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64화 (64/235)

<강철 소방대 64화>

64화. 안타까운 사망 (4)

단번에 주변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저, 정말입니까?”

그 말에 오성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권일섭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어. 성하 말대로 경계가 너무 인위적이야. 불길은 이렇게 번지지 않거든. 누가 휘발유를 뿌리지 않는 이상 말이야.”

직접적으로 휘발유를 언급했다.

“한번 확인해 볼까?”

확실히 하기 위해 헬멧을 벗고 얼룩에 얼굴을 갖다 대며 냄새까지 맡는 모습이었고, 그렇게 몇 번을 킁킁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네. 진압대가 물을 너무 열심히 쏴서 날아가긴 했는데 미세하게 냄새가 남아 있어. 휘발유 맞아.”

“……!”

장난스러운 뉘앙스이긴 했지만, 권일섭은 이번 화재의 원인이 유류가 맞다며 확언을 해 주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가 다급한 표정을 물었다.

“그럼 빨리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신고?”

“네, 혹시 방화범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아직 방화범이 근처에 있을 확률 때문이었다.

‘자살이면 모르지만, 만약 방화범이 따로 있다면 그렇게 멀리는 못 갔을 거야.’

화재가 발생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걸 떠올리면, 가까운 곳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말에 오성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방화는 좀 심하지 않냐…….”

자신의 의견이 틀렸던 덕분인지 자신이 없는 목소리긴 했지만, 방화범이 있을 확률은 부정했다.

“심해?”

“네, 그렇잖아요. 성하 말대로라면 누가 이분을 해치고 불을 질렀다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말이 됩니까? 사람을 해치고 불을 지르다뇨.”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다고 할지언정, 사람을 해치고 불까지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아직 소방관으로 근무한 기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오성수와 이성하에게만 국한되는 일이었다.

“아니야. 충분히 있을 수 있어.”

“그럼요. 이것보다 더한 것도 봤는데.”

이야기를 듣고 온 김필주와 허석훈은 충분히 이 상황이 가능하다 봤고, 그에 권일섭이 망설임 없이 거실로 이동했다.

“뭘 떠들고 있어? 확인하면 될 일을.”

“확인이요?”

“그래. 보통 이런 경우는 고인이 된 분이 알려 주거든.”

사망자의 시신을 가리키며 직접 확인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황당한 발언이었다.

‘무슨 말이지? 고인이 된 분이 알려 준다고?’

자신들이 탐문을 배운 형사도 아닌데, 시신을 통해 사인을 알아내겠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렉스 역시 그 모습에 핀잔을 내뱉었다.

[뭐야? 지가 무슨 화재조사관이야? 어떻게 시신을 통해 파악하겠다는 거야?]

시신이나 상황을 보고 사인을 유추하는 건, 화재 감식을 업무로 삼는 화재조사관이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렉스가 모르는 게 있었다.

“필주야, 여기 라이트 좀 비춰 봐라.”

“네, 알겠습니다.”

업무가 정확히 나눠진 미국은 몰라도, 한국은 일반 소방관이라도 가끔 화재조사관을 도와 출동에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이성하가 가끔 구급대로 지원을 나가는 것처럼 인원 부족에 시달리는 한국의 특수성 때문이었고, 그게 권일섭이 말단 대원으로 활동하던 80~90년대에는 더 그랬다.

“너희들 잘 봐. 적성에 안 맞으셔서 구조대에 계실 뿐이지, 대장님이 화재조사관 자격증도 갖고 계실 정도로 이 방면에선 전문가야.”

“전문가요?”

“어, 대장님 한창 활동할 때는 화재조사관이 거의 없어서 대원들이 직접 조사하는 일이 많았거든.”

라이트를 비추며 후배들에게 보고 배우라는 김필주의 말처럼, 웬만한 화재조사관 못지않게 화재 감식을 경험한 소방관이 권일섭이었다.

그리고 권일섭은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사람의 피부는 뜨거운 열기를 접하면 피부가 열기로 붉게 변하는 발적이나 신체가 일부가 부어오르는 종창이 일어나. 손상을 입은 피부를 회복하기 위해 혈액 공급이 많아져서 그렇거든. 하지만 이분은 없네.”

“없다고요?”

“어, 화재가 발생하기 전에 죽은 거야. 죽은 사람한테 손상을 회복하기 위해 혈액 공급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김필주의 말을 들었는지, 권일섭은 대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감식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설명에 따르면 사망자의 사인은 화재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

‘진짜야. 어디에도 진짜 발적이나 종창이 된 부위가 없어.’

권일섭의 말처럼 화상을 입은 환자들에게 흔히 보이는 피부 반응이 시신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런 이성하를 위해 권일섭은 더욱 직접적인 사인을 보여 줬다.

“피부 반응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보다 더 사인을 확실히 파악하는 방법이 있어. 필주야, 코 쪽으로 라이트 비춰 볼래?”

권일섭의 말에 김필주가 라이트를 조정해 콧속을 밝혔다.

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점막이 살짝 묻어 있는 코털이 보였고, 그에 권일섭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화재 출동 다녀오면 콧속이 어떻게 되지?”

“…….”

대답을 하는 소방관은 없었다.

이유를 몰라서?

아니었다.

‘대박. 이걸로 사망의 원인이 화재인지를 파악할 수 있구나.’

출동만 다녀오면 콧속이 시커멓게 변해, 몇 번이고 코를 풀었던 상황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망자의 코털은 매끈했다.

돋보기로 보지 않아 확실치는 않았지만, 호흡을 했다면 당연히 검어야 할 코털이 말끔한 상황.

그 때문에 감식을 마무리한 권일섭은 곧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혹시 밑에 경찰 도착했습니까?”

- 아직 도착 안 했는데 무슨 일 있습니까?

“확실치는 않지만 사망자 사인이 화재 때문이 아닌 거 같습니다. 방화로 추정되는 강력 사건으로 보이니,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재의 원인이 방화로 판명이 난 이상,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 방화범을 잡기 위해 상황을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권일섭을 이성하가 황홀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와, 멋있다…….’

[인정. 확실히 실력은 좋네.]

렉스 역시 그 모습에 감탄했을 만큼,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는 모습에 멋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를 권일섭 역시 묘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보통이면 쉽게 넘어갈 흔적인데, 그걸 이상하게 봤단 말이지.’

사인을 정확히 파악한 건 자신이었지만, 그 단초를 발견한 건 이성하였다.

“야, 그거 어떻게 알았냐?”

“얼룩이 이상했다니까요.”

“아, 진짜. 저걸 보고 어떻게 그렇게 생각해? 다른 흔적도 있었지? 말해 봐. 나도 좀 알자, 인마.”

밖으로 나가는 이성하에게 다른 흔적이 없었느냐 갈구는 오성수의 말처럼, 사실 그 역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가볍게 넘어갔을 정도로 얼룩의 흔적이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권일섭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직감. 아니, 육감인가.’

이성하는 일반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사물의 본질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고.

다른 소방관들이 들었다면 웃었을지 모르지만, 권일섭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때도 혼자서 상승 기류를 예측했단 말이지.’

예전 북한산 화재 때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승 기류까지 파악했던 이성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직감이나 육감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렉스가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이성하의 육감이 반응하는 건, 근처에서 무언가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니까.

물론 그렇다고 우연은 아니었다.

[미안했냐?]

‘네?’

[구해 주지 못해서 미안했던 거잖아. 그래서 더 열심히 주변을 살핀 거고 말이야.]

렉스의 말처럼 이성하는 요구조자에게 미안한 감정을 품었다.

이미 진입 전에 요구조자가 사망한 상태지만 구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더욱 열심히 주변을 수색한 거였고, 그런 렉스의 생각처럼 이성하는 고인이 된 사망자에게 미안한 감정을 품은 게 맞았다.

‘미안하다기보다는 좀 안타까웠어요.’

[안타까워?]

‘네. 자살 출동이나 고독사 때도 그랬지만, 주변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테잖아요.’

다른 이들에게는 빠르게 감정을 털어 낸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그 기억들을 뇌리에 담은 채 출동에 나선 상황이었다.

신고가 좀만 더 빨랐거나, 자신들이 조금 더 빨리 도착했다면 달라졌을까 하고.

그 때문에 이번에 경우엔 미안함보다는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다.

어떤 원한을 샀기에 죽임을 당하고 방화까지 당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내심 분노가 일어났다.

‘그나저나 이 새끼 어떻게 잡죠?’

[갑자기 왜?]

‘아니 생각해 보니까 만약 신고가 늦었으면 사망자가 더 발생할 수도 있었잖아요.’

다행히 화재를 빨리 진압하긴 했지만, 자칫하면 몇 명의 사망자가 더 발생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다.

재산 피해가 발생하긴 했지만 한 층이 불길에 휩싸인 것치고는 그 피해가 생각보다 적었고, 중요한 건 구조대의 증언 덕분에 경찰이 범인을 특정하는 데 시간이 줄었다는 거였다.

“CCTV를 보면 지하철 쪽으로 도주한 걸로 보입니다.”

“오케이. 관공서에 연락해서 그쪽 CCTV 전부 넘겨받아.”

원래대로라면 화재 감식이 끝나고 나서야 배정될 형사들이, 구조대의 증언 덕분에 범인을 바로 특정해 수사에 나섰고, 그렇게 수사에 나선 지 하루 만에 방화를 일으킨 범인이 검거됐다.

- 안녕하십니까. 어제 응암동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강력 사건이 발생해 많은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안겼는데요. 놀랍게도 그 범인이 오늘 검거됐는데 경찰에서는 당시 출동했던 소방관들의 증언 덕분에 빠른 체포가 가능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소방관은 은평소방서에서 근무하는 권일섭 소방관과 이성하 소방관인데요. 소방관들은 출동에 나서 현장을 수색하던 도중…….

경찰 쪽에서 소방관들이 수사에 도움을 줬다고 밝힘에 따라, 도움을 준 소방관으로 시신의 사인을 파악한 권일섭과 흔적을 찾아낸 이성하의 이름이 뉴스로 보도되었다.

당연히 이성하로서는 기분 좋을 상황이었다.

“이야, 이성하 제법인데?”

“그러게. 얼룩은 언제 봤대? 다들 놓쳤는데.”

“애가 워낙 열심히 하잖냐.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뉴스에서 직접적으로 은평소방서의 이름을 거론함에 따라, 소방서의 많은 동료들이 칭찬을 건넸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기분과 다른 의미로 웃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성하 소방관, 범인까지 잡고 꽤 매스컴을 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네.”

이성하의 이름을 언급하며 씨익 미소를 짓는 사람이었고, 그 손에는 공교롭게도 예전 북한산 화재 때 이성하를 인터뷰한 신문이 들려 있었다.

<목숨을 걸고 사람들과 동료들을 구한 이성하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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