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45화>
45화. 자격 (2)
정철호 팀장이 서장을 찾아가 이번 구조대 발령을 반대한 사실에 은평소방서 전체가 시끄워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야, 이야기 들었어? 정철호 팀장이 직접 서장 찾아가서 엎었대.”
“뭐? 불곰이?”
“그래. 불곰이 원래 그런 거 싫어하잖아. 이번 길현대 발령 자신은 절대 인정 못 하겠다고 서장한테 엄포를 놨다는데?”
발령의 주체가 되는 구조대 팀장이 직접 서장의 인사를 반대한 만큼, 곳곳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제는 그 이야기의 방향이 길현대에게 썩 좋지 않게 흘러갔다는 것이다.
“난 정 팀장 의견에 한 표.”
“정 팀장한테?”
“당연하지. 솔직히 이번 발령이 규정에 어긋난 건 맞잖아. 아무리 길현대가 공을 세웠다고 해도 팀 전체가 구조대로 발령받는 게 정상이야?”
“나도 인정. 행정팀에 듣기로는 이번 발령이 권 대장님 추천으로 이뤄진 거래.”
“권 대장님?”
“그래. 라인 탄 거지. 솔직히 한 명도 아니고 팀 전체가 옮기는 건 오버잖냐.”
이번 발령이 소방관들이 가장 싫어하는, 인맥으로 이뤄진 부정 발령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발령은 인맥으로 이뤄진 부정 발령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동안 소방서장이 권일섭의 구조대 복귀를 바라 왔다고 하지만,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참, 길현대 말이야. 발령 추진하기 전에 강 대장과 구조 2팀 만나서 한번 확인해 봐.”
“구조 2팀이요?”
“그래. 걔들이 현장에 있었잖아. 직접 곁에서 봤으니 정확히 알겠지. 길현대가 구조대에 어울리는지.”
행정과장에게 길현대의 구조대 발령을 추진시키면서도 길현대가 구조대에 어울리는지 조사를 맡겼었고, 다행히 길현대가 그 기준을 충족했다.
“그럼 행정과장 말은 괜찮다는 거지?”
“네. 강 대장과 현장에 있었던 구조 2팀 말로는 완벽했다고 합니다. 바로 현장에 투입해도 손색없을 정도로요.”
강천호와 구조 2팀은 물론, 행정과장의 동의하에 이번 길현대의 구조대 발령이 이뤄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과정까지 발령되면서 알리는 게 아니니, 말이 돌 수는 없었다.
당연히 그 과정을 모르는 일반 소방관들로서는 이번 발령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길현대는 때 아닌 소문에 곤혹을 치렀다.
RRRrrr……
“아씨, 또 전화 오네.”
“왜? 받지 않고.”
“받아서 뭐 해요. 보나마나 구조대 발령에 관해서 물어보는 걸 텐데. 아, 그 팀장님은 왜 그렇게 일을 키워 가지고는.”
친분 있는 소방관들이 이번 사건에 궁금증을 가지고 자꾸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길현대의 발령이 취소되는 건 아니었다.
“신경 꺼. 어차피 결정된 발령이야. 너희가 떳떳하면 상관없잖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팀원들을 향해 권일섭이 피식 웃었다.
“안 그러냐, 필주야?”
옆에 있는 김필주를 향해 동의를 구하는 듯 눈짓했고, 김필주 역시 그 눈짓에 고개를 끄덕였다.
“센터장님 말이 맞아. 원래 구조대 발령되면 으레 있는 일이야. 이번이 좀 시끄럽긴 하지만.”
팀원들은 모르겠지만, 원래 구조대로 처음 배속되면 지금과 같은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
물론 길현대가 겪는 신고식은 정상 범주의 신고식과는 달랐지만 말이다.
‘내가 시험을 쳤을 때, 오십 명 지원해서 다섯 명 받았던가?’
김필주가 젊은 시절 구조대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치렀던 것처럼, 원래 구조대의 신고식은 정식 시험을 통해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아직 보지 못한 정철호 팀장이 일을 크게 벌리긴 했지만, 엄연히 이 또한 구조대의 신고식이었다.
스케일이 크긴 하지만 문제를 제기한 정철호 팀장의 인정만 받으면 문제없이 지나갈 사안이었고, 그 때문에 김필주는 지금의 논란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내 새끼들 정도면 충분하지. 암, 그렇고말고.’
자신이 가르쳐 온 팀원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어떤 테스트가 이뤄지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한쪽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성하만 바라봐도 알 수 있었다.
“응급처치의 잘잘못에 따라 그 환자의 생사가 결정된다. 회복 또는 인원 기간 등도 결정될 수 있으며…….”
짜증을 토로하는 다른 팀원들과 달리, 구조대 발령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같이 참고서를 붙들고 있었다.
‘새끼. 진짜 열심히 공부하네. 그렇게 좋은가?’
보고 있는 자신마저 흐뭇한 미소를 지을 정도로 학구열에 불탄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김필주는 이내 제대로 된 상황을 깨달았다.
이성하가 참고서를 보면서도 중간중간 한쪽에 한량처럼 퍼질러 있는 오성수를 노려봤다.
찌릿.
단순히 노려보는 게 아니라 살기가 어린 눈빛이었고, 그 모습에 김필주가 헛웃음을 지었다.
‘석두 화이팅!’
몇 주 전 이성하를 석두라고 놀렸던 오성수가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이성하의 화를 부채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김필주는 방금까지 지니고 있던 확신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그만하시죠.”
“응? 왜, 석두야? 공부 힘드니?”
“아, 진짜!”
현장에선 그렇게 든든하던 것들이, 아이처럼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간에 이성하가 지금 참고서를 붙들고 있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래, 열심히 해라. 그게 정답이니까.’
[인명 구조]
그것이 앞으로 이성하가 걸어갈 길이었으니까.
* * *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이제 깁스 풀어도 되는 겁니까?”
“네. 내일부터 재활 훈련 들어가실 거예요.”
의사의 판단하에 하나둘씩 깁스를 풀고 재활 훈련에 들어갔고, 그중 가장 빨리 현역 복귀 판정을 받은 이는 이성하였다.
“아싸! 저 복귀합니다.”
“진짜?”
“네. 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 다 정상 기준이라고 복귀해도 된대요. 그래서 다음 주부터 출근이에요. 하하하.”
애초부터 대원들 중 가장 경상이기도 했지만, 렉스의 회복력 덕분에 고작 두 달 만에 부상을 털고 일어난 것이다.
물론 그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이도 있었다.
“성하 씨, 솔직히 말해 봐요. 뭐 좋은 거 드시죠?”
어느새 편해져서 스스럼없이 지내게 된 외과의사 김민정이었다.
“아니, 그렇잖아요. 저번에도 그렇고, 뭐가 이리 빨리 아물어요? 혹시 산삼 같은 거 드시는 거 아니에요?”
“하하하…….”
주치의로서 이성하를 여러 번 전담하다 보니, 유난히 남들보다 빨리 회복하는 모습에 의문을 가지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는지, 이성하에게 다음 용건을 내밀었다.
“그나저나 언제 시간 돼요?”
“시간요?”
“네. 제가 신세 진 건 꼭 갚아야 하는 성격이라서요. 목숨을 구해 줬는데 밥 한번 살게요.”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이었고, 이성하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절하려 했지만 갑자기 느껴지는 압박에 수락했다.
“아니, 괜찮…….”
콰직.
거절의 말을 꺼내려 하자마자 김민정이 손에 들고 있는 이성하의 문진표를 순식간에 구겼다.
[야,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어. 이 여자 뭐야?]
그와 동시에 렉스의 다급한 음성이 귓가를 울렸고, 이어서 들리는 김민정의 싸늘한 목소리에 이성하가 다급히 대답했다.
“뭐. 라. 고. 요?”
“시간 낸다고요…… 하하하…….”
허락하지 않으면 칼을 맞을 거 같은 싸늘한 분위기에 어색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분위기는 빠르게 회복됐다.
“네. 제가 그러면 조만간 연락 드릴게요.”
김민정이 언제 싸늘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구겨진 문진표를 바르게 펴며 말했다.
아무튼 그렇게 인사를 마친 이성하는 드디어 병원을 나섰다.
“간간이 올게요.”
“오긴 뭘 와. 가서 적응하고 있어. 금방 따라서 복귀할 테니까.”
“하하하. 알겠습니다. 미리 터 좀 닦아 놓겠습니다.”
이성하는 병실에 들러서 아직 입원해 있는 팀원들은 물론, 일반병실로 옮긴 장건호에게도 인사를 하고는 병원을 나섰고, 곧장 앞으로 근무하게 될 은평소방서로 향했다.
[너도 참 부지런하다.]
‘헤헤. 미리 둘러보면 좋잖아요.’
정식 근무는 다음 주부터였지만, 앞으로 근무하게 될 곳이라는 생각에 미리 인사를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잘한 생각이었다.
은평구의 모든 센터를 관리하는 소방서답게, 은평소방서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성하가 근무했던 길현 센터가 세 대의 소방차를 주차할 수 있는 차고지를 보유했다면, 은평소방서의 경우에는 보이는 차고지만 최소 열두 대의 소방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뒤쪽으로 늘어진 사설 주차장이 있어 소방차가 몇 대가 늘어나건 추가 주차가 가능했고, 그보다 놀라운 건 시설의 규모였다.
“와, 훈련 탑이 따로 있네요.”
[아무래도 구조대가 있는 곳이니까. 저쪽에 상황실도 있네.]
“상황실이요?”
[어, CP. 출동 때마다 듣던 지휘소 무전 말이야.]
은평소방서가 은평구 내의 모든 재난 상황을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인 만큼, 재난 상황을 대처하는 핵심 부서가 모두 모여 있는 상황.
그리고 그런 부서 중 이성하가 갈 곳은 1층에 있었다.
[현장대응단]
작년부터 재난에 더욱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구조대와 진압대, 구급대 모두를 하나로 묶어 움직이는 현장대응단실이었고,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소방관들의 숫자에 이성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박.’
[많지?]
‘네, 진짜 많네요.’
[내가 예전에 기억하는 것보다도 인원이 많네. 대충 한 팀당 열 명은 되겠는데?]
다른 곳이긴 하지만, 이미 소방서 경험이 있는 렉스마저 만족한 음성을 내뱉을 정도로 많은 수의 소방관들이 근무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소방관들이 이성하를 바라봤다.
“쟤 누구야?”
“글쎄, 누구지? 센터 직원인가?”
처음 보는 얼굴에 의문을 표하는 모습들이었다.
출동을 전담하는 부서인 만큼, 외부인이 들어올 일이 많지 않은 게 이곳 현장대응단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이성하를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
“너구나, 그 소방사시보.”
반가움이 묻어난 목소리였다.
“그러네. 그 꼬마잖아. 이번에 활약한 꼬마.”
하나둘씩 이성하를 알아봤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손을 들었고, 그중 가장 반가워한 소방관들은 팔뚝에 구조대 마크를 달고 있는 구조대원들이었다.
“이번에 신세 한 번 졌다. 네가 우리 막내 구해 준 놈이지?”
“고맙다. 구조 1팀 명진운이야. 강 대장님께 활약 들었어.”
“야, 네가 말로만 듣던 그 시보구나. 반갑다. 다음 주부터라고 들었는데 벌써 출근한 거야?”
안 그래도 이번 북한산 화재 때, 이성하에게 신세를 졌다는 생각에 다들 만나 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성하 역시 방긋 웃으며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근무하기 전에 미리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오, 그래? 기특한데?”
“아닙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누구보다 원했던 구조대였기에 반가운 건 이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뭐야? 외부인이 여기 왜 있어?”
뒤에서 굵직한 저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얘는 뭐야?”
목소리에 놀란 이성하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1팀 팀장 정철호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