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52화>
52화. 구조대 (3)
그 때문에 소방관들이 정신없이 뛰어 들어가 실신한 구조대원들을 데리고 나왔다.
“광영아, 정신 차려.”
“허억, 허억.”
“병진아, 다 왔어. 조금만 가면 돼. 조금만 참아.”
다급한 표정으로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부축해 입구 밖으로 끌고 나왔고, 다행히 그렇게 구출된 구조대원들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휴, 괜찮아. 전부 단순 탈진이야.”
“정말이야?”
“그래. 경환이랑 김 주임님은 병원으로 이동해야 할 거 같지만 다른 애들은 괜찮아. 다들 의식 돌아왔어. 조금만 쉬면 될 거야.”
급히 구조대의 상태를 확인했던 구급대원이 괜찮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에 지켜보던 소방관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X발.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 개새끼들. 아무것도 아니면서 왜 사람을 쫄게 하는 거야!”
“야, 애들 빨리 뒤로 옮겨. 애들 상태 괜찮단다.”
심각했던 상황과 달리 다들 휴식만 취하면 이상이 없다는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안도하기엔 아직 일렀다.
화르르르르!
아직 불길이 일고 있었다.
“다들 뭐 하고 있어! 불길부터 잡아!”
“녹번대! 2팀이랑 교대하고 잠시 휴식해.”
“길현대, 들어갑니다!”
곳곳에서 이는 불길을 어떻게든 잡기 위해 진압대원들이 교대로 번갈아 가며 주수를 하고 있었고, 그에 잠시 멍을 때렸던 이성하 역시 선배들과 함께 은평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관창부터 챙겼다.
“선배님, 관창 40mm 두 본만 주십쇼.”
“두 본?”
“네, 저희도 가세하겠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화르르르르!
“주수해!”
“주수!”
쏴아아아아아!
금방이라도 주변을 모두 태워 버릴 것 같은 불길이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들었던 현장 상황이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는 이미 오래였다.
- 현재 터널 공사 중에 화재가 일어난 상황입니다. 용접을 하던 도중에 화재가 진행된 걸로 추정되며, 현재 지하 30m 밑에는 작업을 하던 여덟 명의 인부가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지하 터널에서 발생한 화재만 잡으면 되는 게 처음 상황이었다면.
“제길, 이쪽부터 잡아.”
“오른쪽에 지원 바랍니다!”
“이쪽도요. 수관 하나만 더 빼 주십쇼!”
지금은 불길이 터널 밖으로 확산돼, 그걸 잡기 위해 소방관들이 중구난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의 입에서 짜증이 흘러나왔다.
“제길, 이게 무슨 난리야.”
원래 이렇게까지 확산될 화재가 아니었다.
녹번동이 재개발 구역으로 조성돼 대형 건물들이 공사를 하고 있는 건 맞았지만, 화재가 일어난 터널 주변에는 아직 공사 중인 건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소재가 없다면 불이 확산될 이유가 없었다.
“뻔하지, 공사 자재야.”
“네?”
“공사 자재라고. 여기서 탈 게 그것 말고 어디 있어!”
이성하의 짜증을 들은 허석훈이 거칠게 외쳤다.
쏴아아아아!
거침없이 뿜어지는 물줄기 쪽을 턱짓하며 인상을 찌푸린 거였고, 그 방향에서 정말 허석훈의 말처럼 공사에 사용되는 자재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욕설이 흘러나왔다.
‘스티로폼?’
기반 공사에 사용되는 자재였다.
철근도 있었지만, 스티로폼 같은 불에 타기 쉬운 가연성 자재들이 불길 사이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고, 그런 자재들 옆으로 터널에서부터 이어진 불에 타다 만 케이블 배관들이 있었다.
‘미친놈들이 자재를 케이블 옆에다 보관한 거야?’
화재가 일어날 수도 있는 전선 케이블 옆에 공사 자재들을 보관해 놨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케이블 근처에 공사 자재를 야적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혹시 모를 화재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전기가 흐르는 케이블 근처에 가연성 소재를 두면 안 된다는 건 공사 관계자라면 필히 알아 둬야 할 상식이었으니까.
하지만 나중에 케이블을 설치하고 문제가 됐을 게 뻔했다.
연결된 케이블이 공사 자재를 보관하는 곳으로 이어졌다면, 안전을 위해 공사 자재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지만 관계자들이 그걸 무시한 게 틀림없었다.
[뻔하지. 이 나라는 관련 법령이 없잖아. 그러니까 무시한 거야. 저걸 옮기려면 또 돈이 드니까.]
렉스의 말처럼 우리나라에는 그와 같은 관련 법령이 없는 상황이다.
법적으로 제한된 사항이 아니었기에, 귀찮다는 이유로 대충 넘어간 게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딘가에 있을 공사 관계자를 욕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화르르르르!
책임은 둘째치고, 당장 앞에 있는 불길을 잡아야 했다.
“전진한다. 이쪽부터 이쪽까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방화선부터 굳힌다.”
“알겠습니다!”
가장 앞장서 있는 진압대장의 고함에 이성하를 비롯한 모두가 앞으로 나서며 주수를 했다.
화르르르르!
‘제길.’
뜨거운 불길이 직접적으로 방화복을 침범함에도 악착같이 앞으로 나아가며 주수를 했고, 그 이유는 뒤쪽에서 준비를 하는 소방관들 때문이었다.
“장비 점검해!”
“각자 예비 실린더 한 개씩 챙긴다.”
“터널 구조도 확실하게 외워!”
한 무리의 소방관들이 방화복이 아닌 간편한 복장으로 장비를 점검하며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강현우, 박성재, 로프 설치해. 병준이가 선두로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가장 선두에 있던 소방관의 고함에 뒤따르는 소방관들이 대답하며 터널 입구에 자리를 잡았으며, 그런 이들의 헬맷 색깔은 구조대를 상징하는 붉은색이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살아서 돌아온다. 10분 뒤, 진입!”
“10분 뒤 진입!”
조금 전 진입에 실패한 구조대를 대신해, 정철호가 지휘하는 구조대가 진입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진압대가 필사적으로 진압을 시도하는 거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불길 확실하게 잡아!”
“정신 똑바로 차려! 이번 아니면 못 살린다!”
현재 터널로 진입을 시도하는 이들이 은평소방서의 마지막 구조대였으니까.
구조대가 은평소방서에 총 3개 팀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마지막이라는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아무리 비상소집이라도 모든 대원이 그에 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휴가나 개인 사정으로 거리가 멀어 응소가 불가능한 대원들이 있었고, 그 때문에 현재 진입을 시도하는 구조대가 은평소방서의 마지막 구조대였다.
“선배님들, 저희 발목 잡으면 안 됩니다.”
“너희나 똑바로 해. 1팀보다 3팀이 낫다는 걸 보여 줄 테니까.”
“좋습니다. 제대로 한번 보여 주죠.”
정철호가 이끄는 1팀에, 3팀이 합세해 함께 작전을 펼치게 되었다.
물론 그곳에 이성하를 비롯한 길현대 출신 소방관들의 자리는 없었지만, 이성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팀장님, 꼭 구해 오십쇼.’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터널 안에 있는 요구조자들을 일 초라도 빨리 구해 내는 거였으니까.
다행히도 아직까지 요구조자들은 무사한 상태였다.
지하 깊숙이 뚫려 있는 터널이다 보니 안쪽에 통신 장비가 설치돼 있었고, 그 통신 장비를 통해 터널 안에 고립된 요구조자들과 연락이 가능했다.
- 아직 괜찮다고 한다.
- 전원 무사한 겁니까?
- 그래. 두 명이 의식을 잃은 상태긴 하지만, 필사적으로 에어컴프레서 이용해서 버티고 있다고 해.
귀에 찬 무전으로 현장대응단장이 요구조자들의 상태를 계속해서 알려 주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지만, 현재 두 명이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 말은 다른 요구조자들 역시 언제 유독 가스에 의식을 잃을지 모른다는 소리였고, 이성하도 조금 전에 알았지만 사실 그 때문에 먼저 진입한 구조 2팀이 위험에 빠졌던 거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판단에 진입한 거였대.”
“시간이요?”
“어, 의식을 잃은 요구조자 중 한 명이 처음부터 코마였나 봐.”
의식을 잃은 지 오래된 환자가 있던 상황이었기에, 불길이 아직 진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입을 시도했던 것.
그랬기에 저곳에 자신이 없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믿습니다.’
그저 진입을 하는 정철호를 바라보며 신뢰의 눈빛을 보냈고, 그렇게 작전이 시작되는 순간 지하 터널을 향해 전력으로 물을 뿌렸다.
“진입하겠습니다!”
“주수해!”
“주수!”
쏴아아아아!
조금이라도 진입을 시도하는 구조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를 향해 정철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에게는 의미 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었겠지만, 이성하에게는 아니었다.
씨익.
면체 너머로 자신을 향해 자신 어린 미소를 짓는 정철호 얼굴이 똑똑히 보였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 역시 앞으로 몇 발자국 더 나아갔다.
쏴아아아아!
앞으로 나간 만큼 거세게 뿜어지는 물줄기에 불길이 완전히 사그라졌고, 그에 구조대가 레펠을 통해 진입을 시작했다.
“시작해!”
“진입합니다!”
“가겠습니다!”
“저도 갑니다!”
진압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드디어 요구조자들의 구조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구조대의 행동과 상관없이 진압대는 계속해서 터널을 향해 주수에 집중했다.
“방심하지 마. 지금 상태 끝까지 유지한다!”
“오른쪽 먼저 잡는다.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확실히 끝내야 해!”
“알겠습니다!”
구조대가 돌아올 때까지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는 게, 그들 진압대의 몫이었으니까.
그리고 상황은 순조롭게 돌아갔다.
“오케이, 역촌대는 주변 불길 잡는 데 지원한다!”
“좋아, 녹번대도 다른 곳 지원해.”
터널의 불길이 잡히는 모습에, 서서히 인원이 퍼져 나가며 주변의 화재 진압에도 전력을 쏟았다.
“진압했습니다!”
“이쪽도 완료입니다!”
그 때문에 곳곳에서 진압에 성공했다는 소방관들의 고함이 울려 퍼졌고, 그렇게 30분 뒤에는 그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구조대의 소식까지 전해졌다.
-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 정말입니까? 상태는요?
- 다행히 모두 무사해. 코마 환자만 응급조치하고 바로 출발한다고 연락왔다.
현장대응단장의 무전을 통해 구조대가 무사히 요구조자들을 만났다는 사실이 모든 소방관들에게 전해졌다.
그 때문에 소식을 들은 소방관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좋았어!”
“그래. 이거지!”
“확실하네. 구조대 새끼들.”
화재가 발생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기적과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어? 뭐, 뭐야?”
한 소방관이 불길이 진압된 지하 터널을 가리키며 당황한 음성을 토해 냈다.
화아아아악.
소방관이 가리키는 터널에서 다시 한번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그 순간 귓가로 들리는 무전에 모든 소방관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 터널 내부에 2차 화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구조대 자력으로 복귀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화아아아악!
눈앞의 지하 터널에서 엄청난 양의 유독 가스가 시커멓게 뿜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