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69화 (69/235)

<강철 소방대 69화>

69화. 인정 못 해 (5)

“왜 그러냐고!”

그런 이성하의 행동에 허석훈이 고함을 질렀지만, 이성하는 그대로 로프를 움켜쥐었다.

“시간 없어요!”

“뭐?”

“곧 플래시오버가 일어날 거 같아요!”

짧게나마 이유를 설명하고는 로프를 쥔 채 바로 몸을 돌렸고, 이내 연기가 모이고 있는 부엌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가장 무거운 냉장고에 로프를 감았다.

‘이것밖에 없어! 창문으로 빠져나가야 해!’

불길에 퇴로가 막혔다면, 불길이 막지 못하는 허공을 통해 탈출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허석훈으로서는 복장이 뒤집어질 행동이었다.

“야, 인마. 너 진짜 왜 이래에!”

요구조자들을 긴장시키는 행동도 문제지만, 기자의 눈 때문에 현장에서 최대한 돌발 행동을 자제하라는 권일섭의 명령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응……?’

부엌으로 온 덕분에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광경이 허석훈의 눈에 잡혔다.

화아아아악!

이성하가 봤던 게 천장으로 뜨거운 연기가 모이는 거였다면 지금은 그 뜨거운 연기의 일부가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그 때문에 허석훈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지, 진짜라고?’

이성하의 말에는 무슨 미친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정말로 플래시오버의 전조 증상이 일어나고 있던 것이다.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봤지만, 플래시오버가 확실했다.

‘이런 썅!’

연기의 일부가 바닥으로 내려가는 건, 뜨거운 열기로 기압이 높아져 가연성가스가 밀려 내려가는 플래시오버의 전조 증상 중 하나였으니까.

그 때문에 다급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단장님, 길 뚫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이 상황을 위에 알려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왜 무슨 일이야?

“플래시오버입니다!”

- 뭐?

“플래시오버 전조 증상이 일어났다고요!”

지금의 상황을 위에 알려야만 진압대가 불길을 뚫는 데 속도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무전에서 흘러나오는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 진압대, 16층까지 진입하는 데 얼마나 걸려?

- 불길이 너무 거세서 10분은 걸릴 거 같습니다!

불길을 잡지 못해 시간이 걸릴 거 같다는 진압대의 초조한 음성이 귓가를 울렸으니까.

그 때문에 허석훈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늦어…….’

10분은커녕 5분도 버티지 못하는 게 지금의 상황이었다.

연기가 밑으로 가라앉은 이상 얼마 지나지 않아 가연성가스들에 불이 붙을 게 분명했고, 그렇게 된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은 목숨이었다.

털썩.

‘제기랄…….’

섭씨 800~900도 이상의 화염 폭풍이 집 안을 휘감는 모습이 떠오르는 듯해서,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지원을 나온 다른 대원들 역시 얼어 버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잠깐만요? 플래시오버요?”

“부장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플래시오버라뇨!”

이성하가 말했을 때는 뭔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그게 현실이 되어 버린 상황에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아직 빛이 모이진 않았어. 배운 대로라면 3분은 남았어.’

가연성가스들이 모인 천장을 바라보며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이성하였다.

그그그그극.

이미 마음을 결정한 듯 냉장고에 단단히 로프를 묶고는 그 옆으로 탁자까지 밀어 고정시키는 모습이었고, 그렇게 고정시킨 로프의 끝을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끼이익. 끼익.

내려갈 때 로프가 밀리지 않도록 베란다 스테인리스 봉에 한 번 감고는 밖으로 늘어트렸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는 겁에 질린 아이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으아아아앙.”

“울지 마. 아저씨가 구해 줄게. 알았지?”

“흐윽, 네에.”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아이들을 구해 주겠다며 울고 있는 아이들을 다독거렸다.

하지만 그 모습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허석훈이 이성하를 말렸다.

“뭐 해, 인마!”

무슨 의도인지를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냉장고에 로프를 감고 그걸 베란다 밖으로 던진 상황에서, 이성하가 창문을 통해 탈출하려는 마음을 먹은 걸 모를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아파트 16층이었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60m에 달해 고가 사다리차가 닿지 못하는 까마득한 높이였고, 그 때문에 허석훈은 이성하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안 돼, 새끼야. 제대로 된 레펠 장비도 안 챙겨 왔는데 만약 요구조자 놓치면 어떻게 할래? 성공해도 시말서야. 아니, 성공이고 뭐고 미친 짓이라고!”

자칫하다 탈출 과정에서 요구조자를 놓치거나 하는 일이라도 발생하면 그대로 사망으로 직결할 만큼 도박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성하의 말에 아무 말을 못 했다.

“부장님, 이 방법뿐이에요.”

“뭐……?”

“이거밖에 방법이 없다고요.”

불길로 가득한 현관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퇴로가 막힌 이상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였고, 그에 허석훈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X발. 너 내려가서 보자.”

“허락하시는 겁니까?”

“뭘 허락해, 새끼야! 내가 시킨 거야!”

규정이고 나발이고 지금으로선 이성하가 말한 것처럼, 창문으로 빠져나가는 것 외에는 살아날 방법이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허석훈은 바로 무전을 들었다.

“대장님, 허석훈입니다.”

- 그래. 말해.

“저희 베란다로 나가겠습니다.”

- 뭐?

“10분 못 버팁니다. 이미 천장으로 빛이 모이고 있어요. 무슨 상황인지 알죠?”

시간이 없기에 진압대를 기다리는 게 아닌, 베란다를 통해 탈출하는 것으로.

그 무전에 밖에 있는 소방관들이 식겁한 표정을 지은 건 당연했다.

“뭐? 베란다?”

“잠깐만! 진짜 저기로 탈출한다고?”

아무리 상황이 급하다고는 하지만, 16층이나 되는 높이에서 로프 하나에 의지해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탈출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정호 역시 그 무전에 바로 쌍소리를 토해 냈다.

“이런 미친.”

이 사태를 누가 벌였는지 알아서 하는 말이었다.

플래시오버가 일어나자마자 카메라로 줌을 당겨 요구조자들이 있던 16층을 계속 주시했던 김정호였고, 그렇게 김정호는 이성하가 로프를 설치한 것부터 무전을 보내온 허석훈이 그 행동을 말리는 것까지 모두 지켜봤다.

‘이성하, 네놈이 드디어 사고를 치는구나.’

베란다로 탈출을 하도록 결정한 사람이 지금 무전을 한 허석훈이 아닌 이성하라는 걸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김정호는 바로 현장대응단장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단장님, 설마 허락하시려는 거 아니시죠?”

이대로 지켜만 볼 수는 없어서였다.

“끄응…….”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 높이에서 떨어지면 그냥 즉사예요. 거기다 지금 안전 매트도 설치 안 하고 작전 하려는 거라고요!”

이성하의 위선을 밝히려는 목적으로 취재를 온 건 맞았지만, 딱 봐도 사망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한 구조를 시행하는 걸 지켜만 볼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김정호의 의견이나 현장대응단장의 허락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어!”

“야, 뛰었어!”

소방관 한 명이 재빠르게 아이 한 명을 안은 채 로프에 매달려 하강을 시도했고, 그에 뒤늦게 현장대응단장이 무전기를 잡고 고함을 질렀다.

“너희 뭐 하는 거야! 그만 안 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허락도 없이 위험한 작전을 실시하는 대원들의 모습에 분통이 터져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 무전에 대답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전을 답할 여력이 없었다.

[천사의 춤이야!]

“……!”

렉스의 고함에 탈출을 서두르던 이성하가 천장을 바라봤다.

화르르르르!

렉스의 말처럼 천장을 따라 천사가 날갯짓을 하듯 빠르게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고, 그에 이성하 역시 고함을 질렀다.

“롤오버!”

“젠장!”

플래시오버가 벌어지기 직전 바로 전 단계에 해당하는 롤오버 현상에 억지로 대원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원들이 무전을 기다리기도 전에 탈출을 시작한 거였다.

“빨리! 빨리!”

롤오버가 일어났다는 건 수 초 이내에 집 안 전체를 불태우는 플래시오버가 일어난다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불이 번지는 속도보다 소방관들의 탈출이 빠를 수는 없었다.

스으윽.

가장 먼저 김형석이 아이 하나를 안고 출발했고.

“애기야. 빨리 안아.”

두 번째로 강병주가 남은 아이를 안고 출발한 순간, 거대한 불길이 집 안을 휘감았다.

화르르르르르!

소방관의 악몽이라 불리는 플래시오버가 드디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밖에서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사람들로서는 자연히 입이 벌어질 광경이었다.

“꺄아아악!”

“저거 어떡해!”

탈출을 시도하는 소방관들 뒤로 거대한 화염이 뿜어져 나와 금방이라도 모두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불길은 그들에게 닿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소방관이 그 불길을 틀어막았다.

“끄으으윽.”

아직 내려가지 못한 이들에게 불길이 닿지 못하게 하려는 듯 팔을 크게 펼쳐 그 뒤를 지키는 모습이었고, 그에 막 출발하려던 허석훈이 고함을 질렀다.

“야, 이 새끼야!”

자신은 물론이고 남은 요구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불길을 막아서는 이성하의 모습에 눈물이 새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로서는 이미 각오하던 상황이었다.

‘이미 예상했던 거야.’

어차피 아무 부상 없이 넘어갈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플래시오버의 전조 증상을 발견했을 때부터 어떻게든 그 영향을 받게 될 거라고 짐작을 했었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자신이 남은 거였다.

“빨리!”

불길을 막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막내인 자신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장 마지막으로 내려가는 걸 선택한 것이다.

누구보다 빨리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 허석훈 역시 그대로 입술을 깨물고는 마지막으로 남은 할머니를 안고 로프에 매달렸다.

‘빨리 와라, 빨리.’

지금으로선 최대한 빨리 내려가는 것만이 이성하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결정이 맞았다.

[지금!]

“허억, 허억.”

허석훈이 내려가자마자 그대로 몸을 날려 밖으로 뛰어내렸다.

[로프 잡아!]

끼이이이이익.

귓가로 들리는 렉스의 고함에 필사적으로 로프를 잡아 하강 속도를 늦췄고, 그렇게 잠시 후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허석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괜찮냐?”

“하하하…….”

“웃지 마, 새끼야!”

불길을 뒤집어써 엉망이 되긴 했지만, 기어코 그 불길 속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을 해 만족한 웃음을 흘려 낸 것이다.

밖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 모습에 일제히 환호를 보낸 건 당연했다.

“미쳤다!”

“봤어요? 몸으로 막았어요! 몸으로!”

몸으로 불길을 막는 것도 모자라, 그곳에서 무사히 탈출하는 이성하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환호는 금세 멈추었다.

“빨리 병원 수배해!”

처참한 이성하의 모습 때문이었다.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는지를 보여 주듯 방화복이 새카맣게 그을린 모습으로 들것에 실려 나왔고, 그 때문에 사람들의 말문이 막혔다.

“맙소사…….”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던 처절한 사투의 흔적에, 아무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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