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54화 (54/235)

<강철 소방대 54화>

54화. 구조대 (5)

“……정 팀장님?”

착각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름을 불러 봤지만, 스피커에서 나오는 인물은 그 물음에 확실히 대답했다.

- 그래, 나 정철호다.

“팀장님, 괜찮으신 겁니까!”

- 지지직. 아직은. 네가 이렇게 시간을 끌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그 말에 당황한 이성하가 금세 자세를 바로 했다.

“죄, 죄송합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방 간부들에게 짧게 고개를 숙이고는 한 걸음 물러났고, 그에 성환용 서장이 입을 열었다.

“정 팀장. 예정했던 대로 작전을 진행해도 되겠나?”

- 네, 부탁드립니다. 지금으로선 이 녀석들뿐입니다.

정철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서장이 이성하를 바라봤다.

“이성하라고 했나.”

“네, 소방사 이성하.”

“짧게 설명하도록 하지. 방금 들은 대로 현재 구조대는 자력으로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야. 예상되는 생존 시간은 한 시간. 하지만 그것도 확실한 건 아니다. 구조대가 여분의 공기통을 챙겨 가긴 했지만, 지금처럼 내부에서 화재가 일어날 걸 예상하고 진입한 건 아니거든. 그래서 지금 유일한 방법은 네 말처럼 직접 호스를 연장해 불길을 진압하는 방법뿐이다. 구출대의 인원은 총 여섯. 인원이 적은 이유는 알고 있나?”

그 말에 이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터널의 크기가 작기 때문입니다.”

밖에 있는 소방관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화재의 원인이 방음벽이란 건 이제 알았지만, 애초에 터널이 전력선을 설치하기 위한 작은 크기라는 사실은 이미 모두 숙지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이성하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래. 그래서 효율적인 진입을 위해 최소 인원을 규정했다. 화재를 진압할 진압대 셋과 안으로 진입할 구조대 셋으로 구출대를 조직한다. 총 여섯의 인원이 내부로 진입할 예정이며, 그중 구조대는 은평구조대의 너희 세 사람이다.”

“……저희 말씀입니까?”

“그래. 허석훈, 오성수, 이성하. 너희가 구출대다.”

세 사람이라는 말에 혹시라는 생각을 가지긴 했지만, 자신을 포함한 선배들이 이번에 들어갈 구출대에 포함됐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당황한 표정으로 허석훈을 바라봤다.

[저놈, 알고 있었네.]

‘이래서 무시하셨던 거예요?’

렉스의 말처럼 방금 전 허석훈이 도움을 요청하는 자신의 시선을 피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저희로는 힘듭니다. 다른 선배들로 팀을 구성해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구출대의 차출이 부담스러웠는지 오성수가 반대 의견을 내밀었다.

“힘들다?”

“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희는 아직 정식 구조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자칫하면 선배들이 잘못될 수 있는 상황에서 경험이 없는 저희가 구출대로 진입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경험 많은 선배들이 들어가야 합니다. 모두를 살려서 나올 수 있는 소방관들로요.”

요구조자들과 동료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 아직 경험을 쌓아 가는 자신들만으로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야. 시간이 없어. 현재 은평소방서에서 구조대로 훈련받은 사람은 우리뿐이야.’

현실적으로 판단했을 때, 현재 은평소방서에서 구출대로 차출될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선배들밖에 없었다.

권일섭과 김필주가 있긴 했지만 아직 부상으로 복귀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현장에 투입된다는 건 말이 안 됐고, 그건 지금쯤 열심히 지원 오고 있을 다른 서의 구조대도 마찬가지였다.

‘렉스, 제일 가까운 소방서가 어디였죠?’

[서대문소방서. 하지만 지금 사고 때문에 길이 막혀 있는 걸 생각하면 30분은 걸릴 거야.]

당장이라도 구출대의 진입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다른 서의 구조대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성환용이 그대로 이야기했다.

“맞는 말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현장에서 경험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입인 너희들밖에 진입할 사람이 없다면?”

“…….”

“안타깝게도 현장에 있는 구조대 중에 너희밖에 진입할 사람이 없다. 권 대장과 김 팀장은 부상으로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고, 광역 2호를 발령하긴 했지만 다른 소방서에서 지원을 오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야. 그래도 기다려야겠나? 골든타임을 다 까먹으면서?”

이성하의 생각처럼 당장이라도 구출대를 조직하지 않으면, 요구조자들과 동료들의 목숨이 위험에 빠질 정도로 시간의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가 오성수를 대신해 대답했다.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자신들밖에 없다면 자신들이 가야 했다.

서장의 말처럼 부상을 입은 센터장과 팀장으로는 무리인 일이였고, 그 생각은 허석훈과 오성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겠습니다.”

“저희가 가겠습니다.”

단지 경험의 문제에서 한발 뺀 거였지, 두렵기에 구출대 참여를 거부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세 사람의 대답에 성환용 서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게 소방관이지.”

기다리던 대답이었다.

단지 등 떠밀려 대답하는 게 아닌, 지금처럼 단호한 표정으로 가겠다고 말하는 대원들의 모습이 보고 싶었고, 지금 그 대답을 들었기에 결정을 내렸다.

“좋아, 진압대는 진압대장이 은평대에서 차출하고, 구조대는 지금의 세 사람으로 하지.”

눈앞의 세 사람을 주축으로 구조대를 결성하겠다고.

물론 그 면면이 아직 구조대로서 첫 실전도 하지 못한 신입이라는 걸 떠올리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걸 결정하는 서장의 표정은 확고했다.

‘권 대장과 정 팀장이 확언했어.’

구조대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권일섭과 정철호가 이미 확언을 한 상태였다.

“구출대는 어떻게 조직하면 되겠나?”

“이번에 구조대로 들어간 세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사람?”

“네. 여기 있는 허석훈, 그리고 오성수와 이성하 대원을 추천합니다.”

- 지직…… 저도 그 세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친구들이라면 충분합니다.

회의실에 늦게 들어온 이성하와 오성수는 모르겠지만, 구출대 멤버를 어떻게 해야겠냐는 자신의 물음에 권일섭과 정철호 모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눈앞의 세 사람을 추천했고, 그 둘이 믿는다면 자신도 믿었다.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살려 오도록.”

허투루 남을 칭찬하는 일이 없는 두 사람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믿는다며 신뢰의 눈빛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시작하지.”

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고, 그에 지휘소 안에 있던 모든 소방관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은평대, 지휘소 앞으로 집합해.”

“녹번대는 잔불 점검하는 대원 제외하고 모두 모이도록.”

“역촌대, 펌프차 점검 실시한다. 65밀리미터 호스 전부다 꺼내 놔.”

구출대의 조직이 확실시됨에 따라 자리에 있던 센터장들이 각자 무전을 외치며 지휘소를 나갔고, 이성하를 비롯해 구출대로 차출된 세 사람 역시 빠르게 지휘소 안에 있는 장비를 체크했다.

“안에 있는 걸로는 모자라요. 각자 예비 실린더 두 개씩은 들어야 해요.”

이성하가 한쪽에 놓인 공기통을 챙기며 몸을 일으켰고.

“혹시 모르니까 빠루도 챙기죠.”

“그래. 휴대용 소화기도 몇 개 챙겨 가자. 어떻게 쓰일지도 모르니까.”

허석훈과 오성수 역시 필요한 장비들을 계산하고는 밖으로 움직였다.

“빨리 서둘러!”

조금이라도 준비 시간을 단축하는 게 작전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대원들의 모습에 서장이 입을 열었다.

“가능하겠지?”

가능하겠냐고.

물론 자리에 없는 대원들을 향한 말은 아니었다.

“가능합니다. 그렇게 가르쳤으니까요.”

옆에 있던 권일섭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스피커에서도 정철호의 굳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 지지직.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도착할 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틸 겁니다.

자신들이 기억하는 세 사람이라면 가능하다며 확고한 음성을 내뱉은 거였고, 그에 소방서장이 무전을 들고 외쳤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지나고.

- 지금부터 동료 소방관 구출팀, RIT가 출발한다. 전 대원 RIT팀에 모든 전력을 집중하도록.

드디어 지하에 갇혀 있을 수십 명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은평소방서의 세 번째 구조대가 조직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밖에 있던 소방관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3호차, 6호차, 7호차, 이쪽으로 들어와.”

현장에 있는 펌프차 중 대량 방수가 가능한 세 대의 펌프차가 공사 현장으로 들어왔다.

“65밀리미터 호스 죄다 꺼내. 총 20개의 호스를 연결한다.”

“알겠습니다!”

철컥, 철컥.

진압대장의 고함에 수십 명의 소방관들이 순차적으로 호스를 연장해 각각 300m 길이의 수관 세 대를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수관은 바로 지하 터널로 내려졌다.

“좋아!”

“수관 전부 내렸습니다!”

“진압 시작해도 됩니다!”

구출대의 진입을 위한 모든 준비가 된 거였으며, 그에 방화복을 입은 여섯 명의 소방관이 앞으로 나섰다.

“잘 부탁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제대로 해 보자.”

이번 구출대로 조직된 진압대와 구조대의 멤버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게 있었다.

진압대와 구조대 모두 각 팀의 역할이 달라 각자의 우두머리를 내세운 상태였는데, 그중 구조대의 장이 구출대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이성하였다.

“목표 지점까지는 관창 보조를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제가 대장님의 보조로 들어가고, 석훈 선배가 진용 선배에게, 성수 선배가 경훈 선배에게 붙을 겁니다.”

엄연히 자신보다 높은 직급의 선배들이 있음에도 진압대의 장으로 나선 진압대장과 의견을 나누고 있었고, 그것을 지켜보던 소방관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저래도 되는 거야?”

“왜?”

“저거 앞에 있는 놈.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잖아.”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아직 임용된 지 1년도 안 된 신입이 구조대의 우두머리로 나섰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사람으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직급은 달라도 구조대에 배속된 건, 세 사람 모두 이번이 처음이었다.

구조대로 배속됐음에도 아직 자격이 부족하다는 말에 세 사람 모두 이번이 구조대로서의 첫 출동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이성하를 우두머리로 결정한 건 이성하 스스로의 의사가 아닌, 허석훈과 오성수의 선택이었다.

“성하야, 훈련 때처럼 하자. 네가 결정 내리고, 우리가 그에 따를게.”

“제가요?”

“그래. 항상 훈련 그렇게 했잖아.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하자. 우리 중에 판단력이 제일 좋은 건 너야.”

“나도 한 표. 네가 지휘 맡아. 옆에서 열심히 보조해 줄 테니까.”

그동안 모든 훈련을 이성하의 지휘 아래 했던 상황이었기에, 실전 역시 그들이 가장 편한 스타일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옳은 듯했다.

“그런데 선배님, 200미터 지점부터 저희가 따로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200미터?”

“네. 다른 선배들께 물어봤는데, 그나마 직사로 주수가 가능한 거리가 200미터라고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과감하게 진입하겠습니다.”

언제 알아봤는지, 이성하가 주수가 가능한 직사거리를 이유로 들며 진압대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흠……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같이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나? 그 거리에서 주수가 되는지도 확실하지 않아.”

“아닙니다. 어차피 방음벽이 250미터 지점까지만 설치 된 거라면 차라리 진압대의 주수 지원을 받으며 들어가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진압대장의 반문에도 구조도를 펼치며 스스럼없이 대화를 이끌었고, 그렇게 잠시 후엔 진압대장의 얼굴에서 흡족한 웃음을 이끌어 냈다.

“재밌군. 좋아. 그렇게 하지. 200미터 지점부터는 따로 움직이세.”

수십 년을 현장에서 활동해 잔뼈가 굵은 진압대장의 동의를 이끌어 내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작전을 수립하는 이성하였다.

그 때문에 잠시 우려의 눈길을 보내던 소방관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어렸다.

“새끼, 저번에 보여 준 게 우연이 아니었나 보네.”

“그렇겠지. 북한산 화재 때 저 녀석 아니었으면 다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어.”

새삼 떠올랐던 북한산 화재 현장의 순간이 떠오름에,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단순한 신임 소방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모두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진입한다. 모두 준비해!”

밖으로 나와 지휘를 시작한 현장대응단장의 고함에 모두 관창을 붙잡았고, 그와 동시에 터널을 향해 다시 한번 물이 뿜어졌다.

“진입!”

쏴아아아아!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조직된 은평소방서의 RIT팀이 작전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