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62화>
62화. 안타까운 사망 (2)
남성의 생명은 지장이 없었다.
“대장님, 지금부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래, 연 부장. 부탁해.”
뿐만 아니라, 빠른 응급처치 덕에 잠시 후 도착한 구급대의 들것에 실려 구급차까지 안전하게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성은 끝까지 이성하를 보지 않았다.
“허억, 허억.”
그저 가쁜 숨만 내쉬며 아무 말 없이 구급차에 올랐고, 그렇게 실려 가는 환자의 얼굴엔 살아서 다행이라는 표정보단 죽지 못해 안타깝다는 허무함이 가득했다.
‘이게 뭐야…….’
[왜 그래?]
‘보람이 없잖아요, 보람이…….’
사람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람이 없는 찝찝한 출동이 돼 버린 것이다.
“괜찮냐?”
“그게 좀…….”
“신경 쓰지 마. 가끔 있는 일이야. 그냥 이런 일도 있다고 생각해.”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오성수가 돌아가는 차 안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긴 했지만, 이성하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왜 살렸냐니…….’
원망 어린 남성의 눈초리가 잊히지 않았다.
“죽게 놔두지, 왜 살렸냐고. 흐윽.”
자신의 구조가 그 대상에게 상처가 되는 상황은, 이성하로서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야, 너 아직도 그 생각하냐? 가서 밥이나 먹자. 이런 거 신경 쓰면 한도 끝도 없어.”
“그래, 성하야. 라면 다 불어 터졌겠다. 얼른 가자.”
“네, 선배님.”
별일 아니라는 선배들의 말에 이성하 역시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겨 보려 했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마침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했던 구급대가 소방서로 돌아왔다.
“왔어? 환자는?”
“무사해요. 다행히 농도가 그리 높지 않더라고요. 같이 앉아도 되죠?”
“그럼. 이쪽으로 와. 안 그래도 성수가 새로 끓이고 있어.”
그들 역시 출동으로 점심을 걸렀던 만큼 자연히 같이 앉아 식사를 하게 됐고, 그 와중에 허석훈이 구급대에 자살을 시도했던 남성의 사연을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래?”
“아까 그분이요?”
“어, 병원 가서 들었을 거 아냐?”
이성하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역시 우울했던 남성의 인상이 너무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그에 오늘 구급대의 책임자였던 연시훈 부장이 입을 열었다.
“그게…… 많이 안됐더라고요.”
“왜? 무슨 일인데?”
“신원 확인을 했는데 가족이 없었어요. 그래서 친척이랑 통화했는데, 몇 달 전에 아버지 되시는 분도 자살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도?”
놀란 허석훈의 표정에 연시훈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들어 보니까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났답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빚까지 생겼다고. 그래서 못 버텼나 봐요. 아들분도 그 회사에서 일했다는데, 결국 아버지 뒤를 따른 거고요.”
듣기만 해도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쩝, 빚 때문에 아들 걱정해서 그러신 거네.”
“에휴…… 그래도 사셨어야지.”
“그러게요. 살렸다고 원망할 만하네요. 일하는 회사도 없어졌는데 아버지까지 돌아가셨으니까.”
이야기를 듣자마자 오성수와 허석훈이 한숨을 내쉴 정도로 남성의 사연은 딱했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죄송한데, 먼저 가 있겠습니다.”
이성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였다.
“안 먹고 어디 가? 밥은 먹어야지.”
“괜찮습니다. 입맛이 없어서요. 먼저 가서 구조 버스 정리하고 있겠습니다.”
붙잡는 김필주의 말에도 괜찮다며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를 떠난 이성하였고, 그에 마침 자리에 앉으려던 권일섭이 허석훈과 오성수의 머리를 내려쳤다.
쾅! 쾅!
“쓸모없는 새끼들. 눈치를 어디에 팔아먹고 다녀?”
“죄송합니다…….”
처음으로 자살 출동을 경험한 후배 앞에서 눈치 없이 그 상황을 다시 상기시킨 두 사람이 한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게 뭐 그리 큰일이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소방관은 처음 자살자를 겪게 되면 스스로의 일에 회의감을 느끼곤 했다.
사람을 구한다는 숭고함으로 일을 하는 만큼 그 노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존재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때문에 연시훈 부장이 억울한 표정으로 허석훈을 바라봤다.
“설마 쟤 처음이에요?”
“…….”
“아이 씨, 그런데 그걸 여기서 왜 물어요!”
처음인 소방관이 있는 줄도 모르고 요구조자의 사정을 미주알고주알 눈앞에서 떠벌린 셈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행동은 아니었다.
소방관들은 사고 출동에 관한 모든 사항을 동료들과 공유하고 기록했다.
상황을 알아야 다른 비슷한 출동에서도 도움이 되는 건 물론, 자살을 시도한 경우엔 재출동할 확률이 높아 그 사정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처음인 소방관에게는 예외였다.
앞서 말한 대로 겪게 되면 스스로의 일에 회의감을 느끼는 만큼 무경험자에게는 가급적이면 말을 아끼는 게 자살 출동이었고, 그런 선배들의 걱정처럼 이성하는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원망한 거구나.’
요구조자에게 열심히 심장 마사지를 했던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렉스, 저도 그랬어요?’
[뭔 소리야?]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말이에요. 저도 저렇게 슬퍼했어요?’
자신을 원망하던 남성의 눈빛을 떠올리며 예전 아버지를 잃었던 자신의 모습도 떠올렸고, 그렇게 한참을 생각해도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에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에 그런 요구조자를 또 만나면 어떡하죠?’
[신경 쓰지 말라니까.]
‘눈빛이 잊히지 않아서 그래요. 모든 걸 포기한 눈빛이었어요.’
절망으로 가득한 그 눈빛을 생각하니, 다음에도 그런 요구조자를 만나면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너 그따위 정신머리로 출동 나갔다가는 이번에 권일섭한테 된통 당한다.]
렉스의 말처럼 이런 정신으로 출동에 나설 수는 없었다.
혼이 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칫하면 실수를 저지를까 하는 두려움에서였고, 그 때문에 김필주를 찾아갔다.
“시간? 왜? 아까 그 일 때문에 그래?”
“네, 무시해야 되는데 자꾸 머릿속에 남습니다. 혹시 잠깐 시간 되십니까?”
병원에서 조언을 들었던 때처럼, 김필주를 통해 답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김필주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시간은 되는데 그건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듣는 게 좋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요?”
“어. 따로 전문가가 있거든. 마침 저기 오네.”
김필주의 턱짓에 이성하가 고개를 돌렸다.
“다녀왔습니다!”
마침 그때 출동을 나갔던 구급대가 들어오고 있었고, 그런 구급대를 보며 김필주가 말했다.
“장 부장, 시간 좀 되나?”
“시간이요?”
“어, 성하가 고민이 있다고 해서.”
구급대의 장호철 부장이었다.
현장대응단의 경우 센터와 달리 두 개의 구급대가 운영되는데 그중 한 팀이 길현대와 함께 넘어온 장호철과 김영광이었고, 그중 장호철이라면 이성하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추천이었다.
“부탁드립니다, 부장님.”
구급대로서 누구보다 가까이서 요구조자를 대하는 만큼, 자신의 의문에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호철 역시 그 요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래. 뭔지는 모르지만 휴게실로 가자. 커피나 마시면서 이야기하게.”
선배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평상시 호감이 있는 이성하의 요청에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이성하는 자신의 고민을 장호철에게 털어놨다.
“무슨 일인데?”
“오늘 출동 때 일입니다…….”
오늘 출동에 나가 자살을 시도한 요구조자를 구한 것부터 시작해…….
“요구조자가 원망을 했다?”
“네. 왜 살렸냐고 원망을 하시더라고요. 죽게 놔뒀으면 좋았을 거라고. 그래서 고민이 됩니다. 제가 한 게 잘한 건지. 저는 절실한 마음으로 살렸지만 요구조자의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은 일이었잖아요.”
그런 요구조자에게 원망을 받아,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당한지에 대한 의문을.
그런데 그 말에 장호철이 피식 웃었다.
“고민? 그걸 왜 고민해?”
“네?”
“그걸 왜 고민하냐고.”
장호철이 앞에 놓인 커피를 살짝 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말하는 게 뭔지 알아. 온 힘을 다해 살려 놨는데 정작 그 사람은 살기를 원하지 않는 모습에 이게 뭔가 싶은 거잖아. 네가 그런 사람을 살려야 되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는 거고. 근데 성하야.”
“네.”
“내가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거든. 야간 근무 끝나고 버스 타고 퇴근하는데 갑자기 길가에서 어떤 아저씨가 쓰러지는 거야. 비틀거리다 그대로 쓰러졌는데 깜짝 놀라서 버스 멈추고 급히 뛰어갔어. 어딜 잘못 부딪쳤는지 머리에서 피가 쏟아졌거든.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까 내가 할 게 없더라.”
“네?”
의아해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장호철이 웃으며 말했다.
“할 게 없더라고. 아저씨가 쓰러지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었어. 어떤 사람은 자기 가방으로 목을 받치고, 어떤 사람은 휴지를 꺼내 피가 난 곳을 지혈하더라고. 마치 역할을 짠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말이야. 그래서 신고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히 119에 전화했거든? 근데 그것도 의미가 없었어. 왜 그런 줄 알아?”
“누가 먼저 신고했군요.”
“어, 이미 사고 접수돼서 출동했대. 금방 도착할 거라고. 그리고 그 뒤에도 내가 할 게 없었어. 소방차가 도착하니까 곁에 있던 사람이 상황 설명을 해. 어떤 사람은 아저씨 짐 챙겨서 구급차로 같이 옮겨 주고.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구급차 떠나니까 주변 정리하더라. 근처 슈퍼에 가서 물 사 와서 말이야.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뭔지 아니?”
“…….”
“그렇게 청소까지 하고는 다들 갈 길 가는 거야. 연락처를 남기거나 할 거 없이 자기 할 일 끝났다며 그냥 가더라고. 그런데 사람들이 그 아저씨를 왜 도왔을까? 감사 인사를 받으려고? 아니면 영웅 심리 때문에?”
답을 들으려 한 건 아닌지 장호철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냥 아무 이유도 없었어. 사람이 다치니까 그냥 움직인 거야. 자신들밖에 도울 사람이 없었으니까. 이번 일도 같아. 우리가 소방관인 건 중요하지 않아. 쉬는 날이라고 사람 안 구할 거야? 근무를 하든 안 하든 앞에 목숨이 위험한 사람이 있으면 돕는 게 당연한 거야. 그 사람이 살기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슨 말인지 알겠니?”
그 말에 이성하는 아무 말을 못 했다.
이해를 하지 못해서? 아니.
자신이 너무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는 것을 깨달아서였다.
‘그래. 사람을 구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겠어? 그냥 구하는 거지.’
소방관인 걸 떠나 사람이라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길을 내미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장호철이 피식 웃었다.
“해결됐나 보네? 그렇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듯한 이성하의 모습에 만족한 표정을 지은 거였고, 그에 이성하가 활짝 웃었다.
“네, 고민할 이유가 없었네요. 감사합니다, 부장님.”
그 말처럼 방금까지만 해도 머리를 어지럽히던 고민이 말끔히 해결된 순간이었으니까.
그랬기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장님, 제가 어깨 좀 주물러 드릴까요?”
“어깨?”
“네, 안 그래도 오늘 하루 종일 출동 나가셨다면서요. 제가 좀 주물러 드릴게요.”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준 선배에게 감사를 표하는 거였고, 그에 장호철은 거부하지 않고 어깨를 내줬다.
“조금 더 세게.”
“이 정도요?”
“옳지, 딱 좋다.”
선배를 존경하는 후배의 마음이 느껴짐에 기꺼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