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50화 (50/235)

<강철 소방대 50화>

50화. 구조대 (1)

* * *

화창한 햇빛이 내리쬐는 주말.

따르르르릉.

정신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에 이성하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으음…….”

온몸에서 느껴지는 피곤함 때문에 조금 더 침대에 누워 있으려 했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방해꾼의 소음에 결국 몸을 일으켰다.

[빨리 일어나! 미리 일어나서 준비해야 할 거 아냐!]

‘알았어요…….’

그냥 두면 다시 잠들어 버릴 것 같은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가 고함을 질러 댔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화장실로 이동해 졸린 눈으로 칫솔을 들었다.

샤워까지 말끔히 마치고는 거실로 나온 후,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 가기 싫다.”

[뭐? 갑자기 웬 개뼈다구 소리야?]

“갑자기 생긴 약속이잖아요. 저 이런 거 정말 싫어한다니까요.”

사실 아침부터 렉스가 이성하를 볶았던 이유가, 잠시 후 이성하에게 점심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예정에 없던 약속이었다.

“선배님, 내일도 훈련 같이하실 거죠?”

“내일? 야, 내일 주말이야!”

“에이, 우리한테 주말이 어디 있어요? 아직 장비 이름도 다 못 외웠는데. 내일도 같이해요. 믿을게요, 선배님.”

“…….”

최대한 빨리 구조대원으로서의 실력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에, 주말에도 선배들을 다독여 가며 개인 훈련을 한 지가 어언 한 달이 다 됐으니까.

하지만 이번 약속은 이성하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약속이었다.

- 성하 씨, 바빠요?

“어? 선생님 웬일이세요?”

훈련을 마치고 쉬는 도중, 잊고 있던 김민정에게서 전화가 걸려 와서였다.

- 웬일은요? 제가 밥 한 번 산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 주 토요일 어떠세요?

“토요일이요? 쉬는 날이긴 한데…….”

- 어. 다행이다. 저도 이번 주말이 오프예요. 그럼 이번 주 토요일에 봐요. 오랜만에 얼굴 볼 겸해서요.

퇴원 시에는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밥을 사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며 전화를 걸어 왔던 것이다.

물론 그 의사를 이성하는 돌려 거절하려 했다.

“아, 근데 제가 쉬는 날이긴 한데, 주말에는 개인 훈련을 해서요.”

계획에도 없는 갑작스러운 약속일뿐더러, 주말에는 선배들과 함께 훈련을 하기로 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한순간, 등짝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미친놈아!”

짜악!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오성수였다.

“아!”

“내놔!”

고통을 호소하는 이성하를 본체만체하며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 들더니, 고개를 숙이며 통화를 했다.

“선생님, 저 오성수 소방관인데요, 성하가 뭘 잘못 알았나 봐요. 이번 주 토요일에 훈련 없습니다. 아니에요. 원래 쉬는 날이에요. 네네. 괜찮습니다. 성하 맛있는 거 사 주세요.”

“…….”

안 그래도 훈련을 하기 싫어 하는 상황에서, 얄미운 이성하를 끌고 가 주는 사람이 나타난 것에 오성수가 반색한 것이다.

그러고는 이성하에게 핸드폰을 내밀며 눈을 부라렸다.

“받아.”

약속을 잡으라는 살기가 어린 눈빛으로.

당연히 이성하는 그런 오성수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간다고 해. 간다고.”

“하하하…… 선생님, 제가 착각했나 봐요. 토요일에 봬요.”

오성수는 물론이고, 옆에서 허석훈까지 비슷한 눈빛으로 압박을 주니,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집에 있는 거였다.

약속 때문에 훈련이 취소되었기에 오랜만에 늦잠을 자느라.

하지만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야, 슬슬 나가야 돼. 빨리 준비해.]

‘알았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렉스의 재촉에 대충 청바지에 티 하나만 걸치고는 집을 나선 후, 김민정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

[저 출발했어요. 12시 전에 도착할 거 같아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접하는 휴일이나 제대로 즐기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서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간만에 쉬니까 좋지 않냐?]

‘그렇긴 하네요. 맨날 집과 소방서만 반복했는데.’

생각해 보니 간만에 느끼는 여유였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주변의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풍경을 보고 있자니 가끔은 이렇게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 핫도그 사 줘.”

“안 돼.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으아아앙. 핫도그!”

그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구경하는 것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 때문에 약속 장소에 도착해 편한 마음으로 김민정을 기다렸다.

‘반가워요, 이러면 될까요?’

[에이, 그건 너무 거리감 있다.]

‘그럼 오랜만이에요?’

[멍청아, 교통 상황 같은 걸 이야기하면 되잖아. 차 많이 안 막혔냐 같은 거.]

김민정을 만나면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지, 렉스와 쓸데없는 잠담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성하는 그렇게 만나게 된 김민정에게 아무 말을 못 했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 아니요. 그, 금방 왔어요. 아까 전에.”

인사를 꺼내긴커녕, 바보같이 말을 더듬었다.

“그래요. 그럼 들어갈까요?”

“네, 네, 그래요.”

앞장조차 서지 못한 채, 앞서가는 김민정의 뒤를 멍청히 따라갔고, 그런 이성하에게 평상시였다면 멍청하다고 일갈했을 렉스조차 넋을 놨다.

[진짜 이쁘다…….]

일할 때도 예쁘다고 느끼긴 했지만, 꾸미고 나온 김민정의 모습은 마치 TV에 나오는 연예인 같았던 것이다.

아니, 연예인보다 더 아름다웠다.

‘렉스가 예쁘다고 한 거 인정할게요. 진짜 예쁘네요.’

병원에서 봤던 이미지가 흰 가운에 안경을 써 지적인 미모였다면, 지금의 김민정은 안경을 벗고 베이지색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로 화사한 미모를 제대로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김민정이 피식 웃었다.

“성하 씨, 얼굴이 빨개졌는데요?”

이성하의 얼굴이 붉어져서였다.

“아, 아니에요.”

“아닌데, 얼굴 엄청 빨개요.”

“흠흠.”

아니라고 말하는 이성하에게 장난을 치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고, 실제 김민정은 그런 이성하의 반응이 너무 즐거웠다.

‘꾸미고 나온 보람이 있네. 그래, 이거지.’

사실 그간 매번 자신에게 시큰둥하게 대하는 이성하의 태도에 자존심이 상해, 아침부터 제대로 준비해 꾸미고 나온 터였다.

“아무리 내가 먼저 연락한다고 했지만, 어떻게 한 번을 연락을 안 해?”

분명히 약속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연락을 해 오지 않는 이성하의 행동에 자존심이 상한 김민정이었다.

그 때문에 기다리다 지쳐 먼저 연락까지 했지만, 이성하의 대답에 더 자존심이 상했다.

“하…… 내가 귀찮은 거야?”

오성수의 도움으로 약속을 잡긴 했지만, 이성하가 자신과 만나는 걸 귀찮아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기를 쓰고 준비했다.

“선배, 뭐 해요?”

“어. 간만에 인터넷 쇼핑. 내일 만날 사람이 있어서.”

약속을 잡자마자 인터넷 쇼핑으로 이성하와 만날 날에 입을 옷을 샀고, 약속 당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숍까지 다녀왔다.

“언니, 엄청 예쁘게 해 주세요.”

“엄청? 지금도 예쁜데 얼마나 더 예쁘려고?”

“절 여자로 안 보는 사람이 있어서 깜짝 놀래 주려고요.”

이성으로서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도 안 보이는 이성하의 태도에 제대로 꾸미고 갈 마음을 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의 상황에 너무 만족했다.

“흠흠.”

평상시였다면 시큰둥하게 자신을 대했을 이성하가 시선을 피하고 있었으니까.

단지 걸리는 게 있다면 자신과 다르게 무성의하게 무지 티에 청바지만 입은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거지만, 장난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장난이에요. 얼른 주문해요. 저 배고파요.”

“아, 그래요.”

어디까지나 오늘의 자리는 신세를 갚기 위한 거였다.

그것도 그냥 신세가 아니라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자리였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조금은 편해진 얼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성수 선배가 정말 그랬어요?”

“네. 깁스 푸는데 아파 죽겠다고 엄청 울었다니까요. 자기는 그냥 깁스 하고 다니겠다고 하면서요.”

“하하하. 가서 물어봐야겠어요. 정말 그랬냐고요. 큭큭.”

김민정이 먼저 대화를 이끌며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 덕분에, 어색하게나마 웃으며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 역시 점차 김민정에게 편하게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아, 맞다. 그리고 저 이제 시보 아니고, 정식 소방사예요.”

“어? 진급하신 거예요?”

“네, 병원에 있느라 좀 늦긴 했지만, 이번에 퇴원하고 바로 진급식 했어요.”

조금은 늦었지만 이번에 소방사로 진급한 것부터 시작해.

“사실 선생님 처음 봤을 때, 엄청 무서웠어요.”

“무서워요?”

“네. 통증 때문에 눈을 떴는데, 선생님이 저한테 야단쳤거든요. 남자가 엄살 부린다면서 움직이지 말라고요.”

김민정을 처음 봤을 때의 우스웠던 상황들까지.

“호호호, 진짜요?”

“그럼요. 진짜라니까요.”

이성하도 그동안 싸늘하다고만 생각했던 김민정이 생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에, 조금은 호감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에구머니나, 이게 무슨 일이야.”

식당 아주머니가 한쪽에서 난처한 목소리로 야단을 떨었다.

현재 두 사람이 있는 곳은 합정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기사 식당이었다. 벽면에는 TV가 설치돼 있었는데, 그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 것이었다. 뉴스에서는 한 아나운서가 다급한 표정으로 화재 현장 하나를 보도하고 있었다.

화르르르!

- 현재 터널 공사 중에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용접을 하던 도중에 화재가 진행된 걸로 추정되며, 현재 지하 30미터 밑에는 작업을 하는 열두 명의 인부가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지하 터널의 불길 속에 사람이 고립되는 위험한 재난이 발생한 것이다.

그 때문에 식당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와, 저게 무슨 일이야?”

“열두 명?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니야?

이야기만 들어도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소식에 저마다 걱정스러운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건 김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각한데요? 터널이면 남아 있는 사람들이 유독 가스에 그대로 노출될 거예요.”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에, 지금의 화재가 고립된 사람들에게 어떤 위험을 안겨 주는지를 제대로 파악한 김민정이었다.

그런데 유독 이성하만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는…….”

화면에 나오는 현장 주변이 눈에 너무 익숙했다.

“아주머니, 소리 좀만 더 키워 주실래요?”

조금 더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에 TV 앞으로 다가갔고, 그렇게 확인한 사실에 침음을 흘렸다.

“녹번동 아파트 재개발 지역…….”

화재가 발생한 곳이 자신이 속해 있는 은평구의 관할이었던 것이다.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면을 훑었지만 확실했다.

[녹번동 맞아.]

‘네, 확실해요.’

대형 공사를 하는 곳은 꼭 한번 훑어봐야 한다는 센터장의 지시에 따라 이미 둘러본 기억이 있는 장소였으니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핸드폰이 불을 뿜었다.

<전 직원 광역 대응 명령!>

*발생 일시 : 12시 37분

*재난건명 : 대형 화재

*재난 장소 : 은평구 녹번동 283번지

*발령 일시 : 12시 51분

*발령 대상 : 전 직원

*발령 내용

- 부서 직원 간 신속한 상황 전파, 정보 공유 및 비상 연락망 유지 철저

- 재난 현장에 지체 없이 응소하여 재난 대응 임무 수행

*방법 : 문자 응소(소속, 성명 기재)

응소 대상자는 회신번호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로 회신 요망.

관할지역의 소방관들을 모두 호출하는 광역 대응 1호가 발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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