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66화 (66/235)

<강철 소방대 66화>

66화. 인정 못 해 (2)

* * *

이성하의 위치가 후위로 조정된 건 그날부터 바로 시작됐다.

“이성하를 후위로?”

“네, 대장님 지시입니다. 당분간은 후위 보조만 맡기라고 하시더라고요.”

야간에도 후위로 돌리라는 명령이었던 만큼 김필주가 그 명령을 다른 팀장들에게도 전달했고, 그 때문에 이성하의 임무는 더 이상 요구조자 구출이 아닌 탈출 경로를 확인하는 후방 보조였다.

- 뒤쪽 확인됐어?

“네, 요구조자 없습니다. 불길도 아직 번지지 않은 상태라 이쪽으로 빠져나오시면 될 거 같습니다.

- 오케이. 요구조자 확인하고 그쪽으로 나간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위험을 가장 가까이 하는 선두조가 아닌, 후방에서 요구조자를 수색하고 탈출로를 체크하는 보조 임무를.

그리고 그렇게 임무가 조정된 지 2주란 시간이 흘렀다.

“성하야, 공기통 가져와야겠다.”

“세 개면 되겠습니까?”

“어.”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3주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뒤에 남아 선배들을 보조하는 역할이었고, 그 때문에 출동을 마치고 돌아와 구조차 정비를 하던 이성하에게 렉스가 입을 열었다.

[야, 넌 화도 안 나냐?]

‘왜 또 그래요?’

[후방으로 물러난 게 벌써 3주째잖아. 이 정도면 슬슬 위치 바꿔 줘야지. 언제까지 구경만 하라는 거야!]

분명히 당분간이라고 했던 지시가 3주나 지났음에도 아무 변동이 없는 사실에 짜증이 나 있었다.

더 이상 아무 기사가 없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악의적인 기사? 개뿔이다, 완전.]

렉스의 기가 찬 음성처럼, 그때의 기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성하를 향한 악의적인 기사는 없는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피식 웃었다.

‘뭐 어때요? 구조만 잘하면 됐죠.’

자신은 별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구조차에 실린 장비들을 점검했고, 실제로 이성하는 현재 상황에 아무 불만이 없었다.

끼이이익.

“오셨어요?”

“어, 청소하냐?”

“네. 요구조자들은요?”

“너희들이 빨리 구조해서 이상 없대. 걱정 안 해도 돼.”

“하하하. 다행이네요.”

요구조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복귀하는 구급대 선배들의 말처럼, 출동에 나가 요구조자들을 구조하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하는 후방에 남아 보조를 하는 것에 별 불만이 없었다.

[아휴, 됐다.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냐?]

‘하하하. 금방 다시 선두조로 부르실 거예요. 원래 로테이션으로 돌아가잖아요. 이번에 늦게 돌아간다고 치죠, 뭐.’

구조에 문제가 없던 만큼, 원래 돌아가던 로테이션 위치를 좀 길게 가져간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리고 후방에 남아 임무를 맡는 것 역시 배울 게 많았다.

‘팀장님이 이렇게 했던가?’

장비를 점검하다 난데없이 손을 허공으로 휘저으며 피식 웃음을 짓는 이성하였고, 그 모습에 렉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 뭐 하냐?]

‘아까 팀장님이 보여 주신 매듭법 연습요.’

[하…….]

오늘 출동에서 같이 후방에 남았던 김필주가 이성하에게 로프 두 개를 연결하는 매듭법을 하나 알려 줬는데 난데없이 자신과 이야기하다 말고 그걸 연습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거 아까 자네가 알려 준 거 아냐?”

권일섭이 차고에서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그 모습을 가리키며 웃음을 짓고 있었고, 그 옆에 있던 김필주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구매듭의 변형인데 신기했나 봐요. 저게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아니잖아요.”

잠깐 머리를 식힐 겸 밖으로 나왔다가, 오늘 출동에서 가르쳐 줬던 매듭 연습을 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흐뭇한 감정이 들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김필주가 권일섭에게 슬쩍 웃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유지하실 겁니까?”

“뭘?”

“모르는 체하지 마시고요.”

그 말에 권일섭이 혀를 찼다.

“너무 길었나?”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아니야. 좀 길긴 했지. 그런데 불안하단 말이지.”

“김 기자요?”

“그래. 워낙 우리를 싫어하는 양반이잖아. 예전에는 안 그랬지만 말이야.”

씁쓸함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후회라기보다는 무언가 미련이 남아 있는 말이었고, 김필주 역시 그 감정은 같았다.

“운이 없었죠.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늦었었잖아요.”

김필주 역시 권일섭이 걱정하는 김정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김정호는 권일섭이 알고 있는 것처럼 소방관들 사이에서 악명으로 유명한 기자였다.

사회부에 소속된 기자로 소방 쪽에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걸고넘어져 해당 소방관을 문책까지 받게 하는 기자.

그 때문에 어느 정도 연차가 있는 소방관이라면 다 알고 있는 기자가 김정호였다.

“김정호? 그 개새끼?”

“하…… 이 양반. 또 이러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야, 내 앞에서 김정호 이름 꺼내지도 마. 끔찍하다, 끔찍해.”

한두 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소방 쪽에 악의적인 기사를 여러 번 작성해, 근무를 오래한 소방관이라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김정호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직업이 소방관이었고, 김정호 역시 한때는 그랬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성화일보 사회부 기자로 새로 들어온 김정호입니다. 앞으로 자주 뵙게 될 거 같아서 인사드리러 왔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사회부 기자로 발령되며 곳곳의 소방서에 인사를 다닐 정도로 소방관들에게 호의를 품은 기자가 김정호였던 것이다.

거기다 지금은 은평소방서와 서대문소방서로 분할됐지만, 그 당시에는 하나였던 서부소방서의 소방관들과는 집이 가깝단 이유로 친하게 지낼 정도였다.

“소방관님, 어떻게 된 겁니까?”

“뭐야? 김 기자님,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요?”

“모르십니까? 저 집이 이 앞이잖아요.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예요? 이야기 좀 해 봐요.”

김정호의 집이 은평구였던 덕분에, 출동에 나가면 자주 마주치던 기자가 그였다.

그 때문에 서부소방서의 소방관들은 김정호와 친분이 있었다.

“바쁘십니까?”

“어이쿠, 김 기자님,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은요? 퇴근하다가 잠깐 들렀죠. 그거보다 이거요.”

“이건 뭡니까?”

“박카스요. 오다가 사 왔는데 한 병씩 드세요.”

집이 가깝기도 했지만 일적으로도 자주 만나다 보니 서로를 편하게 여겼고, 그중 김필주와의 관계는 더욱 특별했다.

“근데 김 소방관님은 몇 살이에요?”

“저요? 33살 말띠입니다.”

“말띠? 저도 66 말띠인데 말 놓으시죠.”

“그럴까?”

“그러자. 하하하.”

공교롭게도 나이가 같아 서로 말을 놓을 정도로 친분을 쌓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그 좋았던 사이가 끝난 건 9년 전 어느날이었다.

- 속보입니다. 서대문구의 9층짜리 상가 건물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는 현재 4층에서 시작해 6층까지 번진 상태이며, 건물 안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9년 전, 서대문구의 한 상가 건물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 서대문소방서. 광역 1호 발령! 광역 1호 발령!

“광역 1호입니다!”

“전부 출발해!”

“넵!”

뉴스로 보도될 정도로 큰 화재다 보니 서부소방서에도 당연히 지원 요청이 떨어졌고, 그렇게 도착한 현장에서 서부소방서의 소방관들은 눈물을 흘리는 김정호를 볼 수 있었다.

“왜 미뤘어……?”

한 여성의 시신을 앞에 두고 흐느끼는 모습이었다.

“죄송합니다…….”

“그 말이 듣고 싶은 게 아니야…… 왜 미뤘냐고…….”

“…….”

현장에 있는 소방관들을 향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계속해서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 힘없이 소방관들의 멱살을 잡은 채 서 있는 그의 모습을 서부소방서 소방관들은 말릴 수 없었다.

“내 아내 왜 포기했어…… 살릴 수 있었잖아! 바로 들어갔으면 살릴 수 있었잖아! 으허허허헝.”

그 앞에 사망한 여성의 시신이 김정호의 아내였던 것이다.

물론 김정호의 아내가 사망한 게 소방관의 탓은 아니었다.

건물에 화재가 일어난 것이 소방관들 때문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현장에 있던 소방관들은 그런 김정호의 말에 아무 말을 못 했다.

“죄송합니다…….”

김정호의 말이 맞아서였다.

화르르르르!

“크윽. 대장님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불길이 너무 세다! 확실하게 진입로 확보하고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현장에 일찍 도착하긴 했지만 불길이 너무 센 나머지 진입을 조금 뒤로 미뤘고, 그 결과가 눈앞의 상황이었다.

“가까웠어…… 한 층만 올라가면 바로 만났을 거야.”

“죄송합니다…….”

“너희가 바로 진입했으면 내 아내가 이렇게 죽지 않았을 거란 말이야…….”

김정호의 아내가 발견된 위치가 그들이 정한 진입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김정호는 분노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며…… 그런데 왜 버렸어?”

“죄송합니다…….”

“왜 버렸냐고! 다른 사람들은 잘만 구했잖아. 근데 왜 내 아내만 버렸어! 왜 내 아내만 버렸냐고!”

평상시 자신이 존경하고 멋있다고 지칭했던 소방관들이, 불길에 겁먹고 자신의 아내를 외면한 상황이 돼 버렸으니까.

“정호야…….”

김필주가 그런 김정호를 걱정해 결국 손을 뻗었지만, 김정호는 그 손길을 거부했다.

“…….”

그저 아무 말 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김필주를 비롯한 서부소방소의 사람들을 바라봤고, 그 이후 김정호는 소방관들을 가장 적대하는 기자가 돼 버렸다.

“김정호라…….”

“안타까운 이름이죠.”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에, 누구보다 소방관들에게 날 선 칼을 들이대는 기자로.

그 때문에 권일섭은 이성하에게 내린 명령을 조금 더 유지할 셈이었다.

“그래서 김 기자가 성하를 공격하는 건 보고 싶지가 않네.”

그런 상처를 가진 김정호가 이성하와 엮이는 걸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아픈 손가락인가요?”

“그렇지. 아픈 손가락.”

김필주의 말처럼 두 사람 모두 권일섭에게 있어 아픈 손가락에 해당해서였고, 그 말에 김필주 역시 동의했다.

“그러겠네요. 그 친구가 가장 증오하는 게 성하 같은 소방관이니까요.”

아내를 잃었던 상처 때문에, 남을 위해 목숨을 거는 소방관은 모두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김정호였으니까.

하지만 김필주는 눈앞에 이성하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저 친구가 그때 있었다면 달랐을 거야, 정호야.’

수십 년간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누구보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진심인 소방관이 자신의 후배인 이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빰빠밤빠! 빰빠밤빠방!

화재 출동! 화재 출동!

“……!”

철커덕! 철컥!

순간적으로 울리는 화재 출동벨에 이성하가 단숨에 점검하던 장비들을 구조차 안으로 다시 실었다.

“대장님, 팀장님 뭐 하세요? 출동입니다! 빨리요!”

자신들을 발견했음에도 인사는커녕 출동을 서두르라며 구조 버스에 올라타는 이성하의 모습에 두 사람이 피식 웃었다.

“가자. 신입보다 늦었다, 우리가.”

“그러게요. 가시죠.”

자신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 자연히 웃음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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