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68화>
68화. 인정 못 해 (4)
어떤 상황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썅! 플래시오버야!”
밑에서 대기하던 소방관들도.
“플래시오버? 하필 이 순간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옆에서 몰래 듣고 있던 김정호 역시 그 현상에 당황을 금치 못했으니까.
그 때문에 현장대응단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권일섭 대장! 괜찮습니까!”
플래시오버는 백 드래프트와 마찬가지로 소방관의 악몽이라 불리는 현상이었다.
화재가 발생하면 그로 인해 생기는 가연성가스들이 천장에 모이게 되는데, 그렇게 축적된 가스들이 발화온도에 이르는 순간 동시에 불이 붙어 해당 구역 전체를 불길로 감싸 버리는 현상.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이라도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권일섭 대장! 구조대! 아무나 응답해!”
내부를 수색하던 구조대가 저 불길에 휩싸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구조대는 무사했다.
- 지직, 위쪽은 괜찮습니다.
권일섭의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울렸다.
- 아래쪽도 이상 없습니다.
B팀을 이끄는 허석훈 역시 무전을 통해 자신들의 안전을 알려 온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다.
“시발, X될 뻔했네.”
무전을 마친 허석훈이 거친 욕설과 함께 앞을 바라봤다.
화르르르르!
살짝 열린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거센 불길이 튀어나오고 있었고, 그곳을 향해 이성하와 지원을 나온 김형석이 소화전에서 꺼낸 호스로 진압을 하고 있었다.
“이성하, 괜찮냐?”
“괜찮습니다!”
직접적으로 플래시오버를 맞이한 건 아니지만, 그 발화점이 엘리베이터다 보니 문틈으로 뿜어지는 불길에 하마터면 부상을 입을 뻔한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성하의 빠른 대처에 아무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
“고개 숙여요!”
“이런 썅!”
화르르르르!
불이 뿜어지기도 전에 경고를 날려, 모두 몸을 숙여 그 위험을 피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긴박한 순간을 겪었음에도 안도할 여유가 없었다.
“부장님!”
이성하가 계단을 가리키며 고갯짓을 해서였다.
아직 수색하지 못한 다른 층을 가리키는 행동이었고, 그에 허석훈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형석, 네가 진압대 올 때까지 여기 맡아. 내가 10층, 병주가 11층, 성하는 12층!”
“넵!”
현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남은 사람들의 대피를 확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11층 요구조자 없습니다.
- 12층도 없습니다.
“오케이, 이쪽도 없어. 10층에서 보자.”
자신이 맡은 10층은 물론 그 위층들을 맡은 두 사람이 남은 요구조자가 없다는 보고를 해 왔고, 그런 상황은 위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래쪽 남아 있는 사람 없습니다. 위쪽은 어떻습니까, 대장님?”
- 여기도 클리어야. 우리는 진압대 도와서 옥상 진압할 테니까 너희는 밑으로 내려가서 상황 대기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아래쪽은 이상이 없다는 허석훈의 보고에, 권일섭 역시 위쪽도 요구조자 수색을 끝냈다며 후방 대기를 명했다.
그랬기에 허석훈은 드디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휴, 내려가자. 끝난 거 같다.”
더 이상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성하 역시 비로소 긴장의 끈을 내려놨다.
[고생했다.]
‘고생은요,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재산 피해가 커진 건 안타깝지만, 사람들은 모두 대피시켜 더 이상의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 건물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 권일섭 대장, 16층에 요구조자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현장대응단장의 무전이 귓가를 날카롭게 울렸다.
“……!”
그 무전에 곧바로 뛰어나와 위를 올려다봤고, 그런 이성하의 눈에 베란다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세 사람이 보였다.
‘아이 둘에…… 성인 하나?’
작은 체구의 아이 둘과 성인 한 명이 열린 창문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으아아아앙.”
“살려 줘요!”
까마득한 높이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살려 달라며 불길 너머로 손을 뻗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에 이성하가 다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대장님, 16층 베란다에서 아이 둘과 성인 한 명이 보입니다. 호수는 1604호! 성인은 할머니로 보입니다!”
수색 과정에서 어떻게 빠졌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권일섭에게 정확한 보고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권일섭 역시 그 무전에 바로 응답했다.
- 오케이, 바로 간다.
무전을 통해 16층으로 이동하겠다는 권일섭의 억눌린 음성이 튀어나왔고, 실제로 권일섭은 무전을 듣자마자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부 따라와. 요구조자는 셋. 단숨에 이동한다.”
16층 수색을 맡았던 소방관을 매섭게 한번 노려보고는 그대로 요구조자 구출에 나섰다.
하지만 그 걸음은 이내 얼마 가지 않아 멈춰 버렸다.
화르르르르!
“대장님, 계단이 막혔습니다…….”
옥상에서 19층까지는 문제없이 내려왔지만, 그다음부터가 불길에 막혀 있었다.
플래시오버가 천장에 쌓인 가연성가스에 불이 붙어 발생하다 보니 당연히 그 위쪽으로도 순식간에 화재가 확산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구조대의 진입은 불가능했다.
“이런 X발! 물러나!”
한 층도 아니고 두 개 층, 그것도 불길로 뒤덮인 복도까지 지나야 하는 상황에서, 진입을 시도하는 건 자살이나 마찬가지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허석훈, 응답해!”
이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밑에 있는 B팀뿐이었다.
- 네, 말씀하십쇼.
“위쪽이 19층부터 막혔다. 여기서 진입하려면 시간이 너무 소모돼. 네가 애들 이끌고 올라와!”
허석훈이 이끄는 B팀에게 고립된 요구조자들을 구조할 것을 명했고, 그 명령이 떨어질 걸 알기라도 한 듯 허석훈이 이끄는 B팀은 그대로 아파트 입구로 달렸다.
“이성하, 로프는?”
“챙겼습니다!”
“김형석, 강병주! 실린더!”
“챙겼어요!”
“소화기도 챙겼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이미 구조를 위한 준비를 마쳐 둔 참이었다.
아니, 사실 이미 예상하던 상황이었다.
“부장님, 혹시 모르니까 준비해야 할 거 같은데요?”
“준비?”
“네, 확산이 너무 빠릅니다. 잘하면 저희가 들어가야 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권일섭의 출발하겠다는 무전에, 후배인 이성하가 만약을 대비하자는 의견을 꺼내 둔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의견을 내밀었던 이성하는 거침이 없었다.
“이성하, 우리 상관하지 말고 먼저 올라가!”
“네!”
이미 이성하의 체력을 익히 알고 있는 허석훈의 명령에 엄청난 속도로 계단을 올랐다.
탁! 탁! 탁! 탁!
무거운 방화복을 입고 있음에도 거침없이 두 계단씩 뛰어오르며 16층을 향했고, 15층부터 불길이 앞을 막음에도 그대로 길을 뚫었다.
쏴아아아아!
근처에 있는 소화전에서 호스를 꺼내 진입로를 만들었으며, 그렇게 올라간 16층에서도 다시 소화전을 이용해 불타고 있는 복도를 뚫었다.
“여기서부턴 보조 맞춰!”
“허억, 허억. 알겠습니다!”
쏴아아아아!
뒤따라온 선배들과 단번에 요구조자들이 있는 곳까지 길을 뚫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치이이익.
무리해서 길을 열다 보니 불길에 그을린 방화복부터 시작해…….
“너 괜찮아?”
“허억, 허억. 괜찮습니다.”
면체 너머로 비 오듯 땀을 흘리는 이성하의 모습에 허석훈이 걱정 어린 말을 건넬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성하의 몸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아이들이 있었어.’
불길 속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뻗던 아이들이 있었다.
소방관이라면 당연히 그 손길을 잡을 의무가 있었기에, 쉴 틈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쏴아아아아!
“선배님, 더 빨리요!”
언제 이 지독한 불길이 아이들을 휘감을까 하는 두려움에 걸음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 때문인지 B팀은 드디어 요구조자들이 고립돼 있는 1604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켜!”
쾅! 쾅! 쾅!
도착과 동시에 허석훈이 챙겨 온 도끼로 문고리를 내려쳐 단숨에 문을 열었고, 그렇게 열린 문으로 보이는 광경에 이성하는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앙!”
“아이고, 이제 살았네. 우리 애기들 살았어.”
불길이 어느 정도 집 안으로 확산된 상태였지만, 베란다 쪽에서 큰 부상 없이 손을 내미는 할머니와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그랬기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서둘러 허리춤에서 보조 마스크를 꺼내 들었다.
“할머니, 이거 끼셔야 해요. 얘들아, 너희는 이거 차자.”
유독 가스 속에서 요구조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부장님, 나가도 될 거 같습니다.”
그렇게 요구조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고는 허석훈을 바라봤고, 그에 허석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전기를 들었다.
“대장님, 요구조자 모두 무사합니다. 데리고 탈출하겠습니다.”
언제 불길이 집 안을 완전히 휘감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바로 탈출을 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 허 부장, 기다려! 나오면 안 돼!
한 소방관의 다급한 음성이 무전을 울렸다.
“이거 이 부장님 아닙니까?”
“이 부장님? 우리 쪽 진압대잖아.”
뒤에서 퇴로를 확보하기로 했던 진압대 이경웅 부장의 음성이었고, 그 뒤로 이어지는 말에 이성하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부장님, 무슨 일입니까?”
- 연소 속도가 너무 빨라. 불길이 14층까지 확산됐어. 지금 나오면 위험하니까 대기해!
퇴로가 막혔다는 보고였다.
자신들이 진입할 때는 15층까지만 불길이 침범한 상황이었는데 그 사이 14층까지 확산된 것이다.
그 때문에 잠깐 요구조자들을 돌아본 이성하가 침음을 흘렸다.
‘젠장…… 15층이면 몰라도 14층이면 무리야. 절대 열기를 못 버틸 거야.’
자신들과 달리 아무 보호 장비가 없는 요구조자들이었기에, 탈출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어떻게 할래?’
‘버텨 보죠.’
자신을 향해 어떻게 하겠냐는 눈빛을 보내는 허석훈에게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그러고는 요구조자들을 챙겨 좀 더 베란다 쪽으로 붙었다.
“꼬마야, 아저씨랑 여기서 딱 10분만 있자.”
“10분이요?”
“응, 다른 아저씨들이 불길 잡고 있어. 조금 있으면 금방 꺼질 거야.”
현재로서는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진압대가 불길을 빨리 잡기만을 기도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다.
- 허석훈 들리나?
“네, 말씀하십쇼.”
- 지금 막 역촌대도 도착했어. 무조건 16층 길부터 뚫을 거니까 조금만 참아.
현장대응단장이 우선적으로 퇴로를 확보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 상황.
하지만 그때였다.
‘크윽.’
순간적으로 심장을 옥죄는 느낌이 느껴졌다.
그 고통에 저절로 부엌 쪽의 천장을 바라봤고 그곳에 뜨거운 연기가 모이는 걸 볼 수 있었다.
‘설마…….’
잘못 봤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흔들어 봤지만 분명히 연기가 모이고 있었다.
플래시오버가 발생하기 전, 집 안의 가구와 인테리어 등이 연소되며 나오는 가연성가스들이 축적되는 전조 증상이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다급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훑었다.
‘나가야 돼.’
잠시 후 불길이 집 안을 휘감는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퇴로를 찾기 시작했다.
허석훈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너 왜 그래?”
“…….”
“야, 인마!”
방금까지만 해도 아이를 달래고 있던 이성하가 갑자기 일어나 대답도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휘이이잉.
‘베란다?’
면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것에 열려 있는 베란다 창문이 눈에 들어왔고, 그에 돌아서서는 허석훈을 바라보고는 손을 뻗었다.
‘로프!’
허석훈이 어깨에 메고 있는 로프 꾸러미가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