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63화>
63화. 안타까운 사망 (3)
이성하는 더 이상 같은 문제로 고민하지 않았다.
사람을 구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선배의 조언을 확실히 받아들였기에, 또 한 번 같은 상황으로 출동하면서도 지체없이 구조에 들어갔다.
“제 딸이 방 안에서 목을 매단 거 같아요. 제발 좀 살려 주세요. 흐윽.”
“알겠습니다, 어머니. 비키세요!”
철컥, 철컥, 철컥, 파캉!
방 안에서 딸이 목을 매단 것 같다는 신고자의 말에 그대로 문고리를 박살 냈고.
“젠장, 빨리 끌어내려!”
“네!”
그렇게 목을 맨 요구조자를 발견하고는 바로 줄을 끊고 응급조치에 들어갔다.
“팀장님, 숨을 안 쉽니다. 바로 심폐소생술 하겠습니다!”
소방관인 걸 떠나 그저 목숨이 위험한 사람이 눈앞에 있었기에.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그저 살아만 달라는 마음으로 요구조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런 마음 덕분인지 요구조자는 이번에도 소생할 수 있었다.
“콜록, 콜록.”
“좋아! 숨 돌아왔어!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
“알겠습니다!”
정신을 차리진 못했지만 거칠게 기침을 토하는 요구조자의 모습에, 환한 표정으로 구급대의 이송을 도왔다.
물론 이번에도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다.
“다녀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요구조자는 어때요?”
이송을 마치고 소방서로 복귀한 구급대에게 요구조자의 상태를 물었는데, 그에 김영광이 피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괜찮아. 응급조치가 빨라서 큰 문제는 없대. 그런데 우리보고 원망하더라.”
“왜 살렸냐고요?”
“어. 펑펑 울더라. 우리가 방해했대. 자기 왜 살렸냐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 요구조자 또한 자신을 살려 낸 것에, 감사는커녕 원망을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김영광의 말에 이성하는 웃음을 지었다.
“괜찮네요.”
“뭐?”
“그렇게 울 정도면 금방 회복한단 이야기잖아요.”
“……너 미쳤냐?”
그 모습에 김영광이 미친놈 보듯 쳐다봤지만, 이성하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요구조자는 무사히 의식을 회복함. 오케이. 보고서 끝.”
출동 보고서를 쓰던 중이었는지 타이핑을 마무리하고는 머리 위로 손을 활짝 뻗었고, 그에 옆에 있던 허석훈과 오성수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와…… 이 녀석 적응 빠른 거 보소.”
“그러니까 말이에요. 나는 처음에 자살 출동 나가고 한 일주일 고민했는데.”
“일주일이 뭐냐? 난 거의 한 달 걸렸는데.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일반적으로 처음 겪으면 몇 주는 고민하는 자살 출동을 며칠 만에 떨쳐 버리는 것에, 이성하가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이성하도 사람이었다.
지금 같은 경우는 의지의 문제다 보니 선배인 장호철의 조언을 받아 쉽게 넘어갔지만, 직접적으로 뇌리에 충격을 주는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팀장님, 구급대에서 문 개방 요청이 왔습니다.”
“문 개방?”
“네. 연락이 안 된다는 보호자의 말에 출동했는데, 안에서 응답은 없고 열린 창문으로 뭔가 썪는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다른 출동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구급대로부터 사망자 확인을 위한 문 개방 요청을 받았다.
연로한 1인 가구에서 간혹 발생하는 고독사 출동이었고, 그렇게 도착한 현장에서 이성하는 처음으로 시체를 목격했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문을 따고 들어가자마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으며, 잠시 후 보게 된 시신의 모습엔 입을 감싸쥔 채 밖으로 달려 나갔다.
“우웨에에웩.”
처음으로 보게 된 시신의 흉험함에 속에 있는 모든 걸 토해 낸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성하를 향해 뭐라고 하는 소방관은 없었다.
“이성하, 괜찮냐?”
“우욱,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무슨. 야, 이성수! 이성하 데리고 밖에 나가서 진정 좀 시켜.”
“알겠습니다! 아예 밖에서 대기시킬게요.”
“그래. 밖에 있으라고 해.”
그들 역시 이성하와 같은 경험을 해서였다.
상황만 달랐지, 소방관이라면 당연히 겪는 신고식이 지금 이성하의 모습이었고, 오늘은 그중에서도 강도가 높은 편에 속했다.
“이성하. 오늘도 밥 안 먹을 거야?”
“네, 냄새가 계속 코에 남아서 먹으면 토할 거 같아요.”
“에휴…… 그래도 밥은 먹어야 되는데. 늦게라도 혹시나 생각 있으면 와.”
“알겠습니다, 선배님. 전화드릴게요.”
일반적으로 몇 주가 지나고 발견되는 게 고독사 현장인 만큼, 발견된 시신의 부패도가 굉장히 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망자가 출동 중에 목숨을 잃은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래도 너 운은 좋다.”
“운이요?”
“어. 네 동기 장건호 기억 안 나냐? 너는 걔처럼 구조 중에 요구조자가 사망한 건 아니잖아. 보통 첫 시신이 자기가 구하던 요구조자면 장건호처럼 트라우마가 남거든. 죄책감 같은 거 말이야.”
옆에서 피식 웃는 오성수의 말처럼 구조 중이던 요구조자가 사망한 건 아니다 보니, 장건호가 겪었던 트라우마 같은 건 없는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운이 좋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다.
구조대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출동의 대부분이 인명 구조에 관련된 출동이었다.
“선생님, 차 앞부분이 완전히 내려앉아서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다리에 감각은 있으세요?”
“네…… 그런데 너무 아파요. 빨리 좀 꺼내 주세요. 끄윽…….”
“지금 곧 꺼내 드릴 테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자살자나 고독사 외에도 교통사고 같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출동이 자주 떨어졌고, 그런 와중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아파트 화재가 일어났다.
빰빠밤빠 빰빠밤빠방!
-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응암동 백산아파트에서 화재 발생.
“화재 출동이다!”
“서둘러!”
진압대와 구조대가 함께 호출되는 화재 출동이었다.
화르르르르!
“선착대 말로는 전원 대피시켰다고 하는데 화재가 발생한 702호 주민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설마 안에 있는 겁니까?”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진입해야 돼. 화재가 시작된 곳이 요구조자의 거주지인 702호야. 계단을 통해 진입해서 바로 확인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다행히 선착대의 빠른 조치로 모두 대피한 걸로 보이지만 한 명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아 말에 구조대의 진입이 결정됐고, 그곳에서 이성하는 또다시 시신을 목격하게 됐다.
“대장님…….”
“그래. 이미 사망했어. 너무 늦었다.”
안타깝게도 불길을 피하지 못했는지, 요구조자가 집 안에서 새카맣게 탄 모습으로 발견이 된 것이다.
다행히 화재는 순식간에 잡혔다.
“마무리됐습니다! 잔불 체크할게요!”
먼저 온 선착대가 미리 불길을 진압하고 있던 것도 있었지만, 구조대와 같이 진입했던 진압대가 내부에서 불길을 완벽하게 잡은 상황.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구조대가 할 일은 없었다.
사망 사건인 만큼 나중에 도착할 경찰에 인계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고, 그렇게 상황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 경찰은 5분 뒤에 도착한답니다.
“경찰 곧 도착한답니다. 내려가시죠.”
인계를 받은 경찰들이 곧 도착한다는 무전에 팀장인 김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어? 이게 왜 이렇게 탔지?’
혹시 집 안에 뭔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방 안을 수색하는데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렉스, 이거 이상한 거 맞죠?’
화재로 인해 시커멓게 얼룩진 벽면에 드문드문 빈 공간이 눈에 띄었다. 그 말에 렉스 역시 의문을 표했다.
[그러게? 이거 얼룩이 왜 드문드문 있냐?]
‘그렇죠? 얼룩이 쭉 연결돼야 하는 거 맞죠?’
[당연하지. 얼룩은 이렇게 안 생겨. 무슨 물이 튄 것도 아니고. 탈 거면 전부 타야지.]
불길이 진압되며 드러난 얼룩 사이로 조금씩 타지 않은 빈 공간이 자리해 있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바로 오성수를 불렀다.
“얼룩이 이상하다고?”
“네, 이거 좀 보세요. 너무 인위적이에요.”
렉스를 통해 확인도 했겠다, 드문드문 얼룩이 있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흔적을 확인한 오성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냥 타다 만 거네.”
“타다 말아요?”
“그래. 위아래로 다 탔잖아. 불길이 여러 곳에서 번지다가 중간에 진압돼서 공간이 생긴 거야. 그만큼 진압이 빨랐잖아.”
집 안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던 만큼, 여러 곳에서 불길이 퍼지다 공간이 생긴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성수의 말처럼 동시에 불길이 번지는 경우를 생각하면, 지금처럼 공간이 생기는 경우가 드물지만 간혹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얼룩의 경계가 너무 뚜렷했다.
‘아니야, 자연스럽게 탔다기보다는 공간의 구분이 너무 명확해.’
얼룩의 경계가 마치 선이라도 그은 것처럼 너무 뚜렷하게 나뉘어 있었다.
그것도 한두 개면 몰라도 여러 개의 얼룩이 그런 모습이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유류 화재야?’
마치 무언가를 따라 불이 탄 흔적에, 유류 화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방화를 통한 자살이겠지.]
‘렉스!’
[왜? 내가 틀린 말 한 거 아니잖아. 누가 집에 휘발유를 갖고 있어? 유류 흔적 있는 거면 무조건 방화야. 누가 불을 질렀든가, 사망자 본인이 불을 지른 거겠지.]
렉스의 확언처럼 유류가 화재의 원인이라면, 이유를 떠나 방화로 인한 화재라는 것만은 틀림이 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오성수를 붙잡았다.
“선배, 한 번만 더 확인해 줘요.”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서였다.
“왜?”
“진짜 이상해서 그래요. 불길이 동시에 번진 건 맞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얼룩의 경계들이 너무 뚜렷하잖아요.”
아니면 좋았지만 렉스의 말처럼 방화의 확률이 있는 이상, 아직 이 아파트 어딘가에 방화범이 있을 확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오성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오버야.”
“그래도…….”
“야, 설마 방화겠냐? 너무 과민 반응이야, 인마.”
오성수 역시 흔적을 이상하게 보긴 했는지 방화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긴 했지만, 이성하의 걱정을 과민 반응으로 치부했다.
“너 너무 피곤해서 그래. 지난주에 고독사 환자 생각나서 그런가 본데 오늘 돌아가면 일찍 퇴근하고 쉬어. 내가 팀장님께 말해 줄 테니까.”
최근 이성하가 연속으로 시신을 보다 보니, 그 충격 때문에 예민해진 거라는 생각을 품은 오성수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방화라.”
언제부터 있었는지, 권일섭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게 저거야?”
“네, 얼룩이 좀…….”
“알았으니까 비켜 봐. 확인해 보게.”
이성하의 대답을 듣자마자 권일섭이 그대로 말을 자르고는 흔적을 살폈고, 그렇게 몇 번 흔적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방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