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46화 (46/235)

<강철 소방대 46화>

46화. 자격 (3)

정철호는 이성하가 살짝 올려다봐야 될 정도로 큰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불곰이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딱 벌어진 어깨에, 큰 덩치의 소방관.

그리고 그런 정철호는 이성하를 단박에 알아봤다.

“아, 너구나, 이성하가.”

이성하의 가슴에 붙은 명찰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한쪽으로 이성하를 이끌었다.

“이쪽으로 오지.”

한편에 마련된 구조대장실이었다.

“뭐, 음료수라도 마실래?”

들어가자마자 안에 있는 냉장고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 내밀었고, 그에 이성하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음료수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래, 그래.”

행동은 손님을 대하듯 음료수를 내밀어도, 정작 음성에서 처음에 들었던 까칠함은 여전히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를 이성하는 잘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반대하시나 본데요.’

[그러게. 제대로 불청객 취급하는데?]

정철호 팀장이 길현대의 구조대 발령을 반대한 건, 아직까지도 시끄러운 일이었다.

센터장과 팀장이 신경 쓰지 말라며 일축하긴 했지만 그래도 안 좋은 의미의 논란이었기에 팀원들 모두가 여전히 짜증을 내는 일이었고, 그와 관련해 이성하는 오성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정철호 그 인간, 특수부대 자부심 때문에 그러는 거야.”

“특수부대요?”

“어, 원래 구조대 지원 자격이 특수부대 출신이잖아. 예전에도 특수부대 출신 아니라고 반대한 적 있댄다. 뭐 수준이 떨어진다나? 그놈의 특수부대 자부심.”

정철호 팀장이 길현대의 발령을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자부심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말은 맞는 듯 보였다.

“그나저나 26사단 출신이었다며? 소속이 어디였지?”

“네. 불무리부대 76여단 126기보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76? 아, 전차부대랑 같이 있던 곳이지? 기보병이면 꽤 편하게 근무했겠네.”

난데없이 이성하의 군 시절 부대를 물어보고는, 대답을 듣자마자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그 말에도 불쾌한 티를 드러내지 않았다.

“네. 하지만 그래도 편하진 않았습니다. 나름 힘들었거든요.”

정철호를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힘들었다고?”

“네. 알보병은 아니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전차부대가 가까이 있다 보니 불무리에서 가장 훈련 양이 많은 부대가 저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훈련만큼은 기갑수색대대 못지않았다고 자부합니다.”

이미 정철호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당당히 웃으며 대답했고, 그에 정철호가 피식 웃었다.

“부대 자부심인가?”

“네. 126 강병! 불무리에서는 저희가 최고였습니다.”

“최고라. 마음에 드네.”

전역한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스스로의 부대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성하의 모습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이 바뀐 건 아니었다.

“강병. 그래, 좋은 부대지. 들었던 기억이 있어. 부대 상징이 코뿔소였던가? 하지만 그래도 일러.”

“이르다고요?”

“그래. 내가 길현대의 발령을 반대하는 건 알고 있겠지?”

이성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왜 반대했다고 생각하나?”

“기준에 어긋난 발령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시험이 아니라, 추천을 받아서 들어왔다고요. 하지만 팀장님이 오해하시는 게 있습니다.”

“오해?”

정철호의 반문에 이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와 선배님들은 특혜를 바란 적이 없습니다. 구조대를 희망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방식은 저희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주신다면 정식으로 시험을 통해 인정받고 싶습니다.”

“정식으로 시험을 받겠다고? 길현대 모두?”

“네. 정확히는 허석훈 부장과 오성수 반장, 그리고 저 세 사람입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정식으로 시험을 통과해 들어오겠습니다.”

사실 이미 오기 전부터 이야기된 사실이었다.

현재 길현대에서 구조대 발령으로 논란이 되는 건 총 세 사람이었다.

기존 구조대 출신이었던 권일섭, 김필주와 달리, 아직 경험이 없는 허석훈과 오성수, 이성하.

그 때문에 세 사람은 이성하가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에, 구조대에 정식으로 입단 테스트를 받자고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다.

“야, 차라리 우리 당당하게 시험 봐서 들어가는 거 어때?”

“시험이요?”

“그래. 이대로 쪽팔려서 근무하겠어? 정식으로 테스트 받아서 들어가자고. 당당하게.”

“좋네요. 그렇게 하죠. 안 그래도 동기 놈들 전화 때문에 죽겠어요.”

“저도 찬성입니다. 기왕 가는 거 제대로 가시죠.”

아무리 구조대가 좋다고 한들, 낙하산 딱지까지 붙여 가며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에 정철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테스트 좋지. 그런데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지?”

테스트에서 떨어지면 이미 결정 난 발령을 어떻게 취소할 거냐는 물음이었고, 이성하는 그 말에 조금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직접 서장님께 말씀드려서 취소하겠습니다.”

“직접?”

“네. 저희들이 직접 거부하면 서장님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이미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떨어지면 어떻게 할지도 결정을 내려 둔 상태였다.

하지만 그 말에 정철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건 별로야.”

“네?”

“별로라고. 길현대의 발령을 취소하길 원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서장님 권위를 무너트릴 생각은 없거든. 그래서 말인데, 떨어지면 발령 취소 말고 대기 인력으로 남는 거 어때?”

“대기 인력이요?”

“그래. 3팀으로 들어오되 너희는 진압대를 도와. 정확히 말하면 보조 인력이지.”

그 말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보조 인력?’

한마디로 견습 구조대로 활동하라는 말이었다.

구조대임에도 진압대를 도우란 말은 현장에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오죽했으면 그 말에 렉스가 고함을 질를 정도였다.

[미친 거 아냐?]

말이야 좋았지만, 테스트에서 떨어지면 구조대원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라는 소리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금세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야, 미쳤어?]

‘괜찮아요. 충분히 통과할 수 있어요.’

이런 소리까지 듣고 그냥 물러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으니까.

그러나 이어지는 정철호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그럼 지금 하지.”

정철호가 난데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였다.

“……네?”

“왜? 다 같이 볼 생각이었어? 아니면 아직 몸이 덜 나았나?”

“아닙니다. 다 나았습니다.”

“그래? 그럼 가자고. 테스트하러.”

당황해하는 이성하에게 얼른 따라오라며 앞장섰고, 그렇게 해서 따라가게 된 곳은 소방서에 들어오며 봤던 훈련 탑 앞이었다.

“테스트는 레펠을 통한 구조 작전으로 하지.”

“레펠이요?”

“그래. 이거 하나면 바로 파악되거든. 합격인지 아닌지.”

“…….”

가볍게 인사만 하러 온 상황에서 난데없이 테스트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거기다 공개 테스트였다.

“이야, 오늘 재밌겠는데?”

“시보야, 힘내라. 나는 네 편이다.”

“팀장님. 살살하십쇼, 살살. 아직 애기입니다, 애기.”

“맞습니다. 살살하십쇼!”

이성하가 테스트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방금까지 회의실에 있던 소방관들이 우르르 몰려나온 상황.

하지만 이성하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레펠은 자신 있다.’

레펠은 이성하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항목이었다.

[괜찮네. 센터에서도 자주 연습했잖아.]

‘네. 제대로 해 보려고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자신이 구조대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는 걸 제대로 증명할 생각이었다.

물론 테스트는 간단하게 로프 기술만 보는 게 아니었다.

“병준아, 창문 새로 끼워라.”

“어? 실전 스타일로 갑니까?”

“그럼. 입단 테스트인데 대충 하냐?”

“하하하. 알겠습니다. 지환아, 가자.”

정철호의 말에 구경을 나왔던 구조대원 한 명이 동료와 함께 훈련 탑 옆의 5층 건물로 들어갔다.

덜컥.

잠시 후, 3층에 나타나 창문이 없는 곳에 창문들을 끼우는 모습이 보였고, 그 후에는 10분 정도 사라졌다가 옥상에 모습을 보였다.

“준비 끝났습니다!”

“소피는?”

“소피와 브룩 모두 오케이입니다!”

일반인이라면 영문을 모를 말이었다.

“소피와 브룩? 여보, 저게 무슨 말이야?”

“훈련 기구 아닐까?”

“훈련?”

“어. 저번에 왔을 때 보니까 저기서 소방관들이 훈련하고 있더라고.”

옥상에서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구조대원의 외침에, 민원실에서 지켜보던 민원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이성하에겐 익숙한 이름이었다.

‘마네킹?’

소방관들은 흔히 훈련에 쓰이는 마네킹에 연예인의 이름을 붙였다.

소방학교에서 훈련할 때도 그 무거웠던 무게에 애착을 담아 그 당시 스타로 유명했던 제니퍼 로렌스의 이름을 붙였고, 그 생각은 정확히 맞았다.

“팀장님, 슬슬 마네킹 이름 바꾸면 안 됩니까?”

“왜?”

“소피 마르소랑 브룩 쉴즈는 저한테 엄마뻘입니다. 훈련할 때 전혀 감정이 안 산다고요.”

“맞습니다. 바꿔 주십쇼!”

몇몇 대원들이 소피 마르소와 브룩 쉴즈를 언급하며, 그 이름을 바꾸길 요구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테스트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질지는 뻔히 알 수 있었다.

‘레펠을 타고 창문으로 들어가 어딘가에 있을 요구조자를 찾는 건가?’

구조 작전이라고 말한 걸 생각한다면 건물 안의 요구조자를 구해 빠져나오는 게 테스트의 내용.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에 이성하가 식은땀을 흘렸다.

“상황은 실제로 가정한다. 현재 3층까지 불이 확산된 5층 건물에 요구조자가 고립돼 있는 상태다. 옥상에 자물쇠가 걸려 있어 진입은 3층 창문을 통해 들어가야 하고, 현장은 짙은 연기로 인해 시야 확보가 힘든 상황이다. 포지션은 가장 먼저 돌입하는 일착대. 주어지는 장비는 시야를 확보할 헤드라이트와 창문을 깰 도끼, 그리고 50분짜리 공기통 하나와 선두 대원이 챙겨야 할 라이프 라인이다. 시간 내에 요구조자를 구하는 건 당연하고, 요구조자가 사용할 공기까지 감안해서 제한 시간은 35분으로 한다. 알겠나?”

단순한 레펠 훈련이 아닌, 실제를 가정한 구조 테스트였다.

실제를 가정한 만큼 20kg에 가까운 방화복을 착용함은 물론, 연기로 인해 시야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과 요구조자와 공기통을 같이 사용하는 것까지 감안한 구조 작전.

아직 구조대도 아닌 이성하로서는 하이 레벨의 테스트였지만, 불평을 토로할 순 없었다.

“고동수, 네가 반대편에서 똑같이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이어진 정철호의 고함에 한 소방관이 앞으로 나섰다.

딱 봐도 주위에 있는 소방관 중 가장 어려 보이는 대원이었고, 그 대원을 가리키며 정철호가 입을 열었다.

“구조대에 들어온 지 올해 딱 1년이 되는 대원이다. 네가 저 친구의 반만 따라잡아도 합격으로 인정하지.”

이성하가 테스트에 떨어져도 반박하지 못하도록, 임용 시기가 비슷한 구조대원과 같이 테스트를 진행하게 한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야, 방심하면 안 되겠다. 이 새끼 미리 준비해 뒀어.]

‘그러게요.’

명확한 비교 기준이 있는 테스트라는 생각에 긴장감이 솟았다.

하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아무리 현역 구조대원이라도 해도, 1년이라면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해 왔던 자신이라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이성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테스트가 시작됐다.

“네 체격에 맞는 방화복이야. 아마 작진 않을 거야.”

“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옥상으로 올라와 정철호가 내민 방화복과 장비를 착용했다.

“네가 사용할 레펠은 왼쪽이야. 이게 건물 구조도고, 당연히 요구조자의 위치는 미확인 상태야.”

장비 착용에 도움을 주는 구조대원의 설명을 들으며, 신중히 건물의 구조도를 머리에 담았다.

‘최단 시간 안에 끝내야 해.’

자신이 구조대에 어울린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준비는 다 됐나?”

“네!”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에 정철호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이익!

‘제대로 보여 준다.’

테스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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