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53화>
53화. 구조대 (4)
상황은 심각했다.
“제길! 주수해!”
“대장님, 위치가 너무 깊습니다!”
“그럼 깊다고 가만있을 거야? 일단 최대한 주수해! 입구 불길만이라도 먼저 잡으란 말이야!”
터널 내부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는 모습에 소방관들이 악착같이 터널을 향해 물줄기를 뿜어 봤지만, 이번 불길의 발생지는 지하였다.
화아아아악.
입구의 불길을 잡아도 그 안에서 계속 피어오르는 불길에 검은 유독 가스가 계속해서 뿜어졌고, 그 상황은 여과 없이 방송으로 흘러나갔다.
- 속보입니다. 현재 은평구 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화재가 진압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화재가 벌어진 지 지금까지 두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터널에 고립된 요구조자들은 구조하지 못한 걸로…….
- 1차 화재는 막았지만 내부에 2차 화재가 발생한 상황입니다. 문제는 그 위치가 30m 아래 위치해 있다 보니 소방관들이 진압에 애를 먹고 있어…….
- 현재 구조대가 터널 안으로 진입해 요구조자 수색에 나선 상태인데요. 내부에 발생한 2차 화재로 상황은 굉장히 심각합니다.
첫 방송이 나간 지 2시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내부에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에, 모든 방송에서 지금의 상황을 긴급 속보로 보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장대응단장 역시 급변한 상황에 광역 대응 단계를 한 단계 더 올렸다.
- 지금부터 광역 대응 단계를 2호로 격상한다. 모든 소방관들은 다른 서의 추가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불길을 진압한다.
인근 소방서가 모두 지원을 나오는 광역 2호가 선포됐고, 그런 현장대응단장이 있던 지휘소에서는 각 소방 간부들과 센터장들의 긴급회의가 열렸다.
“전부 무사한 겁니까?”
“네, 전부 무사합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얼마나요?”
“가져간 예비 실린더를 감안해도 한 시간이 고작입니다. 최대한 구출 팀을 빨리 조직해야 합니다.”
요구조자들을 구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그들을 구하기 위해 진입한 구조대마저 터널 안에 고립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구출 팀을 조직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터널로 진입할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하까지만 30미터입니다. 내려가는 것도 문제지만 불길이 어디까지 진행됐을지 모릅니다. 거기다 터널 지름이 너무 작아요.”
터널의 입구는 소방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하 30미터 지점에 있었다.
계단이 있기는 했지만 정철호는 구조대의 진입로를 레펠로 정했을 정도로 불길 때문에 언제 무너질지 몰랐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터널의 크기가 생각보다 많이 작다는 사실이었다.
“지름?”
“네. 이 터널은 차가 다니는 터널이 아니라, 전력선을 설치하기 위해 뚫은 터널입니다. 가장 넓은 구간이라고 해 봐야 3미터밖에 안 돼요. 불길을 완전히 진압해야 구출 팀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좁은 터널의 지름에, 불길을 완전히 진압하지 못하면 구출 팀을 조직해도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회의에서는 고성이 울려 퍼졌다.
“그래도 진입해야 합니다.”
“미쳤어요? 그러다 구출 팀까지 다 죽습니다.”
“시간 얼마 없다는 말 못 들었어? 그럼 안에 있는 새끼들 그냥 죽게 놔두자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잖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뚜렷한 방법이 없는 것에, 다들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넓게 울려 퍼지는 고성과 달리, 대화의 진척은 전혀 없다시피 했다.
“제기랄. 시간 없습니다, 단장님. 바로 진입해야 합니다.”
“안 됩니다, 단장님. 그러다 다른 애들까지 죽습니다. 일단 진압이 먼저입니다. 진입은 그다음입니다.”
“진입해야 합니다!”
“진압이 먼저입니다!”
자칫하면 희생자가 더 많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에 도저히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밖에 있는 소방관들의 분위기도 덩달아 우울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회의만 하는 거야?”
“김 주임님, 시간 없습니다. 계속 이렇게 대기만 해야 합니까?”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지휘소 안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에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성하 역시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구조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면서도 이렇게 물만 뿌리고 있는 현실이 답답했으니까.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가만히 있어.”
옆에서 사수인 오성수가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한 경고를 흘렸다.
“선배, 하지만…….”
“분명히 말했어. 너만 소방관 아니야. 허 부장님이 구조대 대표해서 회의에 참석해 계시니까 곧 결론 날 거야. 그러니까 기다려.”
이번만은 절대 안 된다며 단호한 표정으로 이성하의 말을 잘랐고, 그에 이성하는 답답하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기다릴게요.”
섣부른 행동으로 혹시나 선배들에게 피해를 입힐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자리에 앉아 물로 목을 축였다.
[지금은 일단 쉬면서 물이라도 마셔. 금방 지시 내려올 거야.]
‘네.’
꿀꺽. 꿀꺽.
어떤 결론이 내려질진 모르지만, 렉스의 말처럼 그 결론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쉬어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렇게 자리에 앉자마자 일단의 사람들이 통제된 현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에 급히 몸을 일으켰다.
“에엑.”
오성수 역시 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렇게 등장한 사람들 중 두 사람은 이성하도 익히 아는 사람들이었다.
[권일섭?]
“할 만하냐?”
“두 분이 여기는 어떻게?”
“뭘 어떻게야? 필주 차 타고 왔지.”
센터장인 권일섭과 팀장 김필주였다.
퇴원은 했지만, 아직 부상 때문에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두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상황.
하지만 이성하와 오성수가 다급히 일어났던 건 두 사람 때문이 아니었다.
권일섭과 김필주 뒤로 서 있는 한 사람을 향해, 휴식을 취하던 소방대원들이 다들 일어나 경례를 했다.
“안전!”
“안 해도 돼. 그냥 쉬고들 있어.”
그는 중후한 목소리로 손을 들어 보이며, 이성하와 오성수를 그대로 지나쳐 갔다. 그에 두 사람 또한 뒤늦게 경례를 올렸다.
“안전!”
바로 은평소방서장 성환용.
눈앞의 인물은 은평소방서의 총책임자인 소방서장이었다.
하지만 서장은 더 이상 그런 인사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대로 고성이 들려오는 지휘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쉬고 있어.”
권일섭과 김필주 역시 그런 서장을 따라 그대로 지휘소 안으로 들어갔고, 그에 이성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서장님이 왜?’
이성하가 알고 있는 소방서장의 역할은 지금같이 현장에 출동하는 게 아닌, 내부에서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수행하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몰라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멍청아, 원래 광역 대응 발령은 서장이 현장 지휘하는 거야.]
“서장님이요?”
[그래. 현장대응단장이 광역 1호를 발령했다면, 2호부터는 서장만 발령 가능해. 원래는 1호 때부터 서장이 현장 지휘했어야 하는데 아마 휴일이라서 다른 곳에 있던 거겠지. 그래서 늦게 온 거고.]
렉스의 말처럼 애초부터 재난 상황에 해당되는 광역 대응은 소방서장이 현장을 지휘하게 돼 있었다.
관할 내의 모든 소방력이 총출동해 서장 또한 현장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거였고, 그래서 2호 발령 권한이 서장에게 있는 거였다.
소방서의 간부들 중 가장 높은 직급이었기에, 지금과 같이 의견이 분할되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이였다.
덕분에 직전까지 시끄럽던 지휘소가 일순 조용해졌다.
내용을 정리 중인지 차근한 말소리만이 밖으로 흘러나왔고, 그렇게 잠시 후엔 한 소방 간부가 지휘소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성수, 이성하. 잠깐 들어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기다리던 호출이기도 했다.
“가자.”
“네, 선배.”
안 그래도 계속해서 길어지는 회의에 직접 그 상황을 보고 싶던 참이었으니까.
하지만 일순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지휘소의 분위기에 표정을 굳혔다.
“……!”
많은 사람들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현장을 지휘하던 현장대응단장과 각 센터의 센터장들 모두가 같은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소방관들 사이에 앉아 있던 소방서장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팀장, 브리핑해 주게.”
밑도 끝도 없는 서장의 말에 두 사람이 한편에 있는 허석훈을 바라봤지만,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선배?’
상황을 모르는 두 사람에게 조금의 눈치라도 줄 법한데도, 선배인 허석훈이 시선을 외면한 것이다.
당황도 잠시, 곧이어 시작되는 브리핑에 두 사람은 정신을 집중했다.
“흠흠, 그럼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현재 요구조자 여덟, 구조대 아홉이 터널 내부에 갇힌 상황입니다. 터널의 깊이는 30미터로 현재까지 총 1.2킬로미터 길이까지 공사된 터널이며, 내부에서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구조대가 자력으로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문제는 외부에서도 안으로 진입하는 데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서장의 말에 잠깐 당황하던 소방 간부가 터널의 구조도를 가리키며 두 사람이 알고 싶어 하던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설명이 이어지는 도중 이성하가 당황한 음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화재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건 터널 내부에 설치된 방음벽입니다. 플라스틱 소재로 불에 타기 굉장히 쉬운 가연성 재질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게 입구에서 250미터지점까지 설치돼 있다는 겁니다.”
“2, 250미터요?”
상식을 벗어난 수치였다.
간부의 말대로라면 지금 입구에서부터 최소 250미터 되는 지점까지 불길에 휩싸인 상태라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네. 어디까지 화재가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악의 경우 250미터 지점 너머까지 불이 붙었다고 감안해야 합니다.”
최악을 가정하긴 했지만, 간부의 말처럼 방음벽의 소재가 불에 타기 쉬운 플라스틱 소재라는 걸 생각하면 확실했다.
방음벽 전체가 통으로 연결된다는 걸 생각하면 전부 불길에 휩싸였을 확률이 높았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위치가 지하라는 데 있었다.
“그 거리면 압이 안 되지 않습니까…….”
“…….”
“맞잖아요. 충분한 압이 안 되지 않습니까…….”
오성수가 바로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250m 거리까지 호스를 이어서 진압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단순히 호스를 연결한다는 것만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했다.
가끔 얇은 250m 길이의 호스릴을 이용해 1km 지점까지 물을 끌어오는 경우도 있는 만큼, 단순히 물을 끌어오는 것만 생각하면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소방차에서 뿜어지는 수압에 한계가 있단 사실이었다.
[흠…… 250미터면 정적 수압 거리의 세 배인데.]
화재 진압을 위해 강력한 수압을 뿜어내는 소방차였지만, 그렇다고 그 수압이 무한정 올라가는 건 아니었다.
거리가 길어질수록 수압이 약해져 뿜어지는 물줄기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기준점을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15층 건물 높이의 80미터로 규정했다.
그 거리가 넘어서면서부터 관창에서 뿜어지는 수압이 눈에 띄게 약해지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250미터면 말할 것도 없었다.
렉스의 말처럼 거리만 놓고 봐도 수압이 약해지는 기준의 3배가 넘는 거리였고, 그래서 현장에 있는 모든 간부들이 그에 대답을 못 한 거였다.
“…….”
누구보다 오래 현장에서 소방관으로 근무해 왔던 만큼, 그런 오성수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해 보시죠. 아무것도 안 해 보고 포기할 순 없습니다.”
모두가 조용한 순간, 이성하가 입을 열었다.
“해 봐?”
“네. 250미터가 길긴 하지만 높이가 있습니다. 압이 부족하다고 해도 30미터의 깊이면 가능할지 모릅니다. 아니,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야 선배들을 구할 수 있으니까요.”
서장의 반문에 틀림없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고, 그에 곁에 있던 오성수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썅…….’
또 한번 이성하가 사고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자신의 발언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것밖에 없다면 해야 해.’
이 방법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시 한번 자신의 의력을 피력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그런데 왜 아무도 뭐라고 안 하지?’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한 발언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 거참.”
“패기 좋네. 역시 구조대인가.”
오히려 그런 모습이 기꺼웠는지 웃는 간부들이 몇 명 있었고, 그중에는 소방서장 성환용도 있었다.
“그래. 안 해 보고 포기할 순 없지.”
놀랍게도 이성하가 한 발언에 웃음을 지으며 동의 표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놀라기엔 일렀다.
- 지직, 네.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도록 가르친 적 없습니다.
“……!”
눈앞에 놓인 스피커에서 구조대의 팀장인 정철호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