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65화 (65/235)

<강철 소방대 65화>

65화. 인정 못 해 (1)

화창한 햇빛이 내리쬐는 아침.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은평소방서 앞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뭐야? 왜 아무도 안 와?”

“시간 됐으니까 슬슬 오지 않을까?”

“제복 입고 오느라 그런가 보지. 슬슬 올 때 됐어.”

누군가를 취재하려는지 소방서 정문에서 연신 시계를 확인하며 주차장 쪽을 바라보는 모습이었고, 이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렸다는 듯 들고 있던 카메라의 플래시를 터트렸다.

“은평구조대의 권일섭 대장님이시죠? 이번에 대장님이 이끄는 3팀과 함께 은평소방서의 모범 소방관으로 선정됐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KBC의 김주찬 기자입니다. 김필주 소방관님, 저번 북한산 구조 작전도 인상 깊었지만, 이번엔 현장에서 범인까지 검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고 알려졌습니다. 소감 한 마디 들을 수 있을까요?”

“허석훈 소방관님! 소방관님도 한 말씀 좀 해 주십쇼.”

“오성수 소방관님, 여기 한번 봐주세요. 사진 한번 찍을게요.”

“이성하 소방관님, 아직 신입 소방관임에도 불구하고 혁혁한 공로를…….”

대장인 권일섭과 그 휘하에 있던 3팀 모두가 이번 은평소방서의 모범 소방관으로 표창을 받게 돼, 기자들의 관심이 폭발했던 것이다.

사실 이렇게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를 벌일 일은 아니었다.

<은평소방서 3분기 모범 공무원 표창 수여식>

모범 소방관 표창은 수여식이 진행될 강당에 걸려 있는 현수막의 내용처럼 각 소방서에서 매 분기마다 진행되는 정기 행사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표창은 특별했다.

“오늘 표창은 특별히 강호선 서울시장님이 맡아 주셨습니다. 모두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 주십쇼.”

짝짝짝짝!

원래대로라면 소방서장이 표창장을 수여하는 게 관례임에도, 서울시장이 수여를 위해 은평소방서를 찾았다.

“정 의원도 오셨네요?”

“그럼요. 이런 자리는 와야죠. 당연히 참석해야 할 자리 아닙니까? 하하하.”

일이 있어야만 소방서에 얼굴을 비치던 시의원들 역시 자리를 빛내기 위해 대부분 참석한 상태였고, 그들 모두 표창장을 수여받는 구조대를 향해 뜨거운 박수 세례를 보냈다.

“위 소방공무원은 평소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왔으며, 특히 2014년 4월 17일 북한산 화재에서 살신성인의 자세로 소중한 생명을 구한 공이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

표창장에 적혀 있는 내용처럼 단순히 범인을 검거한 공으로 상을 수여받는 게 아닌, 그간 발생한 재난에서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한 활약을 칭찬받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은평소방서의 이번 표창 수여는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많은 언론이 보도했다.

<은평소방서, 북한산 화재의 영웅들에게 모범 소방관 표창 수여>

<시민들의 안전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소방관들>

<터널 화재의 영웅 은평구조대>

이미 언론을 통해 몇 번이나 보도됐던 은평구조대의 이야기였던 만큼, 특종을 바라는 기자들이 기를 쓰고 달려든 상황.

물론 전부 좋은 내용만 있는 건 아니었다.

긍정적인 내용의 기사를 좋아하는 시민들이 있다면,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를 좋아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북한산 화재, 원래는 이렇게 커질 불이 아니었다>

<불안했던 소방관들의 초기 대응. 조금만 더 빨랐다면>

<녹번동 터널 화재는 애초부터 소방관들의 시설 관리 소홀이 문제>

그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사히 마무리된 재난들에 쓸데없는 트집을 잡는 기사들이 있는 상황.

그러나 이 정도는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미친놈들. 또 X랄이네.”

“놔둬요. 기자들이 한두 번 그럽니까? 이번에 그 조사받은 건설사에게 돈 좀 받았나 보죠. 아니면 조회 수 끌려고 그러거나.”

기사를 본 소방관들이 모두 피식 웃음을 지을 만큼, 매번 으레 반복되는 기자들의 장난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기사가 그렇다는 건 아니었다.

가끔 그런 기사들 중 장난질로 치부할 수 없는 기사가 간혹 한 개씩 낄 때가 있었고, 마침 이번이 그랬다.

“이성하. 너 빨리 이리 와 봐.”

“네?”

“아, 빨리 와 봐. 좀.”

막 출근을 하는 이성하를 오성수가 다급한 표정으로 불렀다.

“뭐 때문에 그러는데요?”

그 때문에 이성하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그 옆으로 앉았지만, 이내 오성수가 가리키는 모니터 화면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무모한 소방관? 이거 설마 우리 이야기예요?”

화면에 자신들을 제목으로 삼은 기사가 있어서였다.

“그래. 우리 이야기야. 어떤 미친 새끼가 봄에 있던 북한산 화재부터 이번 터널 화재까지 우리 구조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칼럼을 써 놨어.”

“잠깐만요. 자세히 좀 읽어 볼게요.”

오성수의 말에 어떤 내용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제대로 앉아 기사를 탐독했고, 이내 쓰인 내용을 모두 읽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끄응, 뭐 이런 놈이 다 있어요?

“그렇지? 너도 어이없지?”

“당연히 어이없죠. 이 기자 뭐지?”

기사 내용이 지금까지 벌였던 은평구조대의 모든 구조를 운에 의존한 구조였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사의 내용은 이성하 개인을 비판하고 있었다.

<운에 의존해 구조를 펼치는 무모한 소방관>

제목부터 은평구조대 전체가 아닌 한 명의 소방관을 지칭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북한산 화재에서 소방관들의 활약으로 사망자가 없던 건 다행이지만, 사실 해당 소방관의 행동은 무모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먼저 이동해서 구출대를 호출하거나, 부상을 입은 동료들을 응급조치하며 구출대를 기다리는 게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소방관은 그러지 않았다. 영웅 심리에서 나온 행동이었는지 무모하게 혼자서 여섯이나 되는 인원을 끌고 산길을 내려갔다. 중간에 이미 구출대가 조직돼 산을 오르고 있던 걸 생각하면 산에 고립됐던 등산객과 동료 소방관들에게 더 큰 부상을 입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발생했던 녹번동 터널 화재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공기가 다 떨어졌는데도 그걸 주변에 알리지 않아…….

지금까지 이성하가 벌였던 구조 방법들을 조목조목 짚어 가며 무모한 구조였다고 비판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의 동조를 얻은 오성수는 마치 자기 일처럼 울분을 토했다.

“팀장님, 이거 서 차원에서 대응해야 되는 문제 아닙니까?”

“무슨 서 차원이야?”

“아니, 그렇잖아요. 지가 직접 구조를 해 보고 이야기하든가. 이런 놈은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지가 뭔데 성하한테 난리야, 난리는.”

현장에 직접 있지도 않았던 기자가 이성하의 행동을 철없는 영웅 심리라고 빗댄 것에 괜히 억울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권일섭은 피식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네.”

“센터장님!”

“대장이라고 불러, 인마. 그리고 확실히 기사 내용이 틀린 건 아니잖아.”

기사의 내용이 좀 공격적인 건 맞았지만, 확실히 현장에서 이성하의 행동들은 규정에 어긋난 게 많았다.

‘확실히 그런 감이 있긴 하지.’

최근에는 조금 나아진 듯하지만, 여전히 사람의 목숨이 걸리면 보고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게 이성하의 성향이었으니까.

오죽하면 가끔 자신도 그 때문에 머리 아플 정도였다.

“대장님, 근데 이거 시끄러워지는 거 아닙니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네, 이렇게 상세하게 내용을 써서 지목할 정도면 막내를 아예 타깃으로 삼은 거 같은데요.”

“역시 그런가. 쩝.”

옆에서 우려를 토하는 김필주의 말처럼, 이성하를 대상으로 한 기사가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였다.

이렇게나 상세하게 행보를 조사해 기사로 올렸다는 건 앞으로도 이성하를 계속 주목하겠다는 뜻이었고, 무엇보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권일섭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래서 어제 전화했던 건가? 골치 아프네.’

문제의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권일섭의 개인 번호를 알고 있을 정도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친한 건 아니었다.

- 대장님, 이번에 표창장 받으신 거 봤습니다. 잘 지내셨죠?

“누구시죠?”

- 저 성화일보의 김정호입니다. 이거 저장도 안 하시고 서운한데요?

“아, 김정호 기자님. 이 밤에 무슨 일이세요?”

번호가 저장되지 않아 누군지 물어봤을 정도로, 사적으로 인연을 맺은 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잘 아는 기자였다.

- 다른 게 아니라 대장님 부하 대원 중에, 이성하 소방관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이성하요? 그 친구는 왜요?”

- 다른 게 아니라 제가 사회부 기자이지 않습니까? 요즘 떠들썩한 활약을 하는 것에 호감이 좀 생겨서요.

“호감? 김정호 기자님이요?”

이성하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말에 바로 정색을 했을 정도로, 소방관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은 기자가 바로 성화일보의 김정호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권일섭은 용건을 듣자마자 전화를 바로 끊었다.

“죄송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함부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 흠, 그런가요?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함부로 부하 대원의 이야기를 해가 될 수도 있는 사람에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은 잘한 듯 보였다.

‘통화 끝나고 바로 올렸구먼.’

기사가 작성된 시간을 보니, 자신이 이성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든 이미 기사의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그것도 오성수가 대신 나서서 호들갑을 떨 정도로 악의적인 방향의 기사였고, 그 때문에 권일섭은 마음을 정했다.

“이성하.”

“네, 대장님.”

“당분간 너 몸 좀 사려라.”

“네? 몸이요?”

“어, 너 당분간 계속 뒤에서 후방 보조해.”

당분간은 이성하를 먼저 진입하는 선두가 아닌, 보조 임무를 맡는 후위로 돌리기로.

그런데 그 말에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후위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니야. 잠깐 몸을 사리는 게 나을 거 같다.”

“뭐,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사자인 이성하는 권일섭의 명령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지만, 허석훈과 오성수는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대장님, 너무 예민하신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런 기사야 으레 출동하면 몇 번 올라오는 건데 후위로 돌리는 건 오버입니다. 정식 구조대원이 된 지 얼마나 됐다고요.”

정식으로 구조대원이 된 지가 얼마나 됐다고, 고작 기사 하나 때문에 이성하를 다시 견습이나 다름없는 후방으로 돌리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권일섭의 명령은 바뀌지 않았다.

“필주야.”

“네, 선배님.”

“야간에 근무할 때도 당분간 이성하 후위로 돌려.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기사가 어지간히 신경 쓰였는지 자신이 없는 야간에도 이성하를 후위로 돌리라며 김필주에게 명령했고, 그 뒤로는 더 이상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김정호란 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김정호라는 이름이 계속해서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