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44화>
44화. 자격 (1)
구조대는 흔히 소방의 꽃이라 불리는 조직이다.
일반인들에게도 보편적으로 119 하면 떠오르는 조직일 만큼, 언론에도 가장 많이 노출되는 소방의 대표 조직.
하지만 그 꽃이 화려함을 상징하는 건 아니었다.
화르르르르!
“크윽. 아직 불길이 너무 거셉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 정도면 충분해! 진입해!”
“진입!”
어떤 상황이라도 가장 먼저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조직이 구조대였다.
“요구조자 발견!”
“오케이. 나머지 구역 빠르게 수색하고, 최대한 빠르게 돌아간다!”
진압이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요구조자의 구조만을 목적으로 삼는 조직이고, 그 때문에 모든 소방 조직 중 부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조직이 구조대였다.
“제기랄! 들것 가져와!”
“구급대! 여기 대원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 빨리 병원으로 후송해! 빨리!”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위험 속으로 돌입하는 만큼, 부상을 입는 경우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소방의 꽃이라 불리는 거였다.
[인명 구조.]
소방관의 존재 이유를 목표로 내건 유일한 소방 조직이 그들 구조대였으니까.
그랬기에 현역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 봤을 보직이 구조대였고, 그건 이번에 구조대 발령을 받은 길현대도 마찬가지였다.
“구조대라. 이거 생각도 안 했는데 갑자기 바빠지게 생겼는데?”
“에이, 생각도 안 하다뇨. 부장님이 세 번이나 지원했던 거 다 알고 있는데. 흐흐흐.”
“어쭈? 재작년에 서류 접수에서 탈락했다고 질질 짜던 거 누구였더라?”
“아, 진짜! 막내 듣는데 이럴 겁니까!”
허석훈과 오성수가 과거사를 늘어놓으며 서로를 놀릴 정도로, 다들 구조대를 선망해 지원한 경험들이 있었다.
물론 이성하에게 그런 선배들의 장난 어린 수다는 들리지 않았다.
이성하 역시 그토록 바라던 구조대로 발령됐다는 기쁨에, 누군갈 신경 쓰기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씨구, 다들 팔자 좋네.”
“어? 장 부장님.”
“저도 왔습니다. 다들 괜찮으시죠?”
길현대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같은 3팀의 장호철과 김영광이 병문안을 왔다.
“성수야, 뭐 하냐. 빨리 안 받고.”
“에이,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요?”
“사람이 몇인데. 시끄럽고 빨리 받아, 무거워.”
“맞아. 빨리 받아. 이거 무거워.”
들어오자마자 양손 가득 들고 있던 음료수 박수를 오성수에게 내밀었고, 이성하에게는 김영광이 종이 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막내, 너는 이거 받고.”
“이건 뭡니까?”
꽤 무게가 나가는 종이 가방이었다.
열어 보니 꽤 두꺼운 책 하나가 있었다. 그걸 꺼내 본 이성하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이, 인명구조사?”
정확히는 참고서였다.
겉에는 인명구조사 2급 교재라는 제목이 빨간 글씨로 쓰여 있었으며, 그런 이성하를 향해 장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오늘부터 그거 달달 외워.”
“……오늘부터요?”
“그래. 필기시험 일정 보니까 9월 초더라고. 구조대로 발령됐는데 딸 건 따야지.”
구조대라면 필히 따야 할 인명구조사 시험을 준비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9, 9월이요?”
지금이 5월이었다.
5월의 대부분이 지났다는 걸 감안한다면 시험까지 해 봐야 3개월밖에 안 남았고, 그 기간을 생각한다면 합격은 요원한 일이었다.
[에휴, 글렀네.]
‘글렀다뇨…….’
[너 그 쉽다는 운전면허 시험도 두 번이나 떨어졌잖아.]
‘…….’
렉스의 말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한 것처럼, 시험에 관련된 일이라면 매번 죽을 쓰곤 하는 게 이성하의 머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팀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3개월? 그거 성하 머리로는 빡셀 텐데.”
허석훈이 한쪽에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장님!”
그 말에 이성하가 괴로운 표정으로 절규했지만, 옆에 앉은 오성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에 동참했다.
“맞다. 너 화재대응 2급 못 땄다 그랬지?”
“…….”
“어떻게 그걸 떨어지냐? 남들은 다 소방학교에서 따고 나오는 자격증을.”
“하…….”
남들은 다 소방학교에서 따고 나오는 화재대응 시험에서 탈락해, 아무 자격증 없이 졸업한 극소수의 교육생 중 한 명이 바로 이성하였다.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에 합격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화재대응 2급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기본만 공부하면 합격이 보장된 자격증으로 유명했다.
<소방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들>
Q. 이번에 소방학교에 입교하는데 안에서 화재대응 2급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이거 따기 어려운가요?
- 화재대응 2급이요? 그거 그냥 수업만 열심히 들으면 돼요.
- ㅇㅇ 그냥 수업만 열심히 들으면 됨. 필기와 실기 모두 교육 과정에 포함돼서 매년 합격률이 90% 이상임.
- 맞아요. 수업만 들어도 충분합니다. 수업 다 받으면 그냥 도덕 시험 치르는 느낌이에요.
- 2급은 그냥 거저먹는 자격증임. 진짜 지독하게 운이 없지 않는 이상 다 붙습니다. 제가 교육생 때 떨어진 사람, 열 명 안 됐을걸요?
소방공무원을 준비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떨어지면 호구 소리를 듣는 자격증이 바로 소방학교에서 딸 수 있는 화재대응 2급이었다.
하지만 이성하에게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화재대응 시험’ 합격률 90%에서 70%로 곤두박질>
<방심하던 소방관들, 갑작스러운 자격증 시험의 난이도 상승에 진땀 흘려>
작년부터 이상하게 소방 관련 자격시험의 난이도가 상승한 참이었다.
“미친, 이게 뭐야!”
당연히 시험이 쉬울 거라 예상했던 이성하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고, 그 피해는 이성하만이 아닌 룸메이트 전원이 맞았다.
“뭐야? 11조는 이론은 버리고 아예 체력 훈련에만 집중하는 건가?”
“…….”
“실기 성적도 중요하지만, 이론 공부도 중요하다. 앞으로 야간 훈련은 줄이고 공부에 집중하도록.”
“네…….”
사실 부족한 체력을 늘리기 위해 야간마다 체력 훈련에 집중한 탓에, 이성하의 조 전원이 자격증 시험에서 탈락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바로 오성수를 향해 날 선 표정을 지었다.
“제가 떨어지면 선배도 떨어질걸요?”
“뭐?”
“이번 연도부터 인명구조사 시험 어려워지는 거 몰라요?”
사정도 모르고 무식하다며 놀리는 선배의 모습에 분통이 터져 올랐다.
하지만 그 말에 오성수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막내야. 내가 몇 년 차지?”
“4년 차요.”
“그래. 4년 차. 그런데 구조대를 지원했던 내가 인명구조사를 안 따 놨을까?”
“…….”
오성수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보이냐? 보여?”
사진 하나를 핸드폰에 띄우고는 이성하에게 내보였고, 그에 이성하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어, 언제…….”
“작년에 땄지. 이 정도는 기본 아니냐? 형은 너 같은 돌머리가 아니거든. 푸하하하.”
오성수가 내민 핸드폰에서 그의 이름으로 된 인명구조사 자격증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럼 다른 선배님들은?”
그 때문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른 팀원들을 바라봤지만, 그들 역시 여유로운 웃음을 짓는 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15년 전에 땄던가?”
“기억나네요. 10년 전이었죠.”
“후후후. 나도 구조대 시험에 떨어지긴 했지만, 인명구조사는 미리 따 뒀지.”
승자의 표정으로 이성하를 향해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이성하가 참고서를 가져다준 장호철과 김영광을 보며 좌절했다.
“아, 병원에서 무슨 공부를 해요?!”
다른 동료들은 편하게 휴식할 시간에 자기 혼자만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성하는 절규하고 말았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야, 어차피 따야 돼. 나중에 근무하면서 준비하는 게 더 힘든 거 몰라?]
렉스의 말처럼 차라리 이렇게 쉴 때 준비하는 게 나았다.
‘그래요. 그것보단 낫죠.’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근무 와중에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참고서를 펼치자마자 머리가 아파 왔다.
“구조개론…….”
딱 봐도 머리가 아픈 단어였다.
“구조행동 요령…… 안전사고 발생 이론…….”
그 외에도 이어서 펼쳐지는 머리 아픈 단어에 인상을 찌푸렸고, 그 모습에 3팀의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그러게요. 저걸 언제 다 외우냐?”
“에이, 저걸 어떻게 다 외워요. 두께가 백과사전인데.”
“크으. 다행이다. 작년에 따 두길 잘했어.”
“응급구조사도 외울 게 참 많았는데.”
“아! 이야기하지 마요, 선배님.”
저마다 이성하가 공부하는 모습에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밤을 샜던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이번 길현대의 구조대 발령은 은평소방서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대박. 이번에 북한산 구조 작전 펼쳤던 길현대. 구조대로 발령되네.”
“길현대? 길현대라면 그럴 만하지. 현장에 있었던 구조대한테 이야기 들어 보니까 장난 아니었다며?”
“맞아. 끝장났대. 강 대장님이 보고 감탄할 정도였다잖냐? 그래서 인터뷰도 그렇게 한 거고.”
언론이 대서특필했던 것처럼 그들의 발령을 좋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면.
“야, 그래도 전체는 오버 아니냐?”
“오버지. 아무리 그래도 구조대는 시험 쳐서 들어가는 게 정석인데.”
“맞아. 거기다 이번에 권 대장님이 복귀 조건으로 서장님께 딜해서 성사된 거라며?”
“딜? 뭐야, 그러면 또 연줄 인사야?”
“연줄이지. 아니면 서장님이 허락했겠냐?”
“야, 그러면 항의해야 되는 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구조대인데 너무하네.”
유례 없는 발령에 나쁘게 보는 시선도 존재하는 상황.
하지만 문제는 그 나쁘게 보는 시선에 길현대가 속한 구조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길현대요? 대장님, 지금 장난하십니까? 기존 구조대도 아니고 갑자기 센터 팀 발령이라뇨!”
소식을 듣자마자 현 구조대장인 강천호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인물이 있었다.
“그런 게 아니야. 권 대장님이 추천하신 거야. 서장님도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거고.”
“아뇨. 저는 인정 못 합니다. 제가 서장님께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강천호의 만류에도 서장에게 따지겠다며 서장실로 향하는 인물이었고, 그 인물은 서장실로 들어가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밝혔다.
“서장님, 이번 길현대의 구조대 발령 취소해 주십쇼.”
“뭐?”
“강 대장님께 이야기 들었습니다. 이번 구조대 발령 건 서장님께서 지시하신 거라고. 저는 인정 못 합니다. 구조대가 어떤 곳인데 아무나 그렇게 막 받아들입니까!
이번에 결정된 길현대 구조대 발령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정식으로 항의 의사를 표출한 것이다.
하지만 서장은 그런 당돌한 말에도 아무 말을 못 했다.
‘하…… 이거 골치 아프게 됐네.’
눈앞의 인물이 현 대장인 강천호도 통솔하기 힘든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절대 인정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권 대장님이 복귀한다 해도요.”
다시 한번 단호한 표정으로 서장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이 사람. 사람들은 그를 은평 구조대의 불곰이라 불렀다.
‘1팀 팀장으로서 절대 자격이 없는 구조대원은 동료로 받아들일 수 없어.’
바로 은평 구조대의 1팀장 정철호.
그가 매서운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