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49화>
49화. 자격 (6)
이튿날 아침, 이성하는 다시 은평소방서를 찾아갔다.
“어? 또 왔네.”
“신입 안녕.”
“뭐야? 출근 전인데 너무 열심인 거 아냐?”
이성하를 보고 소방관들이 전날과 같은 사람 좋은 인사들을 건넸지만, 오늘의 이성하는 웃지 않았다.
“죄송했습니다.”
“응?”
“어제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았습니다. 바로 사과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죄송하다며 정중한 표정으로 모든 소방관들에게 고개를 숙였고, 그에 소방관들이 서로를 슬쩍 보며 피식 웃었다.
“거봐, 역시 마음에 든다니까. 난 합격.”
“난 어제부터 합격이었어. 앞으로 잘 부탁한다, 신입.”
“야, 이제 식구인데 신입이 뭐냐, 신입이. 반갑다, 막내야. 구조대에 온 걸 환영한다.”
테스트를 한 이튿날 바로 찾아와 고개를 숙이는 이성하의 모습에, 다들 기특한 마음들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정철호가 보인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누구 맘대로 식구야? 보조 인력한테.”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이성하의 모습에도 보조 인력이라며 일갈했고, 그 결정은 일주일 후 이성하가 출근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기는 진압대의 신정수 대장님. 말씀드렸으니까 앞으로 많이 가르쳐 줄 거야.”
“정 팀장, 진짜 우리 쪽에서 맡아?”
“그래야죠. 부서 활동이나 출동은 저희랑 하지만, 앞으로 진압대 일을 도울 겁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출근하자마자 난데없이 한쪽에 있는 진압대장을 소개하며, 진압대의 일을 도울 것을 명령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아침 근무를 준비하던 소방관들이 일제히 정철호에게 야유를 보냈다.
“팀장님, 진짜 진압대로 보내려고요?”
“에이 너무했다, 신입인데.”
“맞습니다. 팀장님, 너무 야박하신 거 아닙니까?”
혹시나 했지만, 정말 이성하를 진압대로 보내는 모습에 다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미 합의하고 결정한 사항이었다.
테스트에 떨어지면 보조 인력으로 근무를 하겠냐는 정철호의 말에 자신이 직접 수락했고, 거기다 지금은 보조 인력으로나마 구조대에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감지덕지로 여겨야 할 상황이었다.
‘다행히 다른 센터로 가라는 말씀은 안 하시네요.’
[그러게. 그때 보조 인력으로 남아 있을 자격도 없다는 말에 식겁했는데.]
테스트에 탈락할 때 남아 있을 자격도 없다고 일갈한 정철호의 말을 생각하면, 이렇게나마 진압대의 일을 도우며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정철호는 분명히 말했다.
‘분명히 부서 활동은 같이한다고 했어.’
진압대의 일을 돕기는 하지만, 출동은 구조대와 한다고.
한마디로 현장에 진입만 못 한다 뿐이지, 그 외의 모든 건 구조대와 함께한다는 소리였고, 그 말은 훈련과 같은 구조대의 제반 사항에는 이성하도 함께한다는 소리였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어. 구조대가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조 인력이라는 자리가 구조대원의 모든 걸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자리라는 걸 이성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장님.”
“아, 그래요.”
“네.”
당황하는 진압대 대장의 모습에도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대답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누구보다 보조 인력으로 열심히 근무했다.
“뭐야? 너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얼마 안 됐습니다.”
“뭐가 얼마 안 돼? 나도 30분 일찍 나온 건데.”
업무에 익숙해지기 위해 1시간 일찍 나와 서의 분위기를 익혔다.
화르르르!
“막내야, 관창 40밀리미터 두 본!”
“네, 여기 있습니다!”
“막내야, 공기통 두 개만 주라.”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출동을 나서면 진압대, 구조대 가릴 것 없이 막내로서 정신없이 움직이며 업무를 수행했고.
“진입해!”
“진입!”
“스톱! 움직임이 너무 빨라. 다시 한번 한다.”
“알겠습니다!”
틈틈이 있는 구조대 훈련에도 누구보다 집중하며 열심히 참여한 건 물론이고, 퇴근 후에는 남아서 따로 개인 훈련까지 진행했다.
끼익. 끼익.
‘오케이. 윈치 고정했으니까 다음은 배터리 정지하고 유압 장비로 문 개방.’
조금이라도 빨리 구조대 업무를 터득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에 임했던 것이다.
물론 쉬운 건 아니었다.
“하아암.”
“뭐야? 막내 졸려?”
“아닙니다. 잠깐만 세수하고 오겠습니다.”
남들보다 빨리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 덕분에 업무 내내 온몸에서 피곤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하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 즐거웠다.
[안 피곤하냐?]
‘피곤이요? 저는 지금 배울 게 많아서 너무 좋은데요? 하하하.’
이곳에 와서 배우는 것들 하나하나가 모두 새로웠다.
“뛰지 마. 내가 저번에도 이야기했지. 구조대원은 왜 뛰면 안 된다고?”
“긴박할 때도 서두르지 않고, 생각하고, 침착하게 위험 요소를 파악해야 해서입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공기 소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요구조자가 몇 명이 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으니까요.”
한정된 공기호흡기의 양에, 숨을 쉬는 버릇부터 새로 배웠고.
“레펠 훈련에서는 손을 쓰지 않는다.”
“손을요?”
“그래. 소방 레펠은 군대와 다르다. 요구조자가 있는 곳이 어디든 가야 하기에 우리는 손을 쓰지 않아. 양손이 자유로워야 구조 활동이 가능하니까. 그 때문에 모든 레펠은 2인 1개 조로 운용된다. 1인이 레펠에 매달리고 다른 동료가 그 레펠을 지탱 및 운용한다.”
내심 자신 있어 하던 레펠의 기본부터 새로 교육받았다.
“막내야, 할 만하냐?”
“힘듭니다! 하지만 즐겁습니다!”
“하하하. 새끼, 맘에 드네.”
힘들긴 했지만, 지금의 과정이 나중에 현장에서 요구조자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즐거운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거기다 혼자가 아니라는 점도 있었다.
이성하가 출근을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허석훈과 오성수가 병원에서 퇴원했다.
“테스트를 받겠다고?”
“네. 저와 성수 모두 입단 테스트를 받겠습니다.”
퇴원을 하고 은평소방서로 찾아와서 이성하와 마찬가지로 당당히 입단 테스트에 응시했고, 그렇게 응시한 테스트의 결과는 정철호의 쌍욕이었다.
“이 기본도 안 된 새끼들. 나가!”
“…….”
“나가! 이 새끼들아!”
어처구니없게도 이성하와 같은 내용의 테스트일 거라고 짐작하고 테스트를 보았는데, 욕까지 얻어먹으며 탈락이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의 훈련에는 항상 두 사람이 함께했다.
“성하야, 나 물 좀.”
“선배님, 여기요.”
“아, 진짜. 허 부장님. 물 마실 시간이 어디 있어요? 빨리 훈련 끝내고 집에 가요.”
허석훈과 오성수 역시 보조 인력으로 근무하게 된 덕분에, 이성하와 마찬가지로 진압대와 구조대를 오가며 근무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쁠 건 아니었다.
“성수야, 유압 스프레다.”
“네, 전원 켰어요. 차량 보조 배터리 좀 꺼 주세요.”
두 사람 역시 계급을 꽁으로 단 건 아닌지, 금세 구조대의 훈련 상황에 적응해 갔다.
“이 팀장님, 끝나고 소주 한잔 사 주시면 안 됩니까?”
“소주요?”
“네. 내일 쉬는 날인데 오늘 한잔 마시고 푹 자게요. 후배들 고생하는데 한잔만 사 주십쇼, 팀장님.”
“하하하. 그럽시다. 끝나고 갑시다.”
훈련에 적응만 하는 게 아니라 넉살 좋게 구조대원들과도 어울릴 줄 알았고, 그 때문에 세 사람의 평가는 소방서 내부에서 아주 좋았다.
“저놈들 오늘도 퇴근 안 했어요?”
“네, 아시잖아요. 막내 훈련하면 허 부장님이랑 성수도 같이 남는 거.”
“이야, 진짜 열심이네.”
“그러게요. 전 피곤해서 집에 가면 바로 쓰러지는데, 진짜 다들 대단한 거 같아요.”
사교성도 좋은데, 남아서 훈련까지 하는 열정을 안 좋게 볼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와중 이 세 사람보다 더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도 열심히 합니다.”
정철호가 창가에서 불이 켜진 훈련 탑을 보며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애들이 기특해요. 특히 성하가요.”
그것도 이성하의 이름을 언급하며 흐뭇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고, 그 통화의 상대는 다름 아닌 김필주였다.
- 우리 애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퇴원하고 소주 한잔 사겠습니다.
“술이요? 후회하실 텐데요. 저 말술이거든요. 하하하하.”
길현대는 몰랐지만, 정철호와 김필주는 서로 통화를 나누는 사이였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사람의 통화는 이성하가 탈락을 한순간부터였다.
“김 팀장님, 저 은평 구조대의 정철호입니다.”
이성하가 테스트에 탈락하자마자, 그 테스트를 진행했던 정철호가 김필주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었다.
그러고는 테스트 당시 이성하의 앞에서 화를 냈던 것과 달리, 김필주에게는 칭찬을 늘어놨다.
“오늘 인사를 한다면서 찾아왔기에 테스트를 했는데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사실 한 명도 찾아내지 못할 줄 알았거든요.”
이성하에게 탈락을 통보하긴 했지만, 테스트 결과에서 누구보다 놀랐던 사람이 바로 정철호였다.
원래 정철호는 이번 테스트에서 이성하가 단 한 명의 마네킹도 찾지 못할 걸로 여겼다.
“팀장님, 난이도가 너무 높은 거 아닙니까?”
“높아?”
“네. 우리야 소피랑 브룩이 아이 사이즈인 걸 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어떻게 압니까? 그것도 CP지령까지 꼬아 놨는데.”
자신의 밑에 있는 팀원들조차 이성하가 출발하자마자 다들 불가능한 미션이라며 손사래를 쳐 댔던 게 이번 테스트였다.
그런데 이성하는 시작부터 수준 높은 레펠을 보여 줬다.
‘뭐야? 제법인데?’
자신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깔끔한 자세로 레펠을 시작했고.
“허억, 허억. 임무 완료했습니다.”
그렇게 잠시 후에는 비록 한 개일지라도 숨겨 놓은 마네킹을 찾아왔다.
‘아직 임용된 지 6개월밖에 안 된 애송이가 그걸 찾아냈다고?’
애초부터 통과가 불가능하게 설정한 테스트인데도 불구하고, 일부분이긴 하지만 마네킹까지 찾아 돌아온 모습에 기함했던 것이다.
그것도 그냥 찾아온 게 아니었다.
“빠르네. 26분 31초.”
생각보다 빠른 랩타임에 자신도 모르게 빠르다는 칭찬을 해 버렸으니까.
그랬기에 김필주에게 전화를 건 거였다.
“이성하 말입니다. 어떤 친구입니까?”
단순한 신입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성하에 관한 걸 물었고, 그렇게 듣게 된 내용에 이렇게 이성하를 지켜보게 됐다.
“정말입니까? 그 가구 공장 2층에 올라간 게 대장님이 지시하기도 전에 자기가 판단한 거라고요?”
- 네. 자기라면 올라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뭐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항상 그런 친구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활로를 찾아요. 그렇게 퇴로가 막혔는데도 샌드위치 판넬이 불에 약하다는 걸 떠올리고 부숴서 빠져 나왔다고 하니까요.
“하, 불에 약하다. 거참, 재밌는 친구네요.”
들으면 들을수록, 최악의 조건에서도 요구조자들을 구해 온 이성하의 활약에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정철호는 정해 뒀던 계획을 바꾸어 버렸다.
‘두 달은 생각했는데, 이번 달부터 바로 투입해도 되겠는걸.’
당분간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진압대의 일을 돕게 했지만, 적당한 때에 실전에 투입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그리고 그런 생각에 김필주 역시 찬성했다.
- 저야 정 팀장님이 가르쳐 주시면 편하죠. 애들 잘 부탁드립니다.
안 그래도 회복이 늦어져 복귀가 미뤄지는 상황에서, 정철호의 이야기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제대로 가르쳐 보겠습니다.”
-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 모두 백 번의 훈련보다 한 번의 실전이 더 낫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