
아직 기간이 얼마 안 되긴 했지만 누가 봐도 서로에게 흠뻑 빠진 두 사람의 모습에,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릴까 기대할 정도였다.
이성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진짜 잘됐으면 좋겠네.’
사수이다 보니 구조대 안에서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오성수였다.
그런 오성수와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정유경이 결혼까지 가는 건 전혀 반대할 이유가 없는 사안.
그런데 그때 오성수가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뭘 놓고 갔나 하는 생각에 쳐다봤는데 그 뒤로 선배의 여자 친구인 정유경도 같이 들어왔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제수씨.”
“에이, 제수씨는요. 부장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유경 씨.”
들어오자마자 사무실에 있는 소방관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는 정유경이었고, 그에 이성하 역시 별생각 없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형수님. 그냥 가셔도 되는데.”
붙임성 좋은 정유경의 성격으로 봤을 때, 기왕 소방서에 온 거 팀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들어왔다는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정유경의 목적은 인사가 아니었다.
“성하 씨, 잠깐만 이리 와 봐요.”
인사를 하는 이성하에게 정유경이 와 보라며 손짓을 했다.
“저요?”
“네. 빨리 와 봐요.”
엄연히 외부인의 신분이다 보니 들어오지는 못하고 사무실 입구에서 이성하를 향해 와 보라며 손을 흔들었고, 그렇게 다가온 이성하에게 정유경이 웃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만나는 사람 있다면서요?”
“네?”
“다 들었어요. 다칠 때마다 치료해 주는 의사 선생님 만난다면서요? 어떻게 저한테 말도 안 할 수가 있어요?”
그 말에 이성하가 딱딱한 표정으로 오성수를 바라봤다.
“하하하…….”
“아, 진.”
눈이 마주치자마자 머리를 긁적이는 오성수의 모습에 바로 뭐라 하려고 했지만, 이성하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다음에 밥 사기로 했다면서요.”
정유경이 이성하의 손을 붙잡아서였다.
“그, 그게…….”
“저한테 안 숨겨도 돼요. 제 동생이 동아랜드에서 알바하거든요. 안 그래도 티켓을 몇 장 줬는데 여기 둘이 한번 가 봐요. 축제도 한다니까 재밌을 거예요.”
당황하는 이성하의 손에 놀이공원 티켓을 쥐여 주고는 꼭 가라며 활짝 웃었고, 그에 이성하는 웃음과 울음이 섞인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갈 거죠?”
“하…….”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눈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정유경의 모습에 차마 거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락하기 또한 애매했다.
‘동아랜드…….’
정유경이 쥐여 준 티켓은 우리나라에서 놀이공원 하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동아랜드의 티켓이었다.
흔히 가족끼리 가는 놀이공원이 용인의 영원랜드라면, 연인끼리 가는 놀이공원으로 꼽히는 곳이 잠실의 동아랜드였다.
[왜? 어차피 놀러 갈 겸 한번 가 보지 그래?]
‘어떻게 말해요. 그냥 미안해서 밥 한 번 사기로 한 게 전부인데.’
그날 이후로 살짝 친해진 건 맞았지만, 연인도 아닌 사이에 놀이공원에 가자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던 것이다.
김민정과 자신의 스케줄이 불분명한 탓도 있었다.
‘거기다 저 이번 주는 야간에 당직이에요. 다음 주 근무는 주간이긴 하지만 주말이 껴 있고요.’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를 하는 김민정이나, 소방관으로 일하는 자신 역시 불규칙한 근무 시간으로 도통 휴일이 겹치는 일이 없었으니까.
사실 그동안 그래서 김민정에게 밥을 못 산 것도 있었다.
서로가 바쁘다 보니 연락은 주고받아도 만날 시간은 없었고, 그 때문에 미안한 표정으로 정유경의 호의를 거절했다.
“형수님, 죄송해요. 워낙 서로가 바빠서 시간이 안 돼요. 다음에 부탁드릴게요.”
어차피 바빠서 스케줄이 맞지 않아 안 될 거라고.
그런데 그 말에 정유경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서로 시간 맞으면 갈 거예요?”
“네?”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간다면서요. 그럼 시간 맞으면 갈 수 있다는 소리잖아요.”
“그럼 뭐…….”
묘하게 당찬 어조에 이성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정유경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물어봐요.”
“……네?”
“물어봐요. 연락은 하고 지낸다면서요.”
김민정에게 바로 물어보고 결정하자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그에 이성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핸드폰을 들었다.
“얼른요!”
“하…….”
물어보지 않으면 계속 있을 것 같은 정유경의 모습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바쁜데 어떻게 가?’
어떻게 보면 자신보다 더 바쁜 스케줄로 매일 밤을 새다시피 하는 게 레지던트였다.
만나지는 못해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다 보니 김민정의 일과가 얼마나 바쁜지는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별생각 없이 자신의 휴일을 문자로 적어 보내고는 정유경에게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네, 보냈어요. 어차피 지금은 바빠서 문자 못 볼 거예요. 답장 오면 선배한테 말씀드려서 확인시켜 드릴 테니까 얼른 가세요. 두 분이 저녁 먹기로 하셨다면서요.”
최대한 빨리 이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정유경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딩딩딩!
이성하가 들어 보인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 소리가 났다.
“왔다!”
그에 오성수가 바보처럼 손으로 핸드폰을 가리키며 크게 말했고, 그렇게 도착한 문자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요. 전 아무 때나 괜찮아요. 언제 갈래요^^?]
“…….”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언제든 상관없다며 웃음을 지어 보이는 김민정의 답변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잘못 봤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눈앞으로 가져다 댔지만, 김민정의 문자가 맞았다.
“잘됐다.”
“뭐라고요?”
“그게…….”
그 때문에 눈치 없이 끼어드는 오성수에게 바로 면박을 줬고, 조금 전 했던 생각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잘되기는 무슨…… 확 헤어져 버려라.’
쓸데없이 입이 싸서 이 상황을 만든 오성수가 너무나 원망스러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