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48화 (48/235)

<강철 소방대 48화>

48화. 자격 (5)

“신입, 여기 물.”

“감사합니다.”

이성하가 한 소방관이 내미는 물을 건네받고 헬멧을 벗었다.

‘허억, 허억. 먼저 도착해서 쉬고 있는 건 아니겠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먼저 도착한 건 자신이 맞았다.

[아니야. 마네킹도 없잖아. 우리가 먼저다.]

‘그러네요. 진짜 없어요.’

렉스의 말처럼 옥상 어디에도 자신이 들고 온 소피와 같은 마네킹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에 이성하는 건네받은 물을 정신없이 머리에 뿌렸다.

쏴아아.

‘좋아. 합격한 거야.’

갑작스러운 테스트에 긴장하긴 했지만, 훌륭히 그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차올랐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근데 왜 다들 조용하지?’

출발할 때만 해도 시끌벅적하던 소방관들이 조용히 있었다.

“시간은?”

“26분. 탑이야.”

“그래? 빠르긴 하네.”

말로는 감탄을 하고 있지만, 서로 미묘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상황.

그 때문에 이성하는 왠지 모를 이상함을 느꼈다.

‘설마 다른 게 있는 건가?’

단 한 명도 테스트의 합격을 거론하지 않는 모습에,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날려 버렸다.

‘아니야. 실수한 건 없어.’

구조대는 인명 구조를 전담으로 하는 소방의 특수부대였다.

다른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과, 부상자의 응급치료, 현장 조사, 후속 처리 등을 우선으로 한다면, 구조대의 임무는 사고 현장에서 위험에 빠진 요구조자의 구조.

그 때문에 구조대가 갖춰야 할 최우선 능력은 신속성이었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게 현장의 위험이었기에 누구보다 시간을 중요히 여겨야 할 부대가 구조대였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이번 테스트의 핵심을 시간이라고 판단했다.

‘분명히 교재에서도 인명 구조의 핵심을 시간이라고 말했어. 골든타임을 지키냐, 마냐에 따라 요구조자의 생사가 결정된다고.’

수없이 펼쳐 봤던 인명구조사 교재에서도, 사고 발생 후 타임 리미트에 해당하는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이어 도착한 구조대원의 모습에 깨져 버렸다.

‘마, 마네킹이 둘?’

구조대원이 둘러업은 마네킹은 둘이었다.

“허억, 허억. 임무 완료했습니다.”

“좋아, 수고했다. 기록은 33분 10초.”

“가, 감사합니다. 허억. 허억.”

아이 크기의 마네킹 두 개를 정철호에게 건네고는 그대로 쓰러져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받아 든 마네킹을 바닥에 내려 둔 정철호가 이성하를 바라봤다.

“승복하나?”

결과를 인정하냐는 말이었다.

뚜렷한 주어는 없지만 이성하의 탈락을 확정하는 말이었고, 이성하는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승복합니다…….”

구해야 할 요구조자가 한 명 더 있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 시점에서, 이미 탈락이 확정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성하의 대답에 정철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대답은 그것뿐이야?”

“네?”

“이 새끼, 이걸 그냥 테스트로만 생각한 게 맞구먼.”

정철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분명히 상황을 실제로 가정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네가 구해 온 요구조자는 한 명이야. 그럼 뭘 해야 해?”

“아…….”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구해 와야 할 거 아니야!”

요구조자가 한 명이 남아 있는 걸 알게 됐는데도 가만히 있는 이성하의 행동을 질책한 것이다.

한마디로 아직 테스트는 끝난 게 아니었다.

‘타임 워치.’

정철호가 아직까지 손에 들고 있는 타임 워치가 여전히 테스트는 진행 중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이기엔 이미 늦었다.

“늦었어, 새끼야. 이미 공기호흡기 시간 다 지났다.”

뒤이어 움직이려는 이성하를 향해 정철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테스트가 끝났다는 걸 알리듯 들고 있던 타임 워치를 포켓에 넣었고, 그대로 이성하의 탈락을 선언했다.

“잘못 생각했다. 넌 보조 인력으로 남아 있을 자격도 없어. 진압대로 근무하다 다른 센터로 가. 서장님께는 내가 직접 말할 테니까.”

“하…….”

그렇게 모든 소방관들이 보는 앞에서 이성하의 탈락이 고지되었다.

* * *

이성하가 구조대의 테스트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길현대 신입 떨어졌다며?”

“어. 아까 오후에 테스트했다는데 탈락했대. 소방서 애들 말로는 정 팀장이 제대로 망신 줬다고 하던데?”

공개적인 장소에서 치러졌던 테스트였던 만큼 많은 소방관들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당연히 그 소식은 병원에 있는 길현대에게까지 전해졌다.

“팀장님…… 성하, 오늘 테스트 봤다가 떨어졌다는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구조대요. 정 팀장이 오늘 테스트했대요. 결과는 탈락이고요.”

“…….”

안 그래도 오지랖이 넓은 다른 소방관들이 길현대에 연락해 왔던 것이다.

당연히 이성하의 핸드폰도 불을 뿜었다.

<오성수>, <허석훈>, <김필주>…….

소식을 들은 길현대가 상황 파악을 위해 이성하에게 전화를 걸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하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하…… 어떻게 말씀드리지…….’

선배들에게 테스트에 떨어진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간간이 올게요.”

“오긴 뭘 와. 가서 적응하고 있어. 금방 따라서 복귀할 테니까.”

“하하하. 알겠습니다. 미리 터 좀 닦아 놓겠습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미리 터를 닦아 놓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며 병원을 나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고를 안 할 순 없었다.

단체로 전화를 걸어오는 걸 보니 이미 상황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 차라리 뵙고 말씀드리자.’

차마 전화로는 보고를 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선배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고,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오늘 테스트한 내용을 털어놓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길현대의 구조대 생활을 첫 시작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사실에, 선배들에게 죄송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배들의 반응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뭐 어쩔 수 있냐? 고생했다.”

권일섭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생했어. 그 정도면 잘한 거야.”

김필주 역시 웃음을 지으며 그런 권일섭의 말에 맞장구를 쳤고, 허석훈과 오성수 역시 웃지는 않았지만 다른 선배들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

“고생했다, 성하야.”

자신이 첫 시작부터 탈락이라는 암울한 결과를 들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질책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다들 왜 그러는 거지?’

권일섭과 김필주는 몰라도, 허석훈과 오성수가 별말 없는 건 이상했다.

“야, 우리 당당하게 시험 봐서 들어가는 거 어때?”

“시험이요?”

“그래. 이대로 쪽팔려서 근무하겠어? 정식으로 테스트 받아서 들어가자고. 당당하게.”

“좋네요. 그렇게 하죠. 안 그래도 동기 놈들 전화 때문에 죽겠어요.”

자신과 함께 당당히 테스트를 통과해서 들어가자고 이야기했던 두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석훈이랑 성수 좀 나가 있을래?”

김필주가 허석훈과 오성수를 밖으로 쫓아냈다.

“네, 팀장님.”

“네, 나가 있을게요.”

허석훈과 오성수가 부리나케 밖으로 빠져나갔고, 권일섭 역시 나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나도 나가 있어도 되지?”

“네, 제가 이야기할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권일섭도 김필주와 이성하에게 둘이서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리를 만든 김필주가 입을 열었다.

“막내야.”

“네, 팀장님.”

“오늘 테스트 고생했다. 안 그래도 이야기 들었거든. 그런데 하나만 물어도 될까?”

“네, 말씀하십쇼.”

“우리한테는 왜 죄송하다는 거야?”

“네?”

“아까 죄송하다 그랬잖아. 탈락을 한 건 넌데 우리한테 왜 죄송한 거야?”

그 말에 잠깐 생각하던 이성하가 입을 열었다.

“그게…… 제가 팀원 중에서 처음으로 테스트를 받지 않았습니까.”

“팀 이름에 먹칠을 한 거 같아?”

“네. 안 그래도 우리 팀이 구조대 가는 거 때문에 논란이 있었는데, 제가 테스트에 떨어진 걸로 더 말들이 나올 거 같아서요.”

팀 전체 발령으로 인맥 발령이라는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이성하의 테스트 탈락은 그 인맥 발령의 논란을 더 부추길 수 있는 사항이었고, 실제로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야, 너 오늘 소방서에서 시험 봤다며? 어땠어? - 동훈 형]

[이야기 들었는데 괜찮냐? 시험 어려웠다며? - 민우 형]

[성하야, 내일 뭐 하냐? 퇴원 기념으로 형이랑 소주 한잔할래? - 성민 형]

안 그래도 무슨 말을 들었는지, 친한 동기들이 갖가지 이유로 이성하에게 문자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에 김필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걸 네가 왜 걱정하냐?”

“네?”

“그런 걸 네가 왜 걱정하냐고. 그런 걸 걱정하기보단 오늘 벌인 실수에 대해 구조대에 미안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 말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구조대?’

차라리 요구조자였던 마네킹을 말하는 거면 몰라도, 갑자기 상관없는 구조대를 거론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김필주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네가 신중히 수색을 하지 못한 덕분에 구조대는 또 한 번 진입해야 했을 거야. 그러다 자칫하면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에 동료가 매몰될 수도 있지. 그런데 안 미안해? 너로 인해 구조대의 동료들이 사망할 수도 있었잖아.”

나긋나긋한 음성이었지만, 이성하에게는 폐부를 찌르는 말이었다.

정철호는 분명히 테스트를 실제라고 가정했다.

모든 상황을 실제로 가정하며 테스트를 하겠다 말했고, 그걸 떠올린다면 김필주의 말을 부정할 순 없었다.

‘동료가 사망…….’

김필주의 말처럼 실제였다면 자신의 섣부른 판단으로 인해 동료가 사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아니, 발생했을 게 분명했다.

‘내가 선두였어.’

이번 임무에서 이성하가 맡은 역할이, 가장 마지막까지 현장에 남아 수색을 마무리하는 일착대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이성하를 향해 김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은 거 같네. 네가 진짜 미안해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야. 너로 인해 위험에 빠질 뻔했던 구조대지. 정 팀장도 그것 때문에 널 혼낸 거고, 성하야.”

“네…….”

“나는 네가 좋아. 너처럼 착실한 후배를 만나는 건 쉽지 않거든. 감도 좋지만 노력도 하는. 그런데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어.”

“…….”

“네 행동 하나하나에 동료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고 생각해야 돼. 구조대는 판단이 빠른 것도 좋지만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움직여야 하거든. 이번 테스트는 아마 그걸 본 걸 거야. 네가 현장에서 어떤 스타일로 움직이는지. 무슨 말인지 알겠니?”

“네.”

이성하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내가 주제넘게 말이 많았다. 피곤할 텐데 얼른 들어가 봐.”

“아닙니다. 들어가겠습니다.”

김필주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실 문을 나섰고, 그렇게 병원을 나와서는 주먹을 움켜쥔 채 울분을 토했다.

“제길…….”

짜증이 나서? 아니었다.

“……멍청한 새끼네요.”

[그만해. 내가 미안하다야.]

“아니에요. 알고 있었는데…… 제가 한심해서 그래요.”

구조대가 어떤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까먹은 채, 발령받았다는 것에 신나 하기만 했던 자신이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병실 쪽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자신에게 구조대원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알려 준 김필주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런 이성하를 김필주가 병실에서 내려다보며 피식 웃고 있었다.

“기특하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바로 깨닫고 반성하는 모습에 흐뭇한 감정이 들었던 것이다.

“얌마, 거기서 어울리지 않게 뭐 해? 분위기 잡지 말고 일로 와.”

그런 김필주를 향해 옆에 있던 권일섭이 핀잔을 내뱉었지만, 김필주는 여전히 웃음을 지었다.

‘열심히 해라. 막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