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60화>
60화. 인정 (2)
이성하의 퇴원은 그날 바로 이루어졌다.
“이 정도면 퇴원해도 되겠네요.”
“퇴원이요?”
“네, 신기하게도 전부 정상이에요. 산소포화도도 완전히 돌아왔고, 딱히 후유증도 없고요.”
회복력 덕분인지, 후유증 없이 빠르게 호전된 상태에 담당 교수가 이른 퇴원을 허락한 상황.
하지만 이성하에게 딱히 희소식은 아니었다.
[너 내일 가면 죽을지도 몰라.]
병원을 나와 집으로 갈지 소방서로 갈지 고민하는 이성하에게 렉스가 변죽을 울렸다.
“에이, 설마…….”
[글쎄? 네 동료들 성격상 가만두겠냐?]
“…….”
렉스의 말에 자연스레 불같은 선배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 때문에 자연히 이성하의 행선지는 은평소방서가 됐다.
“저 진짜 들어갑니다?”
[말만 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 너희 말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며.]
“하…….”
정말 가기 싫었지만 렉스의 말처럼 내일 찾아갔다간 더 큰 후환이 찾아올까 하는 두려움에, 억지로 소방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건, 운 나쁘게도 권일섭이었다.
“꼴통?”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인사는 됐고, 일단 가자.”
“네?”
“가자고, 인마.”
“아! 아파요!”
만나자마자 바로 귀를 잡혀 1층에 위치한 사무실로 끌려간 이성하는, 자신을 향해 음흉한 미소를 짓는 동료들을 볼 수 있었다.
“호오, 이게 누구야?”
김필주가 반가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이리로 와.”
그 옆에 있던 허석훈은 기다렸다는 듯 책상에 있던 쇠 자를 집어 들었고.
“몸은 괜찮아?”
오성수는 처음엔 웃으며 다가왔지만.
“네, 괜찮…….”
“이 씹어 먹을 놈아!”
괜찮다는 말에 바로 돌변해 이성하의 목에 팔을 걸었다.
“아, 선배, 아파요. 진짜 아파!”
“이 새끼야. 내가 적당히 하라고 했지.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미련하게 혼자만 짐을 떠맡은 후배에게 응징을 시도한 것이다.
다른 소방관들이 그 행동을 말리지 않은 건 당연했다.
“성수 잘한다!”
“성수 씨. 좀 더 세게 해라. 혹시 봐주는 거 아냐?
말리기는커녕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고, 몇 명은 직접 이성하의 머리에 꿀밤을 놓기도 했다.
“어휴, 이 자식.”
쿵!
“초상 치를 뻔했네.”
쿵!
“다음엔 상의 좀 하고 해라.”
쿵!
결과는 좋았지만 이유야 어쨌든 간에, 동료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할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맞으며 이성하는 의문을 표했다.
‘정 팀장님은 왜 또 무섭게 가만히 있는 거야?’
당연히 그 행렬에 동참해야 할 정철호가 가만히 있어서였다.
1팀의 출근 시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소방서에 있는 걸 보면 자신을 기다렸던 게 분명했고, 그걸 보면 분명 주먹 하나는 날아와야 정상이었다.
[어딜 때려야 아플지 고민하는 거 아냐?]
‘설마요…….’
[이놈 봐라. 내가 이야기했잖아. 정철호가 자기 공기 양보하는 거 네가 개무시했다고. 그때 정철호 표정 진짜 장난 아니었다니까.]
기억은 안 나지만 렉스의 말대로라면 정철호가 이미 다가와 주먹을 휘둘러도 무방한 상황.
물론 정철호는 전혀 그럴 맘이 없었다.
‘다행이네. 심하진 않은 거 같네.’
표정으로 티는 내진 않아도, 괜찮은 이성하의 모습에 내심 안도를 하던 참이었다.
“팀장님은 한 소리 안 하십니까?”
“아냐, 난 괜찮아.”
꾸중이라도 해 달라는 부하 대원의 말에도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고, 실제로도 전혀 혼낼 마음이 없었다.
아니, 혼내기보다는 내심 칭찬을 해 주고 싶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완벽한 지시였어.’
현장에선 위급한 이성하의 상태에 공기 밸브를 교체하려 했지만, 끝나고 보니 그런 이성하의 결단 덕분에 탈출이 수월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정철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모 아니면 도였나?”
사고 당시, 힘겹게 탈출에 성공해 응급조치를 받는 정철호의 옆에서 권일섭이 조용히 읊조렸다.
“콜록, 콜록, 네?”
“저 녀석 말이야. 혼자 감수했어. 본능적으로 깨달은 거야. 알렸다가는 전부 위험에 빠질지 모른다고.”
이성하를 턱짓하며 그가 아니었다면 탈출 인원 전부 위험에 빠졌을지 몰랐다며 쓴웃음을 지었고, 그 말을 사방에서 울리는 경보음이 증명했다.
삐! 삐! 삐! 삐!
‘전부였나…….’
정신이 혼미한 덕분에 몰랐지만, 탈출 인원 대부분의 공기가 부족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정철호는 이성하의 행동을 탓할 마음이 없었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동료들에게 상의 없이 행동했다는 점이 있겠지만, 임무 당시 이성하의 위치라면 그 또한 아무 문제가 없었다.
“팀장이 그 녀석이었다고요?”
“어. 나도 그때 깜짝 놀랐는데 애가 잘하더라고. 이거 구조대에 에이스 하나 나오는 거 아냐?”
임시이긴 했지만, 구출대로 차출됐던 진압대장으로부터 이성하가 팀원들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칭찬을 할 수는 없었다.
‘애송이 주제에 걷기 전부터 날려고 한단 말이지.’
이성하는 아직 신입으로서 배워야 할 게 많았다.
위급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과감한 판단을 내린 건 칭찬할 만하지만, 아직 신입으로서 배워야 할 게 많은 상황에서 자신의 칭찬은 득보단 실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 때문에 정철호는 다른 의미로 이번 일을 칭찬할 생각이었다.
“그 정도 했으면 이제 다들 그만할까?”
잠깐 시계를 보고는 이성하를 괴롭히던 대원들을 만류했다.
“에이, 벌써요?”
“나 시간 없어. 와이프 집에서 기다리는 거 몰라? 빨리하고 가자.”
아쉬워하는 대원들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사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에 다른 대원들 역시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이성하, 너 운 좋았다.”
“팀장님 말이 맞아. 슬슬 돌아오실 때야. 빨리해야겠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이성하, 너 운 좋았다.”
뭔가 약속이 잡혀 있는 듯 다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고 밖으로 빠져나갔고, 그에 이성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뭐야?’
들어오자마자 신나게 괴롭히고는 별말 없이 밖으로 나가는 소방관들의 모습에 이게 뭔가 싶었기 때문이다.
허석훈과 오성수 역시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장님, 오늘 무슨 교육 있어요?”
“아니, 오늘 아무것도 없는데…… 다들 어디 가지?”
두 사람도 정철호를 따라 밖으로 나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들 역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뭐 하고 있어? 너희는 구조대 아니야?”
김필주가 먼저 웃으며 밖으로 나가서였다.
“어라? 센터장님도 가셨나 본데요?”
“진짜?”
권일섭 역시 미리 나갔는지 사무실에 보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세 사람은 눈치를 보고는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아, 오늘 뭐 있었나?”
“빨리 가요. 우리만 늦었다고 혼나면 어떡해요?”
혹시 모를 일정을 빠트렸나 하는 생각에, 다들 걸음을 서둘렀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렉스를 흘기듯 쳐다봤다.
[왜?]
‘렉스 때문에 괜히 오늘 와서 일까지 하게 생겼잖아요.’
무슨 일정인지는 모르지만, 집에 갔으면 빠졌을지도 모르는 행사를 엉겁결에 같이 받게 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그렇게 건물 밖으로 나서는 순간.
쏴아아아아!
세찬 물줄기가 세 사람을 덮쳤다.
“콜록, 콜록. 이게 뭐야.”
“으읍, 그만. 그만.”
그것도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세 사람을 향해 물줄기가 날아 들었다. 그렇게 물을 뿜어내는 사람들은 진압대와 구조대의 동료들이었다.
“하하하. 성수는 제가 할게요.”
“야, 얼굴 노려. 얼굴.”
“하고 있어요. 큭큭큭.”
다들 언제 연결했는지, 관창을 들고 주수하며 아이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당연히 갑자기 당한 세 사람으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그만, 너무 세!”
“아, 옷 다 젖었잖아요.”
강한 수압으로 인해 아픔도 아픔이지만, 입고 있는 옷이 다 젖어 버렸으니까.
거기다 이성하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하…….’
선배들과 다르게, 이성하는 사복을 입은 상태였다.
퇴원을 하자마자 바로 왔던 탓에 당근복을 입은 선배들과 다르게 평상복을 입고 있었고, 그 때문에 속에서 화가 치솟았다.
‘아, 진짜!’
옷도 옷이지만 주머니에 핸드폰까지 있다는 생각에 아무리 선배들이라도 장난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화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구조대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환영?’
그만하라고 정색을 하려는 순간, 귓가로 환영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쏴아아아아!
“하하하. 앞으로 잘하자.”
“이 새끼들. 내가 오늘만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축하한다. 구조대 들어온 거.”
세차게 뿜어지는 물줄기 사이로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렇게 잠시 후 물줄기가 잦아들고 정철호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할까요?”
“아니야. 자네가 해.”
“그럼 뭐. 이번만 제가 하겠습니다.”
권일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이었고, 그 손에는 샴페인이 들려 있었다.
“축하한다.”
성격만큼이나 간단한 말이었다.
뻥!
잡고 있던 샴페인의 코르크 마개를 단번에 빼며 하는 말이었고,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의 얼굴을 향해 샴페인이 부어졌다.
치이이이익!
“오늘부터 세 명 모두 은평구조대의 정식 대원이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세 사람은 몰랐지만 신규 대원이 들어오면 이렇게 물을 뿌리는 게 은평구조대에 내려오는 전통 행사였다.
의미는 단순했다.
“오래 살아라.”
“절대 죽으면 안 된다이.”
“야, 이거 덜 젖은 거 아냐? 더 뿌려야 될 거 같은데? 하하하.”
흠뻑 젖은 만큼 어떤 불길 속에서도 무사히 살아 돌아오라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이성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진짜.”
누구보다 동료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구조대의 마음을 느껴서였다.
누구보다 먼저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만큼 그만큼이나 서로를 생각하는 동료들의 마음에 울컥했고, 그 때문에 진심을 다해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동료들의 마음만큼이나, 자신 역시 동료들을 지키며 구조에 나서겠다고 굳은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좋은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끼이익.
순간 주차장으로 들어오던 승용차 한 대가 주차도 하기 전에 급정거하며 문이 열렸다.
“야이, 새끼들아! 내가 그거 하지 말랬지!”
놀랍게도 그 안에서 성환용 서장이 나오며 고함을 질렀고, 그에 정철호가 움찔거렸다.
“아, 노인네 일찍 왔네…….”
“팀장님,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튀어야지.”
잘못을 시인하는 말이었다.
“너희 아무튼 축하한다. 다음에 보자.”
그와 동시에 이성하를 비롯한 세 사람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그대로 입구를 향해 달음박질쳤고, 그에 다른 소방관들 역시 빠르게 건물 안으로 도망갔다.
“야, 튀어!”
“빨리 튀어. 빨리!”
전통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훈련에만 사용되는 재활용수를 사용한 탓에, 서장이 예전부터 구조대의 축하 행사를 금지하던 상황이었다.
이성하로서는 황당한 순간이었다.
“이 새끼들 전부 시말서 쓰고 싶어?!”
“이크.”
난데없이 물을 맞고 화를 내다가 막 감동에 젖으려는 찰나에, 이번엔 욕까지 먹으며 도망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감동이 그냥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맛있네.’
입에서 느껴지는 샴페인의 맛에 피식 웃음이 나왔고, 그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더 열심히 해야겠네.’
드디어 구조대의 정식 일원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