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70화>
70화. 인정 못 해 (6)
‘흐음…….’
이성하가 눈을 뜬 건 병원으로 이송되고 3시간이 지난 후였다.
“일어났냐?”
“여기 어디예요?”
“병원이지, 어디겠냐?”
“하하.”
일어나자마자 툴툴대는 허석훈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나왔고, 그에 허석훈이 바로 이성하에게 꿀밤을 날렸다.
“어휴!”
퍽!
“아!”
“이 새끼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그런 허석훈의 모습에 이성하가 입을 삐죽였다.
“그럴 거면 때리지나 마시지…….”
“야이!”
“항복입니다, 항복!”
재빨리 손을 들어 항복 의사를 내비치는 이성하의 모습에 허석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몸은 어때?”
“조금 따끔한 거치고는 괜찮은데요?”
“따끔? 화상을 입었는데 그 말이 나와?”
“화상이요?”
인상을 찌푸리는 이성하의 모습에 허석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목 만져 봐. 심한 건 아닌데 노출된 부분은 피부 다 일어났더라.”
그에 이성하가 무의식적으로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크으윽…….”
목을 만지자마자 느껴지는 쓰라린 통증에 자연스레 비명을 질렀고, 그에 허석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휴, 이 모지리 둔탱이 새끼야. 만지란다고 진짜 만지냐?”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는데도 겁 없이 손을 가져다 대는 이성하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 말에 이성하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만져 보라며?’
만져 보라고 한 게 누군데 멍청하다고 욕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너 근데 아이들 상태는 안 궁금하냐?”
“아! 애들!”
허석훈의 손을 잡자마자 기절했던 탓에 구조한 아이들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
“어떻게 됐어요? 애들 설마 다친 건 아니죠?”
뒤늦게 떠올린 아이들의 존재에 허석훈에게 취조하듯 입을 열었다.
“안 다쳤어. 찰과상이 조금 있긴 했는데 응급실에서 치료하고 바로 돌아갔다. 물론 할머니도 이상 없고.”
“휴, 다행이네요.”
“왜? 많이 걱정했냐?”
“네. 저처럼 화상 입었을까 봐 걱정됐거든요.”
방화복을 입은 자신도 화상을 입은 탓에, 불속에 노출됐던 아이들의 상태가 걱정이 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석훈의 말대로라면 아이들의 상태는 괜찮았다.
‘바로 퇴원한 거면 진짜 괜찮나 보네.’
응급실에서 퇴원을 바로 허락했을 정도면 화재 피해자들이 흔히 겪는 일산화탄소 중독도 없는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그러다 보니 허석훈의 모습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근데 선배 팔은……?”
허석훈의 왼손이 하얀 붕대로 돌돌 감긴 상태였다.
다른 곳은 괜찮았지만 왼쪽 손목에 고정을 위한 보호대까지 찬 상태였고, 그런 이성하의 말에 허석훈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이제야 묻냐?”
“죄송합니다…….”
“어휴, 이 둔탱이 새끼.”
한참이나 이야기를 했음에도 이제야 자신의 부상을 알아채는 이성하의 모습에 한숨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새끼, 아무튼 싹은 있다니까.’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후배가 이성하였다.
아무리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이라도 지금의 이성하처럼 요구조자가 무사하다는 말에 자신의 일처럼 안도하는 소방관은 없었으니까.
덕분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오늘 멋있었다.”
“갑자기요?”
“기특해서 그래, 인마.”
새삼 이성하가 아니었으면 이보다 더 큰 부상을 입었을 거라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기특은 무슨. 기특한 일 한 번 더 했다가는 내가 죽겠다.”
병실 문이 열리며 권일섭이 들어왔다.
“어? 대장님, 정리는 됐습니까?”
“됐겠냐? 시원하게 욕 처먹었지.”
허석훈의 말에 퉁명스럽게 말하며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봤다.
“안녕하…….”
“야이, 씹어 먹을 놈아.”
막 인사를 하려던 이성하로서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네?”
난데없이 들어오자마자 자신에게 욕을 내뱉는 권일섭의 모습에 이게 뭔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석훈을 바라봤다.
‘뭐예요?’
권일섭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허석훈이라면 이유를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하지만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너 바보야?]
렉스였다.
‘네?’
[지금 너 병원에 왜 있냐?]
‘사람 구하다가요…….’
[사람은 어떻게 구했는데?]
‘베란다로…… 아…….’
대답하던 이성하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나 또 사고 쳤구나…….’
급박한 상황이긴 했지만, 탈출을 하며 벌였던 행동이 규정을 무시한 상황이라는 걸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그 때문에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권일섭을 바라봤다.
“설마…… 저 때문에 문책 받으신 겁니까?”
이제야 권일섭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욕을 처먹었다는 말은 자신이 벌인 행동 때문에 상부에서 문책을 받았다는 말이었고, 실제로 권일섭은 이성하 때문에 소방서에서 감찰팀장을 만나고 오는 참이었다.
“왜? 감봉일까 두렵냐?”
“하하하…….”
“웃지 마, 인마! 곧 있으면 정년퇴직인데 너 때문에 내가 언제까지 어린놈들한테 굽실거려야 돼?!”
꽤 많은 잔소리를 들었는지, 눈치를 살피는 이성하의 모습에 권일섭은 그대로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가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감봉 아니에요?”
말하는 뉘앙스로 보니 감봉까지는 가지 않은 듯싶었다.
굽실거렸다는 말을 보면 어떻게든 권일섭의 선에서 마무리를 지은 것처럼 보였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권일섭이 그대로 주먹을 들었다.
쾅!
“감봉이 그렇게 무서운 놈이 왜 자꾸 사고를 쳐!”
감봉이 아니라는 걸 눈치채자마자 얼굴에 바로 화색을 띠는 이성하가 너무나 얄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맞아도 이성하는 행복했다.
[좋냐?]
‘그럼요. 지난번 병가 때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상황은 달랐지만 월급을 못 받으면 얼마나 서러운지를 이미 경험한 적 있던 이성하였다.
‘그때 고기도 못 먹어서 얼마나 억울했는데.’
오성수 때문에 회식까지 쏜 상황에서 출동으로 고기도 못 먹었기에, 한참을 우울해했었으니까.
그런데 그러다 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과장님, 감찰과에서 이걸 그냥 넘어갔어요?”
“왜? 그냥 넘어간 게 불만이야?”
“아니, 그렇잖습니까. 그분들이 어떤 분들인데…….”
이렇게 그냥 넘어갈 감찰과가 아니었다.
예전 공장 화재 때도 이성하의 단독 행동을 문제 삼아 권일섭에게 감봉을 먹일 정도로 규정에 관해서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곳이 은평소방서의 감찰과.
하지만 아무 말이 없는 권일섭을 보아하니, 가장 약한 징계에 해당하는 시말서도 없는 듯했다.
‘이상하네. 이렇게 그냥 넘어갈 곳이 아닌데…….’
상황이 급하긴 했지만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규정을 무시한 자신에게, 이렇게 아무 징계 없이 넘어갈 정도로 만만한 감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권일섭이 피식 웃었다.
“방송 타서 그래.”
“네?”
“너 방송 탔다고. 한번 볼래? 아마 지금도 나올 거 같은데.”
권일섭이 테이블 위에 놓인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뉴스 채널을 찾기 위해 채널을 한참 돌렸고, 그렇게 채널을 맞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일어났던 진관동 화재 영상이 나왔다.
- 오늘 오후 2시, 진관동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에서 큰불이 났는데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소방대원들이 온몸으로 불길을 막고 주민들을 대피시켰습니다.
한 아나운서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시작하는 보도였다.
화르르르르!
- 빨리!
그 보도를 시작으로 피어오르는 불길 속에서 탈출을 서두르는 선배들과 자신의 모습이 영상으로 나왔고, 이어서 현장에 나가 있던 기자가 마찬가지로 흥분된 기색으로 보도를 이어 갔다.
- 네 명의 소방대원들은 저렇게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을 온몸으로 막고 주민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던진 그들의 희생 덕분에 불길에 고립됐던 세 사람 모두 안전하게 구조됐고, 그 때문에 숨진 사람은 없습니다. 이상, YTM의 방진우 기자였습니다.
티비에선 이성하와 구조대 덕분에 세 사람 모두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었다고 열띤 기색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비로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네요.”
이런 언론의 분위기 덕분에 감찰과에서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 허석훈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런데 오늘은 괜찮아도, 내일은 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내일?”
“네. 아까 말씀 못 드렸는데 현장에 김정호 기자가 있더라고요. 그 기자 성격 아시지 않습니까?”
상황이 상황인지라 보고는 못 했지만, 허석훈 역시 현장에 나와 있던 김정호의 얼굴을 봤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권일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이번만큼은 그럴 거 같지 않던데?”
“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이번은 그냥 넘어갈 거 같거든.”
현장을 정리하며 멍한 표정의 김정호를 봐서였다.
‘인정할 수 없던 건가.’
무엇이 그리도 억울한지 주먹을 움켜쥔 채 들것에 실려 가는 이성하를 보던 김정호를 봤고, 실제로 김정호는 울분에 차 있었다.
“어이~ 김 기자, 오늘 건진 거 있어?”
“없습니다.”
“뭐야? 왜 저래?”
회사에 들어가며 만난 선배의 인사를 무안하게 받아쳤다.
“제기랄.”
촤아아악!
책상에 앉자마자 항상 애지중지하던 카메라를 옆으로 거칠게 밀쳤고.
“뭘 봐?”
“아, 아닙니다, 선배님.”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후배에게 성질을 낼 정도로 마음이 답답했다
‘진짜 목숨을 걸었다고?’
불길 속에서 몸으로 사람들을 보호하던 소방관을 봤기에.
쾅!
‘이런 썅!’
지금까지 굳혀 왔던 신념이 무너지는 것에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했는지 옆으로 밀쳐 낸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2014/11/03>
카메라 안에 오늘 찍었던 사진들을 컴퓨터로 옮기고는 보도 프로그램을 켰고, 그곳에 평소와 같이 오늘 구조에 있었던 문제들을 신랄하게 적어 냈다.
‘목숨은 걸기는 무슨, 그저 영웅 심리에 날뛰다가 엉겁결에 막은 거지.’
다시 생각해 보니 희생자 없이 마무리돼서 망정이지, 로프가 흔들리며 내려오던 위태로운 모습을 떠올리면 그저 운에 맡긴 작전이라는 건 확실한 사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원고를 다 썼음에도 전송을 누를 수 없었다.
‘제길…….’
뒤늦게 기자의 양심이 치밀어서?
아니었다.
“빨리 병원 수색해!”
처참한 모습으로 들것에 실려 나오던 이성하의 모습이 떠올라서였고, 그런 이성하를 향해 뒤따라 나왔던 아이들과 할머니가 울음을 토한 게 기억나서였다.
“흐아아앙. 소방관 아저씨 어떡해.”
“아저씨. 흐윽, 흐윽.”
“으허허헝. 고마워요. 우리 애들 구해 줘서 고마워. 흐윽.”
고맙다고.
자신들을 버리지 않고 살려 줘서 고맙다고.
그래서 원고를 전송할 수 없었다.
“제길…….”
그 눈물에 담긴 감사가 진짜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김정호 본인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