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47화 (47/235)

<강철 소방대 47화>

47화. 자격 (4)

모든 소방관들의 시선이 이성하에게 집중됐고, 이성하는 그 시선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스타트를 끊었다.

타닷!

시작부터 자신에게 배정된 로프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그러고는 로프를 낚아채 바로 카라비너(안전 고리)를 걸었고.

철컥.

단번에 고리를 걸고는 몸을 돌려 로프를 잡는 그 모습에 지켜보던 소방관들이 깜짝 놀랐다.

“뭐야? 저놈 진압대 아니었어?”

“엄청 깔끔한데? 저걸 한 턴에 한다고?”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니야. 자세 완벽한데?”

레펠을 할 기회가 없는 진압대임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레펠 준비를 마치는 모습이 신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압대라고 기회가 없던 건 아니었다.

레펠은 이성하가 열심히 연습했던 훈련이었다.

“성하야. 이번 주말에 훈련 같이하지 않을래?”

“주말이요?”

“응. 너 아직 레펠은 익숙하지 않다며. 내가 도와줄게. 개인 장비로 여분이 몇 개 있거든.”

소방학교 시절, 특수부대 출신인 장건호와 함께 개인 연습까지 했을 정도로 열중했던 훈련이었고, 그 훈련은 졸업하고 발령받은 센터에서도 이어졌다.

“센터장님, 우리가 레펠 훈련까지 해야 합니까?”

“당연하지. 현장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누가 알아? 잔말 말고 빨리 로프 잡아. 오늘 이거 안 마치면 퇴근 없어!”

애초부터 길현대의 구조대 발령을 계획했는지, 매 주 훈련 시간마다 센터장이 레펠 훈련을 지시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엉덩이를 쭉 뺀 상태에서 발만 뒤로 뺀다.’

수없이 훈련하며 익혔던 자세가 그대로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성하의 곁에는 살아 있는 소방 교재(?)가 있었다.

[기억하지? 반동 주면 안 되는 거?]

레펠을 시작함과 동시에 렉스가 입을 열었다.

‘알아요. 내려갈 때는 발만 슥 뺀다.’

[미끄러질 땐?]

‘발끝만 붙이고 내려갑니다.’

수십 년을 소방관으로 근무했던 렉스의 조언이 이성하의 귓가를 파고들었고, 그 조언에 맞춰 이성하의 몸이 그림을 그리듯 움직였다.

[창문.]

‘네.’

스으윽. 터억.

벽을 타고 내려가다 나온 창문에서 발을 굴렀다.

[좋아, 잘하고 있어.]

탁. 스으윽.

착지와 함께 그대로 발끝을 세워 미끄러져 갔고.

[다시 창문.]

또다시 나타난 창문에서 발을 구르는 모습에, 앞으로 나와 지켜보던 소방관들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와, 저놈 숙련자 맞네.”

“개쩌는데? 쟤 누가 사병 출신이라고 했냐?”

“사병? 야, 반동 주는 포인트까지 다 알고 있는데 무슨 사병이야?”

자신들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보여 주는 모습에 모두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소방관들의 반응에도 이성하는 좋아할 수 없었다.

‘쳇, 역시 구조대네.’

자신보다 스타트는 늦었지만, 비교 대상으로 참가한 구조대원 역시 바로 3층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터억. 턱.

옆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워커 소리에, 상대 역시 단번에 3층에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도끼.’

바로 허리춤에 찬 도끼를 꺼내 들었다.

와장창!

꺼냄과 동시에 단번에 휘둘러 진입로에 해당하는 창문을 깨 부수곤, 바로 안으로 진입해 로프에 걸어 둔 카라비너를 풀었다.

터억. 철컥.

‘최대한 빠르게 움직인다.’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여 주는 것에, 조금 더 서둘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랬기에 헬멧에 장착된 헤드라이트의 스위치를 켜며 렉스를 불렀다.

‘렉스, 라이프 라인 어디에 고정할까요?’

현장에서 보긴 했지만 엄연히 제대로 된 구조 현장은 처음이었기에, 렉스의 조언을 받으며 움직일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들려오는 건 라이프 라인의 사용법이 아니었다.

[와, 시설 많이 발전했네.]

감탄 어린 렉스의 말이 귓가를 울렸다.

‘시설? 갑자기 웬 시설이에요?’

그에 이성하가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했지만, 이내 눈앞으로 보이는 광경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여, 연기?’

건물의 내부가 하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화아아악.

뒤를 돌아보니 방금 자신이 깨부수고 들어온 창문으로 하얀 연기가 빠져나가는 게 보였고, 그에 이성하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가정된 상황이 아니었어?’

실제와 마찬가지로 짙은 연기가 뿜어지는 테스트 현장에 당황을 금치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바로 했다.

‘문제없어. 농연 훈련은 내가 제일 많이 연습했던 거였어.’

실제로 연기가 뿜어질지는 몰랐지만, 이런 상황을 대비해 수십 번을 훈련했었다.

그것도 훈련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미 몇 번의 화재 현장을 통해 실전을 경험했고 그 경험이 지금 나왔다.

‘3층은 방이 두 개야. 가장 왼쪽에 있는 게 큰방이고, 화장실은 계단 옆이야. 그렇다면 수색 방향은 물이 있는 화장실이 먼저다. 계단을 먼저 찾아야 해.’

건물에 진입하기 전에 미리 봤던 구조도를 떠올리며 수색 방향을 정한 것이다.

그러고는 렉스를 다시 한번 다그쳤다.

‘렉스!’

좀 전에 물었던 라이프 라인 때문이었다.

[아, 미안. 어디 놓든 상관없어. 끌려오지 않게 무거운 물건 하나만 걸치면 돼.]

정신을 차린 렉스가 이성하에게 다시 집중했고, 그에 이성하가 한쪽에 라이프 라인을 고정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집중할게요.’

[그래.]

생각보다 실전 같은 테스트에 놀라긴 했지만, 더 이상 주저할 여유는 없었다.

그랬기에 배운 대로 주변을 체크하며 걸음을 옮겼다.

툭. 툭.

‘여긴 없어.’

착실하게 벽을 더듬어 가며 마네킹이 숨겨져 있을 장소들을 수색했고, 그렇게 이성하의 걸음에 서서히 속도가 붙었다.

‘내려갈게요.’

[재수색은?]

‘여긴 없어요. 더 이상 요구조자가 숨어 있을 공간이 없어요.’

수색이 진행될수록 머릿속에 뚜렷해지는 구조도에, 행동에 거침이 없어졌다.

물론 방심하는 건 아니었다.

편법에 해당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성하에게는 조력자가 있었다.

[좋아. 내려가자!]

혹시라도 이성하가 실수를 할까 봐 옆에서 끊임없이 조잘대는 렉스가 바로 그 조력자였고, 이성하는 렉스를 테스트에서 최대한으로 이용했다.

‘지나오면서 제가 빠트린 곳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

[걱정 마. 지나온 방은 다 확인했어.]

단순히 조언만 받는 게 아니라, 렉스를 또 다른 동료로 가정해 수색의 범위를 최대한으로 줄인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가 3층을 수색하는 데 사용한 시간은 고작 7분 남짓이었다.

‘침대 밑은 없어요.’

[그럼 더 이상 여긴 없어. 다음 층으로 가자.]

2층을 수색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보다 더 짧은 5분이었고.

하지만 그렇게 빠른 속도를 유지함에도 이성하는 다급해 있었다.

‘제길, 대체 어디에 숨겨 놓은 거야?!’

아무리 수색해도 마네킹이 보이지 않았다.

‘방금 방엔 없었죠?’

[확실히 없어. 장롱까지 다 수색했잖아.]

확실하게 확인까지 하며 수색을 했는데도 마네킹은 그림자도 찾지 못했고, 그렇게 1층의 수색이 끝나는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지나온 건가? 놓친 곳이 있었어?’

더 이상 수색할 곳이 지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빠트린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말에 렉스가 단호히 말했다.

[아니야. 요구조자가 숨어 있을 만한 곳은 그 외엔 없었어.]

자신이 직접 확인한 사항이었다.

[분명히 체크했어. 지나온 곳에서 요구조자가 숨을 만한 곳은 없었어.]

이성하를 따라다니며 수색 과정을 직접 본 만큼, 빠트린 곳이 없다는 건 확실히 보증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하는 아니었다.

‘불이 일어난 상황이야. 불이 일어난 상태에서 지하로 숨을 사람은 없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사람이 불길을 피해 지하로 숨는 경우는 없었다.

지하로 숨을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밖으로 대피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걸 생각하면 빠트린 곳이 있을 확률이 농후했다.

‘제길. 올라가서 다시 수색해야겠어요.’

[뭐?]

‘남은 건 지하예요. 만약 저기 내려갔는데 없으면 테스트는 그대로 탈락한다고요.’

그런데 그때였다.

투욱.

이성하의 발끝에 무언가가 부딪혔다.

‘티라노사우르스?’

손을 뻗어 보니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공룡 인형 하나가 잡혔고, 그에 이성하의 눈이 흔들렸다.

‘아이…….’

[뭐?]

‘아이에요. 마네킹. 성인 사이즈가 아니라 아이 사이즈라고요!’

자신이 구해야 할 요구조자가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관통했다.

아니, 아이가 확실했다.

‘분명히 요구조자라고만 했어. 팀장은 남성, 여성, 그 무엇도 특정하지 않았어.’

정철호는 요구조자의 성별을 특정하지 않았다.

단순히 요구조자를 구해 오라는 불분명한 내용을 지령으로 내렸고, 그걸 생각하면 구해야 할 요구조자는 아이일 확률도 있었다.

‘인형이 이곳에 괜히 있을 수 없어. 1층이야. 1층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2층에 요구조자가 있다.’

실제를 가정한 테스트에서 아이가 좋아할 법한 인형이 괜히 떨어져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가장 확률이 높은 1층부터 다시 수색했다.

‘부엌의 천장 붙박이, 옷장 서랍, TV서랍장. 뭐든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는 다시 수색해야 해.’

좀 전까지 성인이 숨을 법한 공간들을 뒤졌다면, 이번엔 아이도 숨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공간들을.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했다.

‘찾았다.’

거실 한편에 놓여 있는 TV서랍장 안에, 아이 사이즈의 마네킹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렉스로서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소피라며! 아이 마네킹에 왜 소피 마르소라는 이름을 붙여!]

아이 크기의 훈련 마네킹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 마네킹에 소피 마르소라는 이름을 붙인 정철호의 정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25분.’

1층을 처음부터 다시 재수색한 탓에 지금까지 단축했던 시간이 늘어났다.

이번 테스트에 경쟁자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치명적인 실수였고, 그에 이성하는 바로 마네킹을 둘러업고 계단으로 향했다.

화아아아.

여전히 뿌연 연기가 앞을 가렸지만, 걸음에 지장은 없었다.

[이쪽 아냐. 반대쪽이야.]

‘허억, 허억.’

이곳까지 내려오며 풀어놨던 라이프 라인을 따라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고, 그렇게 3층을 지나는 순간 움직임에 속도가 붙었다.

‘단숨에 올라간다.’

더 이상 연기고 뭐고 아무것도 막는 게 없었다.

타닥!

무거운 마네킹의 무게에도 성큼성큼 계단을 뛰어올랐고, 그렇게 옥상에 도착해 정철호에게 마네킹을 넘겼다.

“허억, 허억. 임무 완료했습니다.”

주어진 미션을 완벽하게 완수한 것이다.

“빠르네. 26분 31초.”

그것도 현역 구조대원보다 앞선 성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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