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58화>
58화. 구조대 (9)
* * *
“전부 진화됐나?”
“네! 모든 화재 진압 완료했습니다!”
지상의 모든 소방관들은 마지막 잔화 정리를 위해 힘쓰는 중이었다.
“이쪽, 이쪽으로 확실하게 주수해!”
“알겠습니다!”
쏴아아아아!
하지만 이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 각 대. 두 명의 감시 요원만 남기고 전원 터널 입구로 모이기 바란다.
무전으로 성환용 서장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서였다.
“서장님이 갑자기 왜 그러죠?”
“모르지. 일단 호영이랑 병진이만 잔불 감시하고 전원 터널 입구로 이동해.”
“예!”
이유는 모르지만 다들 명령에 따라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터널 입구로 서둘러 이동했고, 그렇게 입구로 도착해 상황을 듣고는 모두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오래되긴 했지만 예전에 구조대에 있었습니다!”
터널 내부의 전기가 끊겼다는 지휘소의 설명에, 다들 지휘소가 생각한 것처럼 구출대의 탈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원조의 투입은 불가능했다.
“은평대, 지금 예비 실린더 얼마나 남았지?”
“저희는 지금 착용하고 있는 게 전부입니다.”
그들이 착용할 여유 공기통이 없었다.
“뭐? 녹번대는?”
“저희도 지금 착용하고 있는 게 마지막입니다…….”
“길현대도 그렇습니다. 예비로 남아 있던 실린더 전부 구출대에 내줬습니다.”
“……역촌도 마지막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게 없습니다.”
센터들 역시 오래토록 진행된 화재에 예비로 챙겨 온 공기통을 모두 소모한 상황이었고, 그 때문에 성환용은 암담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제길…… 제길!”
이렇게 많은 소방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터널 안으로 지원조를 보낼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구급대, 혹시 모르니까 전원 터널 앞에 대기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위급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급대에 긴급 대기를 명령했고, 그 또한 뒤늦게 방화복으로 갈아입었다.
“서장님!”
“괜찮아. 들어가진 못해도 내려가서 기다리겠네. 권 대장, 같이 가겠나?”
“당연합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대원들의 목숨이 위급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 편하게 자리만 지킬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처럼 터널 안에는 죽음의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화아아아악.
불은 꺼졌는지 더 이상 뜨거운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새까만 유독 가스가 터널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구조대원들이 착용하고 있던 공기호흡기에서 하나둘씩 공기 잔압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삐-
실린더를 교체하긴 했지만 여러 사람이 공기를 나누어 쓰던 탓에, 대부분의 공기통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가장 선두에서 무리를 이끌고 있던 구조대원의 얼굴에는 희망이 어려 있었다.
‘좋아, 거의 다 왔어.’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강현아, 여기 2구역 맞지?”
“네, 터널이 꺾이는 걸 보니 2구역이 맞는 거 같습니다.”
진입하기 전 외웠던 터널의 구조도라면 이곳에서 진압대가 있는 걸로 여겨지는 300미터 지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고, 그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터널을 꺾자마자 아직 설치되지 못한 방음벽 자재들이 손에 잡혔다.
“방음벽이야! 조금만 더 가면 진압대가 있어!”
진압대가 대기하고 있는 걸로 여겨지는 방음벽 설치 구간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다른 구조대원들과 요구조자들의 얼굴에도 희망이 어린 건 당연했다.
“다 왔어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돼!”
“다행이다, 다행이야. 흐윽.”
조금만 더 이동하면 이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서둘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만의 이야기였다.
통로가 워낙 좁고 구조물이 많아, 모두 거리를 둔 채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선두에서 말하는 이야기가 후미까지 전달이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설혹 전달이 됐더라도 가장 뒤에 있던 이성하는 그걸 들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지러워…….’
눈앞의 모든 광경이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성하, 괜찮냐?]
‘…….’
[이성하!]
렉스의 고함에도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 때문에 결국 방향 감각까지 잃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털썩.
[젠장, 정신 차려! 성하야! 정신 차리라고!]
공기가 모두 떨어져 유독 가스를 그대로 흡입한 탓에, 일산화탄소 중독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랬기에 지금 렉스의 고함은 이성하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허억. 허억.”
시계가 흔들리고 의식이 흐려진 탓에, 그저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던 그때였다.
“놔…… 너 이러다 정말 위험해…….”
누군지는 모르지만 거칠게 자신의 몸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손에 힘 풀어…… 이성하, 제발…….”
간곡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흔들며 뭔가를 호소하는 사람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힘겹게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구야…….’
머리가 아픈 상황에서 정신없이 자신을 흔드는 손길에 짜증이 일었다.
그런데 눈을 뜨니 눈앞에 면체를 쓰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아, 요구조자…….’
습관적으로 눈앞에 있는 정철호가 요구조자라는 생각에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고, 그렇게 일어나 그를 다시 부축해 걸음을 옮겼다.
“아저씨…… 조금만 가면 돼요…… 내가 구해 줄게요…….”
“뭐라는 거야…….”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힘내요…… 힘…….”
정신없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자신이 부축하고 있는 요구조자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정신이 완전히 든 건 아니었다.
“아저씨,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가 꼭 구해 줄게요…….”
이성하는 지금 자신이 부축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걸음을 옮겼다.
[이성하, 앞에 도움 요청해. 아직 안 늦었어! 빨리!]
“제가 구해 드릴게요…….”
보다 못한 렉스의 고함에도 이성하는 끝까지 정철호를 부축하며 걸음을 옮겼고.
콰당탕.
“콜록, 콜록. 아저씨 괜찮아요…… 미안해요…… 괜찮을 거예요…….”
구조물에 걸려 넘어지는 것도 잠깐, 다시 오뚝이처럼 몸을 일으켜 정철호를 부축했다.
“꼭 구해 드릴게요…….”
그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조금만 힘내요…… 조금만…….”
본인의 상태가 더 심각한데도 아이처럼 같은 말만 번복하며 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이런 이성하의 상태는 말이 안 됐다.
유독 가스는 조금만 흡입해도 두통과 어지러움 등으로 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흡입량이 많아지면 발작과 호흡 마비 증상이 발생하며, 심하면 목숨까지 잃게 되는 상황도 벌어지는 게 일산화탄소 중독 현상.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유독 가스를 호흡한 지 이미 몇 분이 지났음에도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터억. 터어억.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위태롭게 걸음을 옮기지만 앞선 동료들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에 렉스가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어떻게 움직일 수 있지…… 설마 공기 잔압이 조금 남아 있었던 건가…….]
유독 가스를 흡입한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이성하의 상태가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아빠. 나도 생겼어. 단호한 결의란 게…….’
매번 생각했었다.
소방관이 되는 게 자신의 꿈인지, 아니면 존경하는 아버지를 따라 맹목적으로 선택한 길인지를.
그리고 그 결론은 아직도 못 낸 상태였다.
“정말입니까?”
“그래. 구조대다.”
“예에!”
구조대가 어떤 곳인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서도, 그저 아버지와 같은 구조대가 됐다는 것에 아이처럼 기뻐만 했던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구조대로 발령되며 알았다.
<인명 구조>
오로지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조직된 부대가 구조대였다.
어떤 재난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요구조자가 있다면 스스로의 목숨을 거는 조직이 구조대였고, 오늘 현장에서 보여 준 선배들의 모습이 그랬다.
“구급대! 여기 구급대!”
아직 진입로가 열리지도 않았는데도 진입해 부상을 입었던 선배들부터 시작해.
“진입해!”
“진입!”
급조된 팀인데도 불구하고 고립된 요구조자들을 구하기 위해 서슴없이 터널로 진입한 선배들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자신 역시 수차례에 걸친 출동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적은 많았지만, 목숨을 걸진 않았다.
그저 목숨이 위험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몸을 던진 것뿐이었고,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뛰어든 건 아니었다.
[가능해, 할 수 있어.]
렉스의 도움이 있었기에.
“할 수 있어요!”
그저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만 가지고 일을 벌였던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구조대의 빨간 헬멧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을 구하겠다는 헌신을 뜻하는 색깔이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사람을 구하겠다는 구조대의 정신, 오늘 그걸 이성하는 깨닫고 있었다.
‘요구조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자신이 부축하고 있는 요구조자의 생명이 손으로 느껴졌다.
쿵. 쿵. 쿵.
아직 살아 있다고 이야기하듯 거칠게 뛰고 있는 심박 소리가 손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심박을 유지할 의무가 있었다.
‘살린다. 나는 구조대니까.’
자신의 생명을 걸어서라도 붙잡은 손을 놓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게 구조대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압대다!”
“구출대는 어디 있나?”
“후미에서 요구조자 부축하며 오고 있습니다.”
“오케이. 나가, 빨리!”
선두가 진압대를 만났음에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무작정 앞 사람의 불빛만 보며 따라갔고, 그렇게 잠시 후 환해지는 시야에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도착…….’
드디어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그곳은.
“들것 올려!”
“이쪽이 더 위중해. 이쪽부터다.”
“구급대, 긴급 환자가 있다. 당장 병원부터 알아봐.”
‘다행이야…… 끝났어…….’
드디어 요구조자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왔다는 안도감이 전신을 감쌌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를 권일섭과 성환용이 다급한 표정으로 부축했다.
“이, 이성하!”
“뭐야? 자네 괜찮나? 이봐! 정신 차려!”
안 그래도 무리에서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상황에서, 힘이 빠진 모습으로 주저앉는 것에 부상을 입었나 싶었다.
하지만 이성하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상태가 아니었다.
“요구조자…….”
“뭐?”
“요구조자 먼저 부탁드립니다…….”
함께 주저앉은 정철호를 손으로 가리키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현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고, 공기 잔압이 제로야!”
“뭐? 들것! 빨리 들것 가져와!”
정신을 잃은 것도 모자라, 온몸에서 비 오듯 땀을 흘리는 이성하의 모습에 다들 난리가 나 버렸다.
하지만 그런 소란에도 이성하는 웃고 있었다.
씨익.
요구조자를 동료들에게 넘겼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상태로 실신한 상태였고, 그에 렉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 또라이 새끼.]
능력의 발현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요구조자를 구했다며 웃음을 짓고 있는 이성하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