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61화 (61/235)

<강철 소방대 61화>

61화. 안타까운 사망 (1)

길현대의 세 사람이 구조대의 정식 인원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그동안 미뤄졌던 은평구조대의 팀 개편이 시작됐다.

<인사 발령문>

# 시행 일시 : 2014년 9월 1일

# 발령 내용 : 현장대응단 팀 개편

# 발령자 : 이민수 외 6명

# 발령 사항 : 은평구조대 3팀에서 1팀과 2팀으로 배치 변경함.

기존에 있던 구조3팀이 1팀과 2팀으로 흡수 통합됐고, 그 빈자리에 미리 알려진 대로 김필주가 이끄는 길현대가 들어왔다.

<은평구조대 3팀>

구조팀장 – 김필주

구조대원 – 허석훈

구조대원 – 오성수

구조대원 – 이성하

권일섭과 김필주가 부상을 회복하고 복귀함에 따라, 드디어 길현대가 구조대로 완전히 발령된 것이다.

그 덕분에 길현대가 착용한 당근복엔 예전에 없던 새로운 마크가 있었다.

[119 구조대]

현장에서 동료들이 손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자신들의 소속이 구조대임을 알리는 마크가.

하지만 구조대가 됐다고 해서 삶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 인계 시작하겠습니다.”

“네, 시작하시죠.”

출근을 하면 센터와 마찬가지로 전 근무자들에게 업무 인계를 받는 건 같았고.

이에에에엥!

“출동! 빨리 일어나!”

“에이, 밥도 못 먹었는데.”

출동벨이 울리면 밥을 먹다가도 자리를 박차고 튀어 나가는 것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요구조자는?”

“총 셋이라고 합니다.”

“오케이. 성수가 선두에 서고 성하가 뒤를 맡는다.”

“네!”

“알겠습니다!”

현장에서 하는 일의 방향만 달라졌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마주하는 건 모든 소방관들이 하는 기본 업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이가 없는 건 아니었다.

구조대는 센터와 달리 소방서에만 있는 조직이었다.

구역을 나눠 업무를 분담하는 센터와 달리 관내에 발생하는 모든 인명 사고를 담당하는 게 구조대의 업무였기에, 배정되는 업무의 양이 굉장히 많았다.

“석훈아, 내일 구청 대피 훈련하는 거 확인하러 갈 수 있냐?”

“내일요? 저 내일 예방 팀이랑 연성초등학교 소방교육 가는데요?”

“뭐? 그럼 성수는?”

“안 돼요. 저도 내일까지 인근 공장 위험물 확인해서 보고서 올려야 된단 말이에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김필주의 말에 다들 단번에 고개를 저을 만큼, 배정되는 업무의 양이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도 같습니다. 내일까지 구조차 점검표 올려야 돼요.”

“…….”

김필주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바로 자신의 모니터를 보여 주며 일이 많다는 걸 직접적으로 표현했으니까.

이제야 소방사가 된 놈이 왜 그리 건방지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성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안 돼. 우선 살아야 해.’

구조차 점검표 외에도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불광천 안전 점검], [북한산 산악 구조대 합동 훈련 계획서], [SOP 자체 교육 계획]……

화면에 띄워진 수많은 문서 항목만큼이나 처리해야 할 행정 업무가 잔뜩이었고, 거기다 이성하는 현장대응단 전체에서 막내였다.

“성하야, 차고지 앞에 누가 차 대어 놨단다.”

“네?”

“차고지 앞에 어떤 미친놈이 차를 대어 놨대. 빨리 빼.”

“끄응…….”

팀을 떠나 전체에서 막내다 보니, 지금과 같이 업무 외에 발생하는 잡다한 일까지 모두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 이런 짓을 해결하고 나면 진이 빠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관공서, 그것도 소방서의 차고지 앞에 차를 댈 정도라면 정상적인 사람은 아닌 게 확실했고, 그 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하…… 안 받네…….”

차고지 앞에 차를 대어 놨으면서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 아, 바빠 죽겠는데 누구예요?

수차례 전화를 하고 나서야 겨우 퉁명스러운 차 주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렇게 연락이 닿아 차를 빼는 과정에서도 불협화음이 일어났다.

“아, 진짜 금방 민원 마치고 나간다니까!”

“안 됩니다. 계속 이러시면 벌금 부과해야 돼요.”

“하…… 짜증 나게…….”

자신의 잘못이 분명함에도 한참을 옥신각신하고 나서야 겨우 차를 빼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아까 그 건방진 소방관 나와!”

정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밖에서 아까 들었던 차주의 고함이 들렸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당신 말고, 방금 나한테 차 빼라고 말한 소방관 나오라 그래. 건방지게 감히 누구한테 벌금을 부과한다 만다야!”

기어코 차를 빼게 된 것이 화가 났는지 밖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었고, 당연히 그 뒤처리 또한 이성하의 일이었다.

“너 이 새끼, 다시 말해 봐. 아까 뭐라고?”

“죄송합니다, 제가 말이 좀 과했습니다.”

“다시 말해 보라고! 내 돈으로 월급 받는 새끼가 건방지게!”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모욕적인 말을 들었음에도 시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화를 풀어 주기 위해 계속해서 고개를 숙여야 했으니까.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야, 그냥 한 대 후려쳐 버려. 지가 뭘 잘했다고 여기서 난리야!]

그 때문에 아직 소방관을 무시하는 처우에 익숙지 않은 렉스가 대신 열 받아 고함을 질러 대긴 했지만, 이성하는 오히려 그런 렉스를 달래 줬다.

‘괜찮아요. 무시하면 돼요.’

[뭘 무시해! 우리가 돈 벌려고 이 짓해? 아니, 그리고 막말로 지가 돈 줘? 나라에서 주는 거 아니야! 사람 구하라고.]

‘알죠. 그런데 전부 저런 건 아니잖아요. 저런 사람보다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참아요.’

[아후, 짜증 나 죽겠네.]

전부가 아닌 일부분의 문제라며 자신을 대신해 화를 내는 렉스를 달랬고, 실제로도 기분은 좀 나빴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괜찮냐?”

“뭘요?”

“아까 그 새끼 말이야. 확 접어 버릴 걸 그랬나?”

“아니에요. 마음속으로는 열 번 접었어요.”

“뭐?”

“마음속으로 접었다고요. 감사합니다, 대장님. 이거 잘 마실게요.”

자신을 걱정해 커피를 건네며 장난을 치는 진압대장의 말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야, 우리 성하 다 컸네.”

“그러게. 제대로 된 출동 없다고, 지루하다고 징징대던 게 얼마 안 되지 않았냐?”

“에이, 또 그러신다. 저 소방사입니다, 소방사.”

그 모습에 옛일을 거론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선배들에게는 계급장을 들어 보이며 맞받아쳤고, 그런 여유를 부릴 정도로 이성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진짜 괜찮냐?]

‘그럼요. 어차피 별사람이 다 있는 거잖아요. 이런 걸로 일희일비하면 쓰나요.’

시보 딱지를 떼고 정식으로 소방사가 된 만큼, 이런 일 정도는 가볍게 웃으며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성하의 모습이 기꺼웠는지, 김필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배도 출출한데, 라면 한 젓가락 할까?”

“라면이요?”

“그래. 어차피 좀 있으면 점심시간이잖아.”

아직 업무 시간이긴 하지만 기분이나 전환할 겸 일찍 식사를 하자는 이야기였고, 그에 다른 대원들 역시 동의했다.

“그럼 제가 끓일게요.”

“다섯 개?”

“에이, 누구 코에 붙이려고. 일곱 개는 끓여야죠.”

안 그래도 업무 때문에 머리를 너무 썼는지, 다들 아까부터 배가 고팠던 참이었으니까.

그랬기에 3팀은 서둘러 진압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장님, 구조대 먼저 식사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다녀와. 보고 있을게.”

“감사합니다!”

팀마다 돌아가며 식사를 하는 소방서였기에 가능한 문화였고, 그 자리에는 당연히 권일섭도 있었다.

“내 것도 끓였냐?”

“그럼요. 이쪽으로 앉으십쇼.”

시간이 낮이었던 만큼, 대장으로 근무하는 권일섭도 자연히 함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3팀이 라면을 먹는 건 불가능했다.

“다 됐습니다. 드십쇼.”

“와, 때깔 봐.”

“대박. 역시 라면은 성수가 끓여야 한다니까.”

오성수가 끓여 온 라면에 다들 화색을 띠며 젓가락을 집어 들긴 했지만.

그 순간.

뿌우~ 뿌우~

스피커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아이이잇!”

그와 동시에 모두가 아쉬운 소리를 토하며 젓가락을 내려놨고, 한 명도 빠짐없이 전력을 다해 식당 밖으로 뛰어나갔다.

- 구조 출동! 구조 출동!

“하…… 꼭 밥 먹을 때 이러더라.”

“빨리 가. 갔다 와서 다시 끓이면 되잖아.”

방금의 벨 소리가 구조대의 출동을 알리는 긴급 출동 지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에게는 반가운 소리였다.

‘으차, 오늘도 열심히 해 볼까.’

출동할 일이 없는 게 가장 좋은 일이긴 했지만, 기왕 떨어진 출동이라면 그동안 연습한 실력을 실전에서 다듬을 좋은 기회였으니까.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빠르게 고쳐먹었다.

“연탄 냄새가 난답니다.”

“연탄?”

“네, 신고자 말로는 불이 난 곳은 없는데 이상하게 연탄 냄새가 난답니다. 냄새가 나는 곳을 찾기는 했는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어서 신고를 했다고 하고요.”

오성수가 굳은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다.

신고자의 말대로라면 화재는 없지만 밀폐된 곳에서 연탄 냄새가 난다는 말이었고, 그에 이성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자살?’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연탄 냄새라는 말에 자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자살이 확실했다.

[맞는 거 같아.]

‘맞아요?’

[어. 불도 안 났는데 연탄 냄새면 뻔하지. 가스 냄새를 연탄 냄새로 착각할 리는 없으니까.]

렉스의 말처럼 화재도 아닌 상황에서 연탄 냄새가 난다면 그 상황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일단은 문 개방 신고지만, 자살 신고일 확률이 높겠네.”

보고를 들은 권일섭 역시 자살이라는 단어를 직접 입에 올렸고, 모두의 생각처럼 이번 사고는 자살 사고가 맞았다.

“크으…… 연탄 맞네.”

“그런 거 같습니다. 화재도 없습니다. 직접 연탄을 피운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맡게 된 매캐한 연탄 냄새에 다들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그 때문에 다들 신속하게 타고 온 구조 버스에서 장비를 꺼내 들었다.

“몇 호라고 했지?”

“201호입니다.”

“좋아. 허 부장이랑 성하는 절단기랑 구급 장비 챙겨서 따라오고, 필주는 성수 데리고 다른 층 확인하면서 구급대에 서둘러 달라고 연락 좀 해.”

“알겠습니다!”

자살을 시도한 요구조자가 있는 게 확실시됨에 따라 다들 서둘러 건물 안으로 진입했고, 그렇게 목적지에 다다르자 이성하가 그대로 절단기를 치켜들었다.

“시작해.”

“알겠습니다!”

요구조자가 연탄을 얼마나 흡입했는지 예상이 안 되는 만큼, 최대한 빠르게 요구조자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 문을 뜯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철컥, 철컥, 철컥, 파캉!

노후된 문이었는지, 고작 네 번 만에 문고리가 완전히 박살 났다.

하지만 그렇게 문을 열고 확인한 광경에 이성하가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입니다!”

30대 남자 한 명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그 옆으로 한 개의 연탄이 프라이팬 위에서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바로 챙겨 온 구급 장비를 꺼내 들었다.

“아직 살아 있어. 빨리 산소호흡기 착용시키고 심장 마사지해!”

“알겠습니다!”

다급한 권일섭의 음성처럼 아직 숨을 쉬고 있는 남성에게 빠르게 응급조치를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그 조치가 늦지 않았는지, 남자가 순간 격한 기침을 토해 냈다.

“콜록, 콜록.”

“의식 차렸습니다!”

“누구…….”

위험한 상태는 벗어났는지, 직접 눈을 떠 이성하를 올려다본 상황.

“괜찮으세요? 구조대입니다. 구급대 오면 곧 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그 모습에 이성하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돌아오는 건 감사가 아닌 원망이었다.

“왜 살렸어…….”

“네?”

“죽게 놔두지, 왜 살렸냐고. 흐윽.”

감사는커녕, 원망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며 절규의 울음을 내질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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