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67화>
67화. 인정 못 해 (3)
하지만 웃음이 지속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구조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오성수가 확인한 신고 내용에 권일섭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대장님, 화재가 발생한 곳이 진관동입니다.”
“……!”
출동 장소가 진관동이라는 보고 때문이었다.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여기요.”
권일섭이 진관동이라는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물어봤지만, 오성수가 들어 보인 핸드폰에는 진관동이라는 이름이 명확히 적혀 있었다.
<진관동 화재 출동>
- 은평소방서 상황실에서 알려 드립니다. 진관동 313번지 은평드리미아 2단지, 203동에서 화재 발생. 다수의 요구조자 있는 걸로 확인. 신속히 출동 바랍니다.
진관동.
그것도 다수의 요구조자가 있는 아파트 화재라는 사실에, 모든 대원들의 얼굴에 깊은 근심이 어렸다.
“이런 썅!”
“아파트 단지네요. 그것도 드리미아예요.”
진관동이라는 말에 짐작을 하긴 했지만,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아파트 화재 출동이라는 내용에 저절로 인상을 찌푸렸던 것이다.
아니, 사실 화재 출동 위치가 진관동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아파트 화재라는 건 확실했다.
[거기 아파트 단지만 무식하게 몰려 있는 데 아니야?]
‘맞아요. 동 전체가 아파트예요. 지금도 지어지고 있잖아요.’
렉스 역시 진관동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는 체를 할 정도로, 동 전부가 아파트로 이루어진 곳이 진관동이었으니까.
하지만 대원들이 인상을 찌푸리는 건 출동 내용이 아파트 화재라서가 아니었다.
이성하가 아직도 지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진관동은 신축 아파트들이 즐비한 곳이었고, 그중에서도 드리미아는 가장 높은 아파트였다.
“드리미아가 20층짜리였죠?”
“어. 그것도 고급 아파트라고 넉넉한 20층.”
“하…….”
대원들이 층수를 이야기하며 수심에 잠길 만큼, 어마어마한 높이를 가진 아파트가 드리미아였던 것이다.
층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하나였다.
“선배님, 사다리차 안 닿겠죠……?”
“닿겠냐? 20층이면 70미터인데?”
오성수의 말에 허석훈이 바로 면박을 줄 정도로, 사다리차를 사용할 수 있는 높이를 아득히 넘어선 게 70미터의 높이였다.
물론 이런 때를 위해 각 소방서에 고가 사다리차가 한 대씩 배치돼 있긴 하지만, 그건 말만 고가 사다리차지 실제로는 고층 화재에 큰 도움이 안 됐다.
[20년 전에 산 걸 아직까지 쓰고 있으니까 그렇지.]
‘20년이요? 그게 20년이나 됐어요?’
[더 됐을 수도 있어. 네 아버지가 활동할 때도 그거보고 고물이라고 했거든. 그거 40미터밖에 안 닿잖아.]
두 사람의 대화에 렉스가 혀를 차는 것처럼, 수십 년 전에 구매한 사다리차를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이 알았다면 깜짝 놀랄 사안이지만, 이성하에게는 그리 놀랄 인은 아니었다.
‘뭐, 장갑도 돈 없다고 안 주니까.’
당연히 지급되어야 할 방화 장갑도 보급하지 않아 사비로 구매하는데 그 비싼 사다리차는 오죽할까.
하지만 현실을 탓한다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탓하는 것도 사람을 구하고 나서 할 일이었고, 그 때문에 서둘러 헬멧을 착용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당연하죠.’
골든타임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큰 출동이 아파트 화재였기에, 도착도 전부터 달릴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현장의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다들 준비해.”
“알겠습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검은 연기에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준비를 마쳤지만, 막상 도착해서 본 화재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화르르르르!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불길이 옥상에 보이긴 했어도 사람이 거주하는 층에는 불길이 없었고, 그 때문에 오성수와 허석훈이 안도 어린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 큰 불은 아닌 거 같은데요?”
“그런 거 같지?”
“네, 일단 사람들부터 대피시키시죠. 인명 피해는 없을 거 같습니다.”
재산 피해는 있겠지만, 인명 피해는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성하도 안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이네, 옥상 외에는 불길이 안 보인다.]
‘그러게요. 주거 지역에 불 붙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구조 버스를 타고 오며 보이던 까마득한 아파트의 높이에 내심 긴장하던 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대원들과 달리 김필주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하…… 저 친구…….”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씨익.
한쪽에 대피해 있는 사람들 무리에서 자신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였고, 권일섭 역시 그 사람을 봤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김정호네. 아무래도 꼬마 때문에 온 거겠지?”
출동 전에 걱정하던 김정호가 이성하를 노리고 직접 현장에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단순히 취재를 위해 나온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김정호의 도착이 너무 빨랐다.
“네. 저희보다 빨리 온 거 보면 무전 같이 받은 거 같습니다.”
“쳇, 본청에 줄 하나 박아 놨구먼.”
신고가 들어오자마자 출동한 자신들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했다는 건, 김정호가 미리 사고 발생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김정호는 그대로 시선을 돌려 이성하를 찾았다.
‘이성하.’
실제로는 처음 보지만 이미 영상으로 여러 번 봤던 이성하를 단숨에 찾고는 씨익 웃었고, 그대로 메고 있던 카메라를 들어 올려 셔터를 눌렀다.
찰칵. 찰칵.
권일섭과 김필주를 향해,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이 이성하 때문이란 걸 여과 없이 보여 준 것이다.
그 때문에 권일섭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쉽게 넘어가진 않겠구먼.’
김정호가 이성하를 타깃으로 삼은 게 명확해진 상황.
하지만 더 이상 김정호에게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진압대 먼저 올라갑니다!”
소방서에서 자신들과 같이 출발한 진압대가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아파트로 뛰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구조대가 할 일은 혹시나 안에 남아 있을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일이었고, 그 때문에 권일섭은 팀을 나눴다.
“나랑 필주, 성수, 도영이는 13층부터 20층까지. 석훈이, 형석이, 병주, 성하는 1층부터 12층까지 수색해. 알겠어?”
“넵!”
아직 3팀의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다른 팀에서 예비로 출동한 대원들과 함께 팀을 나눴으며, 그렇게 준비를 마치자마자 미련 없이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로 향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수색해!”
“알겠습니다!”
김정호의 존재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히 현재 상황에서 김정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주거 지역도 아니고 옥상에만 일어난 화재야. 그저 사람들만 대피시키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위험도가 높은 아파트 화재긴 했지만 사람들이 살지 않는 옥상이 화점이다 보니, 사람들만 대피시키면 무사히 종료될 듯 보였다.
그리고 상황은 그런 권일섭의 생각대로 흘러갔다.
“주수해!”
“주수!”
쏴아아아아아!
옥상의 불길이 먼저 진입한 진압대의 주수로 진압이 시작됐고.
“15층은?”
“체크했습니다.”
“그래도 모르니까. 다시 한번 확인해!”
“알겠습니다!”
사람들의 대피는 구조대의 꼼꼼한 수색으로 신속히 진행됐다.
“콜록, 콜록.”
“선생님 이쪽으로 오세요!”
“구급대, 이분 좀 봐주세요!”
연기로 인해 기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무사히 비상구를 통해 대피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 때문에 김정호가 씁쓸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내렸다.
“상황 종료인가.”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주시하던 상황에서 맥없이 종료된 화재였으니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인명 피해가 없는 건 다행이야.’
소방관들의 잘못을 고발하기 위해 이곳에 있긴 하지만, 사람이 상하는 걸 원하는 건 아니었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여기 물 좀 드세요.”
“아, 선생님 고맙습니다.”
막 건물을 빠져나온 주민에게 들고 있던 물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고, 그렇게 몇몇 사람에게 다정한 말을 추가로 건네고는 등을 돌렸다.
‘아쉽지만 다음을 노려 볼까.’
이성하의 위선적인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 게 아쉽긴 했지만, 사람들이 크게 다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다음을 기약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 대장님, 뭔가 이상합니다.
조금 더 상황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 현장대응단장 옆에서 대기하던 참이었는데, 그가 들고 있는 무전기에서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왜? 뭐가?”
- 현재 9층에 있는데 공기가 상당히 뜨거운 거 같습니다. 위쪽은 안 그렇습니까?
‘권일섭과 이성하!’
단박에 알아챈 목소리였다.
“뭡니까? 저쪽으로 가세요.”
그런 무전 내용에 곁에 있던 소방관 한 명이 김정호를 밀어내려 했지만, 김정호는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신분증을 꺼내 들었다.
“성화일보 김정호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는 느낌에, 제대로 취재를 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김정호의 예감처럼 현장의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착각하는 거 아냐?
“아닙니다. 뜨겁습니다. 확실해요.”
이성하가 착각이 아니냐는 권일섭의 무전에 단호한 대답을 했다.
“성하야, 대장님 말씀대로 우리가 착각한 거 아닐까?”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좀 뛰었습니까? 주민들 대피시키려고 너무 뛰어다녀서 잘못 느낀 겁니다.”
“아니요. 이거 열감 맞습니다. 확실해요.”
그런 이성하를 향해 허석훈과 다른 소방관들이 애매한 표정을 짓는데도 확실하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그 때문에 무전기를 잡은 권일섭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 꼴통 새끼.”
“조사해 볼 생각이십니까?”
“그럼 해야지. 어떻게 해? 열감이 느껴진다는데.”
상황이 거의 정리되는 시점에서 갑자기 열감이 느껴진다는 보고에 머리가 아파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었다.
“화점이 어디라고 했지?”
“옥상 실외기랑 집진 설비(연기 제거 설비)에서 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 성수야.”
“네, 말씀하십쇼.”
“진압대에게 연락해서 아래쪽에서 열감이 느껴진다는데 화점 주변 다시 한번 확인 좀 해 달라고 해 봐.”
“알겠습니다.”
불안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확인하는 게 소방관의 일이기에, 진압대와 무전 채널을 맞춰 둔 오성수를 통해 그 내용을 전달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오성수의 무전기를 통해 다급한 진압대장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 대장님, 화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옥상 진입하기 전에 있는 엘리베이터 기계실이 연소가 됐는데 불길이 큽니다.
“……!”
모두가 당황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바라봤고, 권일섭은 그 즉시 무전을 외쳤다.
“이성하, 엘리베이터다! 빨리 확인해!”
이상함을 느꼈던 이성하를 향한 음성이었으며, 그 말에 이성하가 그대로 복도를 달렸다.
“제기랄.”
혹시나 했던 불길한 추측이 현실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화아아아악!
“뭐, 뭐야?”
밖에 있는 소방관들이 일제히 하늘을 바라봤다.
방금까지만 해도 줄어들던 검은 연기가 다시 매섭게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중 한 층에서 빨간빛이 번쩍였다.
화르르르르!
거대한 불길이 한 층을 통째로 휘감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