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59화>
59화. 인정 (1)
“으음…….”
환한 불빛이 눈을 괴롭히는 것에 이성하가 힘겹게 눈을 떴다.
“뭐야, 병원이야?”
주변을 둘러보고는 익숙한 병실의 모습에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에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방금까지만 해도 터널 화재 현장에서 정철호를 부축하고 탈출을 시도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했으니까.
하지만 꿈은 아니었다.
“이상하다…… 꿈은 아닌 거 같은데.”
입고 있던 환자복의 재질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
평상시 입는 이너 재질의 당근복과 달리, 얇고 가벼운 면 재질의 환자복이.
심지어 병실에 있는 건 이성하 혼자만이 아니었다.
베드가 비어 다른 환자는 없었지만, 항상 붙어 다니는 이성하의 특별한 보호자는 있었다.
[꿈이겠냐?]
옆에서 빨간 불덩이 하나가 떠올랐다.
“렉스, 저 왜 여기 있어요?”
[뭐?]
“아니, 분명히 터널 안이었는데…….”
[하…….]
천연덕스러운 이성하의 물음에 깊은 한숨을 내쉬는 렉스였고, 이내 짜증 섞인 어조로 고함을 내질렀다.
[이 새끼야! 내가 너 잘못되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혹시나 잘못될까 마음을 졸였는데, 저렇게 멍청한 표정으로 상황을 묻는 모습에 열불이 터져 올랐던 것이다.
당연히 이성하는 그 고함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그래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난데없이 일어나자마자 고함을 지르는 렉스의 모습에 이게 뭔가 싶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 지금 맞고 있는 주사 뭐야?]
“주사?”
[그래, 인마. 네 팔뚝에 꽂혀 있는 거 뭐냐고.]
렉스의 말에 이성하의 시선이 팔에 연결된 수액 줄로 향했다.
천천히 그 줄을 따라 머리 위로 걸린 수액제를 바라봤고, 그에 적혀 있는 문구를 확인하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대한포도당주사액 10%>
“포도당…….”
수분과 당분 공급으로 일반 시민들에게는 피로 회복 용도로 쓰이는 포도당액이었지만, 소방관에게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수액이었다.
“설마 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어요……?”
이성하가 바로 자신의 상태를 읊을 정도로,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에게 처방되는 수액.
영양제로도 쓰이지만 유일하게 포도당만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뇌 활동을 촉진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수액이 포도당이었고, 그 때문에 렉스가 못마땅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래, 인마. 중증이었다, 중증. 너 내가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알아!]
이성하는 몰랐지만 심각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고압산소치료까지 받은 상태였다.
자칫하면 심각한 저산소증으로 심근에도 무리가 갈 수 있었던 상황.
그 때문에 이성하는 바로 태세를 변환했다.
“죄송합니다!”
[뭐가?]
“저 또 무리한 거잖아요. 하하하…….”
렉스의 눈치를 보며 멋쩍게 웃음을 터트렸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내가 뭔 죄가 있어서 이런 짐을 떠맡았는지.]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에이, 왜 그래요?”
[말 걸지 마, 새꺄. 내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넌 내가 육체만 있었으면 뒈졌어.]
지독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져 목숨을 잃을 뻔한 게 이성하의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운이 좋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동료들이 살렸다.
“제길, 중증이야!”
“연성대로! 최대한 빨리 연성대로 옮겨!”
이성하의 심각한 상태를 파악한 권일섭과 성환용이, 이성하를 가장 큰 병원인 연성대로 빠르게 이송시켰고, 그걸 지금 나타난 저 여자가 빠르게 처치했다.
“깨어났어요?”
김민정이 의사 가운을 걸친 모습으로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선생님?”
“일어나지 마세요. 아직은 무리예요.”
놀라서 일어나려는 이성하를 만류하고는 다가와 상태를 체크하는 김민정이 없었다면 이성하의 상태는 지금보다 위중할 게 틀림없었다.
“일산화탄소 중독이죠? 바로 고압산소실로 옮길게요!”
“누, 누구…….”
“의사입니다! 빨리 이쪽으로 옮기세요!”
놀랍게도 이성하가 병원으로 실려 오자마자 나타나,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에게 필요한 고압산소치료를 받게 해준 사람이 김민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저 선생, 그날 쉬는 날이라고 하지 않았나?]
분명히 쉬는 날이라 이성하와 약속을 잡고 만났음에도, 그녀는 그날 병원에 있었다.
“선생님, 내과 김영환 선생님 좀 불러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것도 근무를 하던 중이었는지, 안경을 쓰고 의사 가운을 걸친 평상시의 모습으로.
그러나 그날 김민정은 확실히 비번이었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집에서 쉬어야겠다.”
이성하가 급하게 떠나면서 식사를 마치진 못했지만, 다음 약속은 잡았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던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김민정은 집으로 돌아와 보게 된 뉴스에 급히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 속보입니다. 현재 은평구 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화재가 진압에 난항을 겪고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화재가 벌어진 지 지금까지 두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터널에 고립된 요구조자들은 구조하지 못한 걸로…….
“엄마, 나 잠깐 나갔다 올게.”
“갑자기 또 어딜 나가?”
“병원. 깜빡 잊은 일이 있어.”
이성하가 구조대로 발령받은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 사람 성격이라면 또 다칠지도 몰라.’
추락하는 버스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던 이성하라면 또다시 부상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고,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그녀의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머리는 안 어지러워요?”
“네, 좀 멍하긴 한데 괜찮아요. 금방 퇴원해도 될 거 같은데요. 하하.”
덕분에 자신의 상태가 어땠는지도 모르면서 눈앞에서 바보처럼 웃고 있는 이성하를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손에 감정이 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이거 아픈 주사니까 좀 참아요.”
속도 모르면서 웃고 있는 이성하의 모습에 주사를 놓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참아. 저 선생이 너 때문에 많이 고생했어.]
그 행동이 당연하다는 듯 렉스가 옆에서 김민정의 노고를 치하했고, 그에 아픈 표정으로 주사를 맞은 곳을 주무르던 이성하가 렉스에게 속으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뭐가?]
‘현장이요. 다들 괜찮은 거 맞죠?’
자신이 병원에 있는 걸 보면 다들 무사히 탈출한 거 같긴 하지만, 기억이 없어 정확한 상황이 궁금했으니까.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렉스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이성하의 내심을 알기라도 하듯 옆에서 상태를 체크하던 김민정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어떻게 됐어요?”
그 말에 이성하가 아이 같은 표정으로 되물었고, 그에 김민정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어요. 중증 환자로 이송된 건 성하 씨랑 공사 관계자 두 분이 전부였고, 성하 씨를 마지막으로 모두 정신을 차렸어요.”
“정말입니까?”
“네. 다른 환자들 깨어나는 거 보고 성하 씨도 깨어날 거 같아서 온 거거든요. 그러니까 안심해요.”
자신도 중증 환자로 구분된 상태에서 다른 환자의 상태부터 묻는 이성하의 모습에,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변함이 없네.’
이성하와 직접 연을 맺게 된 버스 사고에서 고맙다며 찾아온 시민들에게, 되레 살아 줘서 고맙다고 고개 숙이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했으니까.
그러나 이성하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휴, 다행이네요. 꽤 오래 멘탈스투퍼 상태여서 걱정했거든요.”
동료들은 몰라도 오랜 시간 실신해 있던 요구조자들의 상태를 알았기에, 내심 큰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상태였다.
하지만 요구조자들의 상태는 괜찮았다.
환자들이 깨어나는 걸 보고 자신을 보러 왔다는 김민정의 말을 보면, 오히려 자신보다 상태가 괜찮은 상황.
그리고 현장 역시 잘 마무리된 듯싶었다.
“아, 그리고 사건이 꽤 크다 보니까 아직까지 좀 시끄러워요.”
“시끄럽다고요?”
“네, 직접 보실래요?”
이성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민정이 리모컨을 조정해 TV의 전원을 켰고, 그렇게 켜진 TV에서 많이 본 기자 한 명이 현장에서 직접 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 어제 녹번동 재개발 구역에서 큰 화재가 있었습니다. 공사 터널 안에 다수의 사람들이 화재로 고립되는 등 아찔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소방관들의 빠른 대처로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는 걸로…….
소방관들의 빠른 초동 조치를 칭찬하며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이었으며, 그 이후에 다뤄지는 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 규명이었다.
- 이번 화재의 원인은 공사 관계자들의 현장 부주의가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정부에서는 해당 관계자를 소환해 원인 규명을 철저히 함은 물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또 다른 문제가 있는지 집중 조사한다고 밝혔습니다.
“저거 정말이에요?”
“네, 내부 고발이 있었대요. 현장 책임자가 화재 위험 때문에 자재를 옮기거나 전기선을 다른 쪽으로 옮기자고 했는데 위에서 묵살했다고 하더라고요.”
모든 방송국에서 뉴스로 화재 사고를 보도한 덕분에, 눈치를 보던 정부가 과감히 칼을 빼 들었던 것이다.
아마 무사하지는 못할 터였다.
“미친놈들. 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열 받았는걸요. 아마 정부에서 직접 원인 규명하겠다고 했으니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거예요.”
김민정의 말처럼 정부에서 입장까지 표명한 걸 보면 절대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듯 보였으니까.
그랬기에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쌤통이다. 나쁜 새끼들.’
직접 현장에서 화재가 일어난 원인을 보고 열 받아 했던 이성하였기에, 정부가 직접 책임을 묻는다는 말에 통쾌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김민정이 피식 웃었다.
“좋아할 때가 아닐걸요?”
“네?”
“전화가 엄청 오더라고요. 문자도 많이 왔는데 실수로 한 개는 봤어요.”
김민정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이성하에게 내밀었다.
“이걸 왜…….”
익숙한 외형에 이성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받아 들었고, 그런 이성하에게 김민정이 장난스럽게 읊조렸다.
“일어나면 당장 복귀해, 였나?”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하하하…….”
그 말에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핸드폰을 열었고, 그렇게 보이는 내용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부재중 통화 16건>
[일어나면 당장 소방서로 튀어 와. -권일섭 센터장님.]
[깼으면 빨리 와라. -김필주 팀장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허석훈 부장님.]
[넌 뒤졌다. - 오성수 선배.]
[문자 보면 전화할 것. -정철호 팀장님.]
핸드폰을 켜자마자 보이는 내용들에, 까마득한 자신의 앞날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